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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2.26 [11:48]
방패! 적군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한 도구
‘고대전쟁 폭넓게 사용 화약무기 도래로 쇠퇴’
 
소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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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군사기록 성경에서 상세히 언급

전쟁에서 심리적 안정감 공세적 나설 수 있어

 

병사들 방패관리 사활, 재질 목재와 동물가죽

전쟁직전 방패 물에 적셔 불화살 무력화 시도

 

 

▲ 방패(防牌, Shield)는 고대 군대가 장비하고 있던 방어용 무기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던 무기이다.   


 

고대 군대 방어무기, 폭넓은 사용

 

가장 오래된 군사에 관한 기록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방패(防牌, Shield)는 고대 군대가 장비하고 있던 방어용 무기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던 무기이다. “너희는 큰 방패, 작은 방패를 예비하고 나가서 싸우라”(예레미야 46:3) “제사장 여호야다가 다윗왕의 창과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고”(역대하 23:9)

 

히스기야가 퇴락한 성을 중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병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역대하 32:5) “르우벤 자손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의 나가 싸울만한 용사 곧 능히 방패와 칼을 들며 활을 당기어 싸움에 익숙한 자가”(역대상 5:18)

 

고대에는 칼과 창으로, 그리고 화살을 쏘며 전쟁을 하였기에, 인간의 신체에 무기가 닿기 전에 차단 목적의 방패는 효율적인 방어 수단이었다. 방패에는 손으로 쥐고 몸을 방어하는 방패와 땅에 놓고 방어하는 방패가 있다.

 

손으로 쥐는 방패는 한 손에 이것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무기를 잡는 것이며, 땅에 놓는 방패는 전쟁터에서 진을 칠 때 배열하여 적의 공격을 막는 것이다. 큰 방패는 보통 중장 보병이 들고 있었다. 방패 모양은 타원형도 있었지만, 직사각형의 것이 일반적이었다.

 

실전에서는 방패를 들거나 유사한 수준의 방어력을 갖춘 사람은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반면 방패가 없으면 수비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방패를 들면 굉장히 넓은 부위를 방어할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감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훨씬 안정적으로 공세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방패는 근대의 화약무기의 발달과 함께 쇠퇴했다.

 

고대 근동의 전쟁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방어 무기로서 기능을 수행한 방패는 대소 2종으로 되어 있었다.(대하 14:8, 23:24) 큰 방패는 전신을 방어하기에 무난한 크기였다.(왕상 10:16, 38:4) 작은 방패는 칼을 들고, 활을 당기는 자가 썼다.(대하 14:8)

 

▲ 고대 근동의 전쟁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방어 무기로서 기능을 수행한 방패는 대소 2종으로 되어 있었다.  


가볍게 무장한 전사들은 속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작고 얇은 방패를 선호했다. 반면에 중무장한 부대들은 그들의 몸을 충분히 보호해 줄 수 있는 크고 무거운 방패를 선호했다. 현재의 방패뿐만 아니라 고대의 방패도 안쪽에 손잡이가 장착되어 있으며, 전투에 군인은 그것을 왼팔에 걸거나 왼손으로 잡고 사용했다.

 

방패의 재질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방패를 금속으로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매우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으므로 목재와 동물 가죽을 조합하여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 방패는 여러 겹의 짐승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보통 여섯 겹의 짐승 가죽으로 만든 후 열처리를 적당히 한 것인데 거의 강한 철판과 같았다.

 

그러나 가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철보다는 가벼웠고, 그럼에도 철판보다 훨씬 더 질겼다. 따라서 어떠한 칼날의 공격에도 찢기지 않았다. 이 방패만 있으면 외부의 어떠한 공격- 칼의 공격, 불 공격, 곤봉의 공격 등을 이 방패 하나로 다 막을 수 있었다.

 

많은 방패들이 가이지라고 불리는 끈을 달고 있었는데, 방패를 쓰지 않을 때는 이 끈으로 방패를 등 뒤에 매달고 다니거나 말 등에 매달았다. 땅에 세울 수 있는 파비스 방패는 중세 시대에 석궁병들이 장전시간동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했다.

 

▲ 방패를 금속으로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매우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으므로 목재와 동물 가죽을 조합하여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대 군인이 총관리를 잘 해야 하는 것처럼로마 병사들은 매사 저녁 잠들기 전에 방패를 관리해야 했다.

 

먼저, 방패에 올리브 오일을 바른 후 헝겊으로 방패를 문질러 준다. 그러면 먼지가 닦여 나가고 방패에 오일이 스며들면서 방패가 오일을 골고루 빨아 담게 된다. 그러면 방패는 반들반들해지고 탄력성이 뛰어나게 된다.

 

만일 이렇게 관리하지 않으면 방패는 곧 말라비틀어지게 되는데 그럴 경우 칼이나 방망이의 공격을 받으면 충격을 받게 되면서 가루처럼 부서져 버린다. 또한 로마 병사들은 전쟁에 나가기 직전에 자기들의 방패를 물에다가 방패를 흠뻑 적셨다. 그리고 약 10시간 이상 물에다 방패를 담가 놓은 후 전쟁에 나갔다.

 

전장에 나가면 적군이 쏘는 불화살을 이 방패로 막게 된다. 그때 방패에 떨어진 불화살은 물기 때문에 곧 꺼지고 화살의 불은 더 이상 다른 곳으로 퍼지지 못했다.

 

그리스의 팔랑크스(Phalanx)’ 전술

 

고대 그리스 전역은 마케도니아, 테베, 아테네, 스파르타 등의 폴리스(Polis) 라고 불리는 도시국가의 연합체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개별 폴리스는 방패와 장창으로 무장한 중장보병을 주력으로 하는 군대를 보유하였다.

 

당시 기술수준의 한계로 말미암아 방패는 숙련된 장인들의 수작업을 통해 생산되었던 관계로 방패 장비의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민주정은 당시 시민으로 분류되는 계급의 직접 정치체제로 운영되었는데 중산층 계급의 남자로 제한되었다. 사비를 털어 자신의 무장을 장비하고 전투에 참여 할 수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성인 남성만이 시민계급으로 인정이 되었고, 자신이 무장을 구입할 수 없는 노예나 극빈층 그리고 전투에 참가할 수 없는 여자는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리스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지불하여 방패를 구입하고 고된 훈련 속에 목숨을 걸고 전투에 참가한 것은 정치적 발언권을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 그리스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지불하여 방패를 구입하고 고된 훈련 속에 목숨을 걸고 전투에 참가한 것은 정치적 발언권을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리스 중장보병들은 밀집대형을 이루어 전투를 수행하였는데, 이를 팔랑크스(Phalanx)’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어로 팔랑크스는 방패의 벽이라는 뜻이다.

 

한국어로는 밀집 장창대형으로 번역된다. 각 보병들은 왼손에 약 15kg에 달하는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 도리(dory)’ 라고 불리던 길이 약 3m 의 장창을 들고 전투를 임했다.

 

사실 고대 전쟁은 대부분의 전사자가 전투중이 아니라 대열이 무너지는 순간과 승패가 갈린 후 패주하는 병사들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따라서 팔랑크스도 대열이 깨지지 않는다면 피해가 극히 적었다.

 

팔랑크스 대열은 빨리 움직이면 전열이 무너지므로 천천히 전진해야 했다. 그래도 빨리 걷는 속도 정도는 낼 수 있었지만 어쨌거나 팔랑크스의 기동성이 매우 떨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당시 그리스와 대결했던 이민족들은 이러한 그리스 중장보병들의 위력적인 팔랑크스 앞에 무력하기 마련이었고, 80만 이상의 대병력을 동원했다고 알려진 중동 최강국 페르시아 제국 역시 소수 정예의 그리스 팔랑크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페르시아군에 대한 그리스의 팔랑크스의 우세는 페르시아 전쟁 이후 고대 그리스의 군인이자 작가인 크세노폰의 저작 아나바시스(Anabasis) 때에도 재확인되었다.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가 맞붙은 이수스(Issus) 전투와, 가우가멜라(Gaugamela) 전투에서는 팔랑크스 대열과 페르시아 보병대의 사상자 비율이 1:20 혹은 1:30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강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법이다. 열과 오를 맞춘 정방형의 방진은 산악지대나 수풀이 우거진 지역 또는 습지처럼 대규모 병력의 기동이 힘든 지역 또는 대형을 이루는 것 자체가 힘든 어려운 지형에서는 무용지물과 다름없었다.

 

200명 이상의 중무장한 병사들이 밀집대형으로 기동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관계로 아무리 빨라 봐야 구보 이상의 기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기원전 168년 마케도니아와 로마 사이에 벌어진 피드나(Pydna)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군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으면서 팔랑크스의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된다.

 

▲ 고대에는 칼과 창으로, 그리고 화살을 쏘며 전쟁을 하였기에, 인간의 신체에 무기가 닿기 전에 차단 목적의 방패는 효율적인 방어 수단이었다    


전투 초 중반까지 마케도니아군의 위력적인 팔랑크스의 위세에 짓눌린 로마군은 섣불리 공격을 하지 못하였으나 암석지대를 기동하면서 틈이 벌어진 팔랑크스의 약점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가해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은 고작 100여명이 전사한 데 비해 마케도니아군은 3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전사 또는 포로 신세가 되었다.

 

이 전투에서 그간 불패를 자랑했던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가 격파된 이유는 단순히 정면 돌격으로 승부를 보기보다는 창의적인 전술을 구사했던 로마군의 능력 때문이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페르시아 전쟁 후 그리스 중장보병의 근간을 이루었던 시민계급의 몰락이 가장 큰 이유였다.

 

펠레폰네소스(Peloponnesian) 전쟁 등 장기간 이어진 전쟁으로 시민 상당수가 전사하였을 뿐 아니라 빈부 격차로 인해 당시 소득의 원천이었던 토지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시민계급의 중장보병 자리를 이민족 용병대 들이 차지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는 병력의 질적 약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전투를 기점으로 팔랑크스의 시대가 저물게 되었다. 하지만 2천 년 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스 중장보병들과 팔랑크스는 후대에 까지 강한 이미지를 남기게 되었다.

 

 

로마의 스큐툼, 몸 크기의 네모난 방패

 

로마 군사들을 보면 온 몸 크기의 네모난 방패를 들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로마군단 병사들이 사용한 방패인 스큐툼(Scutum)은 글라디우스(Gladius)와 함께 로마군 병사의 상징이자 로마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방패다.

 

현대의 시위 진압용 방패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을 만큼 그 기본에 충실한 방패다. 글라디우스는 고대 로마시대 당시에 로마 군인들이 사용한 검으로 길이 약 60cm, 무게 약 1kg의 단검이다.

 

▲ 로마 군사들을 보면 온 몸 크기의 네모난 방패를 들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로마군단 병사들이 사용한 방패인 스큐툼(Scutum)은 글라디우스(Gladius)와 함께 로마군 병사의 상징이자 로마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방패다 


중무장한 로마 군단병들은 큰 직사각형의 방패인 스큐툼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훨씬 더 안전하게 보호했다. 하지만 스큐툼은 무거워서 빠르게 움직이기 힘들었다. 특히 로마군은 투석기, , 투창 등 다양한 무기로 적의 기선을 먼저 제압한 다음 전투에 임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방패는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마지막 순간에 사용됐다.

 

그리스 사학자 폴리비우스(기원전 203120)는 스큐툼을 가로 0.66m, 세로 1.1m에 양쪽 측면이 곡선 모양으로 굽은 종려나무처럼 두꺼운 방패로 묘사하고 있다. 시기와 사용지역·군단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스큐툼이 존재했다.

 

스큐툼에 유명한 번개문장이 그려진 것은 20년께로 로마의 여러 군단이 이러한 모티프가 변형된 방패를 휴대했고 100년 이후에는 모든 로마군의 스큐툼에 보편적으로 사용됐다.

 

로마의 군사들이 전쟁을 할 때는 먼저 방패를 빈틈이 없이 서서 앞장서서 나가는 것을 배웠다. 방패와 창을 든 다수의 병사를 고슴도치처럼 밀집대형으로 배치하여 근접전을 벌이며 적을 압박하는 전술이다.

 

특히 로마군 병사들은 방패가 맞닿을 정도로 간격을 좁힌 다음에 항상 21조로 적과 싸워 전투의 주도권을 장악했는데 이 방법은 스크럼을 짠 현대 전투경찰의 시위 진압법과 유사하다.

 

대열이 흐트러졌을 때에 굉장히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어서 대열이 무너지면 곧 부대의 궤멸로 이어지기 때문에 빠른 걸음 이상의 속도는 거의 내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는 아예 움직이지 않고 달려드는 적을 상대하기도 한다. 창을 들고 있는 경우, 방어를 전적으로 옆 병사의 방패에 의존해야 했기에 병사 간 신뢰도도 상당해야 했다.

 

이후 19세기에 들어서는 화기의 사용으로 방패가 제한적으로 이용되었다. 화기가 발명되지 않은 곳에서만 곤봉이나 창과 함께 방패가 사용되었다. 이후 현대에는 전 세계의 경찰들에 의해 방패가 다시 사용되고 있다. 각 나라마다 폭동을 진압하는 방어용 무기로서 사용되고 있다.

 

▲ 19세기에 들어서는 화기의 사용으로 방패가 제한적으로 이용되었다. 화기가 발명되지 않은 곳에서만 곤봉이나 창과 함께 방패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나의 방패 / 전투에 나설 때면 방패를 드네. / 하지만 방패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네. / 방패는 곁에 있는 나의 형제를 지키네. / 방패는 내가 사는 도시를 지키네. / 절대 나의 형제가 방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고 / 내가 사는 도시가 방패의 보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리. / 나는 내 앞에 놓인 방패와 함께 죽으리/ 적과 맞서 싸우며

 

위의 글은 미국 작가 스티븐 프레스필드(S.Pressfield)방패의 원칙’(Law of the Shield)에 나오는 글귀이다.

 

시편 기자는 주님이 곧 나의 방패라고 자주 강조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편 18:2)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시편 28:7)

 

방패가 크고, 단단할수록 적의 공격을 잘 막을 수 있듯이 믿음이 크고 강할수록 적의 공격을 잘 막을 수 있는 믿음이다. “누가 더 튼튼하고 큰 방패를 갖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각 개인이 믿음의 방패를 소유해야 하는데 난 어떤 방패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재료의 방패로 싸우고 있는가? 어떤 크기의 방패로 싸우고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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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15 [18:24]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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