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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1.21 [14:02]
‘유일신 사상’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대립
<특집> 유대교와 기독교! 근본적 차이점은?
 
소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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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 현재까지 예수가 메시아란 존재 거부

유대인 유일신론기독교 삼위일체 절대 배격

 

유대교는 기독교의 원죄·대속죄 단호하게 부정

유대인 증오심 가톨릭 개신교 극심 탄압 기인

 

루터 유대인 박해 히틀러의 인종청소 논리제공

예수 영접한 메시아닉쥬이스라엘 증가 추세

 

 

유대교가 가장 기독교를 싫어하거나 이단적으로 보는 대표적인 이유는 삼위일체(三位一體) 교리이다. 유대교에서 삼위는 삼신(三神)을 의미하니 이는 우상이라는 것이다.   

 

 

삼위일체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유대교

 

유대인들은 2,000년 동안 유대인은 예수가 메시아란 존재를 거부해왔다. 유대인이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기독교는 잘못되었다고 배운다.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욕되게 했으며, 사람들을 미혹시킨 악한 선지자 가운데 하나였다고 배운다.

 

유대교가 가장 기독교를 싫어하거나 이단적으로 보는 대표적인 이유는 삼위일체(三位一體) 교리이다. 유대교에서 삼위는 삼신(三神)을 의미하니 이는 우상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삼위일체의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배경에는 유일신관이 유대인들의 절대적 시각을 지배하고 있다. 유일신론은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이외에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독교의 뿌리가 결국은 유대교인데,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은 단지 예수라 부르지, ‘예수 그리스도라 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메시아(하나님)로 신앙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존재와 위격이 하나님과 같은 본성이라는 교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기독교는 삼위가 일체라 믿으며,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이 각각 하나님이심을 핵심교리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성부도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이고, 위격에 있어서는 셋인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예수를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라고 믿는 굳건한 신앙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존재한다. 구약성경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되었으나,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가 분명히 밝혀진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각각이 동등한 위격이기에 가능하다. 예수님은 원래 독생자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신 것이다.

 

5세기에 이르러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삼위일체론에 대해 최종 매듭을 지었다. 이것을 결정적으로 집약한 바이블 철칙이 아타나슈스신조(the Athanasian Creed) 이다. 


5세기에 이르러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삼위일체론에 대해 최종 매듭을 지었다. “야훼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하나님, 성령의 하나님이다. 또한 이 세 하나님은 세 하나님으로 계신 것이 아니라 일체의 하나님으로 계신다.”고 정의했다.

 

이것을 결정적으로 집약한 바이블 철칙이 아타나슈스신조(the Athanasian Creed) 이다. 이 신조는 총44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25-28조가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삼위일체 세 분은 시간적으로 선후가 없고 능력적으로 강약이 없다(25), 세 분은 함께 영원적이고 동등하며(26), 삼위일체적으로 하나이시고, 삼위일체적으로 셋으로 계신다.(27)

 

유대인의 믿음은 원죄에 대한 기독교인의  "모든 사람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지시에 불순종했을 때 그들의 죄를 물려받았다."(창세기 3)는 믿음을 단호히 거부한다.



 

원죄·대속죄 부정하는 유대교

 

유대교나 기독교 모두 사후 세계의 실존과 하나님에 의한 심판을 가르친다. 하지만 유대교와 기독교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 완전히 다른 이해를 갖고 있다.

 

유대인의 믿음은 원죄에 대한 기독교인의 모든 사람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지시에 불순종했을 때 그들의 죄를 물려받았다.”(창세기 3)는 믿음을 단호히 거부한다.

 

따라서 죄의 근원과 죄에 대한 해결책이 다르다. 유대교의 하나님은 인류에게 선을 향하는 성향과 악을 향하는 성향 사이에서 선택할 자유의지를 주셨다. 유대인 신자들은 미츠바(mitzvoth, 하나님의 명령들)를 성취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 구원자가 필요 없고 또한 중보자도 필요 없다.

 

유대교인들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위해 죽고 구원할 것이라는 점, 기독교인들이 고수하고 있는 자신들의 죄의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중보개념과 대속개념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 관점은 시내산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계시와 모세오경인 토라,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 의해 형성된다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 관점은 시내산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계시와 모세오경인 토라,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 의해 형성된다. 이 때문에 삼위일체의 성자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면, 이는 우상을 경배하지 말라는 말씀을 범하는 것이다.

 

율법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잠깐의 가정교사였으며 이후 그로 인해 성취됐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논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들에게 구별된 삶,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위한 영원한 안내자로 주신 토라의 다음 말씀에 위배된다.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징과 훈계가 되리라”(신명기 28:46)

 

유대교는 기도, 회개, 선행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확보한다고 가르친다. 죄를 구속하기 위해 예수님의 피가 짐승의 제사 피를 대체했다고 가르치는 기독교는 유대교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심각한 문제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사함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라는 논거를 들이댄다.

 

또한 유대교는 메시아에 대한 신앙이 앞으로 오는 세상에 대한 구원과 상응한다고 믿지 않는다. 유대교인들은 메시아를 믿는 것과 구원이 연관된다고 말하거나 암시하는 하나의 구절을 구약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에 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만 구원된다고 믿으며, 토라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명기 10:1213)

 

유대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들어 유대교를 변론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시편 19:7)

 

이렇듯, 토라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이나 계명은 영원불변하다고 유대인은 믿는다. 사회적 환경이나 조건 등은 변화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고수한다.

 

유대교의 전통적 신앙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함축된다.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몸이 없는 무형의 존재이시며, 그분만이 우주의 절대 통치자로서 숭배를 받아야 한다.

 

예수는 폭풍으로 휘몰아치는 갈릴리 바다의 바람과 물결을 잠잠하게 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마가복음 4:41) 하며 경외감을 나타냈다. 

 

예수 사역! 실체가 하나님이어야만 가능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비밀을 간직한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2,000년 전 팔레스타인의 작은 마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마구간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예수였다. 예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살았고, 그 후 3년 동안 공생애 사역을 했다.

 

예수는 자신에 대해 경천동지의 언어로서 선언한다. 예수는 자신을 비범한 선생이나 선지자를 넘어선 존재임을 분명히 했다.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는다. 제자인 베드로가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5)

 

성경은 유대 사람들은 이 말씀 때문에 더욱더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불러서,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셨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요한복음 5:18)

 

예수의 죽음을 목도한 다수는 한결같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언했다.   


최종적으로 예수의 죽음을 목도한 다수는 한결같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언했다
.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마태복음 27:54)

 

예수는 자연의 힘을 초월한 능력을 드러냈다. 창조자인 하나님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을 보인 것이다. 예수는 폭풍으로 휘몰아치는 갈릴리 바다의 바람과 물결을 잠잠하게 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마가복음 4:41) 하며 경외감을 나타냈다.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고, 오천 명을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배불리 먹였다. 외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었고, 소망이 산산이 붕괴된 아버지의 죽은 딸을 살려주었다. 또한 나사로야 일어나라라는 말씀으로 극적으로 그를 죽음에서 소생시켰다.(4복음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의 대적들이 이러한 기적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에 대한 소문이 더 퍼지는 것이 두려워 예수를 죽이려고만 했다. 그들은 만일 우리가 이 사람이 하는 대로 계속 내버려 둔다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다.”라고 말했다.(요한복음 11:48)

 

예수는 소망이 산산이 붕괴된 아버지의 죽은 딸을 살려주었다.  


예수는 질병과 아픔을 초월한 능력을 드러냈다
. 예수는 절름발이를 걷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장님을 보게 했다. 예수의 치유는 선천적인 질병의 문제를 치유한 것이다. 가장 백미는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장님의 경우이다. 그 사람은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라고 선언했다.(요한복음 9:25)

 

예수의 신성을 확증하는 최고의 증거는 예수의 부활이다. 예수는 자신이 죽을 것을 다섯 번이나 예언했다. 또한,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 그리고 3일 후에 부활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날 것을 예언했다. 기독교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모두 예수의 부활이 믿음의 근본인 것을 인정한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고린도전서 15:14) 이라고 기록한다.

 

 

유대인의 증오심 가톨릭 개신교의 대탄압

 

유대인들의 예수에 대한 신앙은 상당히 다양하다. 혹자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 선생으로 간주한다. 다른 이들은 기독교가 떠받드는 예수를 가짜 메시아로 보고 있기에 그리스도교의 우상 숭배 대상으로 간주한다. 유대교의 일부 종파는 우상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핵심은 예수는 유대인들이 저주하는 3대 인물 중 하나이다. 유대인들이 저주하는 3대 인물 중 나머지 두 인물은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게 한 교황, 그리고 종교개혁 때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유대인을 이용하려 한 루터다.

 

유대인들은 루터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 확증한다    

 

기독교와 유대인들은 성경 중 구약(舊約)을 공유(公有)하고 있지만 예수의 정통성 문제로 해서 숙적이 되고 말았다. 중세의 기나긴 암흑시대에 유대인들은 추방과 개종(改宗), 고문과 죽음의 문턱을 강요받았다.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던 곳은 기독교 세계였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죽인 민족의 후예들을 죽이는 것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은커녕 기독교인의 의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과거 가톨릭 영향권에 있었던 유럽 각 민족들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민족이라 하여 온갖 멸시와 천대와 조롱과 박해와 핍박을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한 데서 나온 엄청난 비극이었다.

 

교회가 이슬람 이교도들로부터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을 때, 무슬림들뿐 아니라 유럽의 유대인들도 공격 목표로 삼아서 무수한 유대인들을 살해했다. 십자군 전쟁 때 수많은 유대인이 죽음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십자 표시 사용을 금기시한다.

 

적십자의 상징에도 다윗의 별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덧셈에는 ‘+’가 아닌 를 사용하고, 숫자 4를 적을 때도 십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수직선을 지나지 않게 쓴 것을 사용한다.

 

종교개혁의 주창자 마틴 루터도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심에서는 구교(舊敎)와 다름이 없었다. 루터는 유대 랍비들이 탈무드를 가르칠 때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 “군주들에게 사탄 같은 유대인들을 없앨 수 있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유대인들은 루터가 반유대주의의 원인을 제공하였으며, 종교개혁 초기 유대인을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만들고자 예수도 유대인이었다.”는 글을 썼지만 후에 비협조적인 유대인을 겨냥해 유대인 말살 방법의 논문을 통해 회당과 랍비를 없애고 탈무드 등의 문헌 소각을 충동질했다는 것이다.

 

과거 가톨릭 영향권에 있었던 유럽 각 민족들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민족이라 하여 온갖 멸시와 천대와 조롱과 박해와 핍박을 했다.   


 

미국의 유대인 학자인 다니엘 골드하겐(Daniel Goldhagen)은 유대인 학살을 독일 나치시대로만 국한해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유대인 학자인 다니엘 골드하겐’(Daniel Goldhagen)은 유대인 학살을 독일 나치시대로만 국한해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라고 주장한다. 독일 나치시대 이전에도 유대인 증오가 존재해 왔고, 각 시대의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유대인 박해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느 땐 억제된 것일 뿐 연속적으로 현존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골드하겐에 따르면, 십자군전쟁과 함께 시작된 유대인에 대한 탄압과 배척은 종교적인 것으로 기독교사회인 유럽에선 유대인을 악마와 거의 동일시 해 왔다. 유대인들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혐오와 증오의 근원은 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인 메시아에 대한 거부와 더 나아가 예수의 죽음을 유대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독실한 기독교인들에겐 이것이 유대인들을 증오할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중세시대 기독교인들에게 유대인 증오는 오히려 당연시 여겨졌고, 극단적인 유대인 탄압의 역사는 중세 유럽에서 기독교 독트린과 함께 구체적으로 표면화 된다. 예로 들면, 1096년 첫 십자군 전쟁, 1290년 영국의 유대인 추방, 스페인의 이단자 처단과 1492년 유대인 추방, 1497년 포르투갈에서의 유대인 추방, 1894년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 그리고 20세기 나치독일(1933-1945)의 유대인 대학살로 이어진다.

 

이러한 기독교의 반유대주의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추겼다. 유대인들은 루터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 확증한다. 1만 정도의 히틀러 친위대가 600만 유대인 학살할 수 있었던 것은 구·신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며 홀로코스트를 기독교 안의 반유대주의로 인한 결실이라고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기독교의 반유대주의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추겼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에 대한 교회의 증오심을 부추겼고, 개신교나 가톨릭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교회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동조했다. 나치가 유대인 숙청 작전을 수행할 때,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 학살이 무자비하게 자행된 것은 교회의 유대인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이 수면 위로 급부상한 결과였다.

 

독일의 신·구교뿐만 아니라 국민들 모두 유대인 탄압에 협조했다고 골드하겐 교수는 주장했다. 골드하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6백만의 유태인들을 죽이는 데 소수의 나치분자들만이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보통 독일인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독일 사회에서 오랫동안 전해오던 반()유태인 전통에 물들어 있던 독일인들은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유태인 도살(屠殺)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점점 예수가 메시아임을 인정하고 있다.

 

유대인의 시련은 고난의 초림 예수영광의 재림 예수의 순서가 뒤바뀐 결과였다.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이사야 6:10)

 

로마제국의 압제 하에 신음하던 유대인들이 상상하는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어줄 명예롭고 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였다.그러나 예수님은 말 대신 나귀를 타시고 창과 칼은 아예 갖고 계시지도 않았고 힘 대신 사랑을, 통제 대신 자유를, 전쟁 대신 평화를, 명예 대신 자기 겸손을 택하셨다. 이는 고난의 초림 예수영광의 재림 예수의 순서가 뒤바뀐 결과였다.

 

전통적으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설교하신 분으로 묘사되고 있기에 일반 유대인들은 기독교 복음을 위협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에서는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숫자가 계속하여 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는 17000여명의 메시아닉 유대인’(Messianic Jew)을 포함해 12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이 거주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8,000여명의 기독교인이 있다.

 

랍비적인 유대 신앙은 예수를 믿는 유대인을 다른 종교를 위해 유대 신앙을 버린 죄인으로 여기고 있다  


유대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예수와 함께 할 것인가
? 이것은 예수를 믿는 이스라엘 사람의 많은 동료 유대인들은 공동체에 대한 손실로 애통해 한다. 랍비적인 유대 신앙은 예수를 믿는 유대인을 다른 종교를 위해 유대 신앙을 버린 죄인으로 여기고 있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고충과 애로는 단번에 현실에서 드러난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동포들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신앙을 가족에게 설명한 메시아닉 유대인은 유대인 세계 밖에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이들의 생각은 거의 거부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예수와 유대 신앙이 서로 조화될 수 없다는 생각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을 배운다.

 

이들은 유대인을 박해했던 유럽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에 기독교가 아니라 오직 예수에만 집중해서 복음을 전한다. 이스라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교회의 교리나 현대 기독교 신학에 의존하지 않고도 유대신앙과 성경 자체를 통해 유대인의 용어로 예수가 진정 누구인지 전파할 수 있는 방책에 지혜를 갈급하고 있다.

 

요셉의 형들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알아보지 못한 것과 유대인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애굽 총리인 요셉에게서는 유대인 요셉의 본질을 찾을 수 없었다.(창세기 3747) 마찬가지로 이방화 된 예수로 간주하기에 아직은 본체의 실상에 접근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속이고 속는 것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당사자가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면서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속이는 경우이다. 또 하나는 스스로에게 그러한 인식이 전혀 없는 가운데 그 삶이 결과적으로 속이는 것이 되는 경우이다. 응당 유대인들은 후자에 해당한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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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04 [01:21]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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