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광고
광고
정치·사회경제·IT여성·교육농수·환경월드·과학문화·관광북한·종교의료·식품연예·스포츠피플·칼럼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전체기사보기 全北   全國   WAM特約   영문   GALLERY   양극화   인터뷰   의회   미디어   캠퍼스 재테크   신상품   동영상   수필  
편집  2017.09.25 [22:54]
“주전 8세기 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고고학 탐방> 모압족속과 압몬족속(하편)
 
소정현기자
광고

 

모압은 소돔, 암몬은 고모라 같을 것대예언

현재 이스라엘 연결하는 정치 경제적 요충지

 

요르단 수도 암만 신약시대 필라델피아명칭

기원전 63년에 로마의 폼페이가 이 성을 점령

 

 

북 이스라엘, 남 유다의 멸망 전후

 

▲ 암몬의 후예인 요르단은 이스라엘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웃나라이다.

모압과 암몬 부족은 BC 853년에 북이스라엘의 여호람(Jehoram)왕과 남 유다의 여호사밧왕(Jehoshaphat)의 합동작전으로 크게 패하고(열왕기하 3), 다른 주변국들과 마찬가지로 앗수르와 바벨론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이사야 15-16)

 

웃시야(Uzziah, BC 829-778)의 강력한 정부는 암몬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유다에 조공을 바치게 했으며(역대하 26:8), 웃시야의 아들 요담(Jotham)은 암몬에 대해 지배권을 다시 주장하여 은 100달란트(66600달러)와 밀 1만 코르(2200킬로리터)와 보리 1만 코르를 징수했다.(역대하 27:5)

 

BC 732년 아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 3’(Tiglath Pileser, BC 745-727)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정복할 때 암몬은 유다처럼 조공을 바치고 속국이 되었다.

 

암몬 사람들이 연속 3년 동안 그 거액의 조공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아라비아에서 다마스쿠스에 이르는 주요 무역로를 따라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얍복 골짜기 지방이 비교적 비옥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밀과 보리가 그 지역의 주산물이다.

 

디글랏 빌레셀 3(열왕기하 16:10)는 자기에게 조공을 바치는 사람들 중에 모압의 살라마누를 언급한다. 아시리아의 왕 산혜립’(Sennacherib, BC 705~ 681)은 모압 왕 캄무수나드비’(Kammusunadbi)에게서 조공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시리아의 군주들인 산혜립 아들 에살핫돈’(Esarhaddon)과 아시리아 최후의 대왕인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BC 668~627)은 모압 왕들인 무수리(Musuri), 카마샬투(Kamashaltu)를 자신들의 신하들이라고 말한다.

 

▲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의 남쪽 사해주변의 남쪽에 거주지로 정착하여 모압족속과 암몬족속이 되어 부족국가를 형성한다.  

 


성서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아슈르바니팔 아들로
살만에셀 3’(Shalmaneser, BC 858-824)의 기록에 의하면, 주전 853년 가나안의 국가들은 아람 왕 하닷에셀(Hadadezer)의 지휘군을 결성하여 앗수르에 대항했다.

 

그들은 카르카르(Qarqar)에서 전쟁을 치렀는데, 이 연합군 목록에는 12명의 왕들이 등장한다. 이 왕들 중에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북이스라엘 아합(Ahab) 왕이다. 앗수르가 바빌론에 멸망하자 암몬 왕 히살렐은 갈대아 즉, 바빌론의 부대와 함께 유다를 공격했다(열왕기하 24:2)

 

모압은 이스라엘 왕 오므리’(Omri, BC 887-876)와 아합 왕의 통치 시대에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았던 것 같다. “이스라엘 왕에게 어린 양 십만 마리와 털을 깎지 않은 숫양 십만 마리를 바쳤던 모압 왕 메사는 아합이 죽은 후 반란을 일으켰다.(열왕기하 3)

 

아합 사후 모압 왕 메사가 독립을 선언했다. 남 유다의 여호야김 왕 때 유다의 혼란기를 틈타 유다를 공격하여 치명타를 안겼다.(열왕기하 24:2)

 

모압 사람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에돔 왕의 지원을 받은 여호람(아합이 죽은 지 약 2년 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은 에돔 광야 길을 통해 남쪽에서 모압으로 진격하였다.

 

하지만 연합군과 그들의 동물들은 물이 없어 거의 죽게 되었다. 그때 예언자 엘리사(Elishah)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있었으며, 여호와께서 여호사밧 때문에 도움을 베푸실 것이라는 그의 예언의 성취로 급류 골짜기에 물이 가득 차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햇빛이 물 위에 비치자 모압 사람들에게는 물이 피처럼 보였다. 연합군이 서로 살육한 것이라고 잘못 판단한 모압 사람들은 완전히 방심하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쳐들어갔다가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진행되면서 모압의 도시들은 파괴되고 좋은 땅은 돌로 가득 채워졌으며 나무들은 쓰러뜨려지고 샘들은 폐쇄되었다.

 

오늘날 요르단의 영토인 암몬은 페트라 등 고대의 유적지에서 역사적 자료를 얻을 수 있고, 성서와 관련된 고대의 문헌과 유물들을 일부나마 찾아내고 있다.      

 

 

페르시아제국 키루스 왕때암몬인도 귀환

 

에스겔의 기록 가운데, 바빌론 왕인 느부갓네살 2(Nebuchadnezzar, BC 604~562)가 갈림길에 서서 암몬의 랍바를 향할 것인지, 유다를 향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점술을 사용한 내용을 보면, 암몬이 바빌로니아에 기꺼이 복종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에스겔 21:20)

 

키루스 2세 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다. 바빌론을 정복한 페르시아 제국의 건설자 키루스’(Cyrus, BC 559529)는 암몬 사람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하였다. “암몬 자손의 포로로 돌아오게 하리라”(예레미야 49:6)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기원전 537년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후에 일부 사람들은 모압 여자들과 결혼하였다. 하지만 에스라의 권고에 따라 아내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내보냈다.(에스라 9)

 

여러 해 후에 느헤미야도 그와 비슷한 상황 즉,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삼은 것을 보았다.(느헤미아 13)

 

유배 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암몬 사람들과 그 밖의 타국인들을 아내로 받아들여 심한 질책을 받았으며, 이들은 아내들을 내보냈다.

 

도비아라는 암몬 사람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하려고 노력하는 데 앞장섰다.(느헤미아 4) 하지만 그 후 그는 성전 구내를 뻔뻔스럽게 이용하였는데, 마침내 느헤미야는 분개하여 그의 가구를 밖으로 내던졌다는 기록도 있다.(느헤미아 13)

 

▲ 모압의 여러 도시들은 황폐화 될 것이었다.(에레미아 48    

 

 

주전 8세기 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일찍이 기원전 9세기 말에 아모스는 모압이 에돔 왕의 뼈를 태워서 석회를 만들었기때문에 재난을 당할 것이라고 기록하였다.(아모스 2:1-3)

 

선지자 예레미야(48), 에스겔(25), 아모스(1-2)의 멸망의 예언으로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게 되고 두 부족의 이름이 역사에서 삭제된다. 결국, 그들은 교만과 거짓과 우상 숭배 등으로 인해 심판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이사야 16:6)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황폐시킨 지 5년째 되던 해에 다시 돌아와 암몬, 모압과 전쟁을 했다.(유대 고대사)

 

하나님께서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심으로 진멸된 소돔과 고모라처럼 모압과 암몬을 그렇게 징계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땅을 영원히 황무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예언된 바와 같이, 암몬은 양 떼의 쉴 곳이 되고 랍바는 낙타의 목초지가 된다. 낙타를 타는 동방 사람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 거기에 천막을 치게 되었다. “내가 랍바를 낙타의 우리로 만들며 암몬 족속의 땅을 양 떼가 눕는 곳으로 삼은즉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에스겔 25:5)

 

예레미야가 기원전 7세기에 한 예언에서는 여호와께서 모압에게 책임을 물으실 때가 올 것을 지적하였는데(에레미아 9:25-26), 모압의 여러 도시들은 황폐화 될 것이었다.(에레미아 48)

 

이사야는 모압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주요 도시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15-16). 이 도시들에는 모압 아르, 모압 기르, 바잇, 디본, 느보, 메드바, 헤스본, 엘르알레, 야하스, 길하레셋 등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도시들은 디본과 헤스본이다. 디본의 경우 모압의 신이었던 그모스의 신전이 있었던 장소였다.(사사기 15:2) 헤스본의 경우 아모리 왕 시혼이 한때 모압에게서 뺏은 땅이었다.(민수기 21:26)

 

이스라엘에 위협적인 존재였던 암몬 왕국은 주전 8세기 말, 앗시리아 제국에게 정복당한 후 4백년 이상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 이스라엘에 위협적인 존재였던 암몬 왕국은 주전 8세기 말, 앗시리아 제국에게 정복당한 후 4백년 이상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신약시대 가장 큰도시 필라델피아명칭

 

이후 암몬족은 강대국에 끌려가는 운명이 된다. 랍바는 알렉산더 이후 기원전 259년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eos dynasty)에 의해 통치되면서 필라델피아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게 되는데, 이는 프톨레미 2세인 필라델푸스‘(Philadelphus)가 자신의 이름 따라 바꾼 것이다. 이 명칭은 로마시대까지 통용되었다.

 

▲ 암몬족은 강대국에 끌려가는 운명이 된다. 랍바는 알렉산더 이후 기원전 259년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eos dynasty)에 의해 통치되면서 필라델피아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게 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기원전 305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이집트를 다스린 헬레니즘 계열의 왕가를 말한다. 파라오를 칭했고, 기존 이집트의 전통과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이집트 제32왕조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바빌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이 성전 재건하려는 것을 방해하다가 헬레니즘 시대 BC 164년 헬라문명의 통치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이 마카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암몬 사람들은 이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 대항했다. 그러나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패배했다.

 

이후 신약 시대 필라델피아는 큰 도시로 성장했다. 기원전 63년에 로마의 폼페이가 이 성을 점령하고 데카폴리스의 하나로 지정되면서, 필라델피아는 로마 시대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도시가 되었다. 예수님 시대에는 요르단 강 동쪽 10도시를 데카폴리스라 했는데(마태 425), 암만이 가장 화려한 도시였다.

 

기원 후 4세기초에서 7세기초에 이르는 비잔틴시대에는 기독교 전파와 함께 교회들이 건설되면서 필라델피아는 주교가 있는 요단강 동편 지역 교회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7세기 아랍지배가 시작되면서 기독교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암만은 요르단의 수도이자, 최대의 도시이다. 인구 200만 명이 훨씬 넘는 도시로 성장했다    

 

 

오늘날 모압과 암몬 자손들은 요르단 지경에 모여 살고 있다. 물론 오스만 투르크가 강성했을 때 일부 흩어질 수도 있었겠으나, 나름대로의 결속력을 보이며 오늘의 요르단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 요르단의 영토인 암몬은 독일이나 미국과 같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제라쉬와 페트라 등 고대의 유적지에서 역사적 자료를 얻을 수 있고, 성서와 관련된 고대의 문헌과 유물들을 일부나마 찾아내고 있다.

 

오토만(1516-1918) 시대를 지나 영국 위임 통치 기간동안 자치 정부를 인정받은 요르단 왕국이 독립한 이후 암만은 요르단의 수도이자, 최대의 도시이다. 인구 200만 명이 훨씬 넘는 도시로 성장했다.

 

요르단은 이스라엘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웃나라였으며 헬몬 산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흐르는 요단강이 이스라엘과 요르단 두 나라의 국경을 갈라주고 있다. 중동 전쟁 이후 이스라엘 공항검문이 까다로우면 여행객들은 암만을 통해 들어갔다.

 

요르단에 가면 그들에게서 암몬과 모압 자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도 암만암몬의 변형임을 알게 될 때 그들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요르단왕국 수도인 암만(Amman)이다. 암몬족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암몬은 사해 동북쪽으로부터 약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요르단은 임금이 통치하는 군주국이었으며 그 당시 국왕은 후세인이였다. 후세인 왕은 1952, 왕위를 계승하여 즉위하였으며, 미국 로체스터에 있는 메이어 클리닉을 오가며 신병을 치료 중 타계했다. 그는 서방 여러나라들의 경제원조에 힘입어 요르단의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큰 치적을 남겼다.

 

요르단 국민의 92% 이상이 수니파 이슬람 교도이며, 6%가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의 대다수는 그리스 정교회 소속이나, 그리스 카톨릭, 로마 카톨릭, 시리아 정교회, 콥터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및 소수의 신교도 종파 신도도 있다. 요르단에서 소수의 시아파 교도와 두르즈파 신도도 찾아볼 수 있다.

 


광고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밴드 밴드 구글+ 구글+
기사입력: 2017/04/14 [01:33]  최종편집: ⓒ womansense.org
 
해피우먼 전북 영어 - translate.google.com/translate?hl=en&sl=ko&tl=en&u=http%3A%2F%2Fwomansense.org&sandbox=1
해피우먼 전북 일어 - jptrans.naver.net/webtrans.php/korean/womansense.org/
해피우먼 전북 중어(번체) - translate.google.com/translate?hl=ko&sl=ko&tl=zh-TW&u=http%3A%2F%2Fiwomansense.com%2F&sandbox=1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뉴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倫理규정’-저작권 약관정론직필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기사검색
로고 월드비전21 全北取材本部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411-5, 등록번호 전라북도 아00044, 발행인 소정현, 편집인 소정현, 해피우먼 청소년보호책임자 소정현 등록일자 2010.04.08, TEL 010-2871-2469, 063-276-2469, FAX (0505)116-8642
Copyrightⓒwomansense.org, 2010 All right reserved. Contact oilgas@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