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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9.25 [13:01]
“행복을 봉투에…가을 우체국 다녀올 것”
시인 양은진 ‘겸허하게 하는 가을’
 
시인 양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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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감사함에는 겸허함을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시인 양은진   

겸허함을 갖추라는 자연의 가르침!

 

가을이면 생각나는 김현승 님의 가을의 기도로 시작해본다. 짝사랑에 목이 타던 시절, 이 시에서 사랑과 호올로 라는 단어 때문에 2연과 3연을 졸졸졸 외우고 다녔지만 짝사랑이 진작 지나간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시로 남은 것은 1연 때문이다.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운다는 말.

 

올여름은 극기 훈련이라도 하듯이 단단히 더웠기에 입추를 지나도 그 여파가 여전하고 아마도 추분쯤 되어야 가을이라 말할 수 있을 듯 같다. 천문학적으로도 낮과 밤이 같아지는 추분과 동지 사이를 가을이라 정의한다 하는데, 오묘하게도 1년 중 가장 풍성하다는 한가위 바로 전날이 추분인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어쩌면 풍성함을 맞이하기 전 자연의 섭리를 되집어 보면서 가을에 대해 겸허함을 갖추라는 자연의 가르침 아닐까? 보리고개를 넘겨야 또 한해를 살아갈 수 있었던 그 옛날 낱가리를 달 아래까지 높이 쌓아놓고 환한 달을 보면서 다들 모여 강강수월래와 떡메치기를 하기 전 분명 우리 조상들은 각자 둥근달에 소원보다 감사를 빌고 집을 나섰을 것이다.

 

새벽같이 발소리를 들려주고 뙤약볕 아래에서 풀을 뽑아 꾸준히 물을 댔기 때문에 풍년이 들어 쌀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연과 마을을 지켜주는 그분의 덕에 추운 겨울을 날 식량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신이 곡식이 익어갈 수 있도록 햇볕을 주시고 적당히 물을 내려주시어 차마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감지덕지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먹고 혹은 버리는 쌀 한 톨의 무게 속에는 바람과 천둥, 비와 햇살, 외로운 별빛과 넉넉한 달빛까지 들었다는데, 1년을 꽉 채운 그것의 무게를 세어볼 겨를도 없이 밥상을 한 끼 양식으로 해치우기 바쁜 요즘 현대인들에게 쌀 속에 들은 농부의 땀과 수고로움을 보라는 것은 공허한 외침일지 모른다.

 

 

 

악다구니만 치면서 격해지는 감정

 

워낙 바쁘다 보니 무엇 때문에 바쁜지 무엇을 위해 가는지도 모른 채 힐링이 필요하다며 악다구니만 치면서 감정이 격해지고 있다. 자기 감정을 내보이는데 여념이 없다. 상황이 복잡하고 어려워 가슴이 뛰면 공황장애, 높은 곳이나 넓은 곳에서의 두려움은 고소공포증이나 광장 공포증 폐쇄공포증 등 참아내기 어려운 대부분의 것들에 우리는 병적인 고통이라며 핑계를 대고 뒤로 숨는다.

 

작은 두려움도 증상이라 싸잡아 말하고 그러므로 또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려 한다. 심리학적 혹은 의료용어인 트라우마 란 말이 일상에서 쓰이고 있는 지 몇 년이 되었다. 인생의 방향을 바꿀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이 단어를 조금만 인상적인 사건에도 거침없이 사용하며 자기 방어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세월호 사건 이후 트라우마라는 말이 널리 알려졌는데 하루 아침에 생떼같은 자식을 잃은 그들의 심정과 우리가 일상에서 무분별하게 쓰는 트라우마가 정작 같은 무게일까? 언제부터인지 감정에 솔직한 것이 미덕이 되고 있다.

 

심지어 지금 이순간만을 위해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이 바른일 인냥 사회분위기가 그렇게 흐르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가 솔직한 감정 너머 조금 방자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어느 리얼 TV프로그램에서 같이 출연한 여배우의 단점을 물어보자, 생각보다 까칠하지 않고 털털하다며 웃으며 답했고 해당 여배우도 만족스러워 한다. 털털하다는 것이 실제로 단점이 아닌 단점인 것이다. 행여 자기 감정의 솔직함 속에 우리가 지켜온 미덕와 예의범절이 퇴색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한 드라마의 배경은 2002 월드컵이 열리던 해였다.

 

어이없는 운전자의 실수로 하루 아침에 가장을 잃어버린 그 가족은 절규하고 있었지만 장례식장 영정 앞만 벗어나도 복도에 있는 tv에서 생중계되는 축구경기를 응원하고 16강 진출이 확정된 그 우승 앞에서 지인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내 감정의 표출이 조심스러워야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조상들의 경험과 지혜로 만들어진 예의범절은 나 뿐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여 다같이 아프지 않고 토닥이며 살아가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유독 엘리베이터 고장이 잦은 아파트 17층에 살면서 출근길에 엘리베이터가 문제 없이 내 앞에 떡 하고 서주면, 참 감사하다. 그 전에 문제없는 아파트 24층에 살 때는 없었던 습관이 생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그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혼자 탈 때는 소리내어 동승인이 있을 때는 입안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 때 알게 되었다. 내게 오는 작은 불편함, 힘듬, 시련, 그것이 날것으로 내 보여진다고 해서 작아지는 것이 아니고 내게 더 편리함, 감사함,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한 전단계임을.

 

더 이상 올해 농사가 풍년인지, 흉년인지 관심도 없는 도시인들에게 가을 뿐 아니라 사계절이 모두 풍족한 요즘, 우리 감사한 마음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 무더운 여름도 견디어냈고, 한 지인의 말처럼 이 또한 지나간다더니, 지나갔고 책을 읽어도 몸을 움직이는 일에도 쾌적한 가을이 왔다. 날씨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이 가을에 일상에 감사함을 느껴보고 설령 내게 불편하더라도 타인을 위한 불편함을 일부러 만들어 본다면분명 내게 더 큰 감사함과 행복이 올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뚜벅뚜벅 걸어서 가을 우체국을 다녀 와야겠다. 잊고 지냈던 이들에게 줄 행복과 반가움을 봉투에 담아 보내야지

 

 

프로필

 

2012년 예술세계 등단

현 안양 샘병원 치과의사

대한여자치과의사협 이사

10EBS 스토리기자

yeji3929@daum.net

https://blog.naver.com/yeji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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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31 [01:21]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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