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절인가 아니면 건국절인가’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이 아니라 정식 정부가 수립된 날입니다.”(이종찬 광복회장)
우리 국가가 세워졌던 연원을 어느 시점부터 산정해야 할지 ‘국조 단군에 의한 개천설, 1897년 대한제국설, 1919년 임시정부건국설, 1948년 대한민국건국설’ 등 폭넓은 의견이 개진되어 왔다. 이 중 대한민국건국 시점 논쟁은 크게 보아 1919년설과 1948년설로 양립되어 있다. 전자는 임시정부의 투쟁을 중시하는 김구 중심의 그룹이었고, 후자는 이승만이 세운 대한민국을 중시하는 그룹이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光復節)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이다. 연도를 제외한 월일은 1945년을 유래로 하는 광복절과 동일하기에 실제는 ‘광복절’의 명칭을 ‘건국절’로 변경하자는 찬반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반대 입장이 현저하지만 현 정부에서 논조의 미묘한 기류 변화가 있어 그 행방이 주목되고 있다. 현재 중·고교생이 배우는 교과서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명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찬반 극심’
올해 5월 22일 당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 청문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물론 그림자가 있지만 그림자를 덮을 공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에 대해 “제 개인적 소신은 확실하다”고 말하면서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에 대해 이종찬 광복회장은 일제 강점기에도 “우리 역사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면서 “보수 일각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신격화하여 건국 대통령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괴물 기념관이 건립된다면 반대할 것”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는 3.1 운동 후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부터 시작됐다는 뜻이다. 광복회는 대한민국이 1948년 건국됐다는 보수 세력의 주장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광복절 행사를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및 광복 63주년 경축식’이라고 설정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광복절을 “건국 68주년, 광복 71주년,”이라고 말하는 등 보수 정부는 이승만 정부 수립을 건국의 기점이라고 강조하는 모습에 경도되었다.
2018년 5월 2일 공개된 ‘중·고교 역사과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 왜곡된 내용을 바로잡고, 논쟁적 사안은 역사학계의 ‘통설’을 따랐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이번 시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표현은 ‘대한민국의 ‘건국’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서 비롯되었다고 못 박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1948년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구분한 것이다.
앞서 2017년 8월 15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건국은 1948년이 아닌 1919년에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자랑스러운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외면했다. 심지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 했고, 역사 국정교과서를 통해 1948년 건국절을 기정사실화, 공식화하려고 했다. 이는 역사 왜곡이자 축소”라고 비판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곧바로 반박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좌파 진영이 1919년 상해 임시정부를 처음 만들었을 때를 건국일로 보는 것은 북한을 의식하기 때문”이라며 “남한 정부, 한국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기 위해 1919년 상해 임정 수립을 건국절로 하자는 것으로 본다”며 맞받았다.
● ‘미국‧프랑스‧중국’ 독립일 경축
해묵은 건국절 논란의 재부상 논점은 크게 1948년 8월 15일 건국설과 1919년 4월 11일 건국설이 대립한다.
건국절 제정 주장은 주로 보수계열 정당과 우익 진영, 그리고 특히 뉴라이트로부터 나오고 있다. 건국절 제정에 찬성하는 이들은 모든 나라에는 생일이 있는데 대한민국에만 생일이 없다며, 8.15를 건국절로 제정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내세우고 국민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건국절 제정을 반대하는 입장은 주로 민주‧진보 정당, 그리고 역사학자 등 주류 학계, 역사학회 단체들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은 광복절을 폐하고 건국절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끔 하는 것은 해방 공간 3년 간 단독 정부 수립을 옹호하고 여기에 참여한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건국 공신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으며, 헌법에도 명시된 임시정부의 법통과 우리 역사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은 무엇인가? 건국절을 주장하는 자들은 반공을 핵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우리 제헌헌법은 그것을 ‘민주주의’로 표현했다. 건국의 이념은 사회주의와 독재체제를 배제하는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그 민주주의는 독립 투쟁정신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8·15를 광복절로 하고 건국절로 이름붙이지 않은 이유는 정부를 다시 세운 것도 중요하지만, 독립의 가치가 최우선되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의 주권을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1941년 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자 추축국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등 정부의 역할을 긴밀히 수행했다. 국내외의 한인들 대부분은 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고, 너도나도 임시정부를 위한 자금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를 엄연한 국가로 인정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현실인식과 국제법을 거부하고, 장구한 역사와 독립정신에 기반 한 장엄한 역사인식의 발로였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8월 15일은 독립과 정부수립(건국)이라는 두 가지 가치 중에 좀 더 근본적인 성격의 독립을 기념하여 정한 국경일이다. 미국, 프랑스, 중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는 건국절이 아니라 독립일, 혁명일을 경축하고 있다. 굳이 지금 이 시점에 스스로 세워온 반식민주의적 역사인식과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국제법적 논리 모순을 따지며, 시대착오적 냉전의식을 고취하는 ‘건국절’을 애창할 이유가 전혀 없다.
국가 존재의 의미는 시간성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는 과거, 현재, 미래의 상호 연관성 안에서 위치한다. 국가는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미래로 웅비하면서,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다.
이미 개천절을 건국기원절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는데, 또 무슨 건국절이 필요한가? 일본도 기원전 660년 초대 천황이 즉위한 날을 건국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북한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1948년 9월 9일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절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다. 건국절 제정은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을 포기하는 반헌법적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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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