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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7.21 [18:03]
‘새롭고 기이한 경험과 지식을 탑쌓아’
<살며 사랑하며> 가장 존경하는 세분
 
림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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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림삼 칼럼니스트  

 

 

내삶에 각인된 추억속 몇분

 

필자 뿐 아니라 누구라도, 이즈막에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할라치면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의 간판을 거론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만큼 가정은 우리에게 많은 울림과 기억으로 새겨져야 하는 시즌 이슈다.

 

부모님의 은혜를 기려야 하고, 스승님의 공덕을 칭송하며, 사랑하는 자녀들과 부부 사이, 형제지간이나 가까운 이웃과 동료들과의 관계들까지 모두 소중하고 고마워서, 언제 어느 때라도 기꺼이 기념하며 가슴에 담아야 함이 마땅하지만, 특별히 이 달에는 그 소중함과 감사의 의미를 더욱 두드러지게 나누는 것이 참이며 도리다.

 

그런 취지에서 여러 번 지면을 통해 근래에는 바람직한 인간 관계에 관한 제언이나 덕담을 자주 거론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뭔가 좀 부족한 듯 하고, 아직도 할 말이 더 남아 있을 성 싶어 곰곰 생각을 해보다가 불현듯 필자는, 짧지 않은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추억 속의 몇 분을 떠올리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존경하는 사람을 피력할 때면 가장 먼저 부모님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는 일상적으로 배움의 장에서 듣고 느꼈던 세계의 위대한 성현이나 선각자들의 면모를 곱씹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면, 그런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위인들의 사상이나 철학이 과연 일반인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가에 대해서라면, 전혀 답이 안나온다.

 

물론 자신의 부모님이나 지근 거리에서 가정교육을 담당한 일가 친척들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성장하면서 가정의 틀에서 차츰 벗어나고, 껍질을 깨어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누구나 낯선 환경과 대인관계에의 적응을 배우기 시작한다.

 

어떤 경우에는 친구나 선생님, 혹은 거래처의 경쟁자나 동료들을 통해서 삶의 팁을 배우기도 하고, 일상에서 접하는 책이나 각종 문화의 매개를 통해서 익히기도 한다.

 

아니면 직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지식이나, 소문을 두루 섭렵하면서 습득하는 정보나 소식도, 궁극적으로 삶에 막강한 기여를 하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요는 눈을 뜨고 바라보는 모든 세상의 만상에서 우리는 새롭고 기이한 경험과 지식을 탑쌓아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삶이란 늘상 쉬지 않고 전진하면서 넓히고 높이는 과정이며 계단인 셈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서 우리는 숱한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그 중에는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관계를 계속 형성해가는 부류도 있고, 일회성이나 임시로 만났다가 곧바로 뒤돌아서 헤어지는 단발성 인연도 참 많다. 그러다보니 일일이 모든 사람들을 다 기억할 수도 없고, 순차적으로 잊혀지며 다시 기억하는 윤회의 연속이 바로 우리의 일상이다.

 

존경하는 세분의 영원한 인연

 

그런 인연 중에서 과연 필자의 삶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짐짓 숙연해졌다. 그리고는 이내 부모님을 제외하고, 필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몇 사람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거나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모으신 영웅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필자의 삶에서는 진정한 영웅이라 불러드려도 부족하지 않은, 존경하는 세 분의 영원한 스승님이 필자의 마음 속에는 살아있다.

 

고단한 삶의 여정에서 참으로 많은 직업을 전전하기도 했고, 결코 단순하지 않은 삶의 고락을 겪어온 필자이지만 그래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온 것이 글쟁이라는 허울이다.

 

시를 쓰고 칼럼을 기고하며, 강연이나 세미나를 통한 대중과의 교류를 이어오다 보니 어언 예순 고개를 넘긴 지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지금도 수십년 전의 어릴 적 필자에게 시를 가르치며 고언과 책망을 아끼지 않았던, 절대 잊을 수 없는 스승님 두 분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시의 기초를 잡아주시고, 필자의 필명을 직접 지어주신 고 박일송 선생님이 첫 번 째 스승님이시다.

 

일제시대부터 우리나라 문단의 한 획을 그으셨던 분이니만큼 조금은 괴팍하고 옹고집의 유별난 성격을 끝까지 주장하시며, 노년에는 노인성 질환에 시달리시면서 거리에서 생활하시다가 당신의 나라로 가셨는데, 지금도 조그마한 주먹으로 알밤을 먹이시며 짓던 넉넉한 미소는 마치 어제인 듯 생생하다.

 

야트막한 산자락에 오두막같은 초가를 지어놓고 서재라 우기시며, 제자들에게 비닐로 바람막이를 둘러치는 부역을 하게 하시던, 그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은 지금도 우리 동료, 친구들의 주요 이야깃거리다.

 

그리고 가요계에 전문 작사가의 위치를 정립하시고 무수한 가수들을 키워내시며, 영원한 대부로 추억되는 거인 고 박건호 선배님에 대한 존경도 그에 버금간다고 말할 수 있다. 필자의 첫 번 째 시집을 출판할 때에 기꺼이 권두시를 작성해주시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선배님.

 

그 분의 빛나는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고향인 강원도 원주 시청 부근에는 넓은 박건호 공원이 만들어져 있고, 중앙로 문화의 거리에는 박건호 거리가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잊지 않고 찾아주고 있어서, 시시때때로 오가면서 느끼는 필자의 가슴은 마냥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만 하다.

 

선배님의 동상이 내려다보는 벤치에 앉아서, 혹은 노래비가 세워진 그늘에 누워서, 가끔 필자는 선배님과 대화하곤 한다. “어때요? 선배님. 이렇게 남겨진 이들이 선배님을 기억해주니 참 고맙고 좋지요?”

 

작은 눈을 치뜨고 목젖이 보이라 크게 웃으시던 선배님이 그리워, 이따금 적당히 취할 적엔 별빛 쏟아지는 풀밭에 철푸덕 주저앉아 줄줄 눈물 흘리며 푸념이나 타박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선배님은, 병석에서 시달리며 고통 중에도 잃지 않았던 너끈한 미소로 불민한 후배를 반겨주신다.

 

그리고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필자의 입장에 처한 사람이라면 이해할 지도 모르겠지만, 쉽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필자는 비교적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 보다는 좀 더 인정을 받고, 두드러지는 언행과 족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존재로 각인되다 보니, 언제 어니서나 소위 리더와 멘토, 카운슬러 등의 위치에 자리매김되는 경우가 빈번하였고, 어떤 자리에서나 자타가 공인하는 앵커였던지라, 친구들 사이에서조차 무의식 중에 늘 앞에 서있었다.

 

그러자니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외로움이나 허전함이 있어도 속내를 드러내기 힘들었고, 오히려 누구라도 필자가 그런 눈치를 보이면 얼른 피해버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에 거센 세파의 도전으로 방황과 혼란의 협곡에서 헤맬 때, 진정 필자의 진로와 행보를 잡아줄 사람이 필요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학교의 선생님이나 어떤 선배들도, 심지어는 부모님조차도 제대로 필자의 삶을 결정지을 제언이나 충고를 섣불리 내놓지 못했다. 그만큼 필자는 안하무인이었고 독불장군이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굽히지 않고 필자를 찾아와 강권하다가, 급기야 필자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굴하지 않고, 직접 바쁜 시간을 쪼개 필자의 대학 입학원서를 작성하고 접수하며, 거부하는 필자의 곁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않고, 결정을 지을 때까지 식음을 전폐했던 삶의 은인, 그는 뜻밖에도 바로 같은 학급의 친구였다.

 

그렇게 어줍잖은 자존심이나 자만심을 숨기도록 가르쳐 지방의 작은 신설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 필자를 뒤로 하고,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학교에 합격하여 떠나갔고, 실력을 갈고 닦아 국가의 지도자로 착실한 삶을 살았으며, 서울 소재의 전통있는 중학교의 교장으로 후학 양성에 힘쓰다가 정년 퇴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서로의 일상 환경과 동선이 일치하지 않아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필자의 굴곡진 삶의 여정으로 인하여 오래된 우정의 확인이나 회포를 푸는 단촐한 자리마저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이렇게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지만!

 

그리고 차마 친구된 입장에서 존경한다는 표현은 쑥스러워 드러내지 못했지만, 아마도 당시 필자의 방탕한 시절에 그 친구의 과감한 행동과 결단이 없었다면, 그래서 그냥 필자의 치기어린 판단과 선택으로 단순한 삶의 진로를 걸었다면, 필자의 삶은 지금과는 완전 상이한 인생길이었을 것이다.

 

물론 긴 세월이 지났으니 그동안 여러 가지 사연도 많았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파도를 헤쳐 왔지만, 그리고 그동안 사소한 오해나 다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무튼, 필자의 속내 깊은 곳에서는 그 친구 원승호 선생의 이름 세 글자가 또렷하게 존경의 대상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즈막에는 후학들의 주례로 바쁘다고 하던데, 가까운 언젠가 짬을 내서 걸음 한 번 해봐야겠다. 그리고 내킬 지는 모르겠지만 용기를 내 묵은 고백을 좀 해볼까 한다. “이보게, 친구. 내가 평생 자네 존경해왔네. 자네는 내 삶의 은인일세.”

 

속에 담고 있다고 해서 그냥 진주가 되는 건 아니다. 때로는 표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일 수도 있으나, 허접하게 말을 잘하는 것 보다, 잘 말하는 습관을 기르되, 무겁고 신중하게 상대를 배려하는 감사의 표현이 세상을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물론 상처가 난 부분을 아프냐고 어루만져 준다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때론 득이 되라고 이야기한 것이 상대방에게 실이 되는 것도 있다.

 

마음이 앞서가는 것도 잘못이요, 너무 뒤처져 가는 것도 잘못이다. 모두가 사람이기에 완벽함은 없는 것... 삶에 있어서 좋은 점만 이야기하고, 상대를 위해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좀 더 생각해보고 나서 할 이야기들도 있나 보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의 한가운데, 가정을 더욱 가정스럽게, 사회를 더욱 사회답게, 싹 자라게 할 수 있는 말 한 마디의 소중함을, 말 한 마디의 향기로움을, 다시 한 번 느껴보는 아침이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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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07 [21:41]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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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18/05/08 [13:25] 수정 삭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존경하는 사람을 피력할 때면 가장 먼저 부모님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는 일상적으로 배움의 장에서 듣고 느꼈던 세계의 위대한 성현이나 선각자들의 면모를 곱씹기 마련이다.
별무리 18/05/09 [23:18] 수정 삭제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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