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투세 폐지 논쟁, 상속세 완화 적시성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소액주주는 주가가 싱승해야 이득을 취하지만, 대주주 입장에선 주가가 너무 상승하면 상속세를 막대하게 물게 된다. 거기다 할증세까지 부가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주주가 증여·상속 때 세금을 덜 내려고 주가 상승을 외면하려는 것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상장 기업 주식의 저평가 현상)의 핵심 요인으로 짚은 것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상속세 부담으로 중소기업 경영 유지가 어렵다”며, 상속세 완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 1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기업이 영속성을 갖고 잘 운영돼야 근로자의 고용안정도 보장된다”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논쟁에 이어 상속세 완화 추진까지 시사하면서 ‘부자 감세’ 논란이 커지자, 지난 1월 18일 대통령실은 “지금 당장 어떻게 하겠단 것이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실의 이날 발언은 윤 대통령이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부자 감세에 올인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진 가운데 나온 것이다.
작년 2023년 12월 17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 답변서를 통해 “상속세 개편은 사회 각계각층과 긴밀히 소통하고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지난해 국세수입 감소로 55조원 정도 세수결손이 날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금융투자세와 상속제 완화 추진 등 세수 확보 여력을 낮추는 정책이 연이어 발표되자 ‘현정부의 건전재정과 상충된다’는 목소리가 만만찮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근본적 요인은 지정학적 문제와 기업의 성장세 약화,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라며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세금 문제를 연동시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궤변이자 억지주장”이라는 것이다.
● 전세계 ‘상속 최고세율 평균은’
경제계가 기업 경영 활력과 경쟁력 저하 우려를 앞세워 상속세 부담 완화를 주장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목소리를 부쩍 높이는 배경에는 친기업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 크다. 세수 부족과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가운데 경제단체들이 상속세 부담을 완화해달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곱지 않은 여론과 세수 비상을 의식해서 연내 상속세 개편을 보류했지만, 경제단체들의 요구는 올 총선 이후까지 겨냥한 사전포석 성격이 짙다. 재계의 숙원이었던 법인세율 인하가 전격 이뤄진 것처럼, 현 정부 때 상속세 인하까지 밀어붙여야 한다는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1년 10월 OECD 회원국들의 상속 관련 세제와 시사점을 연구한 보고서를 발행하고 OECD 회원국들의 상속 관련 세제 현황에 대해 종합 평가했다. OECD 회원국 38개 국가 중에 상속세를 부과하는 곳은 24개국이며 이 중 프랑스·독일·일본 등 20개 국가가 취득과세형을 채택하고 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과 영국, 덴마크가 유산세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보고서는 OECD 회원국의 직계 상속에 대한 최고세율의 평균은 약 15%로, 프랑스(45%)와 영국·미국(40%), 스페인(34%), 아일랜드(33%), 벨기에·독일(30%) 등도 일본과 우리나라의 뒤를 이어 높은 축에 속한다. 아울러 한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42%로 프랑스, 영국, 독일(이상 45%)보다 낮고 미국(37%)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영국은 상속세의 원조로 1796년 상속세를 도입한 이래 200년이 넘도록 유지해왔다. 현재 영국의 상속세는 32만5천 파운드(약 5억4천만 원)를 초과하는 유산에 40%가 부과되고 있다.
우리나라 상속세 세율이 전 세계적으로 높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명목세율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상속세 명목세율만 갖고 다른 나라와 단순비교는 타당성이 있을까?
과세 방식과 공제 제도, 증여 재산 합산 기간 등을 종합해 세금이 결정되는데 단순히 명목세율만 가지고 상속세율이 높다, 낮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율 체계는 자산 분포를 고려해 그 나라에 맞게 설계돼 있고 거기에 따라 세율을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효세율을 비교해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보고서에서 각 국가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실효세율 측면에서 각종 공제제도나 기존 소득세와의 관계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므로 “다른 나라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부연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상속세 실효세율(상속재산에서 비과세 재산·장례비·각종 공제를 제외한 과세표준 대비 결정세액)은 28.6%로, OECD 회원국의 평균 상속세율과 별 차이가 없다.
이와 함께 국세청의 2018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피상속인(22만9,826명)의 불과 3%(6,986명)만이 상속세 과세 대상이었다. 과세 대상자들은 1인당 평균 23억5,900만원의 유산을 남겨, 이 중 14.7%(3억4,800만원)를 세금으로 냈다. 상속 재산이 500억원을 초과하는 피상속인의 평균 상속액은 1,583억원이며 이 중 32.2%(510억원)가 상속세였다. 과세 대상이 아닌 나머지 97%의 1인당 상속액은 평균 8,600만원이었다.
● 상속세 폐지국가 ‘조세부담률 매우 높아’
상속세는 부의 대물림 방지를 위해 엄격하게 운영돼야 한다는 의견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동시에 제기되는 등 민감한 문제이다. 상속세 완화 정책은 실현 가능성, 사회적 수용 정도를 종합적으로 숙고하여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다만 명목상 최고세율만 단순히 비교하는 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높다. 직계가족 인적 공제 같은 각종 공제나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자산의 범위 등 나라별로 상속세 계산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 간 통일된 실효세율 비교 정보를 수집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의 상속·증여세가 높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해외의 소득세가 얼마나 되는지도 함께 비교해야 한다. 자산 축적 시기에 각종 공제 등을 활용해 소득세를 덜 냈다면, 이를 통해 형성된 상속재산에는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이 형평에 맞다.
실제 캐나다나 호주, 스웨덴 등은 상속세를 폐지한 뒤 상속 재산을 다시 처분할 때 그 차익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자본이득 과세 방식을 택하고 있다. 예컨대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은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다. 그러나 스웨덴의 세금 부담이 낮다고 누구도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스웨덴의 조세부담률(국내총생산대비 조세 부담수준)은 대한민국보다 1.5배 높다.
2000년대 초반 스웨덴 등 일부 유럽국가들을 중심으로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하거나 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소득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내어 소득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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