▲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 세 첩. 어떤 처방을 쓸까 고민하던 허준에게 옆에 있던 선비가 알려준 처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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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 세 첩. 어떤 처방을 쓸까 고민하던 허준에게 옆에 있던 선비가 알려준 처방이다. 한의사가 될 운명이었을까. 어린 시절 집안 서가에 꽂혀 있던 책에서 읽은 명의 허준에 관한 곽향정기산에 관한 일화는 아직도 같이 그려져 있던 삽화까지도 생생하다.
허준이 젊었을 때 그래서 아직은 유명해지지 않았을 때 지금의 서울 구리개(銅峴)에서 병원을 개원하고 환자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선비가 사람을 만날 약속이 있다 하면서 그의 병원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이 선비는 여러 날이 되어도 병원을 떠나지도 않고 만나기로 했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급하게 병원에 들어오더니 아내가 출산이 임박하여 졸도를 했으니 약을 지어달라고 허준에게 부탁했다. 허준은 환자를 보지 않고 어떻게 약을 처방하느냐고 거절하였지만 남편은 어떻게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약을 지어달라고 계속하여 애원하였다.
마침 옆에서 보고 있던 선비가 곽향정기산 세 첩이면 되겠네 하는 것이었다. 허준은 적응증이 다를 뿐만 아니라 임산부에게 처방할 수 있는 약은 아니어서 미심쩍어 했지만 약을 지으러 온 남편이 그 약이라도 지어달라고 하자 하는수 없이 곽향정기산 세 첩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때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나서 이웃 임산부가 조금 전 여기서 처방해준 약을 지어먹고 목숨을 건졌으니 세 살 먹은 아들의 열병 약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또 옆에 있던 선비가 곽향정기산 세 첩이라고 말했다.
허준 생각에 어린이 열성 질환에는 맞지 않는 약이었지만 선비의 말 대로 약을 지어 주었다. 다음 날 당연히 아이의 병은 나았고 아이 아버지는 새벽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찾아 왔다.
어느 날은 재상의 아들이 허준에게 부친의 약을 처방 받으러 왔다. 허준이 자세히 부친의 병환을 묻자 옆에 있던 선비는 다시 곽향정기산 세 첩을 말하였다. 재상의 아들은 이상스러운 선비가 말한 곽향정기산은 아무래도 맞지 않는 것 같아 제쳐 두고 다른 곳에서 인삼이 든 약을 처방 받아 부친에게 복용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부친의 병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중 선비에 이야기를 듣고 허준이 처방한 곽향정기산을 달여 먹었더니 바로 병이 나아졌다. 이후 허준은 명의로 소문이 자자해졌지만, 선비는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가 버리고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 곽향정기산은 곽향(藿香)이 주약으로 되어 있고 여기에 차조기의 잎인 소엽과 소화를 촉진하고 위장의 기능을 돕는 작용을 하는 백출과 진피와 반하 및 대복피와 후박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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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조선 철종시절 이원명(李源命)이라는 사람이 엮은 야담집인 동야휘집(東野彙輯)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 이다.
곽향정기산은 곽향(藿香)이 주약으로 되어 있고 여기에 차조기의 잎인 소엽과 소화를 촉진하고 위장의 기능을 돕는 작용을 하는 백출과 진피와 반하 및 대복피와 후박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약으로 동의보감에는 감기 후에 머리가 아프고 몸이 쑤시는 증상이나 중풍 또는 곽란 등의 증상에 사용하는 약으로 되어 있다.
주약으로 사용된 곽향은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배초향(Agatache rugosa)이라는 식물의 전체를 말린 것이다.
▲ 주약으로 사용된 곽향은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배초향(Agatache rugosa)이라는 식물의 전체를 말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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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초향은 꿀풀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이다. 꿀풀과의 식물들이 그렇듯이 배초향도 짙은 향기를 지닌 자주색 꽃대가 특징이다. 잎은 심장형으로 가장자리는 톱니모양이며 서로 마주 보며 난다.
잎은 흡사 깻잎처럼 독특한 향기가 나기 때문에 경상도 지역에서는 방아잎 또는 깨나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떡이나 부침개를 할 때 사용하기도 하고 부드러운 어린잎은 나물로도 먹기도 하고 추어탕이나 매운탕 요리를 할 때 비린 맛을 없애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배초향은 흔히 한국박하(Korean mint)의 이름으로 세계적으로는 통칭된다. 당연히 우리나라가 원산지이고 기타 중국이나 일본 및 러시아 북동부 등지와 대만 및 베트남에서도 자생한다.
배초향 즉 곽향은 한의학적으로 약간 따뜻한 성질을 지녔으며 맛 또한 약간 방향성의 매운맛을 지니면서 독은 없는 것으로 동의보감에는 기록되어 있다.
▲ 불환금정기산은 말 그대로 돈으로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기를 바르게 되살리는 효능이 있다는 처방이다. 곽향이 주약의 하나로 되어 있으며 토사곽란이나 감기 증상으로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머리와 온 몸이 아픈 증상에 두루 활용되는 처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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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향은 본래 특히 위장에서 불필요하거나 비정상적으로 과도해진 체액을 없애는 효능을 발휘한다. 그래서 상한 음식이나 물을 마시고 나서 발생하는 모든 나쁜 종기나 병독을 없애고 곽란을 멈추게 하기 때문에 위장질환으로 인한 구토를 멈추게 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매우 중요한 약재로 설명한다.
또한 감기 증상을 없애는 효능도 가지고 있다고 동의보감은 설명하고 있다. 특히 여름에 감기로 열이 나는 증상에 더욱 효과가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곽향을 가장 중요한 50가지 약재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실제 곽향은 앞서 언급한 곽향정기산 외에도 불환금정기산(不換金正氣散)이나 향사평위산(香砂平胃散)과 같은 처방에서 중요한 약재로 사용된다.
불환금정기산은 말 그대로 돈으로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기를 바르게 되살리는 효능이 있다는 처방이다. 곽향이 주약의 하나로 되어 있으며 토사곽란이나 감기 증상으로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머리와 온 몸이 아픈 증상에 두루 활용되는 처방이다.
역시 곽향이 함유되어 있는 향사평위산 역시 급체와 소화불량 등의 증상에 자주 사용되는 한약이다.
▲ 곽향이 위점막 모세혈관을 확장하여 위장 기능을 촉진하고, 위를 지배하는 신경에 대한 진정작용을 발휘하며, 위액 분비를 촉진하여 소화력을 강화하는 약리 작용을 가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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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러한 효능은 곽향이 위점막 모세혈관을 확장하여 위장 기능을 촉진하고, 위를 지배하는 신경에 대한 진정작용을 발휘하며, 위액 분비를 촉진하여 소화력을 강화하는 약리 작용을 가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곽향 추출물은 기능이 약해진 장운동을 촉진하는 효능도 가진다.
실제 곽향은 향료로 이용되며 지금까지 77종의 정유성분 물질을 가진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곽향의 이러한 성분은 항염증 작용을 가진다. 실험적으로 곽향은 염증을 유발하거나 염증 과정에서 많아지는 독성물질들의 분비를 억제하여 염증을 완화시키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또 곽향은 항산화효능에 의한 살균작용도 발휘한다. 곽향 추출물은 곰팡이 균인 백선균과 병원성 진균에 대하여 항진균 작용을 나타냈고, 각종 염증과 종기를 유발하는 대장균이나 포도상구균 및 폐렴구균 같은 화농성균에 대하여도 항균작용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 곽향 추출물은 곰팡이 균인 백선균과 병원성 진균에 대하여 항진균 작용을 나타냈고, 각종 염증과 종기를 유발하는 대장균이나 포도상구균 및 폐렴구균 같은 화농성균에 대하여도 항균작용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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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효능을 활용하여 음식에 곽향을 첨가하면 대장균 및 다른 미생물의 수치가 낮아져서 식중독 등의 예방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연구도 발표되었다. 바로 이러한 효능이 오래 전부터 음식에 배초향 잎을 활용해 온 조상들의 지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식중독이나 위장염이 발생하기 쉬운 여름철 질환에는 거의 빠짐없이 곽향이 활용되어 온 것도 바로 이러한 효능에 기인한다 할 것이다.
▲ 곽향은 독특한 향기가 있어서 달인 물이나 잎을 입에 오래 머금고 있으면 입냄새를 없애는 효능도 발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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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곽향은 독특한 향기가 있어서 달인 물이나 잎을 입에 오래 머금고 있으면 입냄새를 없애는 효능도 발휘한다.
이처럼 배초향은 음식의 요리에서 병을 치료하는 약재로의 활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다양한 효능을 가진 배초향이기에 허준도 이를 활용한 곽향정기산으로 여러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 가까운 산에 올라보자. 적당히 햇볕이 드는 산기슭에서 조금만 자세히 보면 배초향이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꽃의 향기를 맡다 보면 어느 새 허준과 선비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 송봉근 교수 프로필
現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한의학 박사)
現 원광대학교 광주한방병원 6내과 과장
中國 중의연구원 광안문 병원 객원연구원
美國 테네시주립의과대학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