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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9.22 [22:01]
“나는 졸혼 했습니다”
시인 이춘명, ‘44살의 새삶’
 
이춘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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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5일에 결혼은 졸업했다.

 

▲  이춘명 칼럼니스트 

경제적 독립이 시작되었던 2000125일에 결혼은 졸업했다. 가정주부의 기본적인 할 일을 놓고 배우자에 대한 의무와 예의를 몽땅 건네주고 나왔다. 거주지를 옮기고 세대주로 시작한 그 날부터 가장이라는 명함은 지금 이 시간에도 명확하다. 스스로 일하고 수입 지출의 주인이 되는 삶은 새로운 허물벗기였다.

 

20년의 결혼 생활을 접고 나를 혼자 책임지는 날은 독립에 대한 엄청난 대가를 치루며 바꾸어졌다. 버티며 부딪치며 살아온 이야기들은 조금씩 굴리면 단단해지는 눈덩이로 만들어져 왔다. 가정 안에서의 삶은 나에게 전반전 게임이었다. 내가 선택한 아내가 아니라는 삶은 인생을 밟으려는새로운 후반전의 치밀한 순서로 채워져 왔다. 44살의 시작한 밝음 길이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살고 있다. 버스를 타고 20분이면 갈 수 있는 내가 살던 곳의 거리는 이미 단절 되었다. 왕래가 없고 대화가 없고 부양할 의무나 추궁도 없다. 각자의 생활에 간섭이나 효력이 없이 살아있는 것을 가끔 타인의 일로 알고 있을 뿐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전제로 확인이 되면 그렇구나 모르면 모르는 체로 살고 있다. 가족 증명서에는 호주로 버티고 있지만 보호자나 세대주는 아닌 상태이다. 남보다 못한 관계이다.

 

주민등록은 아직도 배우자의 주소에 남아 있지만 우편물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바꾼 지난 날들은 아직도 망설이는 약자의 변명에 단호히 권유한다. 나오면 또 다른 삶을 펼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다. 더 나을 수도 있고, 더 편할 수도 있고, 더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했던 순간도 있었고 행복했던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자식을 기르며 가난과 이기기도 했다. 미래를 꿈꾸며 손가락 걸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 기억조차 이겨내지 못 할 나에게 가해진 수많은갈등은 결혼 생활을 박차는 계기가 되었다.

 

먹고 입고 쓰던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놓고 구석구석 남겨진 흔적들까지 긁어 집을 나온 날은 새로움과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유와 개척에 대한 강렬한 욕구뿐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나를 더욱 사랑하고 있다.

 

매일 아끼던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종일 머무르던 부엌에서 뛰쳐나오는 아내라는 여자는 자기이름을 꺼내고 자존심을 가로막은 방해 요인들을 툴툴 털어 버렸다. 짓눌러 감추어 놓았던 욕구와 잠재의식을 마구 퍼내면서 부딪치는 선입견과 생존을 압박하는 고통을 전면에 서서 받아치며 살아왔다. 이혼을 하지 않은 체 이혼한 사이처럼 사는 이 생활에 나는 만족한다.

 

이혼한 사이처럼나는 만족한다.

 

늙으면 보자 하던 오기는 늙기 전에 새 출발 하자로 문득 올바른 충동을 일으켰다. 별거 18년 후 다시 만나 잘 살아 보려고 했다. 맞춰지지 않는 것에 항복하기를 저울질 하던 시간이 지금 생각하면 도리어 낭비한 잘못된 추측들이었다. 허비한 아까운 시간에 가슴 아리다. 두 번째의 결심은 단호했다. 세끼 밥상을 받들어 채우는 식모가 아니고 시계를 보면서 귀가하며 기다리는 집 지키는 개로 살기를 거부했다.

 

당연한 노예로 몸종을 하기 싫은 마음은 움켜진 경제권이 주는 허무감으로 단단해졌다. 친정을 비하하고 과거를 되씹으며 인격적 대우를 해주지않는 언어와 행동에 반기를 든 나를 나는 아직도 응원한다.

 

 

 

집사람 안사람이란 명칭에 합당한 날들은 없었다. 요구하지도 않았고 요구해도 복구되지도 않았다. 나는 내 이름 석자를 불러주는 밖으로 나왔다. 문을 나서기는 참 더디고 오래 걸렸다. 나오고 나니 참 쉽고 편한 것을 왜 몰랐을까 그 긴 가슴앓이를 위로해준다.

 

진작 그 때 알았으면 하면서 뚜벅뚜벅 나로서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나를 소개하는 시간 첫 마디- 나는 졸혼 하였습니다. - 한다. 의아해하면서 색다른 발표에 어느 누구도 왜라고 되묻지 않는다. 구구절절 설명하지도 않는다. 나는 나의 결정을 존중한다.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한 생활을 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내 입맛이 가는 것을 선뜻 사고, 배고픔을 참지 않고 정성스레 밥을 먹는다. 길을 가다가 음식점에서 코 끝을 자극하면 불쑥 들어가 사 먹는 습관이 자연스러워졌다. 자서 먹는 밥, 혼자서 즐기는 술 한 잔에 쓰이는 비용이나 시간은 힐링의 달콤함이다.

 

그 후 화장을 굳이 하지 않고 옷을 사 입거나 겉모습을 치장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유행을 따라가거나 친구들의 화려한 소모품에 신경을 쓰거나 몰두 하거나 질투할 시간이 아까웠다.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도전하고 호기심 가는 것을 덥석 저질러도 보고, 접해보지 않았던 것에 두려움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전혀 다른 곳에도 가고 전혀 모르던 것들에 대한 재미로 지금도 하루의 시간을 나누며 지내고 있다. 매일 매일의 모습이 칠면조가 된다.

 

조금 더 아끼고 조금 더 일하고 조금 더 움직였던 것은 과거가 되었다. 완벽하고 외골수인 전형적인 성격이 가끔은 게을러지고 유연해지고 너그러워지고 있다. 더딘 반응으로 마주치는 일들을 받아 적응할 때 남이 보면 어둔하다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천천히 하고 있다.

 

묶여있던 울타리에서 내색을 하지 못하고 삶을 포장하던 과장된 거짓을 내려놓은 후부터 나는 두통과 어지럼증이 저절로 없어져다. 나의 우울증을 자가 진단하며 수시로 검진하면서 심각성을 점검했다. 어느 선에서 나의 조절이 힘에 부칠 때 심리 상담을 받았다. 1년 동안 꾸준히 지속적인 방문으로 내린 결론이 나의 이름 앞에 붙어있던 수식어와 형용사를 치우는 것이었다.

 

방치하던 나를 찾아 매일 나와 대화 하면서 나의 결정에 아직도 후회하지 않고 있다. 집안이 어지럽혀 지저분해도 귀찮거나 몸이 지쳐 있을 때 그냥 놔두는 날도 있다. 금전적 빚을 지지 않는 정도의 생활에서 일하기 싫으면 빈둥빈둥 노는 지금의 나는 일편단심이나 조강지처나 일부종사의 목표에 어긋나도 전혀 굴하지 않고 있다. 나의 나머지 인생을 걸고 싶지 않았다.

 

아프면 아프다, 외로우면 외롭다, 싫으면 싫다 분명히 말을 하는 버릇이 저절로 생겼다. 거절을 하거나 좋다 싫다 표현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선택으로 변화된 것이 많아졌다. 나는 나만 지키고 버텨주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너무 큰 미래를 설계하지 않는다. 지금 곤란한 현실도 겁내지 않는다. 그때의 고비는 나에게 가장 커다란 관문이었다. 그렇게 한번 겪고 나니 웬만한 상황들은 그리 겁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름대로 추측하는 시선을 무시한다.

 

자기 방어를 서둘러 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하루를 존중한다. 상대가 어떠한 결말을 위해 찾을 때 까지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있다. 굳이 먼저 서류적인 정리를 서두르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나설 의향은 있지만 먼저 얼굴을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나에게 준 보이지 않는 졸업장에 나는 조용히 충실하면서 살고 있다.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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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04 [16:12]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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