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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4.23 [16:01]
‘숨죽인 바람이 구름 몰아 달가리기’
(POET VIEW) 林 森 같은 시공(時空) 다른 시점(時點), 속절없이
 
림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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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공(時空) 다른 시점(時點), 속절없이

 

 

 

 

 

 

 

林  森

 

 

 

몇 남지 않은 새벽별무리
 속절없이 풀풀
 눈가루처럼 떨어지는 가운데
 칠흑으로 어둔 숲 위
 어느새 모습 드러낸 달빛만이
 무심히도 아스라이 차구나


 입술 즈려물고 숨 죽인 바람이
 구름 몰아와 달 가리기는
 항차 예전에 글렀거늘,
 괴괴한 적막 사이에
 삿된 목소리로 별안간 달려들어
 거뭇한 어둠의 고즈넉 깨뜨리겠다고?


 그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니,
 눈물 한 방울 물컹
 눈꼬리에서 흘러내릴 제
 연리지로 이 땅에 태어난 애환
 울멍줄멍한 속내로 감추고
 앙앙불락 창자만 끓일 따름이노니


 출렁이는 강물은
 밤이든 낮이든 상관없이
 어차피 물길 따라 흐를 테지,
 강변 우거진 버들의 우람한 어둠그늘
 갈대 흐드러진 숲으로 변해도
 강은 그저 흐를 뿐이지


 마음 깊은 데의 배 한 척도
 처연한 물길 흐름 따라
 출렁출렁 그리 흘러갈 테고,
 포말 뒷전으로 밀어낸
 말소리 죄다 묻어버리면서
 새벽 가는 어둠으로, 어둠속으로

 

 

 

 詩作 note

어찌 보면 형이상학적인 전개가 유난히 두드러져 보여 이해하기도 힘들고 내용 자체가 모호한 시다. 선정한 제목부터가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겉도는 기분이다. 게다가 복잡하고 어지러운 심상을 몇 글자 로 함축시키려다보니 내용 전개가 조금은 무리한 듯한 느낌이 역력하다. 한 마디로 참 어려운 시다. 지은이조차도, 왜 이런 시를 적었는지 유추하기가 난감할 정도로 뒤죽박죽이다. 그저 힘들고 외로운 심사를 드러내놓고 주저리주저리 하소연을 하는 모양새만 돋보여 보기에 애처로울 따름이다.

 

허기사 세상사가 그렇다. 어차피 단순하고 가벼운 일상이란 존재치 않는다. 사람 사는 속내가 제각각 천차만별이라서 확연한 공식이나 명쾌한 해답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누구나가 힘겹고 버거운 삶 보다는, 그저 천편일률적일 망정 어지럽지 않고 마음 편한 여정이기를 동경하고 탐한다. 남에게는 흔한 이별이나 아픔도, 내게는 절대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애면글면하고, 남들은 비록 주구장창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구렁텅이도, 나만은 피해서 달아날 수 있으리라는 헛된 소망으로 애끓는다.

 

그러다가 이내, 본인의 탐구가 애시당초 될 성 부른 염원은 아니었다는 진실의 속내를 알아차리고는 절망도 하고 낙심도 하다가, 다시 또 힘을 짜내서 한 걸음씩 내딛는 고단한 삶을 어쩔 수 없이 영위해 가는 게, 무릇 삶이라는 해괴망칙한 미로의 고정 레퍼토리인 것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네 삶의 끈은 그렇게 끝도 없이 한도 없이 이어진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기에, 오늘과는 또 다르게 펼쳐지는 내일이기에, 내남할 것 없이 새롭게 각오라도 다지면서 고단한 하루를 산다.

 

예컨대 진리라고 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이,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그 모습이 바뀐다거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한 번 각인된 정의는 누구에게나 정의로 작용할테고, 일단 부정이나 패망으로 인식된 사실은 영원히 어둡고 음습한 그늘이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는 판에 박은 이 정의의 얼굴을 때로는 부정도 하고, 거부도 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보려고 무진 애를 쓴다.

 

또한 그런 시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각종 가설과 도전을 명제로 설정해놓고, 오늘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딴은 열심히 살아간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속에서 어떤 실체가 튀어나올 지는 어차피 아무도 모른다. 성공과 보람의 상급이 주어질지, 아니면 실패와 추락의 형벌이 가해질지 모르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뚜껑을 연다. 저마다 흥부의 대박을 기원하면서 온 힘을 기울여 박을 탄다. 자기의 생각이 진실이며, 자신의 선택이 정의일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에 의미를 두고, 미래의 명운에 다걸기를 하면서.

 

어느 형제가 사는 집에 대대로 내려오는 꽃병이 있었다. 꽃병의 입구는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골동품 주인이 그 꽃병을 보고는,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귀한 꽃병이라면서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형제는 서로 꽃병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다가 그만 꽃병을 떨어뜨려, 깨져버리고 말았다. 형제는 깨진 꽃병을 보면서 순간의 욕심을 원망하며 허탈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런데 깨진 꽃병 속에는 씨앗이 담겨 있었다.

 

형제는 화해의 의미로 그 씨앗을 화분에 심고 물을 주자 얼마 후 그 지역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다. 형제는 예전처럼 꽃병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지 않고 함께 열심히 노력해서 꽃을 더 많이 재배해, 팔아서 결국 큰 돈을 벌게 되었다. 똑같이 수백 년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꽃병은 깨지고, 꽃씨는 꽃을 피웠다. 그렇게 꽃병의 가치는 없어졌고 꽃씨는 가치가 생겨났다. 왜냐하면, 꽃씨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생명 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한 것이다. 생명력은 살아남는 능력뿐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능력에서도 드러난다. 모름지기 우리의 삶은 영원한 기약과 전망을 꿈으로 할 수 있어서 아름답다. 당장 오늘의 어떤 결과나 보여지는 현상 보다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가치나 희망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비록 고달프고 험난한 난관과 역경이 줄을 서서 우리를 위협하더라도, 우리는 그 길의 끝에서 비추어지는 밝은 빛과 성취의 열쇠를 바라보면서 너끈히 감내한다. 그것이 삶의 매력이며 오묘한 이치다.

 

험준한 산을 넘는 남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산을 넘으면서 힘이 들고 숨이 차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준비했던 거래를 성공시키고 큰 돈을 벌어서 돌아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씨가 점점 흐려지면서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눈보라까지 몰아쳤다. 삽시간에 눈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우왕좌왕하던 남자가 작은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하늘이 도운 행운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눈보라 속에서 온몸이 흠뻑 젖어 그대로 있으면 추위에 동사할 것이 뻔했다. 필사적인 노력으로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모은 남자는 불을 붙이려고 노력했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 불쏘시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남자는 품속에서 자신이 그동안 고생해서 모은 돈다발을 꺼내 주저 없이 불쏘시개로 사용했다. 덕분에 따뜻한 모닥불을 만들 수 있었고, 무사히 아침까지 버틸 수 있었다.

 

아침이 되자 밤새 심하게 불었던 눈보라는 그쳤고, 산에서 고립된 사람을 찾던 구조대는 모닥불의 연기를 보고 남자를 구조할 수 있었다. 남자는 가지고 있던 돈을 불에 태웠지만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생각했다. ‘내 생명과 미래를,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었으니 나에게 이보다 더 큰 이득은 없구나.’ 큰 깨달음을 얻은 남자는 더욱 더 노력을 해서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인생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설정하고,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를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또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여기듯, 물질 또한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어느 것 하나 내 것은 없다. 잠시 살아있는 동안 내게 주어진 것을 보관하고 지키고 있을 뿐이다. 매일 아침 우리 앞에 돈을 벌어야 할 24시간이 아닌, 살아야 할 24시간이 펼쳐진다. 달아나고 싶은 유혹에 지지 말고, 지금을 생생히 살아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투자할 것은 돈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다.

 

미국 위스콘신 주()’ 85번 국도를 지나다 보면 자그마치 길이만 7.2km에 달하는 해바라기밭을 볼 수 있다. 그 넓은 땅에 해바라기가 빽빽이 피어 넘실거리는 모습은 황금빛의 바다가 파도치는 듯한 장관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이 아름다운 해바라기밭은 한 남자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006년 남자의 사랑하는 아내가 말기 골수암에 걸려 2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희망의 표시로 집 주변에 아내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를 심으며 병간호에 최선을 다했다.

 

그 정성과 사랑 때문이었는지 아내는 암 판정 후 무려 9년을 더 남편과 함께 살 수 있었고 201411,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아내는 떠났지만, 아내를 잊지 못하는 남편은 그 후에도 아내가 좋아했던 해바라기를 계속 심어나갔다. 지금은 50만 평이 되는 광대한 해바라기밭이 되었으며, 해바라기에서 얻은 수익금을 암 연구 기관에 기부하고 항암 치료가 필요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사람의 사랑은 7.2km보다 길고 50만 평보다 넓다. 진실한 사랑의 마음은 제아무리 크고 넓은 공간이라도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우리 모두 그 커다란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커다란 사랑을 마음 속에 담을 수 있다. 50만 평의 땅이 아닌 우리의 마음 속에도 해바라기밭을 만들 수 있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랑의 치료 약은 없다. 우리가 힘겨운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늘 마음에 새겨야 할 가장 큰 덕목은 바로 사랑이라는 이유다.

 

어떤 여성 상담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다. - 평생 쌀농사만 짓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고향을 지켰던 오빠가 지금도 쌀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희 가족은 매년 추수가 끝나면 윤기 흐르는 햅쌀을 받아서 잘 먹고 있습니다. 분명 오빠가 보내준 쌀이건만 그 쌀부대를 보면 저는 언제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밥은 먹었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어찌어찌 살아보겠다는 막내딸이 눈에 밟히셨는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제가 밥을 먹었는지부터 항상 물어보셨습니다.

 

그 투박하고 짧은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는지는 두 명의 아이 엄마가 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배곯고 다니지는 않지? 어디 아픈 데는 없어? 하는 일이 힘들지는 않고? 사랑한다.’ 그리고 저 또한 아이들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습니다. 오늘따라 사랑한다는 말을, 밥 먹었냐는 말로 대신하던 어머니가 정말 그립습니다. -

 

사랑을 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짧은 인사말, 환한 미소, 상냥한 손짓 등 말로 하지 않아도 사랑을 담아 전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이미 우리는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 뿌린 아름다운 사랑은 비록 우리가 세상을 떠나도 언제나 세상을 밝히며 남아있을 거다.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행복을 다시금 주위에 골고루 나누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야 말로 진실로 행복하고,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어떤 대학생의 고백을 들어본다. - 저는 노인복지센터에서 자원봉사하는 대학생입니다. 특별히 봉사 활동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학기간 봉사 활동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한 달에 2번 정도 시간이 날 때마다 잠시 봉사하러 가는데 유독 저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습니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고 마지막으로 만난 지가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하나뿐인 아드님과 제가 닮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 할머니께서 저에게 다가와 말이라도 건네면 귀찮고 붙임성이 부족했던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를 애써 피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머니가 센터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달이 넘도록 할머니를 뵐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하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걱정과 함께, 봉사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겨울날 봉사를 마치고 센터를 나서려는데 그 할머니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동안 몸이 안 좋아지셨는지 못 보던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저는 할머니께 뛰어가 부축하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몸이 아프면 집에 계시지 왜 나오셨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왔지, .”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런 감정은 뭘까요? 몸은 봉사한다고 했지만, 마음으로 함께하지 못했던 저는 참 부끄러운 학생입니다. -

 

우리의 마음 속에 따뜻한 불씨가 작게라도 남아있다면 그곳에 쌓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쌓인 따뜻한 감정은 우리를 더 따뜻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사연의 대학생보다도 더 부끄러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낮은 자리에서 봉사하며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소중히 남기고 싶다. “다른 사람의 지적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과, 자기 스스로의 지적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문득 탈무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미친다는 뜻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병리학적 정신병에 걸렸다는 말이 된다. 또 하나는 어떤 일에 심취해 있다는 뜻이다. “그 여자가 미치도록 좋아!” 할 때는 사랑에 취한 정도를 극대화한 표현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미침은 너 미쳤니?” 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나 행위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설 속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어떻게 미친 사람이었을까?

 

50이 넘은 시골 영감이 기사 소설에 미쳐 갑자기 기사가 되겠다고 갑옷 입고 투구 쓰고 집을 나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전까지 돈키호테는 지극히 평범했었다. 다만 심취한 정도가 남달리 지나쳤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보통사람의 경우 만화에 미쳤다고 슈퍼맨 복장을 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리지는 않는다. 현실을 무시하고, 꿈에만 도취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의 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것은 온전한 사고나 생각과는 거리가 먼 모자란 행동을 하는 돈키호테가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움 뒤에는 너무나 진솔한 면이 많다. 그는 현실과 꿈이 똑같아 우리 삶의 구도를 이루고 있음을 평범하게 말한다. 어느 날 만신창이가 된 돈키호테는 기사소설의 환상에 빠져, 지나가는 농군을 보고 , 만뚜아 백작님 ...” 등등 이상한 말을 퍼붓는다. 그러자 농군은 점잖게 대꾸한다.

 

난 만뚜아 백작이 아니고, 영감님 집 옆에 사는 사람이오. 그리고 당신도 돈키호테가 아니라

우리 이웃의 착한 노인네 아니오?” 그에 대한 돈키호테의 대답이 명언이다. “나는 내가 누구인 줄 아오. 그리고 또한 저 유명한 프랑스의 12기사 보다 훌륭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소.” 그러니까 돈키호테는 자기가 라 만차의 한 시골 영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동시에 그 시골 영감이 꿈과 이상을 가지고 살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요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은 문화 생활을 위한 비용을 제일 먼저 줄인다고 한다. 그러나 산다는 것이 돈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에는 돈과 현실 외에 우리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더욱 중시하는 마음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살아있음의 진정한 맛을 되살려준다. 굳이 문학이나 예술 감상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고, 좋아서 빠져드는 데가 있어야 한다. 심취하고 빠져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좋아하는 게 별로 없는 것이다. 그저 무덤덤하게 사는 것이 점잖은 것 같지만 그런 태도는 무덤에 가까워지는 것일 따름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미치게 좋아하는 것이 있어야 좋다. 미칠 줄 아는 지혜가 진짜 삶의 지혜다. 이것이 오늘의 이 무료하면서도 정신없는 삶을 살아내는 지혜의 한 방법임을 명심하자. 어차피 우리 삶의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줄거리대로 우리가 다시 살아지게 된다.

 

평범한 교사는 말을 한다. 훌륭한 교사는 설명을 한다. 뛰어난 교사는 직접 보여준다. 위대한 교사는 감동을 준다. 이 말은 모든 부류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인용해보면, 평범한 부모는 말을 한다. 훌륭한 부모는 설명을 한다. 뛰어난 부모는 직접 보여준다. 위대한 부모는 감동을 준다. 또한, 평범한 애인은 말을 한다. 훌륭한 애인은 설명을 한다. 뛰어난 애인은 직접 보여준다. 위대한 애인은 감동을 준다.

 

그리고, 평범한 리더는 말을 한다. 훌륭한 리더는 설명을 한다. 뛰어난 리더는 직접 보여준다.

위대한 리더는 감동을 준다. 감동을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많은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과연 누구에겐가 감동을 주는 사람인가?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감동을 주기 위한 첫 단계로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이 자신의 주인이 되도록 허락한다.

 

화가 나면 화나는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감정은 때가 되면 떠나는, 쉴 새 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손님일 뿐이다. 감정의 주인이 되는 방법은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다. 일에 몰두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그 감정에서 쑥 빠져 나오게 된다. 또한 삶의 목적이 확실할 때, 감정에 빠질 확률이 줄어든다. 큰 정신이 있기에 자그마한 감정들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감정의 주인이 되어 감정을 조절하고 지배할 때 삶의 참다운 주인이 될 수 있다. 같은 시공이거나 다른 시공이거나, 같은 시점이거나 다른 시점이거나, 속절없이 휘둘리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되지 말고, 언제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 자기 자신이라는 긍지와 자존감을 갖고,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다지며, 하루 하루 알찬 알곡을 거두어들이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여 매진하자.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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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11 [23:01]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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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시의 세상 홀로코스트 18/04/12 [11:34] 수정 삭제
  흠뻑 빠졌다 갑니다.
시공의 미학 별무리 18/04/12 [21:17] 수정 삭제
  정말 형이상학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지어진 시네요.
세상사 청산 18/04/12 [23:31] 수정 삭제
  세상사가 그렇다. 어차피 단순하고 가벼운 일상이란 존재치 않는다. 사람 사는 속내가 제각각 천차만별이라서 확연한 공식이나 명쾌한 해답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누구나가 힘겹고 버거운 삶 보다는, 그저 천편일률적일 망정 어지럽지 않고 마음 편한 여정이기를 동경하고 탐한다.
봄꽃천지 달뫼지기 18/04/17 [10:40] 수정 삭제
  마음속에도 온통 봄꽃이 가득 피어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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