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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1.21 [15:02]
"아스라히 잦아드는 산중턱 오솔길에"
(POET VIEW) 林 森 '가을산 연가'
 
림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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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연가'

 

 

 

 

 



 

 

 

 林  森

 

 

음산한 산주름 주르륵 박혀진 비탈

풋풋한 내음으로 피어난 야생화,

촘촘하니 들어선 야트막 황토밭

주먹돌 능선 밑 넓은 들녘 한가운데

 

 

반추하며 서있던 암소 한마리

유들유들한 넉살로 눈시울 흡떠보이는데

왼들짝 맞은편 괴괴한 정적속에서

기박한 자궁에 봄볕 아지랑이 들듯

엉덩이 살랑대며 에움길 돌아나오는

바람난 아낙네

 

 

가볍게 즈려밟는 발걸음에

야생화 꽃잎들 잘게 부서져나가고,

짚풀로 얽혀 엮어 옹골찬 동구미에는

주렁다발 대추알

훑어담아 쌓은 정분

 

 

품앗이 벌충하느라 땀흘리는 낭군 좇아

바위계곡 슬쩍 숨어

빠알간 떨림으로 익어가는데

 

 

살피듬 불끈 솟아 영각켜는 울부짖음

제 짝 찾아 부르던 황소

그악스런 악다구니조차

아스라히 잦아드는 산중턱 오솔길에

들릴락말락 살여울 소리

애잔한 외로움 덮으며 맞장구치고 섰네

 

 

 

詩作 note

흔히들 가을은 사랑이나 연가(戀歌)보다는 이별과 애가(哀歌)가 어울리는 계절이라고 여긴다. 미래에 대한 환상 보다는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적당하고, 피어나는 들꽃 보다는 떨어지는 낙엽을 연상케 하는 절기에 적절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화창하고 따스한 양지녘의 햇살이 아닌, 웬지 적막하고 쓸쓸한 비탈길의 바람이 어울린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가을에는 헤어짐의 노래를 부르고, 그리움의 시를 쓰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짓는다. 그렇게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가을은 뒹구는 가을로 영근다.

 

그래서 가을은 시끄럽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며 자유분망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가을은 가을이라는 제목 아래 속박되어 있으며 고요한 달밤에 소박한 담채색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그래서 가을은 가을답게 스산하다. 가을은 가을스럽게 고즈넉하다. 그리고 가을은 가을이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으로 보듬는다. 짧은 가을에 우리는 늘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는 이내 급히 가을과 함께 저물어간다. 다시 올 가을을 기다리며 우리의 가을은 먼 훗날을 기약한다. 가을에 맺어진 사랑은 그렇게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한 기억으로 붙박힌다.

 

가을이 왔다. 가을이다. 가을을 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형형색색의 산야가 조금씩 단조로운 갈색으로 변모해가는 자연의 분장술에 화들짝 놀라며 우리의 가을은 지금 한참 여물었다. 각자의 애틋한 사연과 살떨리는 이야기들을 소담스레 모아쥔 가을의 손아귀에 우리의 명줄이 온통 잡혀있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을은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우리네 일상을 쥐락펴락 하면서, 뭇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면서, 파노라마같은 하루들을 쫙 펼쳐놓고 서있다. 능청스런 가을의 몸짓에 우리는 깜빡 속아서, 가을의 다감한 이 얼굴이 행여 우리를 배신할 리는 없다고, 언제나 곁에 머무를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지난 해에도 그 전 해에도, 아주 오래 전부터 가을은 우리를 배신하곤 도망을 일삼던 배신자다. 속임수에 통달한 전과자다. 너른 품으로 우리를 안아줄 것같은 모션을 취하다가는 순식간에 외면하고 제 갈 길로 가버리는 매몰찬 인정머리를 지니고 있는 차가운 품성의 녀석이다. 그걸 잊지 말자. 망각하면 안 된다. 혹여 올 가을만이라도 길게 곁을 주리라고 예감하고 있었다면 아서라! 가을은 애저녁에 우리의 것이 아니니, 먼 나라의 다른 가을바라기들을 위해 흘려보내주는 아량으로, 미덕으로, 잠깐 동안의 가을을 살면 되는 것이다. 아주 착하게, 선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허락된 가을을 살면 그 뿐이다. 그러면 된다.

 

그렇다면 대관절 계절에 따라서 안성맞춤의 사랑법이라는 건 따로 있는 것일까? 가을에 어울리는 사랑이라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특별히 쿨하게, 시크하게, 아니면 아주 별쭝나게 요란스레 하는 가을사랑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그럴 리가 없다. 사랑은 언제나 변함없는 최고의 마음 씀씀이다. 사람이 베풀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마음의 아량이 바로 사랑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계절에 따라서, 혹은 시기가 달라짐에 따라서 그 모양새가 달라질 수는 없다. 살아가면서 나눌 수 있는 최고로 존귀하고 고절한 마음의 쌓아올림이 사랑이니까 말이다.

 

미국의 한 가정집에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피자 배달 왔습니다.” 새벽 2시였다. 페퍼로니 피자와 버섯 피자를 받아든 리치 모건과 아내 줄리 모건은 믿을 수가 없었다. 늦은 시간은 문제가 아니었다. 피자를 배달한 스티브스 피자가게가 있는 배틀 크릭지역은 무려 362km나 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틀 크릭 지역은 모건 부부가 25년 전 신혼생활을 보낸 곳이었다. 젊고 행복했지만 가난한 그 시절, 모건 부부는 주급을 받는 날 사서 먹던 스티브스 피자 가게의 맛을 평생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 줄리 모건에게 말기 암이라는 불행이 찾아왔고, 생이 다하기 전 젊은 시절의 즐거운 추억을 찾아가 다시 맛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 직전 줄리의 상태가 악화하여 부부의 추억 여행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362km나 떨어진 피자가게에서, 모건 부부가 특히 좋아하던 피자 두 판이 3시간 30분을 달려와 배달되었다. 줄리 모건의 아버지가 이들의 사연을 전화로 전하자 두말 없이 달려온 것이다.

 

전화로 사연을 듣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어요. 오히려 이런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뜻밖의 추억이 가득한 피자 두 판을 받은 모건 부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랑의 위대한 점 중의 하나는 사랑은 어느 그릇에도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냥한 말 한 마디에 담아 전할 수도 있고, 마음 실은 친절한 손짓에 담아 전할 수도 있고, 피자 상자에 담아 전할 수도 있다. 그 어느 곳에 담겨 있든 사랑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아름답다. 얼마나 많이 주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담느냐가 중요하다.

 

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이 땅에 도래한 살아있는 지옥이었다. 정신의학박사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생존자들과 함께 그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살아남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다. “사랑하는 아내의 손에 마음을 집중했다. 꼭 다시 만나 아내의 손을 한 번 더 잡아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지옥 같은 순간순간을 버텨내게 했고, 결국 살아남았다.”

 

빅터 프랭클 박사에게 아내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는 또 다른 예화가 있다. 어느 날 아내의 죽음으로 상실과 우울증에 빠진 한 노인이 찾아왔다. 프랭클 박사는 노인에게 물었다. “만일 선생님이 먼저 돌아가셔서 선생님의 아내가 혼자 남아 있다면 어땠을까요?” 노인은 펄쩍 뛰며 말했다. “안될 말이요. 내가 겪는 이 끔찍한 절망을 사랑하는 내 아내가 겪게 할 수는 없소.” 빅터 프랭클 박사는 조용히 말했다. “지금 선생님이 겪고 있는 고통은 아내가 받았을지도 모를 아픔을 대신한 것입니다.”

 

노인은 프랭클 박사의 손을 꼭 잡은 후 평안한 얼굴로 돌아갔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 아껴주고, 헌신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도와주고, 보살펴 주자. 어쩌면 지금 당신은 그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더 큰 행복과 사랑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주를 단 한 사람으로 축소하고, 한 사람을 신으로 확대하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하물며 지금이 바로 사랑하기 딱 좋은 계절 가을이 아닌가? 사랑 한 자락 못해본 순간에 가을이 후다닥 지나쳐버린다면 그 상실감은 어찌할 건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 아닌가?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낮에는 식당, 밤에는 술집을 운영하는 가게가 있었다. 어느 날부터 가게의 손님이 점점 줄어들어 운영 자체가 위험해질 지경이 되었다. 사장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손님을 모을 수 있을까?’ 사장은 고민 끝에 특별한 서비스를 하기로 했다. 다음 날 저녁 가게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었다. ‘오늘 여기서 술을 마신 손님에게는, 다음날 점심 식사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그러자 손님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공짜 점심을 먹는 사람들은 가게가 망하지는 않을까 걱정해 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하지만 그 걱정은 쓸 데없는 것이었다. 사장은 술값과 다른 비용들을 조금씩 올려서, 손님들에게 이미 점심 식사 비용을 포함하게 되었고, 손님들은 마치 점심 식사를 공짜로 먹는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술만 마시고 다음 날 점심을 먹으러 오지 않는 손님들도 있었으니 사장 입장에서는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경제학자들이 기회비용 원리를 적용하면 강가의 조약돌을 줍는 일도 공짜가 아니라고 한다.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을 시간을 조약돌을 줍는 데 대가로 소모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금 당장은 공짜인 것 같지만 결국은 알게 모르게 그 대가를 지급하는 상황은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대가가 오고 가는 거래나 인과관계에 의해서 맺어지는 인연이라면 당연히 그에 상응한 반대급부가 전제 조건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한정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사랑이라면 그에 반한 어떤 가치나 필요성이 대두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냥 주고자 하는 마음이 우러나온다면 주고 난 행위 다음에 받게 되는 기쁨이나 만족이 훨씬 많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요는 주고받음이 아니라 끝없이 주는 것이다.

 

어떤 상담자의 고백이다. - 아내와 연애를 할 때는 편하게 말을 하다가 결혼을 계기로 서로 존댓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부가 되어 평생을 함께할 사이가 되었으니 서로를 좀 더 아끼고 공경하자는 의미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낯 간지럽고, 주변에서 팔불출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의견 다툼도, 존댓말로는 차분하게 조정할 수 있고, 서로 존중해 주는 느낌에 다른 집보다는 상당히 화목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주변에서 놀리던 사람들도 이제는 보기 좋다라고 칭찬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5살인 우리 딸 예솔이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딸이 주방의 아내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예솔 엄마. 나 물 좀 갖다 줘.”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아직 어린 내 딸이 엄마에게 어떻게 이런 고압적인 말투를 사용하는 걸까? 고민은 길지 않았습니다. 예솔이는 제 말투를 흉내 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결혼 생활이 길어지고,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와 생활에 지치고, 이런저런 핑계로 저는 어느새 아내에게 반말하고 있었고, 존중을 잃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부터 말이 바뀌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아내에게 다시 존댓말을 쓰고 있습니다. 딸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제 아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하고 예쁘고 존대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 익숙함은 안락함과 편안함을 주기도 하지만 그 익숙함에 지나치게 빠지면 자칫 소홀함에 빠지는 실수도 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다 소중하기에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내가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할 줄 알아야 자기 자신도 존중받을 수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해 주자.

 

사랑할 적엔 누구나 바보가 된다고 한다. 사랑하면은 그 사람 밖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 할 적엔 누구나 장님이 된다고 한다. 그 사람 외에는 아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할 적엔 누구나 귀머거리가 된다고 한다. 그 사람 목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할 적엔 누구나 벙어리가 된다고 한다. 그 사람 이야기만 들어도 너무 좋아서 말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할 적엔 누구나 꽃이 된다고 한다. 그것도 노란 해바라기가, 언제나 그 사람만 바라보다 해가 지기 때문에 해바라기란다.

 

사랑할 적엔 누구나 물망초가 된다고 한다. 언제나 날 잊지 말아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할 적엔 누구나 시인도 된다고 한다. 언제나 가슴 속에 아름다운 사연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랑할 적엔 누구나 욕심쟁이가 된다고 한다. 단 한 사람, 그 사람을 소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할 적엔 누구나 울보가 된다고 한다. 그 사람을 그리다가 허무함에 눈물로 하얗게 밤을 새우는 날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랑할 적엔 누구나 나그네가 된다고 한다. 그 사람을 찾아서 어디든지 가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의 삶이 힘들다는 생각은 누구나 갖는 마음의 짐이다. 욕심을 제하면 늘 행복함을 알면서도 선뜻 버리지 못함은, 삶의 힘듬 보다는 내면의 욕망이 자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들림이 없어야 할 지경에도 버림의 지혜를 깨우치지 못하는 것은, 살아온 것에 대한 아쉬움과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초조함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태해진 지성과 길들여진 관능을 조금씩 조금씩 버리고 아름다움과 너그러움으로 채워가는 참다운 지혜는 바로 마음을 비우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이 바로 가을 사랑법의 정도가 아닐까?

 

사람을 두루 널리 아끼고 사랑하는 것, 미움을 배제하고 모두에게 넓은 마음을 열어 보여주는 것, 가을의 낭만과 감성을 모두와 더불어 공유하면서 계절의 행복을 나누는 것, 이런 사랑을 속삭이면서 나이 먹어 간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멋진 휘파람이 날 만큼 신나는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선하고 착한 마음으로 살면서 누구라도 두고보지는 말자. ‘얼마나 잘사나 두고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보면 볼수록 아픔만 커질 뿐이다. 두고보면 잘사는 것만 보인다. 지금까지 그를 통해 얻은 아픔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이제 그를 그만 보고, 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사람도 조금 있으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불쌍한 존재이니까 말이다. 살아 있는 동안 아픔만 새기지 말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하고, 즐거운 일들을 추억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다. 죽음 앞에 이르면 모든 사람은 벌거벗은 채 빈 손의 불쌍한 인생일 뿐이다. 우리의 남은 인생을 미움과 탄식으로 채울 수는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이 죽음을 향해 가는 인생일 뿐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모든 사람을 향해 좀더 넓은 마음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그는 바보를 천재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고, 고장난 세상을 고치는 기술자다. 우리가 남들보다 조금 더 사랑할 줄 안다면, 우리는 모든 곳에서 환영받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사랑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바로 사랑의 계절인 이 가을의 주연배우이고, 많은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 이 세상의 참된 주인공이다.

 

살다보면, 가끔 너 때문이다.’라는 말을 한다. “너 때문이다!” 어떤 원망이 묻어있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조심조심 생의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어느 한 순간 갑작스레 가 보인다. “첨벙!” 캄캄한 하늘에 빠진다. 앞을 헤아릴 수 없는 안개 같은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음의 헛디딤, 그건 너 때문이 아닌 나 때문인데, 아니면 너가 있음으로 인한 나의 아름다운 헛디딤, 너라는 존재가 사람이 되었든, 일이 되었든, 물질이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너 때문에 내 삶이 아프고 외롭고 힘들지만, 너 때문에 내 삶이 기쁨과 소망이 되기도 하고, 너 때문에 내 삶이 온유와 인내와 절제를 얻는데, 너 때문에 내 삶이 유익하고 보람을 찾기도 하는데, 너 때문이다 라고 쉴 새 없이 누군가를 향하여 마음 아픈 원망만 하고 있을 건가? 그렇다면 오늘은 이런, 행복한 원망을 해보는 건 어떨까? “네 덕분이야!”

 

속절없이 이 가을이 달려가고 있다. 이제 머잖아 오늘을 그리워하면서 가을 추억에 삼삼히 젖을 날 곧 올 게다. 기왕이면 그리움을 담아둘 수 있는 마음 주머니가 있었음 좋겠다. 미움 덩어리를 담아둘 수 있는 마음 주머니 하나 있었음 좋겠다. 끝없는 원망으로 하여 끓어오르는 불씨를 가두어둘 수 있는 마음 주머니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님의 얼굴도, 들어도, 또 듣고 싶은 님의 목소리도 담아둘 수 있었음 좋겠다.

 

먼 훗날, 마음 주머니 조용히 꺼내어 헤쳐 풀어보며 냉가슴 봄 눈 녹듯 스르르 녹아 내릴 때 그때는 말할 수 있으리. 모두가 사랑이었다고, 참으로 열심히 사랑하며 살았노라고, 참으로 사랑을 담아둘 수 있는 마음 주머니가 있었음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간직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담아 넣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정말 작은 주머니 속에 소중히 담아 오래오래 간직하고 보관하고 싶어진다.

 

아픈 것도 아름다운 것도 모두가 가슴에 남는 추억이기 때문이다. 가끔 그립고 보고플 때 하나씩 꺼내어 자신을 뒤돌아보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지나온 세월 만큼 간직되는 보석이 되지 않을까 싶다. 흐린 날은 고요히 가라앉은 노래에 귀 기울이고, 비가 오는 날은 세상이 맑게 젖은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햇살 따스한 날은 눈부시게 빛나는 가을의 단풍잎의 향기에 취한다. 우리 사는 모든 날엔 바람이 불지만, 그 바람 끝에는 흐린 날과 맑은 비와 따스한 햇살의 향기가 골고루 담겨 있다.

 

늘 똑같지 않은 날에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 앞에 놓인 시름과 근심과 역경도, 지난 뒤엔 한 줄 그리움 되어 남게 된다. 모든 날은 아름답고, 모든 날은 그립고, 모든 날은 그래서 감사하다. 어두움 뒤의 밝음은 어두움이 있기에 더욱 그 밝음이 빛나고, 고난의 끝에 만나는 행복은 그 고난이 힘겨울수록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내게 주어진 힘겨움이 비 개인 후 신비롭게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사랑하는 그 님과 나, 우리에게 주어질 행복을 위한 서곡이라 생각하며 기꺼운 마음으로 극복해 내었으면 하고 바라는 하루다. 문득 가을비 오고 쌀쌀한 날씨, 이렇게 가을이 하많은 사연을 익혀가면서 아주 천천히 갈무리 되어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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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08 [02:36]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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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별곡 18/11/08 [10:14] 수정 삭제  
  가을의 운치가 흠뻑 묻어나는 시로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홀로코스트 18/11/08 [20:46] 수정 삭제  
  가을이 왔다. 가을이다. 가을을 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형형색색의 산야가 조금씩 단조로운 갈색으로 변모해가는 자연의 분장술에 화들짝 놀라며 우리의 가을은 지금 한참 여물었다. 각자의 애틋한 사연과 살떨리는 이야기들을 소담스레 모아쥔 가을의 손아귀에 우리의 명줄이 온통 잡혀있음이다.
산울림 18/11/11 [18:13] 수정 삭제  
  늘 똑같지 않은 날에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 앞에 놓인 시름과 근심과 역경도, 지난 뒤엔 한 줄 그리움 되어 남게 된다. 모든 날은 아름답고, 모든 날은 그립고, 모든 날은 그래서 감사하다. 어두움 뒤의 밝음은 어두움이 있기에 더욱 그 밝음이 빛나고, 고난의 끝에 만나는 행복은 그 고난이 힘겨울수록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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