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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5 [04:03]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1) ‘중국의 국호’
주나라 첫 등장…현대사는 신해혁명때부터
 
김정룡 /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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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 지배층 천하 중심국가 의식 팽배

이후 중원국가의 새로운 개념으로 대체

 

중국인과 중국어는 외국인이 부르는 명칭

중국 내부에서는 중국어아닌 한어(漢語)

 

당시 공식적으로는 나라 이름이 주()이지만 지배층들이 자신들이 천하를 지배하고 있는 중심국가라는 의식이 팽배해 중국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이란 국호의 유래와 의미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국가가 생겨난 이래 현재의 국호를 줄곧 사용해온 것이 아니라 왕조가 교체될 때마다 새로운 왕조의 이름을 국호로 삼아왔으며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중국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조금 예외가 있긴 하다.

 

중국이란 국호가 주나라 초기에 잠깐 역사 대에 명함을 내민 적이 있었다. 주나라가 BC 1046년에 건립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3천 년 전에 잠시 짧게나마 중국이라 불렀다. 당시 공식적으로는 나라 이름이 주()이지만 지배층들이 자신들이 천하를 지배하고 있는 중심국가라는 의식이 팽배해 중국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김정룡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중국이란 천하의 중심국가라는 뜻

 

주나라는 건국초기에 경제시스템을 완벽히 하려고 정전제(井田制)를 실시하였다. 물론 정전제는 주나라 발명품이 아니다. (() 시대에도 있었다. 토지의 한 구역을 ()’자로 9등분하여 8호의 농가가 각각 한 구역씩 경작하고, 가운데 있는 한 구역은 8호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을 국가에 조세로 바치는 토지제도였다.

 

주나라는 이 경제시스템을 토대로 봉건제라는 정치제도를 마련하였다. 왕이 빼앗은 이민족의 땅과 본래 상나라 때 주민족(周民族)이 차지하고 있던 토지를 친척, 친우, 전공자들에게 나눠주고 국을 세워 ()’를 봉하는 봉토건국(封土建國)’으로 재편하였다.

 

세분화해서 말하자면 주나라 왕은 하늘에서 내린 아들이라는 뜻으로 천자이고 천자가 땅을 나눠주고 세운 가 국왕이고, 국왕이 또 친척, 친우, 최측근에게 나눠주는 땅을 ()’이라 하였다.

 

을 관리하는 자가 대부(大夫)이며 대부를 도와 을 다스리는 자를 ()’라 불렀다. ‘는 주로 공부하는 사람이며 공부하여 권력을 잡고 출세하면 사대부(士大夫)’가 된다. 이것이 바로 봉토건국의 기본 시스템이었으며 또 이것이 바로 주나라의 정치제도였다.

 

그런데 중국에서 발명한 화약, 제지술, 인쇄술, 나침반이 유럽까지 전해지는데 400여년 걸렸듯이 정보가 서로 막혀 있어 대륙과 대륙사이는 더 말할 것 없고 나라와 나라 사이 교류조차 어려웠는데, 그보다 천년 하고도 수백 년이나 앞선 주나라는 현재와 같은 세계’, ‘국제’, ‘지구촌’, 영어로 글로벌에 해당되는 개념이 없었다.

 

무식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폐쇄적인 시대였다. 그리하여 주나라 지배층은 자신들이 다스리는 세상을 천하라고 인식하였다. 이런 맥락에 의해 천하를 다스리는 중심국가, 줄여서 중국이 된 것이다.

 

BC 770년 서주(西周)가 망하고 나서 춘추전국시대에 진입하여 천자가 유명무실하게 제구실 하지 못하게 되자 천하의 중심국가가 역사무대에서 사라지고 따라서 중국이란 비공식적인 국호마저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모두 아시다시피 천하 대혼란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통일제국인 왕조 진에 이어 한, , , , , , 청으로 이어져왔고 국호도 이들 왕조의 이름에 따라 사용해왔던 것이다.

 

천하의 중심국가가 공식적으로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중원국가(中原國家)’라는 새로운 국가 개념의식이 대체하여 자리 잡아 왔다.

 

중국인과 중국어라는 낱말은 외국인이 부르는 명칭이다. 중국어는 중국어가 아니라 한어(漢語)이다.    

 

중원국가가 천하의 중심국가를 대체

 

중원이란 황하중하류지역이다. 이곳은 중국인의 발상지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대로 중원지역 주체민족인 한족(漢族)의 발상지이다. 역사 이래 이곳은 줄곧 살기 좋은 터전이었고, 문화의 메카였다. 그래서 중국인의 조상 황제(黃帝)’ 시대부터 중원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격언이 생겨났고 따라서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영웅들이 패권다툼을 벌였다.

 

중원이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여러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만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우월감을 갖고 주변 민족을 자기네보다 한 수 낮은 야만인간으로 취급해왔다.

 

자기네 동쪽에 살고 있는 제족(諸族)을 동이(東夷), 남쪽 사람을 남만(南蠻), 서쪽 사람을 서융(西戎), 북쪽 사람을 북적(北狄)이라 불렀는데 여기서 ’, ‘’, ‘’, ‘은 모두 오랑캐라는 뜻이다. 중원 국가가 주변 국가들과의 조공책봉 외교관계도 이런 맥락에 이뤄졌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야만인 취급해왔던 오랑캐들에게 역사적으로 많은 시달림을 받아왔으며 때로는 오랑캐가 중원에서 정권을 잡고 천하를 다스리고 소위 문명인으로 간주해왔던 한족관리들이 야만오랑캐 밑에서 일을 해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위진남북조시대, 원나라, 청나라 때가 바로 그랬다.

 

비록 여러 차례 오랑캐들의 지배를 받긴 했어도 중원국가의 영혼마저 상실했던 것은 아니다. 그 영혼이란 무엇일까? 그 영혼이 바로 수천 년 동안 한 곬으로 흘러온 중원문화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역사 포인트이다.

 

, 아무리 오랑캐들이 지배한 왕조이지만 그 오랑캐의 문화로 천하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중원문화로 다스려왔던 것이다. 원나라의 경우 쿠빌라이가 시작했던 신변에 가장 유명한 유교학자, 도교학자, 불교학자들을 스승으로 모셨고 그 이후 황제들도 모두 이 관례를 따랐다는 역사기재가 있다.

 

청나라 전성기를 이끌었던 강희 황제 때도 만주족 문자와 언어 사전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한문자전을 새로 편찬했는데 이것이 곧 강희자전(康熙字典)’이다. 강희자전(康熙字典)’은 지금까지도 줄곧 한문자전의 권위로 인정받고 있다.

 

황제(黃帝) 때부터 자랑스럽던 중원국가의 자부심이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위기를 맞게 되었다. 1840년 아편전쟁을 계기로 반봉건 반식민지사회로 전락되었다. 천하제일로 여겨왔던 제국이 힘 한 번 제대로 발휘해보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지게 생겼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자신들의 과거 중국적인정치제도, 경제시스템, 문화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역사에 의심을 품는 바람, 이른바 의고풍(擬古風)’을 일으켰던 것이다. 1898년 무술변법을 주도했던 강유위, 양계초, 담사동 등이 의고풍의 주인공들이며 그 후 노신, 진독수, 이대소 등이 바통을 이어받아 신문화운동을 일으켰다.

 

민주혁명의 선구자인 손문(孫文) 선생이 주도한 1911년 신해혁명에 의해 청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 이름이 화민국이다.   


중국이란 국호의 재등장

 

여기서 이러한 역사를 장황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이렇다. 청나라 말기 미국 개신교 목사를 비롯해 수많은 구미 지식인들이 동양에서 최대국가이자 문화가 가장 유구한 차이나(CHINA)’라는 제국에 대해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차이나는 도자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고 첫 왕조인 ()’의 발음에 의해 유래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후자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 제국의 지식인 당사자들이 구미 지식인들의 활발한 관심에 의해 반사적인 반응이 일어나 자신들도 자기네 역사에 관심을 크게 기울이고 따라서 서양에 자신들의 제국이 여차여차하게 문화적으로 우수하다는 것들을 알리려고 고민한 끝에 3천 년 전에 잠깐이나마 있었던 중국이라는 명함을 다시 끄집어내어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때부터 중국이란 국호가 자연스레 사용되었던 것이다. 민주혁명의 선구자인 손문(孫文) 선생이 주도한 1911년 신해혁명에 의해 청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 이름이 중화민국(중화민국의 원년은 1912년임)’이고, 좁쌀에 보총을 가진 오합지졸 군대로 비행기 대포로 중무장한 장개석 800만 정규군을 패배시킨 모택동이 1949101일 새로 세운 나라 이름이 중화인민공화국이고, 이 두 국호 약칭이 바로 중국이다.

 

▲  1949101일 새로 세운 나라 이름 중화인민공화국이고, 국호 약칭이 바로 중국이다  


한 가지 부연해서 설명할 것이 있다. 한국인은 단일민족, 단일국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나라와 조국 및 민족이 하나이다. 따라서 내국인도 그렇고 외국인도 마찬가지로 한국인, 한국어라고 말하는데 비해 중국의 경우는 복잡하다.

 

중국인과 중국어라는 낱말은 외국인이 부르는 명칭이지 중국 내에서는 중국인과 중국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족사람, 위글족사람, 조선사람(조선족) 등 이런 식으로 부른다. 중국어는 중국어가 아니라 한어(漢語)이다.

 

필자와 같은 조선족이 어릴 때 배운 중국어는 중국어가 아닌 한어(漢語)였다. 교재 타이틀(제목)이 바로 漢語였기 때문에 중국어라는 말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다른 54개 소수민족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나 일본의 국어에 해당되는 한족들이 배우는 교과서 타이틀(제목)어문(語文)’이지 중국어가 아니다. 가령 한족 앞에서 우리끼리 조선말을 하는 것을 못 마땅해 하거나 알아듣지 못하면 한어로 말하라.”라고 우리에게 닦달하지 중국어로 말하라.”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기회를 빌려 중요한 메시지 하나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 외국인으로서 중국에 가서 중국인과 빨리 친해지는 묘책이 하나 있다. 중국인과 대화 시 내가 중국어로 말할 줄 안다고 하지 말고 내가 한어로 말하려고 한다고 표현하면 상대가 기필코 마음의 탕개를 풀고 쉽게 다가설 것이다.

 

어설픈 한두 마디도 괜찮다. 게다가 한시 한두 수 외워 갖고 한어로 읊으면 금상첨화이다. 발음이 엉망이라도 상관없다. 중국어와 중국문화에 관심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높은 점수를 따낸 것이다.

 

김정룡 프로필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장춘대학교 일본어학부 전공

-연변제1교 일본어 교사 역임

-著書)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

<멋 맛 판> 2015

-著書)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

<천국의 그늘> 2015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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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10 [18:24]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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