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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1.21 [14:02]
‘모계에서 부계로의 이행시기’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4)-선사시대 문화코드(두번째)
 
김정룡 /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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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시대! 애민(愛民)만 있고 권력은 없어

가족처럼 백성에게 진정한 관심과 애정을

 

삼국사기에서 삼족오는 일언반구 언급없어

고구려의 지고신이라면 흔적이라도 있어야

 

▲  김정룡 /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모계씨족사회 모습

 

인류역사는 여성이 세상을 지배한 시간이 남성이 지배한 시간에 비해 비교가 안 될 만큼 훨씬 길었다. 하루 24시간에 비유하면 0시에서 출발하여 2359분까지 여성이 지배했고 나머지 1분 동안만 남성이 겨우 지배해왔다.

 

그 긴긴 세월동안 여성이 지배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꽃 피는 봄이었다. 이것은중화사저자 이중텐 교수의 평가다.

 

남녀가 뒤섞여 놀고 중매나 약혼도 없었으며 어머니가 누구인지만 알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섹스도 자유로웠고 선택권은 주로 여성에게 있었다. 여성은 심지어 원하기만 하면 동시에 여러 아주(阿注, 섹스 상대)를 가질 수 있었다.

 

여성의 유일한 횡포는 더 나은 섹스 상대의 선택이지만 어쨌든 그것도 종족의 보존이 목적이었으므로 탈락자에 대한 냉대나 소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물며 선택은 자유롭고 쌍방향적이었다. 강간도, 매음도, 감정적인 갈등도 없었다. 재산분규도 없었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부계시대는 부권제 사회이지만 모계시대는 모권제 사회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중텐 교수도 모계씨족은 비권력사회였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모계시대에는 관리만 있고 통치는 없었으며 또 애민(愛民)만 있고 권력은 없었다. 여성리더와 그녀의 조수들은 자식 같은 백성에게 진정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다. 내 가족처럼 대하라는 식의 캠페인도 없었다. 그 사회에서는 그것이 무척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인류학자 그로세는예술의 기원에서 원시시대 인류는 고등동물에서와 마찬가지로 노처녀가 없었다고 하였다. 여자는 최악의 경우 다른 자매와 한 남자를 공유할 있었으므로 성적인 상대를 구하지 못할 염려는 없었다.

 

반면에 남자는 운이 좋지 못하면 계속 허탕을 쳤다. 그런 까닭에 원시시대 남자들은 동물 중의 수컷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치장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물론 자기의 행동거지에 대해서는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여자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두 가지 방면에서 남성적인 매력을 발휘하려고 애썼다. 하나는 남보다 뛰어난 춤 솜씨를 갖추는 것이며 하나는 적의 목을 베어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는 바로 동물사회에서 가장 본능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앞의 것은 공작이 깃털을 병풍처럼 펼치는 것에 해당하고 뒤의 것은 수탉이 서로 싸우는 것에 해당한다. 하나는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한 것이고 하나는 용감함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관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심판은 바로 여자였던 것이다. 이렇듯 평화롭고 화기애애했던 모계씨족사회가 어떻게 남성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로 전환되었을까?

 

여성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해 와서 지쳤을까? 지쳐서 스스로 남성에게 상위 자리를 넘겨주었을까? 아니면 남자들이 여성들의 손에서 상위 자리를 강탈해 빼앗을까? 아니면 서로 평화적인 합의 하에 상하 자리가 바뀌게 되었을까?

 

중국문화는 생식숭배를 핵심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생식숭배문화사상의 저자 조국화(趙國華) 선생은 신석기시대에 한 차례 대홍수가 발생했는데 홍수를 대처하는데 있어서 남자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고 남자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모계는 부계로 이행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신화연구저자 오천명(吳天明) 선생은 모계가 부계로 넘어간 것은 평화적인 이행이 아니라 한 차례 큰 전쟁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쟁이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여러 학자들의 추측을 빌려 말했을 뿐이다.

 

중화사저자 이중텐 교수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은 농업생산의 발전에 따라 잉여재산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해 권력이 등장했고 따라서 그 권력행사는 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상위 자리를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 당시 어떤 일이 발생해서 모계가 부계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바뀐 것은 사실이다. 권력의 속성은 일단 얻기만 하면 천방백계로 지켜내려고 갖은 방법과 방식을 가리지 않고 총 동원하여 노력한다.

 

 


 

여성을 압박부계 확립

 

그 긴긴 세월을 지배했던 여성의 손에서 권력을 찬탈하고 나니 몹시 불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성을 압박하는 수단과 방법이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다. 그 수단과 방법이 무엇이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이 총 동원되었을 것이지만 가장 주요하고 효과적인 것이 바로 남자의 심벌로 여성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당시 남자의 심벌로서 일차적으로 뱀이 채택되었다.

 

부계씨족사회 선구자인 복희씨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뱀인 반신반인이었다. 웃기는 것은 개구리 화신인 여와를 복희씨와 누이동생으로 때로는 부부로 맺고 여와마저 반신반인 뱀의 인간으로 둔갑해버렸다는 것이다.

 

왜 많고 많은 동물 중에 하필이면 뱀이었을까? 뱀은 평상시 별 목적 없을 땐 움츠리고 있다가 일단 공격할 때엔 온몸을 빳빳하게 세우는 모습이 남근과 심통하게 닮았다. 뱀은 또 위협성이 강한 동물이다. 여러모로 남자와 닮아 있다. 남자의 심벌로 일차적으로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부계씨족사회 선구자인 복희씨를 뱀의 인간으로 둔갑시켰던 것이다.보독기(寶櫝記)제녀가 화서(華胥)의 못에서 뱀을 만나 회임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뱀을 남자의 상징으로 여겨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사시대 뱀을 남자의 심벌로 선택한 것은 중국뿐만 아니다. 여호와 하느님도 에덴동산에서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이브를 뱀을 불러내 유혹하게 만들었다.

 

성경창세기 편은 말이 창세기이지 실제로는 긴긴 모계사회를 생략해버린 허구의 역사이다. 하느님이 남자인 아담을 먼저 만들고 그의 갈비뼈로 여자인 이브를 만든 것은 선남후녀(先男后女), 또 뱀의 등장은 이미 남권을 알리는 부계사회를 반영한 좋은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선사시대 중국에서는 남자의 심벌인 뱀을 여성을 압박하는 첫 무기로 사용했고, 부족연맹시기 뱀을 부족 토템으로 삼았다가 후에는 뱀이 중화민족의 상징인 용으로 승화된다.

 

 


 

삼족오(三足烏)의 진실

 

고구려 군대가 삼족오(三足烏)깃발을 들고 기세등등하게 전진한다. 먼발치에서 삼족오 깃발을 본 한나라 군대는 그 기세에 눌려 오금이 풀리고 혼비백산한다. 드라마 <주몽>에 여러 차례 등장한 장면이다.

 

드라마 <주몽>이 방송된 이후로 한국사회는 삼족오 숭배에 빠져들었다. 삼족오는 고구려의 상징이었다느니, 고구려의 영혼이었다느니, 백의민족의 기상이었느니, 고구려 지고신이었다느니, 등등 온갖 수식어를 동원하여 삼족오 찬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민족 최고 사서인삼국사기에는 삼족오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조차 없다. 단군신화를 최초로 기재한 김일연의삼국유사는 어떨까? 역시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진수가 지은삼국지동이전에도 언급이 없다. 만약 삼족오가 고구려의 지고신이었다면 사서들에서 언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삼족오는 일부 학자들의 논문주제로 쓰이기도 하고 삼족오 관련 학술세미나도 개최하고 있다. 한국 00학자는 중국 삼족오에 대한 기록에 대해 학자답지 못하게 다음과 같은 억측을 쏟아내고 있다.

 

고구려가 멸망한 시기 이후에는 삼족오에 대한 기록은 사라졌다. 삼족오에 대한 기록은 북송에서 편찬한 백과사전이나 이후 통서류에도 자주 실렸지만 당나라 시대의 이전의 기록에서 다시 옮긴 기록일 뿐이고 이후의 출현이나 관심은 사라졌다고 하겠다. 당에서 적대관계의 고구려의 지고신인 삼족오를 혐오한 까닭이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삼족오의 진실은 무엇일까? 우선 인간이 새에 대한 숭배의 기원부터 살펴보자. 새는 외형상 볼 때 특히 목을 빼들었다 움츠러들 때 그 모양이 남근과 닮았다. 아울러 새가 알을 낳고 남근도 고환이 있다.

 

새가 남근을 상징하고 남자의 두 다리 사이에 남근이 끼어 있어 숫자 3이고 또 꼬리부위에 부분적으로 두드려져 나온 것이 남근을 상징한다고 보고 삼족으로 그리고 또한 남근은 하나의 음경과 두 개의 알로 이뤄져 있어 숫자 3으로 강조하게 되었던 것에서 삼족오가 유래되었다.” 조국화 선생이생식숭배문화사상에서 언급한 대목이다.

 

새는 본래 다리가 두 개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위와 같이 새에 다리를 하나 더 추가하여 삼족오를 만들었을까? 다시 말해서 왜 남근을 상징하는 세 번째 다리를 강조하여 삼족오를 만들어냈을까?

 

답은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선사시대 채도(彩陶)에 이족오 그림이 먼저이고 삼족오 그림이 후에 나타난다. 다리가 두 개인 이족오는 모계시대를, 다리가 세 개인 삼족오는 부계시대의 진입을 의미한다. 이것이 삼족오의 진실이다. 이외의 모든 주장은 전부 억측이고 낭설이다.

 

새에 대한 숭배는 태양숭배와 어우러져 왔다. 모계씨족사회 후기에 원시농경이 발달하였다. 봄에 파종하고 가을에 수확하는데 있어서 선민들은 기후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에 주의를 돌리고 그들은 춘추가 오가고 추위와 더위가 교차하는 데 태양이 역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양이 창공에서 날아예고 조류도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상을 관찰하고 새가 태양을 지고 날아다닌다고 인식하였던 것이다.

 

정리하여 말하자면 남자의 심벌로서 일차적으로 뱀이 선택되었고, 이차적으로 새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새의 숭배는 태양숭배와 어우러져 부계시대를 알리는 종소리가 바로 삼족오의 등장이었다.

 

이외 선사시대 남자의 심벌이 수두룩하게 많았다. 모계시대에는 집단과 집단 사이 경계를 알리는 징표로서 도랑을 팠다면 부계시대에 들어서 말뚝으로 경계를 알려왔다.

 

동굴은 여성의 자궁을, 지상의 가옥은 남자의 심벌이다. 삼각형을 거꾸로 놓으면 여자를, 바로 놓으면 남자를 상징한다. 일각에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부계시대 확립을 알리는 남자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황제(黃帝)가 발명했다는 깃발도 남자의 심벌이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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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03 [15:29]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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