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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9.22 [22:01]
‘충분히 숙성시킨…잉태되는 사생아’
(POET VIEW) 林 森 ' 詩人?'
 
림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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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人?'


 

 

 

 

  

 



 

 

林  森

  

 

 

아니야, 난 요리사야

  

이를테면

주리고 고픈 천하 뭇 사람에게

마음양식 나누어뿌릴 업보

어깨 둘러메고 길 가는,

  

되도록 찰지고 영양 많은 식재료

두루 고루 모아서

다지고 버무리고 지지고 볶아

맛깔스런 먹거리로

정갈한 차림표로

행복양식 장만하는 요릿간 숙주

  

술술 목 잘 넘어가도록

착착 혀 잘 감아돌도록

하여 위장에 소화도 잘 되도록

  

가능한 첫 맛 끝 맛이

변함없이 하나로 달게 하고자

때로는 되새김하는 맛이

더욱 고소히 느껴지게 하고파

  

자모음을, 음절을, 단어를, 어휘를, 문장을,

양념그릇에 뒤섞고 반죽해

충분히 숙성시킨 詩語

딴에는 그럴싸한 상 차려보지만

애시당초 주변머리 모자란 터수

  

말고기보다 더 질긴

씀바귀보다 더 쓴

땡초보다 훨씬 더 매운, 그래서

개떡보다도 맛없는 오지랖

의 얼굴로 잉태되는 사생아

  

스스로 앞서 실망하고, 먼저 고개 돌리고,

죄다 뱉어내고, 온통 토해버리고,

쓰라린 속 부여잡아

냉가슴 두드리며

눈물 콧물 질질 흘리는 꼴무새

  

제 철 양식 하나 장만치 못한 자책에

남 몰래 그늘 뒷전 엎어져

하얀 밤 지새워 끙끙거리는

완전 덜떨어진 위인이야

  

요리하다가도 몇 차례씩

오지그릇 집어던져 산산조각 내버리는

팔푼이 언어요리사,

詩人은 무슨....

  

 

 詩作 note

 

분명 필자가 지은 시는 맞는데 영 낯이 설다. 그것도 그리 오래된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근본적으로 이런 시상을 떠올렸었다는 자체가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물론 그동안 지은 시가 물경 1,500편을 넘어서 2,000편에 육박해가니 내용이며 제목들을 다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적어도 낯이 설지는 않아야 하는데 이 시는 영 내 식구가 아닌 듯 하다. 어줍잖은 자화상도 아니고, 신랄한 비평의 시도 아닌, 한 마디로 되다 만 글장난 쯤이라 여겨진다.

 

한참 젊었던 시절에 지은 같은 제목의 시인이라는 시가 있다. 그리 길지는 않으니 전문을 옮겨본다. “시인은 하늘을 닮았다 / 시인은 노래를 닮았다 / 시인은 풍경을 닮았다 // 나 어릴 적엔 / 꿈도 작았고 / 욕심도 작았고 / 그래 그런지 / 만족도 자그마했었네 // 헌데 지금은....? // 하늘 보고파서 술 한잔 / 노래하고파서 담배 한모금 / 풍경 그리워서 사랑 한차례 // 오늘 문득 시인을 찾아준 / 그니가 / 덧니 드러내 화안히 웃을 제 / 진즉에 도취된 난 / 그윽히 눈 감곤 / 풍경을 보네 / 노래를 부르네 / 그래서 하늘이 되네

 

돌이켜보니 스무 해도 넘게 지난 시절의 시다. 그런데 어럽쇼? 이건 제법 맛이 상큼하다. 이 시도 역시 필자의 시 같지 않다. 우중충하고 폐쇄적인 업보의 연속인 필자의 삶에서도 이렇게 경쾌한 발놀림으로 시를 희롱한 적이 있었던 건가? 그저 앙가슴 파헤치는 재미로 시를 써제끼는 필자의 잔인한 심상에 이리도 고운 추억의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있긴 있었던 건가? 불현듯 콧등 찡하는 감동 밀려와, 눈 부릅뜨고 어제를 살핀다.

 

어제가 이토록 선명한데, 비록 지나간 세월이지만 이다지도 그립고 아련한데, 왜 필자는 오늘 아무런 감흥도 낭만도 기억해내질 못하고 방황만 하고 있는 걸까? 문득 밀려든 조바심에 종주먹 들이대고 하늘을 원망해본다. 그렇게 혼자만의 살풀이를 끝내고 마주앉은 책상머리에서 필자는 이제 한 줄기 희망을 찾아낸다. 구석에 숨어 아닌 척 하던 한 올 소망을 발견하곤 마지막 남겨진 힘 짜내어 움켜쥔다. 바람이여! 소담스레 모두어 밝아오는 내일에 실려오라. 제발 다시 오는 내일에는 행복으로, 기쁨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필자를 밝혀다오. 방랑의 고단한 길에 빛을 비추는 등대로 다가와다오. 남겨진 삶의 여정에 평화로운 걸음으로 나아가는,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고운 시를 지어내는 시인이 될 수 있도록 한 번만 더 기회를 다오.

 

조창인작가의 소설 등대지기는 자식들을 생각하는 모성애와 그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 자식들의 마음을 주제로 하고 있다. 36세에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지만 세월이 흘러 치매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큰 형은 어머니의 수발을 견디지 못하고, 무인도에서 등대지기를 하는 동생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외국으로 이민을 간다.

 

그러나 동생 역시 고작 몇 개월의 수발로 어머니를 포기하고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려고 했다. 그런 동생에게 등대지기 소장이 이렇게 말했다. “모친을 요양원 같은 곳에 간단히 보낼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이번 기회에 등대 생활도 함께 정리하는 것이 좋겠네. 등대는 가슴이 얼어붙은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대를 어찌 차가운 마음으로 지켜낼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선량해야 한다, 효도해야 한다, 남을 도와야 한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 거창한 말 뒤에는 현실적인 어려움, 당장 처한 괴로움, 심지어 그저 귀찮기 때문에 라는 다양한 이유와 핑계로 자신들이 거창하게 외친 말을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몫이 무엇인지 자신을 돌아본다. “열 명의 자식을 양육하는 아버지가 있다. 한 분인 아버지를 모시지 않는 열 명의 자식도 있다.” 라는 법구경의 말을 생각한다.

 

필자의 바르지 못한 생각과 겉치레에 불과한 선행, 그리고 효도 흉내에 돌을 던진다. 일단 한 대 맞고 나서 다시 생각하기로 한다. 절절한 반성과 회한으로 가득한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다가온다. 다시 열려질 미래의 실천은 어떤 색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좋은 결말이어야 할텐데. 모두에게 웃음을 줄 수 있도록 떳떳한 결실을 맺어야 할텐데. 불안한 가운데에도 나름 싹 자라는 다짐이 제법 튼실하게 보여 적이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다시 보고 또 보면서 각오를 다진다. 부모님께도, 아내에게도, 다른 가족들에게도, 그리고 모든 이웃들과 지인들에게도 언제나 사랑으로 다가가는 사람이어야 할텐데...

 

어떤 백화점에서 신사복을 판매하는 매장에 한 노신사가 한 벌의 정장을 들고 왔다. “이 정장은 아들이 생일 선물로 나에게 사준 것인데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정장으로 교환하고 싶네요.” 그런데 백화점 매장 직원은 당황했다. 그 정장은 그 매장에서 판매한 물건이 아니라 다른 백화점 매장의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신사는 정장을 구매한 영수증도 없고, 언제 어디서 구매한 지도 잘 몰랐다.

 

잠시 고민하던 직원은 노신사에게 차를 대접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정장을 판매한 매장을 찾아서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있는 백화점이라서 결국에는 노신사가 마음에 들어 하는 정장으로 바꿀 수 있도록 조치해 드렸다. 노신사는 자신이 매장을 잘못 찾아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동분서주하는 직원에게 감동하게 되었다. 그 직원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이 친절한 직원의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마다 하고 다녔다.

 

그렇게 퍼진 소문이 백화점 사장의 귀에도 들어갔고 성실함을 인정받은 직원은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1,000원을 지급하면 1,000원짜리 물건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계량할 수 없는 친절을 베풀면 계량할 수 없는 큰 행복을 받을 수 있다. 친절을 통해서 만들어진 행복은 주고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도 홀씨처럼 전달되어 더욱 큰 행복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작은 친절로 세상에 퍼지는 행복을 만들어보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관대한 것이 자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다.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작지만 큰 진리의 말들을 가슴에 새기면서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마음 속에 사랑을 품고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 사랑의 마음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이다. 구태여 애 써서 겉으로 드러내려는 의지나 시도가 필요치도 않다. 자연스러운 사람들과의 교류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인간관계의 미학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홀어머니를 모시던 딸이 고향으로부터 먼 곳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워낙 먼 곳으로 시집와서 친정을 가보지 못하는 딸의 마음도 안쓰럽지만, 멀리 딸을 보내고 만나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도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항상 무거운 마음으로 밭에서 일하던 중 시집간 딸에게서 편지가 왔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다. 주변 사람들까지 반가워했지만, 어머니는 의아해했다. 가난한 형편에 딸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했기에 딸은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펼쳐본 편지에는 아니나 다를까, 글씨가 없었다. 대신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과 훨훨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데 어머니는 그림이 그려진 편지를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주머니들이 이유를 묻자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우리 딸이, 엄마를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고향에 갈 새가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나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진심과 사랑으로 이어져 있는 사이라면 어떤 표현으로도 충분히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얼마나 많이 주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담느냐가 중요하다. 이탈리아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 ‘로마 콜로세움등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중 북부에 위치한 토리노 박물관에는 아주 특이한 조각상이 있다. 앞머리는 머리숱이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반질반질한 민머리이고,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그리고 몸은 벌거벗었고, 발에는 날개가 달린 카이로스 신을 조각한 조각상이다. 카이로스가 다가오면 그 앞머리를 붙잡아야 한다고 한다. 카이로스가 지나쳐 가버리면 그를 잡고 싶어도 반질반질한 머리를 잡지 못하고, 발에 달린 날개로 그냥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홀연히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제우스의 아들 카이로스, 그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아무나 잡을 수 없는 기회의 신이다.

 

기회(機會)에 쓰이는 한자 ()’가 위기(危機)라는 단어에도 쓰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기회와 마주친 순간은 어쩌면 위험한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기회는 어느 날 자연히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다. 우리에게 날아든 기회를 자신의 힘으로 슬기롭게 꼭 잡아야 한다. 큰 일을 하는 경우에서는 기회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눈 앞의 기회를 잡도록 힘써야 한다. 작은 그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로 믿을 수 없고, 앞뒤가 맞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제 그들을 용서하자. 당신이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숨은 의도가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을 베풀자. 당신이 어떤 일에 성공하면 몇 명의 가짜 친구와 몇 명의 진짜 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자.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기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고 솔직하자.

 

오늘 당신이 하는 좋은 일이 내일이면 잊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을 하자. 가장 위대한 생각을 하는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가장 작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총에 쓰러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생각을 하자.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을 베풀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우자. 당신이 몇 년을 걸려 세운 것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자.

 

당신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질투를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고 행복하자. 당신이 가진 가장 최고의 것을 세상과 나누자. 언제나 부족해 보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것을 세상에 주자. 러시아의 국민 시인 알렉산드르 푸쉬킨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수많은 선행이 보답받지 못한다고 해도, 남을 위한 사랑이 핍박받는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 덕분에 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하기 쉽지만, 행동으로 실천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태도가 바로 세상의 행복을 만들고 있다. 눈으로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귀로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머리로는 남의 행복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훌륭한 사람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은 남의 입장에 서보려고 하는 겸양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옛날 어느 나라에는 가벼운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거리에서 청소하게 하는 벌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나라의 수상이 마차를 타고 죄인들이 청소하는 거리를 지날 때의 일이었다. 거리를 지나던 수상은, 한 젊은이가 청소하는 죄인의 거친 손에 입을 맞추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죄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그 죄인은 불순한 사상을 퍼트리고 있다는 누명을 쓰고 체포된 정치범이었다.

 

위험한 정치범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청년을 수상하게 생각한 수상은 호위병들에게 그 청년을 체포하라고 했다. “, 죄수복을 입은 죄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었느냐? 혹시 그 자와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냐?” 수상은 체포된 청년을 계속해서 엄하게 심문했다. 하지만 청년은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그분은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지금은 죄수복을 입고 청소를 하고 있지만, 저는 아버지께서 더 나쁜 처지에 놓이시더라도 존경하고 사랑할 것입니다.”

 

청년에게 감동한 수상은, 이런 아들을 길러낸 사람이라면 아버지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닐 거라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철저한 재조사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게 되었다. 고결한 인품과 착한 심성으로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행동으로 부모님의 인품과 심성도 함께 빛나는 것이다. 자녀로서 올바르고 훌륭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끝없이 사랑한 부모님에게 최고의 효도이자 선물이 될 것이다.

 

젊은이들은 집에 들어가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선 어른을 공경하며, 말을 삼가되 미덥게 하고, 널리 사람을 사랑하며, 어진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이런 일을 실천하고 남는 힘이 있으면 비로소 문헌을 배워야 한다. 고전에서 배우는 사람의 도리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마땅히 가져야 할 본연의 도리나 의무는 등한시하고, 보여지는 결과나 행동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짓이야말로 자신의 인격과 인품을 해치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누가 보던지, 안 보던지 자신의 행동에 떳떳해야 하고, 스스로의 생각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중에 상당수는 사람 이름이다. 대부분 그 물건을 만든 디자이너나 그 회사 창업주의 이름이다. 상품이나 상점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뜻! 요즘 우리 주변에도 그런 상표나 그런 상호들이 부쩍 많이 눈에 띈다. 참 반가운 일이다. 자신의 일에 신념과 명예를 거는 사람들, 자신들의 물건에 양심과 자존심을 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뿐만이 아니다. 직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붙이고 다니는 식품회사 트럭, 과수원 주인의 웃는 얼굴이 인쇄된 과일상자, 담당자의 사진과 이름을 큼직하게 걸어놓은 서비스 창구, 품질 책임자의 이름이 선명한 제품포장지...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는 힘이다. 대한민국의 자신감이다. 조금 방향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타이틀이 있다. 일종의 백그라운드 같은 닉네임이다. 명함이나 자기소개서 등에 반드시 표기해놓는 절대적인 가치 말이다. 고유의 직업이나 명칭, 직급이나 별호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다 보니 표시된 그 사항들이 필요 이상으로 중하게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단순한 의미 한 가지만이 아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역할, 지금 있는 직책 혹은 위치, 그런 것들은 그 사람의 내면을 접하기 전에 그 사람을 평가하는 우선 기준이 된다. 마치, 선입견처럼 뇌리에 박힌다. 또한, 자신에게는 때론 사슬이 되어질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인 의미로 본다면 스스로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이 나이에도 가끔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즐겨 입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완전 편안해서다. 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편안하게 망가질 수 있어서다. 아무데서나 앉을 수 있고, 걸음걸이 신경 안 써도 되고, 적당히 뭔가를 묻혀도 무방하고, 아무튼 정장이나 예복을 입을 때와는 몸가짐이나 마음가짐이 다르다. 뭔 말을 이리 길게 하느냐 하면, 자신의 백그라운드를 권력과 힘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필자는 청바지를 입은 사람으로 비유를 하고 싶다.

 

자신이 가진 많은 타이틀, 그 타이틀이 있게 하여준 관계 속의 인연, 그리고 어떤 집합에서의 역할들. 나 혼자 만이 아닌 나를 있게 해 준 공동체를 향한 배려가 있는 사람은 그 백그라운드가 자신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힘이 되어진다. 가능하다면 매주 찾아가는 이 시작노트가 우리들의 좋은 타이틀이, 또 마음의 양식을 쌓는 멋진 백그라운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늘 있다. “난 림삼의 이웃이야.” 약간은 으스대며 말할 수 있는 좋은 나눔의 장이고 싶다. 그렇게 필자를 인정해주고 아껴주는 이웃들이 많아진다면, 그래서 기꺼이 림삼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 허허! 꼴에, 과한 욕심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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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11 [02:41]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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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18/07/11 [11:23] 수정 삭제  
  일반인들은 알수 없는 시인들의 애환과 고충이 잘 드러나 있네요.
도도 18/07/11 [12:30] 수정 삭제  
  으윽. 아파다요 끙끙
배둘레햄 18/07/11 [17:06] 수정 삭제  
  자신이 가진 많은 타이틀, 그 타이틀이 있게 하여준 관계 속의 인연, 그리고 어떤 집합에서의 역할들. 나 혼자 만이 아닌 나를 있게 해 준 공동체를 향한 배려가 있는 사람은 그 백그라운드가 자신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힘이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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