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배너
배너
정치·사회경제·IT여성·교육농수·환경월드·과학문화·관광북한·종교의료·식품연예·스포츠피플·칼럼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전체기사보기 全北   全國   WAM特約   영문   GALLERY   양극화   인터뷰   의회   미디어   캠퍼스 재테크   신상품   동영상   수필  
편집  2017.04.26 [17:58]
“21세기 '선도철학'은 호남 우먼파워!”
<신년특집>호남여성 진수! 그 ‘실체와 특성’ 집중해부
 
작가 김우영
광고
○ ‘모진 시련과 거친 폭풍우’ 산물

호남지역은 고대로부터 한양 조정에서 이런저런 사정에 의하여 밀려난 선비들이 주로 오는 귀양살이의 도피처였다. 해안가의 외딴섬과 산골 등은 조정으로부터 보내기 쉬운 귀양처였다. 따라서 호남지역은 당시 조정으로부터 대접받는 곳이라기보다 귀양이나 보내는 한적한 외진 땅 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예로부터 백제권역으로써 충청도와 함께 분류된다. 삼국시대 때 신라와 당나라 등으로부터 수많은 침입을 받으며 인고의 세월의 견디어낸 지역이다. 또한 서해와 남해안을 끼고 있어 임진왜란 때 수시로 침입하는 왜적의 출몰로 인하여 인명피해와 수탈을 겪는다.

기나긴 군사정권시절에는 위정자들에 의하여 비개발지역으로 묶여 빈한한 지역으로 구조적으로 천대받은 비경제적 곳이다. 그리고 근대사에 일어난 광주사태는 더욱 호남권을 어려운 수렁으로 내모는데 한 축을 이룬다.

숱한 시련과 역경을 겪으면서 호남여성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삽과 호미를 들어야 했고, 몸소 경운기를 몰고 일터로 나가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호남여성의 우먼파워는 만들어 졌던 것이다.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며느리와 딸에게 딸은 손녀에게 억세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긴박한 현실을 인식시켜 억척여성으로 만들어갔던 것이다.

오늘날의 호남여성들은 그 옛날 할머니와 어머니가 억척스럽게 살아왔던 것처럼 그 환경에 오랫동안 몸에 배어 살아왔기에 어디를 가나 팔을 걷어 부치고 이마에 수건을 두르고 거친 광야를 걸어 나가는 것이다.

그럼 호남여성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또는 그 저력과 역동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분분하겠지만 호남여성과 26년을 살아온 나로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우선 오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먹고살기 위한 필사의 노력으로 일터에서 노동을 해왔다. 남편은 전쟁터에 끌려 나가 죽거나 소식이 없는 터에 현재의 생계를 여성 그들이 꾸려나가야 하겠기에 그렇다.

또 한양의 조정으로부터 유배당하여 온 선비들은 현실의 답답함을 대부분 책 저술이나 시, 그림, 노래 등의 예술로 승화시켜 나갔다. 학문과 예술의 지향성, 이런 양반가 귀양선비들과 함께 살며 예술을 배웠다. 그리하여 그들도 답답한 현실을 이를 통하여 극복하려 했을 것이다.

중앙 정부의 비경제적, 비개발이란 편향적 대접을 받으며 식솔이 굶거나 죽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산으로, 바다로 나가 먹고 살기위한 몸부림을 쳐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의 본능적인 바탕위에서 모진 바닷바람과 거친 폭풍우를 맞으며 호남여성의 저력과 역동성은 자연스럽게 다졌을게다. 요컨대 ‘일해야 먹고 산다!’ 이것이 아마도 호남여성의 정체성일 것이다.

 
▲ 호남우먼파워 나의 아내는 너무 다재다능하다.  특별하게 어느 유명한 화가에게 사사를  받거나 전문학원을 다닌바 없지만 이웃 화가들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어깨너머로 구경한 눈매로 풍경화와 꽃, 산수를 즐거이 그린다. 


 
○ 억척여성이 호남 우먼파워를 낳는다

문학청년시절에 만난 사람이 ‘미스 김(김애경)’이었다. 당시 미스 김은 고향 전북 고창에서 고창여고를 막 졸업하고 앳띤 단발머리로 서울에 올라와 오빠집에 머물고 있었다.(중략)

충청도 외진 마을에서 태어나 애오라지 순진 일변도의 길만 걸어왔고, 삶에 대한 억척이나 노력에 부족함이 가득한 나는 미스김 즉, 지금의 아내 김애경을 만나 살면서 아내의 억척성과 근면성에 놀랐다.

내가 직장에 나가면 집에서 아이 셋을 키우며 부업을 하기 위하여 하루 종일 움직였다. 아이양육에 직장을 나갈 수 없는 형편에 집에서 부업을 하기 위해서 읍내에 나가 가계를 기웃거리며 부업거리를 가져와 하루 종일 작은 방안에 앉아 일을 했다.

부업의 종류는 수 없이 많지만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종이봉투, 구슬 악세사리, 인형만들기 등을 하기 위해서 읍내에 나가 가계를 기웃거리며 부업거리를 가져와 하루종일 작은방안에 앉아 부업거리를 가지고 시름을 했다.

이렇게 번 돈은 몇 푼 안 되지만 내가 직장에서 퇴근 후 동료들과 1-2시간동안 잠깐 마시는 술값 정도를 하루 종일 애를 태워 돈을 벌곤 했다.

나의 박봉에 보탬을 주기위해 번 돈으로 아이들 간식거리와 옷 사주고, 유치원에 보내곤 했다. 가정주부치고는 꽤 큰 돈 벌이였다. 시장을 나가면 어디 싼거리가 없는지, 덤으로 주는 데는 없는지 시장골목을 여러번 누비고 다녔다.

매년 가을 김장철이면 아내는 ‘시래기 줍는 아낙’이 된다. 남들이 김장을 하고 버리는 무우나 배추 시래기감을 찾아 시장 채소전 곳곳을 돌며 보자기에 담는 것이다. 매년 ‘시래기 줍는 아낙’의 모습이 비쳐지자 주변에서는 이랬다.

“참 지독한 애 엄마야”

“저러니 전라도 억척이지 ……”

이런 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은 시래기는 집 처마에 쭈욱 매달아 말려 놓는다. 이 시래기로 우리 5가족은 다른 반찬을 사지 않고 시래기국으로 춥고 배고픈 긴 겨울을 낳곤 했다.


▲ 문학청년시절에 만난 사람이 ‘미스 김(김애경)’이었다. 당시 미스 김은 고향 전북 고창에서 고창여고를 막 졸업하고 앳띤 단발머리로 서울에 올라와 오빠집에 머물고 있었다.

 
근래 아내 김애경은 1인 5역을 해내는 중년 우먼파워로 맹렬 정진하고 있다. 

성악가로 활동과 화가로의 작업, 뜨개질 여도사, 수필가, 아르바이트 등이 그 것이다.

첫 째는 성악가로써의 노력이다. 여학교시절부터 해온 성악공부를 대전에 정착한 몇 년 전부터 열심히 노래연습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노력한 덕분에 요즘은 출연료를 받으며 각종 무대에 서고 있다. 주요한 레파토리는 ‘그리운 금강산’ ‘ 시월에 어느 멋진 날에’ ‘오델미오 아마토벤’ ‘님이 오시는지’ 등이다. 벌써 예금통장에 입금된 출연료는 상당하다. 이 돈으로 두 딸 혼수감 사준다는 계획을 야무지게 세워놓고 있다.

둘째, 아내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특별하게 어느 유명한 화가에게 사사를  받거나 전문학원을 다닌바 없지만 이웃 화가들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어깨너머로 구경한 눈매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현재 10점이나 된다. 주로 풍경화와 꽃, 산수를 그린다. 50여점이 모아지면 전시회를 한다는 계획이다.

셋째, 아내는 뜨개질 여도사이다. 웬만한 모자는 하루만에 한 개 뜨고, 웃옷이나 조끼는 2-3일이면 뜨고, 가방은 1주일 정도면 완성된다. 아내의 웬만한 의상과 모자, 가방, 장갑, 양발은 전부 자신이 손 수 뜬 수제품 장신구이다.

나와 함께 외출하여 어디를 가면 주변 여성들의 눈길이 아내의 의상이나 장신구로 쏠린다. 이런 아내와 함께 다니는 남편인 나에게도 함께 시선이 몰린다. 손수 뜬 의상과 모자, 가방을 메고 다니는 아내를 보고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운 모양이다. 이것도 뜨개질 여도사와 함께 사는 나의 축복이다, 즐거움이다.

넷째, 아내는 수필가이다. 그간 kbs 리포터를 비롯하여 충남도정신문 명예기자, 대전일보, 충청일보 등에 여성수필란에 고정으로 연재하는 맹렬 여성 에세이스트이다. 이 덕분에 각종 노천명 문학상을 타는 것을 비롯하여 각종 상을 휩쓸고 수필집도 2권이나 출간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다섯째. 아내는 1년중 거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대전시 구청 등에서 지역 주민을 일시 고용하여 추진하는 일이 자주 있다. 예를 들면 주택 인구조사원, 교통량조사원 등의 용역을 하며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번 돈은 우리 가족 5명의 보험료로 고스란히 지출되고 있다. 이 외에도 긴요한 가용돈으로 쓰여지고 있어 나의 박봉에 설움을 덜어주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한 가정의 엄마와 아내로써의 임무도 물론 충실하고 있지만 이 일은 어느 주부나 하는 일이기에 이곳에서는 언급을 안하겠다. 

아내와 한 지붕, 한 이불속에서 살아온지 27년. 가까이서 지켜본 호남여성 김애경은 분명 역사가 낳고 길러낸 억척여성이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26년을 지켜본 산증인 남편 김우영으로써 말한다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21세기는 여성이 세상을 이끌 것이며, 그 기본적 정신철학이 바로 호남 우먼파워이다!”


▲ 아내와 한 지붕, 한 이불속에서 살아온지 27년. 가까이서 지켜본 호남여성 김애경은 분명 역사가 낳고 길러낸 억척여성이다.

 


 
▼ 김 애 경 (金愛景)  프로필
 
(雅號 그루터기/ 四君子) 
수필가, 화가, 소프라노   
전북 고창 출생. 

미당 서정주 시인 선생님과 동향으로써 소녀시절 부터 문학적 영향을 받고 성장 1993년 동화작가 박화목 선생님으로 부터  계간『문학탐구』‘’를 통하여 문단에 등단. 저서『매화를 아내로 삼은들 어떠하리』『부부』 충청일보, 중부일보, 대전일보 등에 수 년간  주부 엣세이를 연재하였음. 

kbs 방송국 리포터로 및 충남도정신문사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현재는 계간 문예마을 편집위원. 한국문학탐구회 제1회 신인문학상 수상, 충청남도지사 감사패 수상, 제3회 여성주간 기념 현상공모 수필부문 입선, 충청남도 공모 가족문예 작품공모 장려상, 한국관광공사 창사기념현상공모 문예작품 수상, 우정사업진흥회 국민편지쓰기대회 공모 장려상 수상, 제3회 노천명 문학상 수상 


 










배너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밴드 밴드 구글+ 구글+
기사입력: 2010/01/08 [00:56]  최종편집: ⓒ womansense.org
 
해피우먼 전북 영어 - translate.google.com/translate?hl=en&sl=ko&tl=en&u=http%3A%2F%2Fwomansense.org&sandbox=1
해피우먼 전북 일어 - jptrans.naver.net/webtrans.php/korean/womansense.org/
해피우먼 전북 중어(번체) - translate.google.com/translate?hl=ko&sl=ko&tl=zh-TW&u=http%3A%2F%2Fiwomansense.com%2F&sandbox=1
날씨는 내친구 10/03/19 [10:33] 수정 삭제
  억척 사모님을 두신 김우영작가님!! 행복하시겠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선거 동안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 글을 게시하고자 할 경우에는 '실명인증' 후 게시물을 등록하셔야 합니다. 실명확인이 되지 않은 선거관련 지지 혹은 반대 게시물은 선관위의 요청 또는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본 실명확인 서비스는 선거운동기간(2017.04.17~2017-05.08)에만 제공됩니다.
일반 의견은 실명 인증을 하지 않아도 됨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뉴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倫理규정’-저작권 약관정론직필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기사검색
로고 월드비전21 全北取材本部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411-5, 등록번호 전라북도 아00044, 발행인 소정현, 편집인 소정현, 해피우먼 청소년보호책임자 소정현 등록일자 2010.04.08, TEL 010-2871-2469, 063-276-2469, FAX (0505)116-8642
Copyrightⓒwomansense.org, 2010 All right reserved. Contact oilgas@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