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얀마의 서쪽 외딴 마을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특별한 것도 없이 오랫동안 나태함에 젖어 있던 탓에 그 작은 마을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변화를 찾는 것이다. 주변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움이 생겼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저녁에 무거운 몸으로 집으로 왔다.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겨울밤에는 아버지의 라디오 소리가 심심찮게 귀에 들어왔다. 지금도 추운 날 밤에는 아버지의 라디오에서 흐르던 노랫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나는 언제부터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공부하면서 밤마다 라디오를 듣는 습관이 생기고 노래 가사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작은 마을에서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남동생 즉 삼촌이 집으로 찾아와서 나에게 책 한 권을 주셨다. 그 책은 『 황혼의 붉은 구름』이라는 역사소설이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얼마나 넓고 넓은지, 배워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되었다.
그 뒤에도 삼촌은 책을 계속 선물해 주셨다. 삼촌이 사준 소설책들, 그리고 아버지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점점 나의 우주가 되어 상상의 날개를 펼쳐 주었다. 나도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대단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특히 역사, 문화, 문학 등 관심이 많아졌고,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다. 대학교에 역사를 배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젊은 사람들에게 공유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문학은 무얼 의미하는지, 문화와 문학예술은 한때 한 나라의 목숨과도 같았다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책 읽는 사람은 책 읽지 않은 사람보다 지식과 지혜가 많다”라는 말을 삼촌한테 여러 번 들었다. 삼촌 덕분에 나의 작은 지혜로 알 수가 없는 것들은 책을 통해 얻었다. 그때는 삼촌의 말씀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어쩌면 어렸을 때 나는 동네 애들과 잘 어울려 놀지도 못한 아이였다. 내가 쓴 글과 소설을 아버지, 어머니, 삼촌,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고 애쓰는 것만으로 놀고 싶은 마음을 잊어버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혼자 지냈다.
대학교에 가면 더 좋은 기회가 올 거라 믿던 나에게 양곤 대학의 대단하고 큰 도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행복했다. 수많은 책 사이에 앉아서 좋아하는 소설을 읽는 감정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한지 몰랐다.
책장 앞에 서서 뭘 읽을지 고민하는 일을 늘 즐겼다. 역사를 배워가면서 한편으로 되고 싶은 소설가의 꿈도 점점 커졌다. 내 생각, 감정들을 세상을 알려주고 싶었다.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다고 믿는 나는 독자들이 인정해 주는 소설가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이제는 역사를 올바르게 알리는 사람이 되고 독자들이 인정해 주는 소설가가 되었다.
대부분 사람은 현재의 자기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한다. 그렇다고 내가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부족하고 필요한 점들이 많지만,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 대화를 많이 나눴다. 친구와 만든 추억의 에피소드가 많지만, 그중 하나는 고등학생 때 있었던 일이다. 언젠가 친구는 나를 기다리지 않고 학교에서 집으로 혼자 돌아갔다.
늘 같이 걷던 길에 혼자 걸으니 슬펐고 화가 났다. 다음 날 점심시간에 친구가 반찬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는 듯 나는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고 “이젠 우리 친구가 아니야.” 친구는 영문도 모르고, “왜? 무슨 일이 있어?”라고 반문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다.
그 뒤에 일주일 후가 지나도록 친구에게 연락을 안 했지만, 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미안해, 너 뭣 때문에 화 난 건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한 거야. 집에 혼자 갔던 그 일은 너한테 그만큼 대단한 일이었다는 걸 전혀 몰랐어. 그날 내 남동생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에 급히 집으로 뛰어갔어.”
친구 말을 듣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스스로 생각만으로 오해했고 화를 내고 있었지만, 친구는 나와 계속 대화하려 애를 썼던 것이었다. 친구한테 어떤 일이 있었을지 물어볼 생각조차 없었고 혼자서만 내 우주가 깨져버린 듯 그렇게 함부로 말을 내뱉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버지께서 늘 “함부로 누군가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시던 뜻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그 사람을 저주하는 마음이 오히려 자기를 더 괴롭게 만든다. 이젠 함부로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친구랑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려는데 갑자기 친구가 돌아보며 말했다.
“너 변화했어. 아주 많이” “그래? 실은 나 그때부터 변화하려 했거든” 나는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한동안 친구의 사정을 모르면서 편견에 사로잡혀 이해하지 않으려 했던 이기적인 자신이 부끄러웠다.
◤ 칵따킨(Khattar khin)
미얀마 양곤 거주
khattarkhin6@gmail.com
한국디지털문인협회 글로벌한글글쓰기희망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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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