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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4.12.06 [20:21]
<土曜 隨筆> 임미옥 ‘통쾌한 이별 30분’
 
수필가 임미옥

 

▲ 수필가 임미옥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이제는 보내줘요. 더는 안 되겠어요.” “너무 두려워마음의 준비 좀 하고.” 희뿌연 눈으로 수정이 보챈다. 수년 전부터 이별을 통보해 왔으나 못 들은 척했다. 이별이 그리 쉽냐며 뜸을 들였더니 오늘은 새벽부터 조른다.

 

이별의 고통과 후유증을 가늠할 수 없어 더욱 두렵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이별이 있을까. 어릴 적에 먹던 쫀드기만 해도 그렇다. 그것도 이별이라고 헤어지는 소리가 요란도 했다. 딱 달라붙은 것을 떼어내면 !”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물며 나와 함께 와서 동체로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가. 스스로는 할 수 없어 결국 안과 의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마취약 넣습니다.” 간호사가 내 눈을 벌리더니 안약을 질금질금 떨군다. 순간 풀어헤친 검은 머리채 한 묶음이 휙 지난다. 눈물이 주룩 흐른다. 이쯤에서 슬퍼해야 하나? ‘강변에 버드나무야 울지 마라.’ 간호사가 솜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더니 안대를 씌운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가더니 침대에 눕힌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긴장 푸셔요. 백내장 수술 베테랑 의사입니다.”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잔잔한 바람결이다. ‘음성이 봄바람이군요. 안정된 피치 톤과 속도가 신뢰를 주는군요. 제게는 이별이란 큰바람이 불어왔고 머뭇거리는 제 생각을 이미 뒤엎었네요. 의지의 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리고 두 눈을 맡기니 당신 마음대로 하셔요.’

 

도로로로 다라라라. 레이저 바람을 타고 수정이 해체되어 떠난다. 부서지는 별빛이 현실 세계를 덮어 버린다. 수백만 광년 우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안녕! 늙은 내 등불이여. 산산이 부서져 전설 조각으로 흩어지누나.

 

이제 너 어느 별로 가는 거니?’ ‘들어봐요. 바람 소리를. 울지 마요. 그리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잖아요. 앞으로 마법 같은 세상이 올 거예요.’ ‘너와 함께 와서 세상과 마주하면서 마법은 이미 시작되었어. 너를 보내고 인공 수정체와 만난들 처음의 그 세상은 아니지. 너는 너무 많은 걸 보여주었어. 문제는 네게 너무 익숙했다는 거지.’ “아주 잘 되고 있습니다.” 의사가 이 말을 반복한다. 두려움의 경계가 무너지고 신세계가 깨어난다.

 

각설하고, 저 파편 조각들이나 세어 볼까. 만상을 셀 수 없고 바닷가의 모래를 셀 수 없듯 불가능한 일이라 포기한다. 도로로로 다라라라. 해금 가락에 가슴을 태우듯 기계 소리에 끌려다닌다. 이별 가락치고 부드럽기도 하지. 꽃망울 터뜨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이와 같을까. 그나저나 도무지 내 눈을 어떻게 하는 걸까.

 

나는 지금 눈을 감은 건가 뜬 건가. 그조차 알 수 없어 천체의 시간을 의사에게 내어준다. 평화로워진다. 열리었으나 보이지 않는 하늘, 그 느슨함의 영험까지 체험한다. 이대로 누워 그 깊은 나라 어딘가에 내 주소를 부여하고 문패 하나 달아도 괜찮지 싶다.

 

잘 보이시죠?” 이튿날 안대를 벗겨주며 간호사가 말한다. 인공 수정체가 마법을 실현한다. 회색이던 내 상의가 환한 베이지로 변했다. 기암을 토할 의술이다. 놀람은 이어졌다. 사람은 순간 만 가지 생각을 한다더니 밥솥을 열다 옛날 푸세식 화장실이 떠올라 흠칫했다.

 

밥솥에 구더기가 있을 리 없지.’ 하고 보니 하얀 밥알들이 쌀눈을 뜨고 빽빽하게 서 있다. 탱글탱글 알알이 존재감을 맘껏 드러내고 있다. 이리도 고울 줄이야. 세상엔 통쾌한 이별도 있었구나. 이별하기까지 고민은 길었으나 실행하여 종결하기까지는 두 눈 합쳐 30분이면 족했다.

 

사람들 얼굴을 보니 누구는 피부가 더 환해졌고 누구는 검버섯이 더 짙어졌다. 회색의 경계가 무너지고 진실의 세계가 깨어난 것이다. 나는 엷은 휘장으로 진실을 가리고 세상을 본 것이다.

 

진실이 아니었으니 잘못된 걸까. “하늘이 누렇게 보여. 모든 곳에 안개가 낀 것 같아.” 이쯤에서 노년에 백내장이 심했던 클로드 모네가 한 말을 가져와 되뇐다. 인상주의 화가인 그는 일본식 다리를 같은 위치에서 보고 여러 점 그렸다.

 

그런데 백내장이 심해지면서 작품 색상이 흐려진다. 하지만 모두 걸작품으로 승화하는 경지에 오른다. 희뿌연 그 풍경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이었기에 주관적 시선으로 그린 거다. 현재에 진심이면 진실을 넘고 세기를 넘어 감동을 주기도 하나 보다.

 

눈이란 정녕 영혼의 창이라 했다. 진실을 가리고 보았을지라도 상대를 볼 때 주관적 시선에서 내 영혼이 내 마음이 지극했다면 후회는 없으리라. 엎드려 나를 톺아볼 시간이다. 나와 함께 와서 내 몸의 창 역할을 다하고 점점이 흩어져간 수정체를 제대로 사랑은 했는지, 고맙다는 말은 했는지, 소중함을 되새기기는 했는지를.

 

임미옥 프로필

20회 동양일보신춘문예 당선

2020년 예술세계 수필 등단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수필집)

음악처럼’ ‘수필과 그림으로 보는 충북명소

꿈꾸는 강변’ ‘내 마음 아직도 그곳에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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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0/20 [11:44]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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