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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04.26 [17:58]
“제2의 제폭구민 보국안민 기치”
<송기옥 칼럼> “녹두장군 전봉준의 통곡”
 
송기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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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국운이 기울어가는 조선조 말엽 1890년(고종27년) 동학에 입도한 풍운아 전봉준은 전라도 작은 고을 고부 땅에서  훈장으로 잠룡(潛龍)처럼 살고 있었다.

탐관오리들의 학정과 매관매직으로 민심은 날로 흉흉해져 부패한 고을 방백수령은 물론 아전까지 백성의 고혈을 짜는 것을 더 이상은 볼 수 없어 전봉준은 제폭구민 보국안민(除暴救民 輔國安民) 기치를 걸고 분연히 일어섰다. 청일, 노일전쟁의 패권다툼의 무대가 된 한반도는 지난 16세기 이율곡의 10만 양병설을 무시한 채 당파싸움만 하다가 임진왜란이 발발 나라를 빼앗길 뻔 했는데 결국 일본제국주의에게 강점당하고 만다.

작금의 정국을 보라. 여야간 밥그릇 싸움으로 국회는 아수라 장이되고 여당의 독주는 마치 1세기 전 고부민란이 들불처럼 번지듯 민주주의를 뒷걸음질 치게 한 미디어 언론탄압과 용산 사태와 유모차를 앞세운 100만 촛불시위에 대한 그 책임을 묻는 공안정국, 검찰공화국이란 오명은 국민의 원성과 불신만 높아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등진 북한공산집단과의 외교단절 결과로 개성공단 철수와 민항기 위협과 대포동3,4호의 실험 등으로 점점 우리의 목을 죄어오고 있다. 세계 경제마저 꽁꽁 얼어붙어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를 양산하는 현 정권을 보고 녹두장군이 살아있다면 제2의 민중봉기를 들고 나오리라.

 
◇ 난세의 영웅 전봉준(全琫準1855-1895)

전라도 고부군 향교의 장의(掌議)를 지낸바 있는 그의 부친 전창혁(全彰爀)은 의협심이 강하여 고부군수의 학정에 민원을 제기했다가 구속되어 심한 매를 맞고 장독(杖毒)으로 죽었다 한다.

전봉준은 5세 때에 한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13세에 백구시(白驅詩)를 지어 보이는 어려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었다. 부친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한도 있으려니와 쓰러져 가는 국운에 대한 고심을 하던 끝에 무장접주 손화중(孫和中)을 만나 국내외 정세를 논하고 동학을 알게 되어 서장옥의 휘하인 황하일(黃河一)의 소개로 동학에 입교를 한다.

1892년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으로부터 고부지방 접주(接主)로 임명된 그는 1893년 2월 상경, 대원군을 만나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이 몸을 바치고자 한다'라고 했다는데, 세간에 떠도는 말로는 대원군과의 밀약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 나라를 구하려던 동학사상 

동학은 서학(천주교)에 반대되는 말로 한울님 이라는 시천주(侍天主) 즉 자신의 몸속에 있는 한울님을 섬긴다는 신과 사람이 일체된 인내천(人乃天)사상으로 사람이 곧 한울님이며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반봉건,반외세, 부패한 내부정치 개혁 등 민주사상을 표명하였다.

1860년을 포교 원년으로 제1대 교주 최제우(崔濟愚 1861-1922)는 경주 최씨 최치원의 후예로써 유도(儒道)에 몰두한 최옥(崔의 서손으로 태어나 전국을 유람하다가 유,불,선의 사상을 종합한 종교를 창시하여 기울어가는 조국을 건지려는 뜻이 내포된 개화기의 서구문물과 맞선 민족 종교로 자리 잡았다.

3국 시대와 고려조는 불교사상이 백성들을 하나로 결집시켜 나라를 지켜 왔으나, 고려조를 뒤엎은 조선조에 들어서는 억불숭유로 인한 선비들은 중국을 상국으로 사대사상에 젖어 반상의 계급사회로 전락, 지도층이나 민중이 나라를 지켜 나갈 수 있는 종교나 뚜렷한 사상의 힘이 없었다.

 
◇ 3.1운동과 천도교

1919 년 3.1운동은 제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孫秉熙)를 대표로 한 33인중 15명이 천도교인으로써 동학사상과 접목한 민족자결주의를 부르짖은 대한독립 만세운동이었다.

고종황제의 국장일(3.3)을 앞두고 파고다공원에서 최남선이 지은 선언문을 만해 한용운이 낭독을 하였다. 일본 측 발표에 의하면 1,542회에 걸쳐 참가인원수만 2백2만3천명에 달하며, 사망자 수 7,509명과 부상자 15,961명, 검거자 52,770명, 교회47개소, 학교22개소, 민가715채가 불에 탔다고 한다. 목숨을 건 구국운동에 앞장선 것은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의 힘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원치 않는 외세로 인하여 허리가 잘린 지 반세기가 넘도록  남북이 대치한 조국의 슬픈 현실 앞에 참신한 종교는 그 시대를 지켜나갈 버팀목이며 마지막 남은 양심의 보루다.

 
◇ 동학혁명의 불씨 고부 민란

전봉준은 1893년 11월 고부농민 40여명과 함께 조병갑(趙秉甲)군수를 만나 만석보의 과다 수세징수 등 학정을 탄원했으나 감옥에 가두므로 출옥 후 김도삼(金道三),최경선(崔景善) 등 대표자 20여명과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말 피를 마셔 죽기를 함께 하자며, 첫째로 고부성을 점령하여 군수 조병갑을 참하고, 형리 아전 등을 징치하고, 전주성을 점령, 서울로 갈 것을 결의한 본격적인 봉기를 하게 된다.

다음해 1894년 1월10 고부관아를 무혈 입성하였으나 조병갑은 이미 아전 은(殷)모 집에 피신하여 도망을 치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원평, 태인, 정읍, 고창, 흥덕, 부안, 김제 등에서 운집한 농민군은 수만 명에 달하여 관군과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를 한 동학군은 사기충천하여 1월 17일에는 이평면 마항장터 감나무 밑에 집결, 2월25일에는 동진강으로 둘러싸인 천연요새 지금의 부안군 백산(白山)토성에 집결하였는바 농민군은 흰 두건을 쓰고 죽창을 든 앉으면 죽산이요, 서면 백산이라는 말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어, 민심이 천심이라는 교훈은 오늘에 와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농민군의 최후결전

충청도와 경상도의 집결지인 속리산의 10만 농민군과 삼례에 집결한 호남의 농민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가 11월9일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합류하여 관군과 일대 혈전을 벌인다. 경군과 일본군의 신식무기 앞에 더군다나 비가내리는 날 농민군의 화승총에 불이 잘 붙지 않아 대패를 하여 밀려나 11월15일 전봉준은 논산 황하대 전투에서도 패한다.

11월 25일 농민군의 마지노선인 원평,금구, 태인에서 일군과 관군에게 최후의 일전을 벌였으나 패하고 만다. 장군은 12월3일 서울에 잠복해 들어가 내외정세를 살피기 위해 전북 순창 피노리에 은거 중 김경천(金敬天)의 밀고로 체포되고 만다.

전봉준 장군은 12.12일 서울로 압송되어 일본공사관 감방에 갇힌다. 내나라 사람에게 공초를 받아야 함에도 힘없는 나라는 일본에게 이미 주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1895년 2월9일 1차 심문~ 3월10일 5차에 걸쳐 심문이 있은 뒤 음력3월29일 벚꽃도 져버린 따뜻한 봄 날 40세의 혈기방장한 나이에 큰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손화중, 김개남 등 동지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전봉준장군은 최후의 진술에서 '나라를 위한 붉은 정성을 뉘 알리 있으리요(爲國丹有誰知)'란 나라를 사랑한 말 한마디를 남기고 그가 믿는 동학교의 교리에 따라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는 먼 곳으로 한 마리의 파랑새가 되어 떠나고 만다.

 
◇ 외세의 싸움터가 된 한반도

1592년 임진왜란은 상놈과 양반을 희석시킨 일대 대변환기를 가져왔다. 명을 치려니 길을 빌려달라는 일본은 300년이 지난 갑오농민전쟁 시에도 똑같은 양상이 벌어진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으로 어부지리하고 만다.

지금은 어떤가?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가 남한은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를 두고 사자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며 삼키려 들고 있다. 제2의 6.25처럼 자칫 이들의 대리전쟁이라도 한다면 우리나라는 끝장이 나고 말 것이다. 한국이 11대 경제 강국이라지만 oecd국가 중 자살 1위라는 불명예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심각한 중병에 걸려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권력과 부정한 돈을 한번 움켜 쥔 자들은 서로 나눌 줄도 모르고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부패한 정상모리배나 부정축재자들의 천국이 바로 한국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려운 경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부정치의 불안에 따른 정치부재가 큰 문제다. 또한 외부의 공세가 가중되어 총체적인 위기론에 빠져있다. 이 나라 정치 지도자는 욕심을 버리고 국민 편에 서서 올바른 정치를 펴야 할 것이다. 만약 지금의 위기를 한 치의 실수라도 범한다면 반쪽 남은 나라마저 팔아먹는 을사오적의 재연 꼴이 되어 우리민족과 문화역사는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 송기옥 프로필 

수필가 ,전북 문인협회회원(현)
새만금추진협의회 공동대표(현)
주류성,백강 바로찾기 부회장(현)
k.b.s 군산방송 리포터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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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3/15 [23:08]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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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09/03/16 [12:58] 수정 삭제
  김정일이가 웃것다. 맹박님 속좀드세여.......
녹두장군 09/03/16 [13:43] 수정 삭제
  115년전 녹두장군이 살았다면 지금 통곡을 했을 것이다. 정치하는 양반네들 과다한 세금으로 권력으로 다 빼앗아가는 지금과 뭐가 다른가? 지들은 법망을 교묘히 빠져 나가고 귀족생활이나 하는 것들이 예나 지금이나 뭐가 다를가? 이대로 가다가는 빈익빈 부익부 5%가 95%를 지배하는 시대가 곧 닥친다.
그래도 죽지말고 살자 살자 10/12/28 [17:02] 수정 삭제
  노태통령,안재환,정몽헌,최진 남매,행복전도사 최윤ㅁ희 부부 ~~~~~~~
누가 말했나 !!!저 세상의 천국보다 이생의 지옥이 낫다라고!!! 삶은 인간 이나 동물이나
본능이다. 힘들어도 그래도 살자 ....녹두장군은 한마리의 파랑새가 되어 저먼곳으로 갔지만
우리함께 삽시다.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오겟지요1111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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