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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4.10.05 [07:11]
난공불락 요새…공명현상 지진에 발생한 듯
<스페셜> 여호수아 여리고성의 붕괴는 사실이었을까?
 
소정현기자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에 제1착으로 정복 지역

외벽과 내벽 두겹으로 철옹성 점령 불가능해

이스라엘 백성이 성주위를 돌자 갑자기 붕괴

 

▲ 여리고는 길이가 450나 되는 요르단 계곡은 헬몬산으로부터 남쪽으로는 아카바만 그리고 케냐와 탄자니아를 거쳐 모잠비크까지 이어진다   

 

BC 1400년경 파괴, 성경의 정복연대와 일치

공명현상 반복되면 아무리 강한 물체도 파괴

여리고성 판구조 사이에 있어 지진 다발지역

 

 

매우 작은 도시 국가 여리고의 붕괴

 

구약에 등장하는 난공불락의 성곽도시 여리고(Jericho) 성은 어떻게 무너졌을까?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의 이 굳건한 요새를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세가 사망하고 여호수아가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된 시기는 BC 1405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와 가나안 정복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정복한 지역이 바로 여리고이다. 다른 성은 전쟁을 해서 승리했는데, 여리고 성은 기적으로 탈환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 여리고는 1868년 첫 발굴이 시작될 때까지 누구도 고대 도시의 유적으로 간주하지 못할 만큼 흙으로 뒤덮인 언덕에 불과했다.    

 

 

여리고는 1868년 첫 발굴이 시작될 때까지 누구도 고대 도시의 유적으로 간주하지 못할 만큼 흙으로 뒤덮인 언덕에 불과했다. 하지만 성경의 무오성에 의혹을 갖지 않았던 고고학자들의 집요한 발굴작업으로 여리고성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첫 발굴은 1908년 오스트리아의 셀린 박사에 의해 시작됐으며, 본격적인 발굴은 193036년 영국의 고고학자 존 가스탕, 19521958년 역시 영국의 여류 고고학자 캐더린 케니언, 1997년 이탈리아 탐사팀 등에 의해 이뤄졌다.

 

특히 영국의 가스탕(J. Garstang)1930년부터 여리고의 성벽을 찾는 발굴을 시작했다. 가스탕은 외부 성벽과 내부 성벽 두 성벽이 나란히 있었으며, 외부 성벽의 경우 심한 파괴와 화재의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더불어 성벽 내에서 굽지 않은 빵 반죽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갑작스런 파괴의 현장을 말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약에 나타나는 여리고는 요단강에서 서쪽으로 약 8-9, 길갈에서는 북서쪽으로 약 3사해에서 북방 약 12,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30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여리고 성의 크기는 약 8에이커 밖에 안 되는 매우 작은 도시 국가였다. 여리고는 이런 요단 계곡 주변의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해 있었으며 그 안에 펼쳐진 이른바 녹색 카펫이나 다름없었다. 길이가 450나 되는 요르단 계곡은 헬몬산으로부터 남쪽으로는 아카바만 그리고 케냐와 탄자니아를 거쳐 모잠비크까지 이어진다. 계곡의 가장 낮은 곳은 해수면보다 396m나 낮은 사해 부근이다.

 

▲ 여리고 성의 크기는 약 8에이커 밖에 안 되는 매우 작은 도시 국가였다.

 

 

여리고의 토질은 기름졌으며, 이런 토질 덕분에 오렌지 바나나 대추야자 등 열대 과일이 풍성했다. 여름에는 메마르고 매우 무더웠지만 겨울과 봄에는 수많은 꽃들이 뿜어내는 향기로 도시 전체가 거대한 향수 항아리에 담겨 있는 듯했다. 여리고는 당시 클레오파트라와 헤롯의 궁전과 별장이 있었던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오늘날에도 나쁜 물에 소금을 넣어 좋은 물로 만든 엘리사의 샘물(왕하 2:21)이 솟아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필히 점령해야 할 성읍이었다. 신약에 소개되는 여리고는 구약에 등장하는 여리고와 지리적 측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구약의 여리고보다 남쪽으로 조금 비켜난 아브엘 알라익이라고 불리는 폐허 지역이 바로 신약의 여리고다. 예수가 이곳을 지나다가 삭개오를 만난 곳(19:1)이기도 하며 현재 예루살렘에서 암만에 이르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드디어 침묵을 깨고 실체를 드러내다.

 

3300여년 동안 침묵을 깨고 여리고성이 그 모습을 온전히 세상에 드러낸 것은 최근이었다. 1999‘Creation Ex Nihilo Journal’에 실린 성경고고학의 대가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 박사의 논문은 여리고성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여리고 고고학의 권위자 브라이언트 우드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요단 계곡에 위치한 여리고성은 고고학적으로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도시이다. 우드박사는 1900년대 초기와 중기에 독일과 영국의 탐사 팀 그리고 1997년의 이탈리아 탐사 팀에 의해 밝혀진 여리고성 유적의 발굴에 관한 보고서를 분석한 내용에 근거하여 이렇게 밝힌다.

 

▲ 여리고성은 외벽과 내벽 두 겹으로 되어 있으며, 외벽은 5m 정도 높이의 기초성벽 위에 두께 2m, 높이 7m의 진흙 벽돌벽을 세웠다.

 

 

여리고성은 외벽과 내벽 두 겹으로 되어 있으며, 외벽은 5m 정도 높이의 기초성벽 위에 두께 2m, 높이 7m의 진흙 벽돌벽을 세웠으며, 또한 지상으로부터 높이가 14m 정도 되는 둑 위에 다시 높이 솟아오른 내성벽의 구조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 난공불락의 구조를 가진 이중 벽의 성으로서 양식만 풍부하다면 수년 동안 버틸 수 있는 그러한 성이었다.

 

여호수아 6-7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어떻게 붕괴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리고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6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성 주위를 하루에 한번 돌았다. 그러나 7일째 되는 날은 일곱 번을 돌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다. 그러자 성벽이 무너져내렸고 사람들이 성안으로 들어가 불살랐지만 물건은 아무 것도 노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간만은 예외였다. 또한 염탐군을 숨겨준 라합 가족은 살려주었다.

 

▲ 여호수아 6-7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어떻게 붕괴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전술은 가능했을까? 어떤 이들은 이 전쟁이 지진의 효과라고 하고, 그들이 성을 돈 것은 취약한 성벽을 확인하여 공격하기 위한 준비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고학적 증거들은 모든 세부 사항에서 성경의 기록과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케니언의 세심한 조사는 여리고가 정말로 강력하게 요새화되었고 그것이 불탔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그 유적들의 연대를 잘못 추정한 결과, 고고학적 발견과 성경의 기록이 불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수반했다. 그녀는 청동기 시대의 여리고성은 BC 1550년경에 이집트에 의하여 파괴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증거물들을 더 심층 분석해 본 결과, 파괴는 BC 1400년 경인 후기 청동기 1기 말에 발생했고, 이것은 성경에서의 정복 연대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여리고 성의 거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위에 대해 쳘벽 대비하고 있었다. 여리고 성내에는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샘이 현재에도 성벽 안쪽에 있다. 공격 시점은 수확이 막 끝난 모맥을 거두는 시기’(여호수아 3:15)여서 그들은 충분한 식량을 준비하고 있었다. 추수한 곡식이 항아리에 가득 담겨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불에 탄 흔적에 대한 성경의 해답은 무엇일까?

 

▲ 여리고성의 파괴는 BC 1400년 경인 후기 청동기 1기 말에 발생했고, 이것은 성경에서의 정복 연대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여호수아 6:17-18)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시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을 불태웠다.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여호수아 6:24).

 

다시 한 번 고고학적 발견은 이 기록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발굴이 일정 깊이에 도달하면 재와 불에 탄 잔해들이 발견되었다. 케니언은 철저한 파괴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벽과 바닥들은 화재로 인해 검거나 붉게 타 있었고, 방마다 쏟아진 벽돌, 목재들, 가재 집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의 방에 떨어져있는 파손된 잔해들은 심하게 불탔다

 

여리고에서는 왜 곡물이 그대로 남겨져 있는가? 성경은 여리고가 단지 7일 후에 함락되었다고 말한다. 여리고의 폐허에서 발견된 곡물 항아리들이 가득 차 있음은 성 안의 백성들이 곡물을 거의 소비하지 않았고, 포위 기간이 짧았던 것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 약속대로 라합(Rahab)과 그녀의 가족들은 구조되었다(여호수아 6:25). 발굴팀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여리고성 북방 외벽에는 집들이 벽에 붙어 지어졌는데, 오직 한 부분만 무너지지 않은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답 역시 성경이 빛을 비춘다. 성경은 라합의 집이 성벽을 대하고 지어졌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여호수아 2:15). 이곳에 라합의 집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성벽이 무너졌다면, 라합의 집은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알다시피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그녀의 가족들을 그녀의 집안으로 대피시키면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 라합의 집은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알다시피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그녀의 가족들을 그녀의 집안으로 대피시키면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여호수아 6:20) 히브리 원어로는 그 아래로 무너진지라(fell beneath itself)”의 뜻에 더 가깝다.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것은 외성벽(outer mud-brick wall)이 수직으로 솟아있는 그 밑의 기초성벽(retaining wall) 바깥으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백성들은 바깥에서 사다리를 올려놓고 밀고 들어오는 침입자들에 의해 안쪽으로 무너진다. 이렇게 안쪽으로 무너지면 그 무너진 돌들을 밟고 내려가 그 성을 정복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당시 성을 함락할 만한 사다리도 갖추지 못했을 것이며, 만약 외성벽이 안쪽으로 무너졌다면 5m나 되는 수직 기초성벽을 올라갈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벽이 무너지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5m 높이의 하부 옹벽을 넘어갈 수 있었을까? 여리고성은 특이하게도 기초 성벽위의 진흙벽돌(outer mud-brick)들이 모두 바깥쪽으로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무너져 내린 진흙벽돌들이 완만한 경사면 같은 역할을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계단처럼 쉽게 밟고 올라가 그 성을 정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리고의 성벽은 어떻게 무너졌는가?

 

여리고의 성벽이 어떻게 무너졌는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리고 성은 진동에 의한 공명(共鳴)’ 지진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이 당시 발굴에 참여했던 전문가의 견해다. 하나의 실례를 들어본다.

 

194011 7일 미국 워싱턴 타코마 해협에 태풍에도 견딜 수 있는 신공법으로 건설된 타코마교 현수교가 산들바람에 무너졌다. 기록을 보면 이 현수교가 건축됐을 때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격찬했다.

 

미국 현대 엔지니어링 기술의 자존심으로 건축된 다리였던 만큼 타코마교는 시속 190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완공 3개월 만에, 그것도 산들바람이나 다름없는 시속 70의 바람에 거대한 철구조물이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타코마교가 무너진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당시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동원됐다. 규명된 원인은 강풍이 아니고 진동에 의한 공명이었다. 이 공명이 계속 반복되면 아무리 강한 물체라 해도 파괴될 수밖에 없는 위력이 발생한다.

 

강철이나 콘크리트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저마다 고유한 진동수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진동수가 외부에서 가해지는 진동 수와 일치하게 되면 진폭이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한다. 이를 공명이라고 한다. 이 공명이 계속 반복되면 아무리 강한 물체라 해도 파괴될 수밖에 없는 위력이 발생한다.

 

▲ 여리고성의 고고학적 증거들은 모든 세부 사항에서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성경의 기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공명현상에 의해 무너진 다리는 이 뿐만 아니다. 1831년 영국 캘버리 부대가 맨체스터 근교 브로스턴교 위에서 행진할 때 부대원의 행진 박자가 다리의 고유 진동 수와 일치해 붕괴된 것 역시 공명에 의한 사고로 기록돼 있다.

 

BC 1446년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인구는 남자 성인만 603550(1:46)이었다. 여자와 남자 아이까지 합하면 200만 명쯤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볼 때 여리고 성 전투에 투입된 이스라엘 전사들은 대략 10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여리고성이 무너진 이유에 대한 추론은 이렇다. 100여만 명의 전사들이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6일동안 돌았을 때 여리고성의 지반은 반복적인 공명으로 서서히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리고 성의 지반은 일곱 번째 되던 날 즉,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6:16)라고 할 때 진동이 극에 달해 마침내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이 무혈상태에서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공명현상과 함께 두 번째로 지진의 가능성이다. 요단 계곡이 거대한 단층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이미 지질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특히 여리고 성 근처의 땅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2개의 판구조 사이에 끼여 있어 지진 다발지역이다. 대영 박물관 발굴팀은 당시 지금의 리히터 규모 6.0의 지진이 발생하여 여리고 성이 붕괴됐음을 보여주는 지질구조가 발굴됐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여리고성 붕괴 후 여호수아는 섬뜩한 예언 하나를 남겼다. 여호수아 6:26에 여리고성에 관한 예언이 있으며, 열왕기상 16:34절에 그 예언이 어떻게 정확히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여호수아 6:26)<계자 youngest son>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열왕기상 16:34)

 

▲ 성경 고고학의 대가 넬슨 글루엑 박사는 성서의 기록이 고고학적 발굴에 있어서 부정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그러한 발견들은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히 기록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여리고성도 마찬가지이다.    

 

 

성경 고고학의 대가 넬슨 글루엑 박사는 성서의 기록이 고고학적 발굴에 있어서 부정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그러한 발견들은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히 기록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예일대학 고고학자 버로우스(Millar Burrows) 박사는 자유신학자들의 성경에 대한 과도한 의심은 데이터를 섬세하게 분석하여 유추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이미 초월자를 전격적으로 배격하는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고고학의 발견들은 성경의 역사적 기록들이 신뢰할만한 것임을 더욱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리고성의 고고학적 증거들은 모든 세부 사항에서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성경의 기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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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0/25 [22:52]  최종편집: ⓒ womansense.org
 
시라소니 20/11/11 [20:23] 수정 삭제  
  외계인이 호모사피엔스를 탄생시켰다 고대인들이 외계인을 신으로 섬겼으니 종교의 시작이었다
반타 22/03/01 [21:50] 수정 삭제  
  성경의 사건들의 실제성과 역사성은 무지한 부분을 빼면 부정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여리고성의 붕괴과정을 과학적으로만 해석하고자 하는 태도는 신앙인에게는 유익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도 공명이나 지진이라는 추론을 제시하는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연현상이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앞서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열세바퀴를 돌라고 먼저 말씀하셨고 순종하니 그대로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이해이다. 공명이나 지진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시각은 사건자체나 사건의 원인으로서의 과학적 해석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복잡한 것보다, 고고학보다 어린아이같은 믿음이 구원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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