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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8.15 [07:04]
“부대끼는 우리의 삶에 매우 우직했던…․”
<림삼의 살며 사랑하며> ‘여름의 추억’
 
림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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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은 보양식도 애완도 아니었다.

 

워리! 어디 가지 말고 집 잘 지켜.” 이렇게 타이르고 나가면 우리집 개는 말귀를 알아듣는지 꼼짝도 않고 집을 지키며, 근처를 벗어나지 않고는 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강원도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여지없이 한두 마리씩의 개를 키우고는 했다. 물론 현재의 애완견이나 반려견이라고 불리는 작고 귀여운 개가 아니고, 다 자라면 덩치가 엄청나게 큰 토종견 일색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떤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서 지식을 전해주지 않아도, 개는 간단한 지시사항이나 주인의 의사표시를 눈치껏 알아듣고는 즉각 반응을 한다.

 

지능지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수치는 알 수 없지만, 또한 종류에 따라서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개의 특성이나 본능은 원천적으로 사람과 무척 각별하여 어떤 동물보다도 가까이에서, 사람과 동고동락을 함께 하기에 가장 적절한 가축이라는 것이다. 개의 충직함이 주인을 살렸기에 지명을 오수라고 했다는 우리의 설화도 있듯이, 이토록 사람을 따르고 충실한 개를 우리의 조상들은 그냥 가 아니라 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주지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오래 전부터 개를 잡아 식육으로 이용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가 않다. 예전의 전통 계급사회에서는 개를 잡는 사람을 가장 천한 사람으로 분류했었고, 사악한 사람을 일컬어 xx’라고 격하시켜 욕의 대명사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말은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욕설이다. 개고기를 먹는 걸 아주 천박한 식성으로 간주하였으며, 특수한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약으로만 먹고는 하였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집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은 가족을 늘린다는 뜻으로 여기곤 하였다. 새끼를 낳아도 이웃과 나누어 기르는 것이 고작이었지, 사고 판다는 것은 아예 수치로 여기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물며 키워서 잡아먹기 위해서 개를 키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태는 어떤가? 일부에서는 잡아먹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개를 살찌우기도 하고, 심지어는 기업형으로 개를 사육하거나 남의 개까지 훔쳐서 전문적으로 유통을 시키는 업자들까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언제부터인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지적과 혐오를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고기를 많이 먹고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근거도 없는 학술적 자료와 영양 성분표를 제시하면서, 절기에 안성맞춤인 음식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또한 개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들은 마치 신앙처럼 그런 속설들에 심취한다. 마치 여름철에 개고기를 먹지 않으면 심각한 건강상의 피해를 입을 것처럼 엄살을 떨며, 주변의 만류에도 요지부동이다. 통탄할 노릇이다.

 

드라나마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서 고찰해보면 가장 쉽게 접근하게 되는 조상들의 서민음식이 개고기를 주재료로 한 개장국밥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전통 음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만, 이 또한 다시 한 번 역사를 거슬러 되짚어봐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웬만한 경우에는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일반 백성이 아닌 천민 계급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궁핍함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간간이 먹었다는 사료가 있다. 하물며 개를 잡다가 적발되면 관아로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다는 사례가 민화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는 인근 다른 나라들에서 식용으로 개를 이용했다는 흔적이 발견되곤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고 있는 것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개고기가 다른 육류에 비해 훨씬 비싸게 거래되고 있으니 이치에 닿지 않는 소리다. 그보다는 건강에 좋고 정력에 보탬이 된다는 속설 때문에 견공들이 그런 수난을 당하고 있음이다.

 

출근할 때 잘 다녀오라고 꼬리를 치고, 저녁에는 깡총거리며 인사하는 충직한 짐승, 우리 아들 딸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함께 놀아주는 정겨운 동물, 그 영리하고 귀여운 녀석들의 고기를 먹어 정력을 길러서, 그 정력을 어디에 쓰겠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가 하면 동물애호단체나 자연사랑을 구호로 내건 각종 조직에서도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도대체가 우리나라에 웬 놈의 외국산 개가 이리도 많은지 이름도 생김새도 낯설기만 한 여러 종류의 개들이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매매되고 있다. 족보며 혈통이며, 순종이니 계보니, 각종 조건들을 따지면서 한껏 가격을 부풀려놓고는, 서로가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면서 개의 소유권을 이리 저리 옮기곤 한다. 아울러 비싼 개를 소유한 것이 무슨 부의 상징인 양 거드름을 피우기도 한다.

 

물론 사람들의 취미나 기호를, 필자가 지적하거나 시비를 걸자는 게 아니다. 한 편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상경제에 개 아니라 무엇인들 상품으로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꼭 짚고 넘어갈 문제는, 엄연히 존중해야 하는 생명의 가치와, 비록 낮지만 존재하는 지능이 있는 개의 삶을, 그 격과 질을, 단지 금전의 고저에 비례하여 평가하고 판단하고자 하는 것도 사람이 갖고 있는 지나친 독선이며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깊이 반성하면서, 진솔한 눈으로 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 상영되었던 몬도가네라는 기록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서 어떤 민족이, 살아서 기어다니는 빈대를 잡아 만두피에 싸서 먹는 것을 보고 야만인이라고 얼굴을 찌푸렸던 기억이다. 또한 영화에 개고기를 맛있게 먹는 홍콩 사람들이 나와 영 기분이 개운치 않았던 것도 생각난다. 당시 영화를 본 서양인들은 모든 동양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여겨 한동안 동양인의 잔인성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워리! 누가 먼저 가나 내기하자.”

 

미국의 어느 대통령이 작은 애완견의 귀를 잡고 들어 올렸다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구설수에 한참을 시달렸던 적이 있다. 그만큼 선진국에서는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며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엄연하게 정립된 동물의 위상을 반증하는 사례다. 물론 맹목적으로 우리도 서양을 흉내내야 한다는 사대주의 사상을 강요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하며,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느 상좌스님이 무의식중에 뜨거운 구정물을 풀밭에 버렸다가 큰 스님으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풀에는 많은 벌레들이 사는데 뜨거운 물을 함부로 버리면 벌레들이 모두 죽지 않겠느냐며 불호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생명! 그것은 사람의 것이든, 하찮은 미물의 것이든 하나같이 고귀하고 중한 것이다. 나에게 나의 목숨이 소중하다면, 남의 목숨도 역시 그만큼 소중하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지금 입추절기가 지났음에도 한 여름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말복이 바로 코앞이다. 꼬리를 치며 주인을 반겨주고, 도둑을 쫓으며 소중한 재산을 지켜주기도 하는 견공, 귀여운 자녀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는 견공, 부디 올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애꿎게 버려져 계절의 희생물이 되는 견공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성을 갖춘 자칭 호모 사피엔스인 사람을 견공들이 멀리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말이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폭염이다.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이슈들이 범람하고, 경천동지할 각종 사건 사고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빈발하지만, 그 어떤 이슈도 우리나라를 습격한 더위를 능가하는 건 없다. 어떤 언론사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근 SNS나 방송매체 등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키워드의 상위 다섯 가지가 폭염’ ‘무더위’ ‘이상기온’ ‘열대야’ ‘기록경신이라고 한다. 한 결로 작금의 더위를 가리키는 말이거나 연관 파생어다.

 

그러니 그 어떤 세상의 요지경 상황도, 변화무쌍한 현대사회의 용틀임도, 일절 관심이 없고, 그저 언제나 이 더위가 물러나고 정상적인 계절의 흐름이 돌아올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으로 무력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의 처지가 민낯을 드러내는 듯 하여 처량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람들은 전부 다 여름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어쩌면 자신을 제외하면 모두가 적이다. 밖에서 만나지는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이웃이, 동료들이, 가족들이, 심지어는 배우자까지도 지금은 그냥 귀찮고 만나면 짜증나는 대상이다. 불쾌지수만 한없이 치솟고 있다.

 

그렇지만 조금만 참고 주위를 둘러보자. 예민해진 감정을 잠시 추스르고 일상에서 만나는 인연들을 바라보자. 나만 덥고, 나만 견디기 힘든 게 아니다. 나만 짜증나고, 나에게만 몰아닥친 폭염이 아니다. 나 못지않게, 아니, 나보다 더 힘들고 버거운 여름을 견디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인연들이 바로 내 앞에 있다.

 

내가 먼저 나서서 그들과 대화하고, 배려하면서 겸양의 미덕을 솔선수범할 때 누구라도 인상을 쓰면서 나를 대할 사람은 없다. 어차피 이 여름은 가게 되어있다. 무시무시하고 지긋지긋한 이 무더위는 얼마 안 있으면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어있다. 그 때가서 새삼 얼굴 붉히며 사과할 일이라면 아예 지금 하지 말자. 피차 면구스러울 텐데.

 

필자를 어린 시절로 안내하는 워리의 그 우렁찬 목소리는 육십년이 흐른 지금도 변함없이 필자의 뇌리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박혀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5리길 남짓한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가 있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온 몸으로 받으며 들길을 걷는 어린 아이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그런데 멀리 집이 보일 때 쯤 어느새 알아보고 워리가 꼬리를 치면서 달려온다. 앞뒤를 오가며 껑충껑충 아이를 반긴다.

 

무더위가 가시는 기분이다. 활짝 웃는 얼굴로 장난을 치며 함께 집으로 간다. 도중에 작은 도랑이 있으니 텀벙텀벙 같이 물장구도 쳐가면서, 추억 속으로 아이는 언제나 워리와 함께 간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아무리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워리와 함께 하는 어린 날의 추억이 있음으로 지금도 필자는 여름을 너끈히 지킨다. 아련한 여름추억의 밭고랑을 푸르르게 내달리며 워리에게 소리친다. “워리! 누가 먼저 가나 내기하자.”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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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06 [00:03]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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