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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5 [03:03]
“가을밤 귀뚜리…숨가쁘게 달려오더니”
(POET VIEW) 林 森 '고향의 가을'
 
림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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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가을'

 

 

 

 


 

 

 

  


 林  森

 

 

가을밤 귀뚜리

끙끙대는 녀석 바라보다가 문득

열리어진 하늘, 들판,

 

가을 고향...

 

돌담밑 때깔좋은 떡호박 누렇게 익어가고

발자국 소리에도 화들쿵짝 놀란 메뚜기

쫓기는 날개 사이 햇볕 엉기어들면,

 

한 여름내 대롱대롱 매달린 단감나무 가지에서

가을! 소리 숨가쁘게 달려오더니

 

이른 봄부터 텃밭 놀릴 순 없지,

늙으신 어머니 은근한 정성으로

새빨가니 익어 마디 줄기 부러질 양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밭 시렁에서

햅쌀처럼 새하얀 웃음 머금고

수건모자 쓴 맞동서는

가을을 한 소쿠리 따고 섰었드랬지

 

이제는 텅 비었을

어릴 적 그 고향집 잠자리 찾아들고

밥 짓는 이웃 굴뚝연기 뜰안 솔 솔 감아돌텐데,

 

 

뒤개울 맑은 물소리 한 입 가득 품어내며

아련한 기억속

고즈녁한 가을 가운데로 돌아가고파

  

 

 

 

 詩作 note

 

상투적인 제목에다 뻔한 줄거리를 품고 있는 그저 그런 시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쉽게 적을 수 있는 내용의 글이다. 고향이라는 주제로, 혹은 가을이라는 시절을 소재로 쓴 시가 한 두 편이 아니라서, 절기에 적절한 시로 이번 주 시작노트를 이어나갈 시를 고르는 데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오래 전에 선보였던 다섯 번 째 시집 비 내리는 날 오후에 실렸던 계절시를 한 편 선택해본다. 우리는 지금 가을의 한 가운데라는 한가위 명절 연휴를 지내고 있다. 2018년의 한 페이지가 큰 점을 찍고 가는 중간이다.

 

혹은 축복처럼 고향에서, 또는 삭막한 타향에서 이 가을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의 심사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 마음 먹은대로, 계획한대로 풀려가는 세상사가 아님은 이미 오래 전에 알아버렸지만, 그래도 아예 작은 희망마저 포기하자니 더욱 비참해질 것 같아, 마지막 끈을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자화상이 못내 애처롭고 비참하기까지 한 것이 현실의 삶이다. 막연히 고단하고 그저 막막하기만 한 오늘이,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소망에 오버랩 되어 기쁨인지 슬픔인지도 모를 어중간한 감상 속으로 우리네 사지육신을 억지로 밀어넣는다.

 

버거운 민낯이 생생하게 드러나니 감출 길도 없고, 그냥 모든 세상사는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려니 하고 반 쯤은 체념한 상태로 삶의 한 자락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해탈한 신상으로 올려다보는 보름달이 유난스레 밝다. 그림자진 달의 뒷 편에는 누군가가 살아, 언젠가 도래할 내일의 삶에 축복을 기원해줄 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오늘보다는 좀 더 나은 내일의 삶이 기대되기에 마땅찮은 현실을 감내하는 중이다.

 

허기사 유명한 철학자인 칸트는 인간이 헛된 희망을 품는 것을 견제하면서 이른바 자살과 동격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정석화 되지 못한 희망은 막연하게 현실의 고달픔이나 난관을 회피하기 위한 비겁한 심상의 발로일 뿐이며, 그렇기에 현실을 도피하는 차원인 자살과 다를 바 없다고 하였다. 궤변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희망만 품고 현실에 충실하게 임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민폐이며 해악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시점에 깨달아야 할 점은 막연하게 내일의 희망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어렵거나 실행 불가능한 과제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간단하고 일상적이라서 간과하기 쉬운 진리다. 요는, 우리의 오늘을 바라보는 눈동자와 처세술은 내일의 어떤 소망이나 바람보다도 소중하고 귀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사는 노하우가, 나아가서는 우리의 일생을 영위하는 공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단 이번 한가위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고향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그네들의 마음 속에서 언제나 살아있는 고향에 대한 기억과 향수가 있다면, 영원한 안식처이며 피난처가 되어주는 고향의 의미는 항시라도 퇴색되지 않고 우리 삶의 밑거름이 되며,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아울러 생각의 중심에 늘상 자리매김되어 우리가 내일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생기와 활력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고향과 더불어 우리에게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을 부여해주는 개체가 바로 가족이라는 단어다. 어떤 의미로는 두 단어 사이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언제나 우리의 상처와 흔적을 보듬어주고 감싸주는, 온화하고 평화스러운 본질적 마음의 요소가 깃들어 있는 범주라는 데서 두 단어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또한 두 단어의 실상이 하나로 뭉쳐 상호작용을 일으키면 상실했던 힘마저 되살아나는 마력과 묘미가 숨어있기도 하다. 아무튼 우리의 영원한 삶에서 하나로 귀결되어 기준이 되는 단어임에는 틀림 없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부부는 골목 한구석 작은 포장마차에서 붕어빵과 땅콩 과자를 팔고 있다. 남편은 한 쪽 다리를 절고 팔에도 장애가 있다. 움직이는 게 불편하지만 능숙하게 포장마차를 펼친다. 이미 20년이 넘도록 해왔던 일이다. 휠체어에 앉은 아내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남편을 도와 함께 손발을 움직였지만, 갈수록 악화된 디스크로 목뼈가 주저앉은 이후 그저 망연자실 남편을 바라볼 뿐이다.

 

그 혹독한 IMF가 터지기 전에 남편은,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번듯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비장애인도 취업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시절, 한 번 직장을 잃은 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힘겹게 붕어빵 장사를 하는 중 휠체어에 앉아 버린 아내를 보살피기 위해서라도 이제 남편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기는 어렵다. 그래도 요즘은 가을 날씨라 다행이다. 태양이 펄펄 끓는 한여름의 붕어빵 틀은 용광로나 다름없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엔 계산하고 거스름돈을 내어주는 아내의 손이 동상에 걸릴 것 같다. 집에 있으면 좋으련만 아내는 남편 곁을 한 시도 떠나길 싫어한다. 아내는 혹시라도 본인의 건강이 더 악화하여 조금이나마 남편을 도울 수 있는 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남편을 만났지만, 불평 한 번 한 적 없이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도리어 남편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지금은 남편이 아내를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보살피고 있다.

 

그렇게 힘들게 시작한 포장마차 붕어빵 장사를 20여 년간 해오면서 힘들고 서러운 일도 많았다. 아파트값 떨어지니 여기서 당장 떠나라고 몰아세우던 사람들. 한 밤중에 몰래 포장마차의 포장을 칼로 찢거나, 포장마차를 일부러 쓰러트리던 사람들. 그리고 수시로 민원을 넣어 단속반을 부르던 사람들. 단속반에게 압수된 포장마차를 돌려달라고 울면서 사정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부부는 포장마차에 나오는 걸 포기할 수 없다.

 

두 사람의 희망인 늦둥이 외동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그리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단지 집에만 있는 나약한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다. 몇 년 전 중학생이던 딸은 부부의 속을 어지간히도 썩이던 아이였다. 부모의 장애와 궁핍하고 힘겨운 집안 사정에, 방황을 일삼는 아이였다. 딸과 연락이 되지 않으면 엄마는 휠체어를 타고 밤새도록 동네를 누비며 딸을 찾아 나서야 했다. 다행히 지금은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착한 딸이 되었다.

 

세상 부모들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본인들이 먹고, 자고, 입는 것은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도 힘들지 않은 강한 사랑이 있다. 그들에게도 한가위가 돌아왔다. 올 해는 유난히 곰살맞게 굴며, 딸아이가 포장마차까지 따라나와서 시중을 드는 통에 모처럼 부부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보름달처럼 피어났다. ‘언제나 한가위만 같아라.’ 한가위의 풍요로움, 넉넉함에 대한 강조의 표현이다. 이 부부에게도 진정으로 추석의 따뜻함이 깊게 전해지길 소망해본다.

 

하진이아빠 재동, 직업은 카페 가수. 유난히 작은 체구에 장애등급 6급을 가진 아빠 재동 씨, 아내와 딸 하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할 수 있던 건 남들보다 좀 더 나은 노래 실력으로 돈을 버는 일 뿐이었다. 아빠는 매일 밤,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불렀고 소액의 일급을 받으며 병든 딸을 지키고 있다. 생후 19일 째 되던 하진이, 태어나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에 수술대에 올랐었다.

 

통통하게 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귀여운 볼살, 유난히 긴 눈꼬리를 갖고, 2년 전 12, 예수님의 축복으로 딸 하진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생후 19일의 하진이는 갑작스러운 혈변 증세로 소장 괴사판정을 받았고, 이는 긴급 수술로 이어졌다. 슬프게도 이날은, 태어나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였던 것이다. 올해로 3살이 된 하진이, 소아병동 생활이 어느덧 1년여가 지났다. 아이의 연약하고 작은 배를 가로지르는 선연한 칼자국, 소장을 잘라낸 하진이는 영양 흡수를 하지 못한다.

 

올해 3, 소장 복원 수술을 했으나, 큰 호전이 없었다. 그렇게 작년 8월부터 다시 시작된, 하진이의 병동 생활이다. 영양 흡수를 위해 링거용 정맥주사로 버티는 아이의 유일한 친구는, 하진이만큼 볼이 통통하고 커다란 눈의 침대 위 인형 뿐이다. 하진이를 살리기 위해 아빠는 오늘도 밤 새워 노래를 불러보지만, 무대 위 까만 조명만큼 이 까마득한 어둠의 끝은 언제쯤일지 막막하기만 하다.

 

도움이 없으면 당장 치료를 중단해야 할 3살 천사가 작은 도움을 줄 독지가를, 간절히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절박한 하진이에게도 한가위는 돌아왔다. 모처럼 노래를 쉰 아빠의 동료 가수들이 선물을 한 아름 들고 하진이를 찾아주어 병실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언제나 한가위만 같아라.’ 한가위의 풍요로움, 넉넉함에 대한 강조의 표현이다. 이 부녀에게도 진정으로 추석의 따뜻함이 깊게 전해지길 소망해본다.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취미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것이었다. 정원에는 남자의 손에 의해 잘 다듬어진 정원수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원 한 구석에 민들레 한 송이가 보였다. 남자는 그 민들레가 자신의 정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민들레는 그 정원에 허락받지 못한 꽃이었다. 남자는 민들레를 뽑아버렸다. 그런데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민들레 씨가 자꾸 정원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남자는 계속 민들레를 뽑아버렸다.

 

하지만 민들레는 계속 늘어났다. 참다 못한 남자는 제초제를 뿌리려고 했다. 남자가 제초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이웃집 사람이 말렸다. “그만둬요. 제초제를 뿌리면 당신이 사랑하는 다른 꽃과 나무들도 다 죽어버려요.” “그러면 이 민들레들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저기, 당신에게는 자녀가 둘 있지요? 그 중에 누구를 더 사랑하나요?” “무례하군요. 그 아이들은 둘 다 내 자식이고 나는 아이들을 똑같이 사랑합니다.”

 

그러자 이웃이 웃으면서 말했다. “민들레도 당신의 정원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인데, 그렇다면 그 민들레도 장미와 수국처럼 똑같이 사랑하도록 노력해보세요.” ‘자아(ego)’는 때로는 위험하다. 자아는 스스로 자신의 존엄과 자부심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는 절대적인 가치에도 자신의 취향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차별하게 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하기도 한다. 장미든 민들레든 저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취향에 따라 아름다움에 차별을 두고 선을 긋는 것은 인간의 오만함일 뿐일지도 모른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발달장애인의 강한 의지와 가능성을 보여주며 500만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 영화 말아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씨는 아직도 마라톤 완주처럼 힘겹고 외로운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30대 중반으로, 더는 마라톤 선수로 활약하기는 힘든 나이지만 수영과 등산을 꾸준히 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아들을 돌보던 어머니도 이제 체력적인 한계가 다가왔다.

 

지금은 한 복지재단에서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를 위해 설립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어느 카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나마 얼마 있지 않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에 자리를 잡으면 회사가 망하거나, 사업주와 의견이 맞지 않아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배형진 씨는 다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모두가 함께 달려갈 수 있도록 따뜻한 배려와 힘찬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초원이 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 영화에서 많은 관객의 마음을 아리게 했던 어머니의 말에는 발달장애인 부모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책임과 보살핌의 고단함이 응축되어 있다. 영화를 통해 발달장애인의 아픔과 그 가족의 역경을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한 지 벌써 13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대다수 장애인과 가족들은 힘겨운 인생의 마라톤을 달리고 있다. 우리가 조금만 함께 달려준다면 모두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작다. 함께 할 때 우리는 비로서 큰 일을 할 수 있다.

 

폭우가 쏟아지는 한 밤중에 한 청년이 길을 걷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 속을 청년은 작은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겨우 한 걸음 씩 걷고 있었다. 자칫 발이라도 헛디디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청년은 어둠 속에서 굉음과 함께 빛이 번쩍거리는 천둥과 벼락이 더 무서웠다. 그런데 가지고 있던 손전등이 갑자기 꺼졌다. 떨어지는 빗줄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발을 뻗고 싶어도 발 앞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된 청년은 한 걸음도 옮길 수가 없었다.

 

이대로 해가 뜰 때까지 비를 맞으며 기다려야 하나, 하고 공포에 빠진 청년의 눈에 순간 곧게 뻗은 길과 나갈 방향이 보였다. “우르릉. !” 벼락의 불빛에 잠깐 길이 보인 것이다. 청년은 그 길을 향해 몇 걸음 걷고 기다렸다. “우르릉. !” 또 잠시 비춘 불빛을 보고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청년은 이제 무서움보다 벼락이 치기를 기다리면서 조심스럽게 걸어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공포의 대상이 있다. 하지만 그 공포를 그저 무서움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무서움의 대상을 이겨낼 수 있다면, 무서웠던 벼락에서도 밝은 빛을 이용할 수 있듯이, 삶의 길잡이로 삼을 수도 있다. 만일 겨울이 없다면 산뜻한 봄날의 즐거움도 없을 것이다. 역경의 겨울을 치른 자가 번영의 새 봄을 즐기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은 모든 진실에 해당하는 양면성이 있다. 상황에 맞게 우리가 응용하고 적응하면서 삶의 문제들을 헤쳐나가는 슬기와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그렇게 앞을 향해 전진하는 의지와 노력 속에 우리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삶의 답이 존재하는 것이다.

 

세종대왕님은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기 위해 정치가들이 고생해야 한다는 곧은 의식을 가지고 계셨는데,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듯이 세종대왕님의 치세 하에는 훌륭한 관리도 많았다. ‘정갑손이라는 인물도 세종대왕님 시대의 관리로, 예조참판, 대사헌, 예조판서 등의 높은 벼슬을 거치면서도 청렴한 관리로 이름을 높인 사람이다. 정갑손이 함경도 관찰사로 지낼 때 일이다. 임금의 부름으로 한양까지 다녀와야 했는데 당시 함경도에서 한양까지의 여정은 달을 넘기는 먼 길이었다.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정갑손은 밀린 업무를 처리하며 한 장의 보고서를 보았다. 함경도에 선출한 관리들에 대한 보고서였는데 이것을 본 정갑손은 노발대발하며 책임자를 불렀다. “여기 새로 뽑은 관리에 내 아들의 이름이 들어있는데, 그 녀석은 아직 미흡하여 관직에 나서기에는 한참 모자란 것을 내 익히 알고 있거늘, 국사를 돌보는 중한 일에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아비의 위명을 보고 판단하다니, 어찌 이렇게 백성을 속일 수 있는가? 절대 용서하지 못할 일이다!”

 

아직도 계속되는 취업대란의 시기. 능력은 있지만, 자리를 만나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가 취업을 위해 힘겨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청탁을 통한 잘못된 방법으로 취업해서 나중에 밝혀진 사건이 TV 뉴스에 나올 때마다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곤 한다. 수백 년 전의 인물도 세상에는 공정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힘든 시기, 당연히 지켜져야 할 공정함이 더욱 절실하다. “관직을 다스릴 때는 공평함보다 큰 것이 없고, 재물에 임하여는 청렴보다 큰 것이 없다.”고 말한 충자의 충언이 새삼스레 옷깃을 여미게 한다.

 

백만장자 록펠러는 유년시절은 가난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여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 미국의 최대 부자가 되었고, 53세에 세계 최대 부자가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55세에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다. 모든 병원의 의사들은 남은 수명이 1년 밖에 안된다고 선고하였다. 그가 희망을 잃은 마음으로, 최후의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갈 때, 병원 로비에 걸려있는 액자의 글이 눈 안에 들어왔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마음 속에 전율이 생기고 눈물이 났다. ‘나는 지금껏 모으기만 했지 줄 줄을 몰랐구나.’ 선한 마음이 온 몸을 감싸는 가운데 눈을 지그시 감고 자기가 살아온 삶에 대하여 깊은 생각에 잠겼다. 조금 후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딸의 입원비 문제로 에걸하며 다투는 소리였다. 병원 측은, 입원비가 없으면 입원이 안 된다 하고, 어머니는 입원시켜 달라고 울면서 사정하는 소리였다.

 

록펠러는 곧 비서를 시켜, 소녀의 병원비를 지불하고 누가 지불하였는지 모르게 하였다. 얼마 후 은밀히 도운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어 퇴원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록펠러는 얼마나 기뻤던지 후일,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 지를 몰랐습니다. 나누는 삶의 행복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때부터 그는 나누는 삶을 작정한다.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도 그의 병이 치료되기 시작하였다.

 

그 뒤 그는 98세 까지 살면서 나누는 일에 힘썼고, 선한 일을 하는 데 인생을 바쳤다. 세월이 흐른 후에 그는 회고했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쫒기면서 불행하게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다. 인생의 삶은 나누는 것이 행복이고 평화이다.” 지금은 만물이 풍성하게 무르익어 수확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계절, 가을이다. 들판의 풍요로움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도 가득 깃들어 모두가 한 데 어울려 평화와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진정한 축복의 계절이 될 수 있도록 한결로 중지를 모아 매진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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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26 [23:12]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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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18/09/27 [08:34] 수정 삭제  
  고향생각이 더욱 간절하게 나네요. 이번 추석에도 못가봤는데.
홀로코스트 18/09/27 [22:00] 수정 삭제  
  인생의 삶은 나누는 것이 행복이고 평화이다.” 지금은 만물이 풍성하게 무르익어 수확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계절, 가을이다. 들판의 풍요로움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도 가득 깃들어 모두가 한 데 어울려 평화와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진정한 축복의 계절이 될 수 있도록 한결로 중지를 모아 매진해볼 때다.
배둘레햄 18/10/01 [21:07] 수정 삭제  
  ‘고향’과 더불어 우리에게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을 부여해주는 개체가 바로 ‘가족’이라는 단어다. 어떤 의미로는 두 단어 사이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언제나 우리의 상처와 흔적을 보듬어주고 감싸주는, 온화하고 평화스러운 본질적 마음의 요소가 깃들어 있는 범주라는 데서 두 단어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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