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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2.11 [22:58]
사람스럽게 산다는 것 ‘매우 지난한 과제’
<림삼의 살며 사랑하며> ‘진실한 마음’
 
림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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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폐한 삶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과거로부터

과감하게 탈피하여 이젠 정말 살만 하네요.”

 

서로 격려하고 행복과 평화를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는 영광된 내일이 열려질 거라는 확신

 

 

▲ 림삼 칼럼니스트   


 

사람 사는 게 참 쉽지만은 않다. 물론 세상 사람 누구라도 살아가는 문제를 만만히 여기거나 쉽사리 살아내리라고, 보란 듯이 멋드러지게 성공하리라고, 언제나 승리자의 반열에 서있을 자신이 있다고, 감히 단정짓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사람스럽게 살아낸다는 게 여간 지난한 과제가 아니다. 옛날 우리네 선조들의 일상이 오늘날의 삶과 비교할 제 더 행복하고 편안했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이 급속도로 변하면서 문명과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다사다난한 삶의 문제 요인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음이다.

 

21세기의 현대를 장식하고 있는 소위 찬란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 그리하여 탄생한 각종 기계와 부산물의 무한한 존재가치, 무형 유형의 다양한 퍼즐과 차원을 넘나드는 고레벨의 IT가 점령한 신비한 영역, 그 결과 숙명적으로 다가와 누리게 된 각종 편리함과 행복감을 뭉뚱그려 전부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지만, 거기서 파생된 허탈감과 인간 본연이 지녀야 할 본질의 상실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대명제가, 바로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깨달아야 할 역사의 경고요,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영원한 책임이라는 것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추측컨대 지구촌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당면한 나름대로의 문제와 혼란들이 산적해 있어, 위정자들이나 지도층에게 크나 큰 부담과 정치적 숙제로 작용하고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올 해를 살아낸 글로벌코리아,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겪고, 견뎌야 했던 수많은 난관과 역경들은 가히 역대급이었다고 여겨진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것처럼, 예전에는 1년에 한 번 정도나 일어났을까 말까 한 각종 사건 사고들이 지금은 하루에 몇 번씩이나 벌어지고 있으니, 너무도 엄청난 시절의 무게가 국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데, 그 보다도 더 기가 막힐 일은, 이제는 아예 모든 국민들이 너무도 잦은 충격과, 비일비재하게 터지는 거짓말같은 사실에 내성이 생겨서, 더 이상은 놀라지도, 긴장하지도 않고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는 코미디같은 현실이다.

 

▲ 대한민국의 오늘을 무탈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이토록 고단하고, 유난스레 버거운 것일진대  


이 얼마나 끔찍하고 통탄할 일인가? 대한민국의 오늘을 무탈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이토록 고단하고, 유난스레 버거운 것일진대, 대관절 이것이 누구의 책임이고, 누구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누가 저지른 죄의 댓가일까? 물론 몇 사람의 생각과 결정으로 정책을 제정하고 시행한다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일시적 문제도 아니고, 미상불 저지른 과오를 들쳐내어 단죄하고 체벌한다 해서 희석될 수도 없으며,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결론지어질 어렵잖은 과제라고 평가절하해서 단정지을 수도 없으니, 예컨대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죽자살자 헤쳐나가야 할 과제인 것만은 틀림없는 주지의 사실이다.

 

사실 시사나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사회학자도 아니고, 전문적인 지식과 학습으로 무장한 시사평론가도 아닌, 일개 평범한 글쟁이에 불과한 필자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 세세하고 오밀조밀하게 그려지기는 어렵다. 그저 꼬이고 비틀린 모양새에,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막연한 희망에 모든 운을 다걸기하며, 한 뼘 손바닥만한 볕마루에 나가 옹기종기 모여앉아 꿈바라기 행복바라기에나 올인하고 있는 소시민들의 현주소, 냄새나도록 눈물겨운 하루살이 닮은 필자의 이 비루한 작태가 바로 오늘의 대중들을 대변하는 처량한 신세타령의 제목 그 자체가 아닐까 하여 자못 서글퍼진다.

 

세간의 큼지막한 사건들을 일일이 열거하여 비판을 하고, 대비책을 제시하고, 또 다른 방도를 모색하는 노릇도 이미 구태의연하다. 발 빠른 처세인 양, 같은 의견에 동조하는 패널 몇 사람 불러 앉혀 짜고 치는 탁상공론이 범람하는 TV의 각종 시사토론 프로그램이나, 그 밥에 그 나물처럼 지면을 도배하는 사설과 칼럼들의 면면을 봐도 모두가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으로 마녀사냥격인 타박이요 지적질이며, 그저 저 잘난 맛에 남 깎아내리는 재미에 몰두하여, 패거리 작당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는 것이 요즈음 필자가 느끼는 언론의 작태이며 정치의 현주소라고 폄훼하면, 아마도 필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그 언론의 중심 세력이거나, 잘 나가는 실세 누군가에게 돌을 맞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정신 바짝 차리고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며, 진정한 계도와 제시를 이행하는 언론과 정치, 본래의 의의를 구현하기 위해 애 쓰는 편이 더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그렇다 해서, 이견이 있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더라도 대세의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기며, 반대의견이 있어도 무조건 침묵하는 것만이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행동하는 지성을 표방하자는 삶의 지표에 위배되고 싶지는 않기에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사상가인 장 폴 사르트르(Les mots)’이라는 자전적인 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기억이 난다. 필자가 이 시점에 이라고 하는 화두를 끄집어낸 이유는 바로 침묵은 과연 금인가?’ 하는 명제가 떠올라서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인 말씀불경이 되었고, ‘예수말씀신약성경이 되었다. 그 안에는 많은 가르침과 길이 있지만 정작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는 확실한 답이나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말이란 해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해야 하고, 그 해석을 분분하게 이어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 진리의 단면이다. 이른바 침묵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마련이다.

 

운문적인 사실에 군더더기를 더하여 산문적 결과로 치장하고 싶지 않을 때 침묵하게 되고, 아예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아집에서 비롯되는 침묵도 있을 수 있으며, 명쾌한 해답을 몰라 엉거주춤하게 입을 다물 때도 침묵이라는 양상으로 보여질 수 있고, 귀찮다는 소극적 생각에서 언행을 유보시키는 침묵도 있으며, 괜스레 군자인 척 하거나 용기가 없음을 포장하는 옹졸한 지성인의 죽어버린 양심도 침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실은 필자는 외모만큼이나 언행이 좌충우돌하는 위인인지라, 현재 끊임없이 발발하는 사건과 상황에 대하여 제법 열심히 생각을 어필하고 의견을 주장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어쩌면 전혀 침묵하지 못하는, 그래서 작은 미덕조차도 공덕으로 쌓아가지 못하는, 천상 촉새일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 많은 성품과 인격의 소유자라는 것도 부인하지는 못한다. 그러다보니 필자의 그런 언행이 필자에게 플러스적인 면 보다는 다분히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해온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부질없는 노릇이 아닌가 하면서도, 행동하는 지성을 표방하자는 삶의 지표에 위배되고 싶지는 않기에 당연한 할 일이라 여겨 지면에 의견을 밝히고, 기회 있을 때마다 단상에서 속내를 피력해왔다. 긍정적인 것은 긍정으로 받아들였고, 부정적인 것은 적극 부정하며 순리에 따라 행하였다는 데서, 필자는 결코 부끄러움은 없다. 허기사 우리 주변에는 흔히들 글쟁이라 하면 이유 없이 꼬집는 소리만 잘 하고, 그래야만 인기 있는 글쟁이 대접을 받는다는 착각에, 긍정에는 눈을 감아버리고, 부정에만 입을 열어 목소리 높이는, 비겁함에 잔뜩 침잠되어있는 글쟁이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정작 용기 있는 사람은 승리의 만세도 부를 줄 알아야 하지만, 진실한 마음을 갖고 패자의 말도, 승복하는 자세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찔레꽃이 장미 보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비단 모자란 꽃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지나치게 억세고 가시가 많기 때문이다. 바라기에는 이 험난하고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좌우명이 되고, 올바른 나침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평하면서도 정당한 언론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국민들의 안온한 삶과 향상된 행복의 지향만이 일생일대의 목표이며 궁극이라고 여기는 정치가들이, 그리고 긍정과 사랑으로 굳게 무장된 모든 국민들의 민심과 촛불 닮은 여론들이 한 마음으로 뭉쳐, 생명수가 흘러나는 한 곳을 바라보는 역사가 밝아오는 새 해에는 한껏 펼쳐지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래서 모든 국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을 다하고, 성심과 열정을 기울여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며, 작은 힘일 망정 아낌없이 쏟아 붓는 우리들의 저력이 꽃으로 활짝 피어나는 제2한강의 기적이 온 누리를 향기로 뒤덮는 이야기가 부절히 이어져나가기를 염원하는 바이다. 해서 살기 참 치사하네요.” 라면서, 어차피 죽지 못해 살아가는, 죽느니보다도 못한 피폐한 삶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과거로부터 과감하게 탈피하여 이젠 정말 살만 하네요.” 라면서, 기꺼이 서로 격려하고 권면하며 행복과 평화를 몸과 마음으로 격하게 체험하는 영광된 내일이 열려질 거라는 조심스런 확신을 갖는 것은, 과시 필자만의 우매한 짓거리일까?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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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6 [19:49]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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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ㄱ가해볼 의견이네요. 홀로코스트 17/11/27 [21:56] 수정 삭제
  찔레꽃이 장미 보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비단 모자란 꽃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지나치게 억세고 가시가 많기 때문이다.
쓴소리, 바른소리 보리피리 17/11/27 [22:08] 수정 삭제
  오랜만에 시원한 소리 하셨네요. 잘 보고 갑니다.
새해에는 우주정거장 17/11/27 [22:12] 수정 삭제
  어차피 지나간 날들에 대한 미련이나 회한은 필요가 없는 거지요 요는 앞으로 다가올 냐일 즉 새햐의 각오와 다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송구영신의 마음으로 달밤 17/11/27 [22:47] 수정 삭제
  한 해를 갈무리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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