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국전쟁과 이승만기념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 27일 만에 관객 동원 무려 100만명이란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영화의 편향성 논란에도 관객 발길이 속개되는데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 보수화의 징후이자 총선을 앞두고 진영간 전쟁의 총결판이라 분석한다.
‘건국전쟁’은 이 전 대통령의 사진과 영상 자료, 그의 며느리 조혜자 여사를 포함한 주변 인물과 전문가 인터뷰 등으로 구성됐다. 영화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건국 1세대의 역사적 공헌을 보여주는 데 집중 조명했다.
‘건국전쟁’은 이승만’의 업적을 드러내는데 전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이승만의 농지개혁이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주춧돌이었다고 강조하고, 3·15 부정선거 주동자로 노쇠한 이승만을 이용한 자유당을 거론한다. 4·19혁명 당시 목숨을 잃은 시민을 보며 이승만이 흘리는 눈물을 비추며 관객들의 연민을 이끌어낸다.
‘건국전쟁’의 제작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승만의 공과 중 ‘공’ 위주로 취사선택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 바 있다. 영화의 목적인 ‘이승만 숭배나 찬양’에 필요한 단편적 자료들이 유리하게 편집되어 영화의 문화예술적 가치는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이처럼,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기념관 건립 추진에도 속도가 붙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송현광장에 이승만기념관을 지을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해 큰 논란이 벌어졌다. 오시장이 이승만대통령기념관을 세울 유력 부지로 띄운 것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제일 높게 논의되는 데가 송현공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요.”(오세훈 서울시장 2월 23일, 서울시의회 임시회)
송현광장 일대는 수많은 시민들이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이승만 정권에 의해 희생된 곳이다. 또 4·19 혁명 당시 경찰이 시민을 향해 발포했던 효자로와는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시민단체와 종교단체가 이곳에 기념관을 세우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이 거세졌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3월 14일 “아직 정해진 건 없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시민 의견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한발 물러난 모양새다.
앞서 정부와 여당은 기념관을 지어야 이 전 대통령 역사적 공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은 2022년 5월 취임 당시부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자유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기념관 건립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했다.
‘기념관 건립’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과 함께 지난해부터 민관 공동으로 본격 추진된 것이다. 기념관 건립에 가장 앞장선 국가보훈부가 기재부에 제출한 필요 예산은 460억 원, 기념재단은 이 중 30%는 국비를 지원받고 나머지는 모금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선 곤란하다.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전문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고 못 박고 있다. 한마디로 이승만 정권은 불의한 권력이라는 의미이다.
한국 사회는 2007년 대통령기록물법 제정 이후 대통령기록관과 ‘전직대통령법’에 의한 대통령기념관(혹은 도서관)이 공존하게 되었다. 기록은 가치중립적이며, 사료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 풍부할수록 각종 연구와 문화적 콘텐츠 개발에 큰 도움이 된다. 대통령기록관은 법에 의해 엄격히 관리하며 그 비용도 전액 국가 예산이다.
그러나 기념관은 특정 대통령을 찬미하기 위한 목적성이 강한 편이며, 부정적 평가 사료에 대해서는 수집 및 전시를 하지 않는 것이 통례적이다. 대통령의 집권 기간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대상(지역과 시민들)이 있다면 ‘기념관’은 그들의 상처를 계속 노출시키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록관과 기념관을 차별화 시키는 점이다.
● 기념관 건립과 국부’(國父)는 별개문제
우리는 신생독립국가의 리더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반만년 역사를 가진 한국이지만 근대적 개념의 국가에서는 국제적 감각, 외교술이 한층 절실했을 것이다. 누구나 아는 지정학적 요소, 당시의 이데올로기의 지형도를 보자면 더욱 그렇다.
1945년, 1948년, 그리고 1950년을 거치며 국토는 둘로 쪼개지고, 그에 따라 역사의 출발점에 대한 견해, 의견, 판단이 제각각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토지개혁 단행, 여성 투표권 부여 등 정치적 업적이나 정책 등을 비교해도 이승만의 업적은 과소평가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칭송하는 건 선을 넘는 것이다. 이승만에게는 도저히 정상을 참작하기 힘든 결정적 과오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생국가라 할지언정 그의 민주화 업적은 매우 천양지판이었다. 그의 과오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승만은 한국 전쟁 와중에도 권력 탐욕에 현안이 된 나머지 1951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계엄령을 선포한다. 헌병대를 동원해 국회 통근 버스를 끌고 간다. 야당 의원 10명을 구속해버린다. 국회의사당은 군과 경찰로 에워싼다. 이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기립표결로 통과시킨다.
이 전 대통령은 2년 뒤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으로 대통령 임기 제한을 삭제한다. 종신 대통령의 길을 연 것이다. 1960년 3월 15일 대통령·부통령 선거에서는 총체적 부정선거를 저지른다. 결국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가 불길처럼 일어났다. 4·19혁명이 터진 것이다. 시민 186명이 목숨을 잃고 6000여 명이 부상을 당하면서 부정선거에 항거했다. 이 전 대통령은 결국 하와이로 망명한다.
해방 전후의 특수성 등을 감안하면 이승만의 공과는 평균적 분석이 어렵고 일관되지 않은 측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 전직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는 기념관으로 대신할 수 없고, 치밀한 고증과 오랜 시민사회의 연구자들의 몫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에 더더욱 국가가 주도하는 기념관 설립은 지양되어야 하고,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른 설립은 한층 조심해야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2017년 5월25일 개봉 첫날부터 영화계를 놀라게 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열흘 만인 2017년 6월3일 105만3177명의 누적 관객 수를 기록하며 100만 명을 돌파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가운데 최단기간 100만 명을 돌파한 영화는 정치인 노무현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가운데 노무현입니다’가 달랐던 것은 이념과 정파의 대립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영화였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하며 기념관 건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과 학계는 이 전 대통령의 공과와 관련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기념관 건립은 혈세 낭비라고 반대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건 국가 통치체제의 기초인 헌법이지, 이승만 개인이 아니다.
굳이 국부가 있어야 한다면 꼭 초대 대통령일 필요는 없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조사이아 퀸시’ 연방 하원의원에게 쓴 서신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나를 국부(國父)라고 부르지 마세요. 그 호칭은 평범한 미국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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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