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은 균형감, 통일성, 공간감, 규칙성 등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인은 사각의 장점을 최대화하며 빌딩, 학교, 사무실, 병원, 아파트 등에 기거한다. 공간이 부족한 도시에서 사각형 건물은 토지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많다.
사각형의 효율성은 사각형 건물이 나란한 도시의 격자 레이아웃에서 볼 수 있다. 격자 배열은 도시 내의 경험을 일률적이고 단순하게 만들 수 있다.
언젠가 세종시의 모처에 강의를 간 적이 있다. 세종시 청사 설계는 독특했다. 미국 조경 건축가 Valmori(발모리)가 세종시의 도시 디자인을 2007년에 설계했는데 조경을 위한 인프라의 중심이 되었다. 발모리는 격자 모양 도시 위에 굽이치는 유기체를 넣었다.
격자 시스템의 도시 위에 놓인 마치 나뭇잎 테두리 같기도 한 또 다른 동선, 이 유기체는 오로지 사람을 위한 조경 인프라의 뼈대이기도 하다.
2016년 향년 84세로 별세한 발모리는 세종시 행정타운을 누구나 걸을 수 있게 공공적인 요소를 포함시켰다. 행정도시 국제현상설계 당선 당시 그녀가 낸 아이디어의 요지는 이랬다. ‘부지 안 언덕은 그대로 살리고, 그 언덕을 따라 6층 높이의 건물을 짓는다. 1층과 꼭대기 층은 공공 공간으로 쓴다.
건물을 뚝뚝 떨어뜨려 짓지 말고 옥상 공원으로 건물을 유기적으로 이어 하나의 타운으로 만든다.’ “도시 안에 자연을 이식하기보다 자연 안에 도시를 넣어야 한다”는 건축 철학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고층 빌딩 사이를 콘크리트로 만든 계단, 시각적으로 무겁고 심심한 공간을 완전히 바꿔버린 프로젝트로 매일 매일 밟는 계단 사이에 나타난 다채로운 꽃과 정원을 바라볼 때의 기쁨을 걸어본 사람은 거의 느끼리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장과 정서 발달에 공간이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상호 보완이 무엇일지가 과제다.
어린 시절 나는 평평한 바다와 평야 지대에서 자랐다. 앞이 훤히 트이고 주변은 거의 둥글었다. 시야가 막힌 곳에 가면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예를 들면 빽빽한 나무 사이로 하늘만 빼꼼히 올려다보이는 제주도의 비자림에서, 이삿짐을 나르기 위해 둘러쳐진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보호 패드, 개가식 도서관의 천장까지 맞닿은 책꽂이 등을 만나면 앞이 안 보여 불안하다. 주변 환경이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침을 다 큰 다음에야 알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내외부도 온통 사각이다. 창문, 식탁, 벽에 걸린 액자, 냉장고, 세척기, 심지어 책상 위의 노트북, 책과 노트, 브라인드 커튼, 어느 것 하나 둥근 걸 찾기 어렵다.
우리가 즐겨 먹는 라면의 면 모양도 사각이었다가 변형한 둥금을 볼 수 있다. 과자 포장지나 택배 상자 등 사각 아닌 게 없다.
심하게 결투하는 복싱, 격투기, 레슬링 경기장도 사각 링이다. 직선으로 이어진 사각은 여유가 없고 메마른 듯해 마음이 편치 않다. 날카로운 칼이나 송곳을 보면 마음이 오싹해지지 않던가. 도시 사람들의 각박함도 이런 환경에 좌우되었지 싶다.
산책하다 만나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 구불구불한 흙길, 해와 달, 뭉게구름은 둥근 모습에 가깝다. 자연은 대개 곡선을 안겨준다. 곡선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산모의 둥근 배, 태아의 웅크린 모습 또한 둥글다. 어린아이와 할머니의 동그란 웃음, 사람의 신체 부위도 원형에 가깝다.
원의 세계는 여유로움과 부드러움을 선사한다. 과거 초가집과 한복, 버선 등 의식주의 행태가 거의 둥글었다. 그 시절 사람들이 온순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래서일까. 현대식 건물에 이런 자연성을 합성해 주거 공간을 설계한다면 삭막함이 어느 정도 해소되리라.
십수 년 전 싱가포르의 친구 집을 방문하고 아파트와 기타 부대 시설인 공공장소의 자연 친화적 설계에 그만 넋을 잃었다. 그 아파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라크 태생인 영국의 건축가 Zaha Hadid(자하 히디드)가 설계했다.
자하 하디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 아이콘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도 설계한 장본인이다. DDP는 독특한 외관과 디자인으로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관광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적인 건축물로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호를 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집은 가족이 사는 작은 나라’라고 스페인의 천재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1852-1926)가 말했다. 10여 년 전, 기대를 갖고 찾아갔던 가우디의 건축물도 주로 곡선을 이뤘다.
산을 주제로 디자인한 가우디의 카사 밀라(1906~1912년 완공)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건물이다. 철과 석회암으로 부드럽게 굽이치는 외벽에다 내부까지 곡선으로 만들었다.
마치 찰흙으로 빚어놓은 듯한 자연스러움에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놀잇감처럼 만든 토굴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실제 그곳에 주민이 기거하기에 외부인 출입을 통제했다. 외관의 곡선 건물만 봐도 힐링되는 건축물이었다.
요즘 우리나라 건축물도 둥글게 짓는 붐이 일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충남 부여의 모 리조트와 대전의 모 초등학교, 울릉도의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등을 들 수 있다. 언젠가 부여의 리조트에서 숙박을 한 적이 있다. 둥근 건물을 보며 마음마저 동그라짐을 느꼈다.
위에서 말했듯 자연에 가면 손쉽게 둥굼을 만날 수 있다. 자연 친화적 환경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 반면 인공이 가미된 곳에서는 경쟁과 비교가 우선한다. 직선이 인간의 선이라면 곡선은 신의 선이다.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둥금은 네모에서 제살깎기를 해야만 만들어지는 고통의 산물이다.
요즘 정치 사회적으로 편을 가르고 각을 세우는 사람들이 많다. 좀더 동글동글한 아량과 너그러움이 그리워지는 사회다. 세상과 조화로우려면 각진 마음을 둥그렇게 오려내야 한다. 모서리를 깎아내는 사람만이 강인한 둥근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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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