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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0.21 [07:54]
마치 부모님이 살아계시듯 큰 절을 했다.
<초대수필> 이현자, 고향유정(故鄕有情)
 
수필가 이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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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고향이,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감나무에는 곶감이 될 차례를 기다린다.

 

친정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갔다. 산소는 환했다. 벌초를 깨끗이 해서 보기 좋다고 말하자. 장조카 기웅이가 며칠 전에 동생들과 벌초를 했다고 한다. 가지고 간 제물을 진설했다. 신문지를 깔자 백발이 성성한 장조카가 홍동백서라고 한다. 감과 사과를 동쪽에 놓고 배와 밤은 서쪽에 놓았다.

 

장조카가 술을 따라 부모님께 예를 갖추자 우리들은 다 함께 큰 절을 했다. 마치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절값을 줄 것 같다. 어린 시절 설날 아침에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받고 동네 점방으로 달려가던 생각이 났다.

 

추석이 되어도 벌초를 하지 않은 무덤은 썰렁하다. 대게 자손이 없거나 임자 없는 무덤이 대부분이다. 자손이 있어도 조상의 무덤을 돌보지 않는 경우는 남의 웃음거리가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추석 명절에 햇과일과 송편으로 성묘를 한다. 성묘를 하지 않으면 자손의 도리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하고 나니 조금은 자식 된 도리를 한 것 같다.

 

내 고향의 가을은 풍성하다. 백구 포도가 단내를 백리나 풍기고, 집집마다 울타리가의 감나무에는 감들이 찢어지게 열려 곶감이 될 차례를 기다린다. 그런가 하면 노랑물, 빨강물이 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들녘에는 참새들이 떼 지어 날아다닌다. 맑고 높은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다.

 

병원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이 아파트에서 저 아파트로 옮겨 다니면서 자라는 어린이들은 고향이 뭔지 모른다. 북쪽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은 북녘 하늘만 바라봐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행복하다.

 

옛날에는 행정구역을 1, 2로 나누었다.

 

나는 김제시 백구면 영상 1구에서 태어났다. 옛날에는 행정구역을 1, 2로 나누었다. 1구는 보통 2~3개 마을로 구성되었다. 이장 한 명이 부락들을 통솔하였다. 가까운 부락들은 몇 백m에 불과했지만 먼 부락들은 1km 이상 떨어져 있었다. 노인회나 부녀회도 따로 운영되었다. 애경사 시에는 같은 구에 살면서도 청첩장과 부고장을 보내면서 애경사를 함께 치루기도 했다.

 

내 고향 토끼재 마을 주위에는 창산마을, 영천, 난산, 마전, 학동, 새터, 용지, 득자마을이 있었다. 우리 집 바로 옆에 내가 다닌 난산초등학교 학생수가 500여명으로 학급당 40여명이나 되었다. 말 그대로 콩나물 교실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어 학생들이 운동장에 나오면 운동장이 비좁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대부분의 시골학교는 학생들이 와글와글 했다. 요즘은 시골학교 학생 수가 급감하여 통폐합을 한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내 고향은 전주 시내와 가깝다. 60~70년 후반에 전기가 들어왔고 버스가 다녔다. 지금은 가구단지가 있고 병원은 물론 대형 아파트가 들어섰다. 주변에 큰 마트는 물론 음식점도 여러 곳이 생겼다. 전주~군산 간 전군도로에는 봄철이 되면 벚꽃이 만개하여 상춘객들이 열광하기도 한다. 벚꽃 축제가 열릴 때면 벚꽃보다도 구경꾼들이 더 많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고향 백구에서 세상 어느 누구의 지식과도 바꾸기 싫은 아름다운 자연을 알았다. 해가 뜨면 해를 보고 하루를 시작하고, 달이 뜨면 하루를 접었다. 밤하늘에서 초롱초롱한 별들을 노래하는 동심에 꿈을 담았다.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에게서도 생명의 존엄을 배웠다.

 

내가 중학교에 갔더라면 이 길을 따라 대장촌역까지 걸어가서 통학차를 타야 했다. 그러지 못한 지난날을 생각하면 길가에 핀 벚꽃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그나마 동생이 하교하여 대장촌역에 도착할 때쯤 되면 동생 마중을 나갈 수 있어 즐거웠다. 가을철에는 길가에 핀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면 내 마음도 한들거렸다. 당에 핀 핏빛 샐비어는 내 가슴에 정열의 꽃을 피게 했다. 꽃다운 나이였다.

 

현자야~’ 정감이 가는 이름이다.

 

친구들 중에는 60살도 체 안 돼 저 세상으로 간 사람도 있다. 이름이 안 좋다고 늘 불만이던 끝순이도 쪼깐이도 고생만 하더니 삶의 끈을 놓았다. 명이 짧았다고는 하지만 생각할수록 안됐다. 이름이 촌스러우면 생명줄이 길다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가 보다.

 

우리 반에는 내 이름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 네 이름을 바꾸라며 다투기도 했다. 친구들이 현자야~’하고 부르면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대답을 하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눈을 흘기기도 했다. 그 친구도 지금쯤 부모님 산소에서 성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보고 싶다. ‘현자야~’ 정감이 가는 이름이다.

 

몇 년 전에는 초등학교 동창회가 모교에서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면서 가슴이 떨렸다. 마치 등교를 하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학교는 많이 변해 있었다. 그토록 넓던 운동장은 손바닥만 했다. 내 키가 훌쩍 크고 보는 눈도 넓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교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현관은 윤이 나고 벽에 붙은 학교 홍보물들이 낯설게 보였다. 한 남자가 이게 누구여? 현자 아니여!’ 뒤를 돌아보니 낯선 남자다. ‘나랑게 형만이여!’ 자세히 보니 그 옛날 내 짝꿍 형만이였다. 깜짝 반가웠다. 형만이를 보면서 벗겨진 이마와 성근 머릿결과 굵은 뿔테안경이 세월은 비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인 동창들의 숫자는 함께 다니던 수의 반수도 안됐다. ‘다 모였다면 좋았을 텐데아쉬움이 컸다. 삶에 바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일을 마음먹기 달렸다. 마음먹기에 따라 미국인들 못가겠는가?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진 탓이라고 내가 나를 위로했다. 담임선생님도 돌아가신지 오래됐고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들도 많았다. 책상마다 옛 얼굴들을 앉혀 보았다. 저 세상으로 간 끝순이도 쪼깐이도 배시시 웃고 있었다. 즐거운 만남이 끝나고 헤어질 때 흔드는 손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순수한 동심이 가장 편한 인간 관계다.

 

고향 친구는 선택이 아닌 운명이기 때문에 허물이 없고 소중하다.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우정이 아니다. 순수한 동심이 바닥에 깔린 가장 편한 인간 관계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그립다. 이것은 고향 친구들은 마음의 기둥이고 든든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황혼 앞에 서면 고향친구는 보물이요 자랑거리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 같은 선생님 밑에서 배운 고향 친구는 피를 나눈 형제자매 못지않게 소중하다.

 

해마다 가을되면 고향이 보인다. 포도가 알알이 익어가는 백구가 보이고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대장촌이 보인다. 작대기로 지게를 괴어놓고 담배를 피워 물던 늙은 아버지가 보이고 어머니가 꽃상여를 타고 가던 코스모스 길이 보인다. 오빠가 소꼴을 베어 오던 야트막한 산이 보이고 우리 가족들이 살던 게딱지만한 오두막집이 보인다.

 

고샅길을 뛰어 다니던 단발머리들이 여전히 고샅길을 메우고 있다. 보이는 것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른거린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동산에 떠오르는 보름달은 여전하다. 커다란 보름달은 어두운 내 마음을 알기나 하듯이 중천에 둥실 걸려서 거친 세상을 내려다본다. 덧없이 나이를 먹어가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나는 고향 앞에서 부끄럽고 한없이 죄송스럽다.

 

고향이란 단순히 태어나서 자란 곳을 의미하지만 고향이 지니는 함축적 의미는 그보다 더 크다. 기본적으로 고향은 열 달을 머무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하지만 고향을 결정짓는 데는 그 땅에서 몇 년 살았다는 객관적인 문제보다 내가 그 곳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기억하는 지 주관적인 문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것은 한 평생을 한 곳에서 살더라도 그 땅을 고향이라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향은 주관적인 개념이다.

 

추석이 되고 성묘를 하고 낙엽이 지는 가을이 오면 고향이 더 그리워진다. 마음속으로는 고향을 애절하게 생각하면서도 삶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자주 가보지 못했다. 고향을 사모하면서도 고향을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것은 남겨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두 팔 벌려 반겨 줄 부모님들도 세상을 떠나셨고 친인척들도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멀어져 버린 탓이다. 고단한 몸 벌렁 누울 집이라도 있든지 아니면 둘러볼 논밭이라도 있다면 고향을 찾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이다.

 

고향은 수많은 미사여구로 수를 놓고 단장을 해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곳이다. 연어는 고향을 떠나 살다가 산란하기 위하여 자신이 태어난 하천으로 되돌아 산란 후에는 죽는다고 한다. 하찮은 미물인 물고기도 그러한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앞만 보고 달라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고향이 있고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음 한구석에 늘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고향을 일 년에 한 두어 번 찾아가고 기껏 하룻밤을 묵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산업화를 따라서, 도시화를 따라서, 핵가족화를 따라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지리적 의미의 고향이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다. 나는 내 고향 백구에 갈 때면 어린아이 마냥 흥분을 하고 좋아한다.

 

묵묵히 고향을 지키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어 좋고, 포도가 익어가는 여름이 있어 좋고, 울타리를 넘어가는 누런 호박이 있어 좋다. 내 삶의 뿌리를 보는 것 같아서 흐뭇하고 행복하다. 해마다 추석이 되면 성묘를 갈 수 있어 좋고 핏줄을 만날 수 있어 좋다. 고향이 있어 나는 존재한다.

 

 

이현자 프로필

 

서해대학 사회복지학과 졸업

저서, 나만의 자서전 : 삶의 자리를 보다

수상, 향촌문학대상 수필부문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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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09 [15:16]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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