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9 군사합의 ‘첫 효력 무효화’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를 한 둘째 날인 22일 오후 3시를 기해 우리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을 일부 무효화하는 초강수를 뒀다. 발사 직후 12시간 만에 효력 정지가 속전속결로 이뤄진 것이다. 9·19 군사합의 1조3항을 효력 정지하고 합의 이전에 시행하던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의 도발 징후에 대한 공중감시 정찰 활동을 복원한 것이다.
이날 국무회의 결정을 영국 순방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즉각 재가함에 따라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그동안 운용되지 못했던 한국군의 대북 감시·정찰 활동이 재개될 여건이 명분을 갖추게 된 셈이다.
북한 관영매체는 지난 21일 오후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으며, 위성이 정상궤도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북한 발표가 사실이라면 올해 5월 1차 발사와 8월 2차 발사에 실패한 이후 3번째 발사 만에 정찰위성 운반 로켓을 정상 발사한 것이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성공적 발사 여부는 실증 분석이 우선이지만 이번엔 발사체를 궤도에는 올려놨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패를 거듭하던 북한이 불과 몇 달 만에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고 그 대가로 기술이전을 받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22일 정부가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효력을 정지시킨 것은 9·19 합의 1조 3항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관한 것이다. 이 조항은 군사분계선(MDL) 주변 일정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한 것으로, 그동안 북한보다 우월한 공중 정찰 자산을 보유한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했었다.
이번에 효력정지된 1조3항은 군사분계선(MDL) 상공 일대에서 모든 기종을 대상으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있다. 고정익 항공기는 동부지역에선 MDL로부터 40㎞, 서부지역은 20㎞까지 비행금지구역이다. 헬리콥터 같은 회전익 항공기는 MDL로부터 10㎞, 무인기는 동부지역에서 15㎞, 서부지역에서 10㎞로 각각 제한했다.
9·19 합의에서 이제 비행금지구역 조항의 효력이 정지되면 군사분계선(MDL) 일대 무인정찰기는 남방한계선 인근까지 북상할 수 있다. 정찰작전과 비행훈련이 모두 정상화한다. 주한미군이 운용 중인 RC-12X 등의 정찰자산도 군사분계선(MDL) 일대 비행이 가능해진다.
‘9·19 군사합의’란 한국과 북한이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발표한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다. 합의 핵심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군사연습 및 적대행위를 중단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 방지에 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향후 움직임에 따라 9·19 합의에서 효력 정지가 적용되는 항목을 계속 늘릴 것이라는 예측은 단순 엄포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정지 조치를 두고서는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지만, 이미 북한이 합의 내용을 여러 번 위반했다는 점에서 합의 자체가 유명무실했으며 이에 따라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 9.19공동선언 산물! “군사분야 남북합의서”
2018년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해 9.19 공동선언을 하였다. 이 결과물인 ‘군사분야 남북합의서’는 2018년 9월 19일, 대한민국 송영무 국방부장관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상 조선인민군 대장 노광철 사이에 조인된 문서이다.
합의문에는 △어떤 경우에도 무력사용 중지 △상대방 관할구역 침입·공격·점령 행위 엄금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각종 군사연습 중지 △우발적 충돌 차단 상시 연락체계 가동△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등 내용이 담겼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통된 인식으로부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판문점선언’을 엄수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포괄적으로 합의하였다. 주요 핵심 합의 사안은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 쌍방은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기로 하였다.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km 안에서 포병 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해상에서는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 동해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의 수역에서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하기로 하였다. 공중에서는 군사분계선 동 서부지역 상공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 내에서 공대지유도무기사격 등 실탄사격을 동반한 전술훈련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쌍방은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다양한 형태의 봉쇄 차단 및 상대방에 대한 정찰행위 중지 문제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여 협의하기로 하였다.
▶ 쌍방은 비무장지대 안에 감시초소(GP)를 전부 철수하기 위한 시범적 조치로 상호 1km 이내 근접해 있는 남북 감시초소 들을 완전히 철수하기로 하였다. 이와 함께 쌍방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쌍방은 비무장지대 내에서 시범적 남북공동 유해발굴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교류협력 및 접촉 왕래 활성화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대책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쌍방은 남북관리구역에서의 통행 통신 통관(3통)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쌍방은 동·서해선 철도 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군사적 보장대책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2018년 평양에서 우리측 국방장관과 북한 인민무력상이 5조 20개 항의 합의서에 서명했을 당시에는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이 해소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었다.
● 단호한 메시지 “北도발 명분 없어야”
북한은 2020년 6월 16일 남측에 ‘관계 단절’을 통보하며 남북공동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북공동 연락사무소는 문재인 정부가 1차 남북회담 후 ‘판문점 선언’에 따라 건설비용, 유지비, 사용료 등 총 235억 원가량을 들여 북한 개성시에 건립한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는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를 상징적으로 사실상 파기한 것이었다.
이번 윤석열 정부의 9·19 남북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는 먼저 우리 측이 남북 합의 이행 중단을 선언한 첫 사례다. 정부가 효력 정지에 나선 것은 우리만 일방적으로 준수하는 합의는 유지되지 않는다는 단호한 대북 메시지를 보냈다는 평가이다.
남북관계발전법 23조 2항은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해 남북 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9·19 군사합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면서 그 기간을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로 정했다. 이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한국의 이번 조치에 대해 특별한 반응은 보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북한이 그동안 9.19 군사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조치에 맞대응할 명분 자체가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편,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합의 파기 시 북한의 도발을 정당화하는 명분만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조치를 해제할 수 있는 최소 요건으로 남북, 미북 대화 재개를 꼽는다. 특히 현재 단절돼 있는 남북 대화 통로의 복구가 우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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