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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8.15 [04:04]
고대 열강 ‘이합집산 흥망성쇠’ 각축 치열
구약성경 중심지 ‘메소포타미아 문명’(3부)
 
소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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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꽃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도시국가 발전

이민족 침입이 잦았기에 국가와 민족의교체극심

 

수메르는 첫 문자 설형문자, 60진법·태음력의 채용

함무라비 법전 생생한 실례, 중앙집권제 기반 마련

 

아시리아 사르곤왕 북이스라엘 침공 사마리아 함락

신바빌로니아제국 느부갓네살왕때 유대인 포로신세

 

   

▲ 메소피타문명은 비옥한 초생달 지역중심지으로 바빌로니아·아시리아 문명을 일컫는다.  

 

 

메소포타미아 문명(Mesopotamian civilization)

 

성경은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책이다. 그 배경은 이스라엘과 근동지역이다. 따라서 성경의 역사와 지리, 풍습 등은 우리와는 매우 상이한 배경을 갖고 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 시대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나일강 유역에서 번영한 이집트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황하강(黃河) 유역의 황허 문명 등과 함께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인 메소피타문명은 비옥한 초생달 지역중심지으로 바빌로니아·아시리아 문명을 일컫는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주위의 문화적 파급과 후세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세계사적 의의가 크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고대 그리스어 Μεσοποταμία에서 온 말로서 '메소'는 중간(Aram of the two rivers)이라는 의미의 아람 나하라임’(24:10, 23:4, 3:8)이다.

 

비옥한 초생달지역이라는 용어는 19065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이집트 역사서 ‘Ancient Records of Egypt’를 집필한 브레스테드’(James Henry Breasted)에 의하여 처음 사용되었다   

 

 

비옥한 초생달지역이라는 용어는 19065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이집트 역사서 ‘Ancient Records of Egypt’를 집필한 브레스테드’(James Henry Breasted)에 의하여 처음 사용되었다. 브레스테드는 페르샤만에서 시작하여 지중해의 동부해안에 이르는 근동의 비옥한 지역이 마치 초생달 모양처럼 가늘고 길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명칭을 사용하였다.

 

초기 이 지역에서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의 상류와 하류를 사이에 두고 도시국가가 발전했다. 상류의 북쪽 지방에는 기원전 2500년경 아카드인이 정착했으며, 하류에는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인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셈족에 속하는 아카드인(아무르인·아시리아인·칼데아인 등과 인도-유럽 인종에 속하는 히타이트인·카사이트인·메디아인·페르시아인 및 수메르인·엘람인 등이 활약하였으며 공통의 문자로서 설형문자가 사용되었다. 현재의 이라크가 중심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강의 범람이 불규칙적이고 잦아서 치수와 관개 등 대규모 사업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모여들어 교역과 상업 활동이 활발한 도시국가들이 수없이 많았다. 또한 폐쇄적인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기에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극심하였다.

 

 

인류 최초의 문명 수메르문명아카드제국

 

 

▲ 인류 최초의 문명은 수메르인 작품이다. 이 지역은 기원전 3000년경에는 세계 최고의 문명을 누렸다. ‘우루크, 우르, 키시, 니푸르등의 유력한 도시국가들이 서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패권을 다퉜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칼데아의 우르는 어떤 곳이었을까? 성경에선 칼데아 지방 또는 남부 바빌로니아라 불렀다. 현재는 이라크 땅이다. 중심 도시는 아브라함 고향이었던 우르(Ur). 이곳은 남부 유프라테스강 가까운 곳에 위치한 수메르의 발달된 도시국가였다.

 

인류 최초의 문명은 수메르인 작품이다. 이 지역은 기원전 3000년경에는 세계 최고의 문명을 누렸다. ‘우루크, 우르, 키시, 니푸르등의 유력한 도시국가들이 서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패권을 다퉜다.

 

▲ BC 2350년경 셈계() 아카드인()의 사르곤 1세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는 강력한 군대로 페르시아만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하여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고 아카드제국을(Empire, 2350 BC~2193 BC) 수립하였다.

 

 

BC 2350년경 셈계() 아카드인()의 사르곤 1세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는 강력한 군대로 페르시아만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하여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고 아카드제국을(Akkadian Empire, 2350 BC~2193 BC) 수립하였다.

 

아카드인은 설형문자를 채용하여 제국 내에 보급시키는 등 수메르 문명을 적극 받아들였다. 수메르인과 아카드인 두 종족이 융합함으로써 수메르 문명은 점차 셈화()하여 바빌로니아 문명의 기초를 이루었다.

 

▲ 아카드인은 설형문자를 채용하여 제국 내에 보급시키는 등 수메르 문명을 적극 받아들였다  

 


수메르의 문화는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었다
. 글자가 쐐기처럼 되었기에 쐐기문자라 한다. 이를 점토판에 눌러 썼기에 쐐기모양이 되었다 한다. 한자로 설형문자(楔形文字). 필기구는 끝을 뾰족하게 만든 갈대였다. 이는 훗날의 바빌로니아어 아시리아어 페르시아 글자의 모체가 된다. 또한 수메르는 건축 ·미술·공예 등의 분야 외에도 60진법·태음력의 채용 등 생활 전반에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

 

수메르의 각 도시에서는 정치, 경제, 군사생활 등이 모두 신전(神殿)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이곳을 담당한 신관(神官)의 지위는 높아 모든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들이 남긴 뛰어난 건축물은 지구라트라 불리는 피라미드 형태의 탑이다. 진흙 벽돌을 쌓아올린 것으로 꼭대기엔 신전이 있었고 우르의 수호신을 모셨다. 지구라트의 말뜻은 높다는 의미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도 지구라트의 한 종류다.

 

▲ 이들이 남긴 뛰어난 건축물은 지구라트라 불리는 피라미드 형태의 탑이다. 진흙 벽돌을 쌓아올린 것으로 꼭대기엔 신전이 있었고 우르의 수호신을 모셨다. 지구라트의 말뜻은 높다는 의미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도 지구라트의 한 종류다.   

 

 

기원전 1830년 '바빌론 제1왕조'를 세워

 

기원전 2350년 셈 족인 아카드 인의 사르곤 1세가 통일 국가를 세운 후 수메르의 문화는 셈 족에게 동화되면서 오리엔트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사르곤 1세의 무력 통치로 통일된 메소포타미아 제국은 그의 사후 바로 분열되었다.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남부를 통일하면서 강성했지만, 곧 아무르 인들의 침입으로 멸망한다. 여러 문화유산은 바빌로니아인에게 계승되었고, 수메르인은 바빌로니아의 한 종족으로 남게 된다.

 

▲ 수메르 인은 기원전 2050년 다시 우르 제3왕조를 세워 부활하였으나 107년 만에 다시 엘람 인에게 멸망하면서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기원전 1830년 다시 아카드 인들이 수메르 지역을 점령하고 바빌론 제1왕조를 세웠다. 

 

 

이후 한동안 혼란을 겪던 수메르 인은 기원전 2050년 다시 우르 제3왕조를 세워 부활하였으나 107년 만에 다시 엘람 인에게 멸망하면서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기원전 1830년 다시 아카드 인들이 수메르 지역을 점령하고 바빌론 제1왕조를 세웠다.

 

함무라비는 바빌론 제1왕조의 여섯 번째 왕이다. 그는 기원전 2350년경 아카드의 사르곤 왕이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후 약 500년 만에 분열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두 번째로 통일한 정복 왕이다.

 

함무라비 왕 때 전성기를 맞이한 통일왕국으로서 행정관과 사법관을 임명하고 함무라비 법전을 편찬하는 등 체계적 국가 조직을 갖춘 고대 전제국가였다. 함무라비는 정복 전쟁이 끝나자 제도를 정비하여 중앙집권제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제국을 통일한 후에도 무력을 사용할 줄만 알았던 여타의 고대 왕들과는 달리 정서적, 제도적으로 통일 국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결정체가 바로 함무라비 법전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총 282조로 민법, 형법, 소송법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대법의 공통된 성향이었다.

 

함무라비 법전은 아카드어가 사용되어 설형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우르남무 법전 등 100여년 이상 앞선 수메르 법전이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으로 알려져 있었다. 함무라비왕의 사적(事蹟) 중 아카드어의 보급 등은 매우 중요한 업적이다. 이때부터 아카드어는 오리엔트 세계의 공통어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 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아시리아 제국의 첫 번째 수도다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의 아시리아 제국

 

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아시리아 제국의 첫 번째 수도다. 초기에 아시리아라는 말은 티그리스 강 상류 지역을 부르는 말이었다. 나중에 아시리아는 바빌론처럼 나라의 이름이자 동시에 도시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다.

 

▲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요충지에 위치한 아시리아는 기원전 7세기에 바빌론과 이집트를 정복해 통일 제국이 됐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요충지에 위치한 아시리아는 기원전 7세기에 바빌론과 이집트를 정복해 통일 제국이 됐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시리아는 점령지 주민의 강제 이주 등 가혹한 통치로 저항을 많이 받았다. 기원전 612년에 메디아가 아시리아 수도 니네베를 함락하였고, 이어 기원전 609년 아시리아는 완전히 멸망하였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데스강 지역에서는 정기적으로 두 차례 홍수가 있었다. 첫 번째 홍수는 북부 산지에 내리는 비 때문에 11월에서 3월 사이에 발생하였고, 두 번째 홍수는 겨울철 동안 쌓인 눈이 녹으면서 4월과 5월에 발생하였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범람하는 강의 무서운 모습을 앗수르 제국의 무서운 공격에 비유하기도 하였다.(이사야 8:7)

 

기원전 922년 솔로몬 왕의 사후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이 통치하는 남쪽의 유다 왕국과 여로보암이 통치하는 북쪽의 이스라엘로 분열됐다. 남쪽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구성되었고, 북쪽은 나머지 열 지파로 구성되었다. 이 분열 왕국은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망하고, 유다 왕국이 이스라엘보다 나중인 기원전 586년에 바빌론에 멸망했다.

 

▲ 아시리아 왕인 사르곤의 침공을 받아 북쪽 이스라엘 왕국 수도인 사마리아가 함락됐다   

 

아시리아 왕인 사르곤의 침공을 받아 북쪽 이스라엘 왕국 수도인 사마리아가 함락됐다. 사마리아 주민들은 아시리아로 끌려갔고 사르곤은 다른 지방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다. 사마리아로 옮겨온 이방인들은 정착해 원주민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동화됐다.

 

이방인들이 이주해 올 때 이교 신앙도 함께 가지고 왔기에 사마리아에는 혼합 종교가 생겼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 유다 사람들이 사마리아인을 경멸했던 것이다.

 

앗수르 왕에게 바빌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저희가 사마리아를 차지하여 그 성읍에 거하니라“(열왕기 17:24)

 

 

이방인들이 이주해 올 때 이교 신앙도 함께 가지고 왔기에 사마리아에는 혼합 종교가 생겼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 유다 사람들이 사마리아인을 경멸했던 것이다.


남쪽 유다의 요시아 왕은 아시리아를 도우려는 이집트군과 전투를 위해 출병했다가 전사했다
. “요시야 시대에 이집트 임금 파라오 느코가 아시리아 임금을 도우려고 유프라테스 강을 향하여 올라갔다. 요시야 임금이 그와 맞서 싸우러 나가자, 파라오 느코는 므기도에서 요시야를 보고 그를 죽여 버렸다”(열왕기하 23:29)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재위 BC 668BC 628) 등 과감하고 용맹한 왕들에 의해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아시리아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강력한 군대와 관료집단 등에 의해 통치했다. 문화면에서도 부조(浮彫)와 도시계획에 뛰어났다.

 

▲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재위 BC 668BC 628) 등 과감하고 용맹한 왕들에 의해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아시리아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강력한 군대와 관료집단 등에 의해 통치했다.    

 

아슈르바니팔 왕의 니네베 왕궁 부속의 도서관에는 오늘날까지도 그 가치를 자랑하는 점토서판(粘土書板)이 다수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점령지에 대한 억압적 통치와, 무거운 세금은 국민의 반발을 샀다.

 

결국 아슈르바니팔 왕이 죽은 뒤의 내분을 틈타 바빌로니아에서 독립한 칼데아의 나보폴라사르와 메디아인의 동맹군의 공격을 받아, BC 612년 니네베의 함락과 더불어 멸망하였다. 나보폴라사르(재위 BC 625BC 605)는 아시리아 공격 이후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하였다. 다음 왕인 네부카드네자르 2(재위 BC 605BC 562)는 이집트군을 아시아로부터 추방하고 시리아·팔레스타인 지방까지도 지배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의 바빌론 포수(捕囚)’는 이때 있었던 것이다. 서기전 597년과 서기전 587-586년에 칼데아 임금 네부카드넷자르 2세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유대의 상류계급 사람들을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갔던 일. 그 일부는 페르시아 시대의 서기전 538년에 귀국했다.

 

▲ 네부카드네자르 2(재위 BC 605BC 562). 이스라엘 민족의 바빌론 포수(捕囚)’는 이때 있었던 것이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을 정비하여 지구라트를 재건하였는데, ‘바벨탑은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칼데아의 번영은 오래 계속되지 못하고 BC 538년 신흥세력인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The Achaemenid Dynasty, 559 BC~330 BC)에 의해 멸망되었다. 오늘날의 이란이다. 바빌로니아 후신인 이라크와 이란은 예부터 숙적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2500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서남아시아의 중심이었던 메소포타미아의 번영이 끝나고, 문화의 중심은 이란고원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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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20 [20:24]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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