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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05.26 [21:57]
“아버지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샘터에서>이영주 박사, “엄마! 아빠! 사랑해”
 
이영주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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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주박사
느슨해진 마음의 틈을 비집고 파고드는 끈끈한 어둠이 아파트에 파고들면, 온 밤 내내 거친 숨소리가 오래도록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린다. 꺼칠꺼칠한 말들이 서로의 가슴 속에 가득 채워지는 밤이면, 우리는 안다. 저 말소리 다음으로 무엇이 찾아오는지를. 그리고 꺼칠거리는 말들이 타오르면 자신뿐만 아니라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행복까지도 불태워버리고 만다는 것을…….

결혼 생활을 하다보면, 아무런 설명 없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고통을 슬픔을 한 묶음 던져놓고, 한땐 목숨처럼 사랑했던 사람이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휙 가버리는 일이 가끔 있다. 그러면 인간에 대한 모멸감과 아무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비애가 입을 막고 눈을 가리고 귀를 멀게 한다. 

이번에는 끝을 알 수 없는 기나긴 터널이다. 그 어둠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는 얼굴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 사람이 고통이다. 이 고통은 규정되지 않는 서러움이다. 견디려고 몸부림쳤던, 그 시간이 준 인내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부드러운 칼끝으로 눈부시게 남겨놓은 이 풍성한 외로움의 배후는, 내 영혼을 한때 설레게 했던 당신이다.

‘그러한 당신과 지금껏 왔던 길은 꿈이었을까?’ 라고 물으면, 온전한 사랑을 만나기 위해서 지금까지 뒤집어쓴 껍질을 벗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내가 껍질일까? 

나는 너에게 말한다. 너무 세게 힘을 주면 그 껍질 안에 있는 아이들까지 바스라질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고 힘을 조금만 주면, 넌 날카롭게 금이 가 칼끝 같은 껍질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것을……. 

믿음과 사랑으로 밀고 나간 세상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충격이다. 역사는 타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사랑하는 그가 나에게 ‘단절’이라는 선물을 던져 주었을 뿐이어서, 밤새 슬픔에 취해 굳어버린 눈물을 담보로 나는 믿고 싶다. 진실에도 오류가 있다고, 있었다고…….

한땐 죽도록 사랑했던, 그러나 이젠 용서할 수 없는 그 사람을 베어낸다 한들, 어차피 그 빈 자리에 다시 평생 지고 다닐 고통이 다른 얼굴로 자리할 것이다. 한 사람을 바꾼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게 될까.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면, 그 서명이 세상을 바꿔줄까. 하늘과 땅에 물어볼 것도 없이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지만, 행복이 세상 속에 있지 않듯이 불행도 세상 속에 있지 않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청정한 고요 속에서 눈물같이 가난한 몸짓으로만 “엄마, 아빠 사랑해.”라며 고개를 숙이는 아이들. 이제 집에 들어와도 웃으며 맞아줄 아빠가 혹은 엄마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부모의 부드러운 가슴 속에서 꿈꾸고 싶은 아이들에게, 이젠 아빠 혹은 엄마의 가슴은 빙벽이다. 그 빙벽에 마주 선 아이들. 완성된 슬픔 속에서 상처를 안고 숨어사는 진주조개의 삶을 살게 될 아이들.

이 아이들의 상처가 처음에 다 그렇듯이 눈물 한 방울로 시작되어 가슴에 자리를 잡는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평생 아물지 않는, 그래서 언제나 눈뜨고 있는 상처를 가지고 살게 될 것이다.

분노에 휩싸여 잠 못 이루면, 끝없이 성찰하고 뒤척여도, 술에 취해 몸부림을 쳐도 세상에 오직 한사람만 용서할 수 없을 때, 그래서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때, 우리는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 달라고 시퍼런 절망 앞에서 피 흘리며 울부짖는 아이들의 마음을 그 간절함을,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했던 예수의 마음일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아이들의 유년은, 그리움이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몸속에 쌓이는 백년설이 되어 추위와 아픔에 지쳐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꿈에 젖어든 아이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엄마, 아빠를 마주보며 파닥거리는 내 꿈, 내 꿈을 찾을 방법이 없을까요? 라고 묻는다. 

이혼, 그 상처와 단절만 앙상한 눈물 꽃. 그 꽃을 피우기 전에 재판상 별거제도(judicial separation)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제도는 ‘사실상 이혼’과 ‘법적 혼인’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함께 포용하면서 발달해왔다.

재결합하기엔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상처가 너무 크고, 법률상 이혼하기에는 아이들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어찌할 수 없는 경우에 필요한 제도이다.

이 제도의 장점 중의 하나가, 동거의무와 정조의무는 면제되지만 그래도 별거기간만큼은 부양의무가 있고 법적으로도 여전히 부부라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주는 상처가 생각보다 적을 것이다.

부부의 이혼으로 아이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흔들릴 때마다 아픔이 쏟아져 슬픔에 잠기는 결손가정! 이 아이들이 자라서 비행청소년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범죄자로 성장한다고 해서 그 아이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그 아이가 진실로 따스한 가슴을 원할 때, 누가 단 한번이라도 따스한 가슴을 주어 봤는가? 내 이웃이 고통으로 병들어가도 내 혈육만 괜찮다면 그대로 눈감아버리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세상 일이 사랑하는 일이 내 뜻과 너무 멀고,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마음과 같지 않아 이혼이라는 험난한 파도에 허덕여 눈물 괸 눈으로 살아가는 부부에게, 삶의 고달픔과 슬픔을 조금씩 녹여주면서 이혼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 이영주 박사 프로필

詩人, 法學博士

조선대 講師, 광주여대 겸임교수

아시아여성인권연구소 부소장

전북여성장애인연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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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6/18 [12:32]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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