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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8.12 [03:01]
“형님은 늙어 담을 못 올라갈 것”
<샘터에서>수필가 이수홍 ‘종이비행기’
 
이수홍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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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전남 구례군 산동면 원촌리는 면소재지라서 일제 강점기에는 주재소가 있었다. 8‧15 해방 후에는 지서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파출소다. 우리나라 사람은 명당을, 일본사람들은 집터를 잘 잡아야 발복한다고 믿는다. 

파출소는 아주 좋은 자리에 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흘러내린 양(陽)물과 수락폭포에서 내려온 음(陰)물이 서로 만난다. 그 자리에 일본 순사들이 주재소를 지었다. 

주재소와 지서에는 오포대가 있고 국기를 게양했다. 정오가 되면 오~하고 오포소리가 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에는 정오를 알리는 외에 공습경보나 경계경보를 알리기도 했다. 

사환이 오포대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오포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소리가 났다. 처음부터 힘차게 돌릴 수 없으니 슬슬 돌리다가 가속이 붙어 절정에 달하면 우리 면내 어디서나 그 오포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시계가 귀했던 시절 점심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특히 들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은 배 시계보다 더 정확한 오포시계를 퍽이나 좋아했다. 손잡이를 놓고 난 뒤 여운의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그때는 오포대가 굉장히 높아 보였는데 높이가 몇 미터이고 계단이 몇 개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지서 사환이 오르내리는 실력은 원숭이가 나무를 타는 듯했고, 속도는 다람쥐 같았다. 거의 손과 발이 안보일 정도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올라가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초등학교 3,4학년 때일 것이다. 우리는 종이로 비행기를 만들어 호주머니에 넣고 굼벵이가 기듯 오포대에 올라가서 비행기를 날렸다. 종이비행기가 춤을 추면서 내려가 살포시 땅에 앉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르내리다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짓을 했던 것이다. 내려올 때가 더 힘들어 다리가 덜덜 떨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오금이 저리고 항문이 조인다.

세 살 난 손녀 殷秀가 어린이 집에 가더니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가지고 왔다. 약간 구겨진 것을 펴서 손녀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서 그 옛날 오포 대를 생각하면서 던졌더니 잘도 날았다. 

영락없이 그때 그 비행기 같았다. A4용지 이면지를 가지고 비행기를 여러 개 만들어서 날렸다. 그때는 종이가 귀해서 한 번 날렸던 것을 주워서 다시 날렸지만, 지금은 종이가 풍부해서 손녀가 가지고 놀다 찢거나 휴지통에 넣어 버리기도 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은수가 자라면서 초등학교에서 최고학부까지 졸업하는 날, 탈렌트가 퇴는 날, 시집가는 날 등 경사스러운 날을 맞을 때면 무지개 색 종이로 비행기를 만들어 멋지게 날리며 축하해 주련다. 

 그때 그 지서에는 담장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대학진학을 못하고 집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친구가 자원해서 군에 입대한다고 해서 구례 읍내까지 갔었다. 

5살 위의 형님이 막걸리에 취해서 비틀거리자 친구들이 취했으니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고 하니,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서 그담위로 올라가서 걷다가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턱이 시멘트 담장에 찌어 상처를 입고 피가 흘렀다. 

친구들이 걱정을 하자, 내가 다쳐서 피가 나고 아무리 아파도 내 동생 수홍이가 군대만 안 갔으면 괜찮겠다고 했단다. 형님은 친구 입대하는 것을 보려고 읍내에 갔는데, 내가 자원입대하려고 간 것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지금은 파출소에 담장이 없어지고 화단이 만들어져 철따라 꽃이 핀다. 담이 있더라도 이제 형님은 늙어서 담을 못 올라갈 것이다. 파출소 앞을 지날 때면 그 일이 머리에 떠오른다. 

형님은 지금 81세다. 건강해서 술도 잘 마신다. 지난해 추석에 형님과 함께 성묘를 하러 고향에 갔었다. 파출소 앞에서

“형님! 옛날 형님이 서커스를 했던 담이 없어져서 지금은 못 하겠네요.” 

형님은 빙긋이 웃으면서 “동생! 내가 동생을 엄청 사랑해서 그러기도 했지만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랬지. 이제 서커스는 할 수 없지만 술은 마실 수 있으니 가서 막걸리나 한 잔 하세!” 

우리는 함께 웃으면서 대폿집으로 향했다.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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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0/22 [20:18]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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