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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1 [02:03]
“제사의식 광대함에서 해답찾아야”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6) ‘주지육림’
 
김정룡 /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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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간격 걸왕과 주왕 부패의 주지육림회자

상나라때 순장제도 성행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고대사회 제사 규모가 빈부를 가늠하는 잣대로

최상제사 예()이고 제사때 음주가무는 악()

 

 

▲ 김정룡 /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주지육림의 역사기록은 거짓이다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나라가 망한 이유를 여자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하나라는 말희가 망쳤고, 상나라는 달기 때문에 망가졌고, 주나라는 포사가 없었다면 천자가 허수아비로 되지 않았을 것이고, 잘 나가던 당나라는 양귀비가 기울게 했고, 청나라는 자희태후가 말아먹었다는 것이다.

 

중국 역대의 사학자들의 이런 식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는 걸까. 역사문화의 관점에서 당시 시대흐름, 역사적 맥락, 문화배경을 살펴보면 역대 사학자들의 주장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무슨 말이냐? 하나라 말기와 상나라 말기에 있었다고 하는 주지육림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 걸왕과 주왕(紂王)이 미녀에 빠져서 나라의 재정을 거덜 낼 지경으로 무리한 부패 때문이었다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

 

중국 역사는 폭군을 거론할 때 어김없이 걸왕과 주왕을 들먹이고 이 둘을 한데 묶어 걸주(桀紂)’라고 표현한다. 이렇듯 하나라와 상나라 말대 왕을 한 꼬챙이에 꿰서 한데 묶는 이유는 두 사람의 나라를 망친 행적이 같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주왕의 행적이 걸왕의 복사판이라는 이유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마천의사기은본기에 주왕의 주지육림이 실려 있고,十八史略(십팔사략)에는 ()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청춘남녀가 몸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고 홀딱 벗은 채 나체무도연회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하나라와 상나라 말기에 유소씨라는 국을 복속시켰고 진상품으로 받은 미녀가 곧 말희와 달기였다는 것, 이 두 미녀는 매우 탐욕스러웠다는 것, 걸왕과 주왕은 본래 재주도 뛰어나고 정치도 잘 하는 임금이었는데 주색에 빠져 나라가 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왕은 모두 미녀들을 기쁘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다 못해 주지육림을 만들었다는 것, 주지(酒池)가 크기로 술 위에서 뱃놀이를 할 지경이었다는 것, 고기를 나무에 매 단 것이 숲을 이뤄 육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3천 명 젊은 청춘남녀가 몸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고 홀딱 벗은 채 나체무도연회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미친 듯이 춤을 추다가 북이 울리면 일제히 멈추고 또 미친 듯이 술을 마셔댔다는 것, 위대한 두 임금이 결국 두 여인 때문에 주지육림을 마련했다가 망했다는 것이다.

 

하나라가 망하고 상나라가 600년쯤이라 하는데 어떻게 여섯 세기를 거친 이후의 주왕이 600년 전의 걸왕의 복사판이 될 수 있는지? 다시 말해서 임금이 나라를 망친 이유가 비슷한 패턴이 있을 수 있지만 완전히 내용과 형식이 모두 일치하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3~4천 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그 자세한 내막을 파헤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시대·역사·문화·배경을 살펴보는 것으로 진실을 접근할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걸왕과 주왕이 미녀한테 빠져서 주지육림을 만들었고 아울러 이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역사의 기록은 허위이고 거짓이다.

 

걸왕과 주왕이 미녀한테 빠져서 주지육림을 만들었고 아울러 이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역사의 기록은 허위이고 거짓이다.   


 

고대사회 제사의 규모 빈부 가늠의 잣대

 

모계씨족 여와시대초기 생식숭배문화가 싹틈에 따라 물고기에 제사를 지내는 어제(漁祭)부터 시작해서 개구리에게 지사를 지내는 와제(蝸祭), 썩 후에 여성과 달의 주기가 똑 같다는 이유로 달에게 제사를 지내는 월제(月祭)가 있었다.

 

이 세 가지 제사 중에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 것이 월제(月祭)인데 추석을 쇠는 풍습과 우리민족 전통문화인 강강술래가 바로 월제(月祭)의 흔적이 남아 내려온 것이다.

 

이 세 가지 제사는 대표적인 것일 뿐 이외에도 수천수만 가지 제사가 있었다. 부계씨족 복희씨 시대에 이르러서도 제사의 주요 대상이 남성숭배로 바뀌었을 뿐 제사의 형식과 내용이 점차 더욱 발전하고 발달되었으며 국가시대인 하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상나라에 이르러 모든 일에 길흉화복을 알아보려고 점을 치고 방토로 제사를 지내 제사문화가 절정에 이르렀다. 일본인이 믿는 신이 8만 여 가지가 되고 마쯔리고도(祭祀)’가 굉장히 발달한 것도 고대 인류가 얼마나 제사를 중히 여겼느냐는 좋은 증거이다.

 

국가 이전의 선사시대 제사의 주요 대상이 부족토템이었던 동물과 식물 등 자연물이었다면 국가시대에 들어 토템이 조상문화로 바뀌면서 인간을 제사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 풍조가 생겨났고 상나라에 이르러 이런 풍조는 나라를 거덜 낼 만큼 심각해졌다.

 

현대인이 행복이라는 ()’자의 뜻을 모르고 그냥 사용하고 있는데 사실 ()’은 본래 제사음식이다. 고대사회에서 제사의 규모가 빈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제사의 규모란 참석 인원수도 중요하겠으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음식의 규모이다. 음식을 더 많이 더 좋게 차릴수록 부자의 상징이었고 아울러 조상이 복을 받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당시 고관대작들은 서로 제사의 규모로 자신을 뽐내는 기회로 삼기도 하고 가문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이기도 했다. 고관대작들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천하의 권력을 한 손에 움켜잡은 왕은 더 말해 뭘 하랴.

 

당시 왕들은 선대의 왕보다 제사의 규모를 더욱 방대하게 하는 것으로 자신의 치적을 알리려 했고 또 이를 통해 통치를 더욱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자아~, 이쯤하면 눈치 빠른 독자는 하회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것이다. 걸왕과 주왕의 주지육림은 애첩인 미녀를 기쁘게 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고 당시 제사의 생리에서 그 답을 찾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주가 아무리 아름답고 향기롭다한들 술은 필경 술이다. 가령 아무리 향이 좋은 술이 집 안에서 병이 깨져 냄새가 나면 역겹다. 무슨 여자가 술 냄새를 좋아한다고 왕이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술로 못을 만들까? 새빨간 거짓말이다.

 

또 생고기를 나무에 매단 것이 숲을 이룰 정도라면 비린내가 얼마나 진동했을까? 무슨 여자가 그 비린내는 좋아한다고 왕이 그 미친 짓을 벌렸을까? 이것도 새빨간 거짓이다.

 

걸왕이 말희와의 로맨스, 주왕이 달기와의 로맨스는 당현종이 양귀비와의 로맨스와 비슷한 깊고 진한 애정관계는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두 왕이 나라를 망칠 만큼 여자에게 빠져 그녀들을 기쁘게 하려고 주지육림을 조성했다는 역사기록은 사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필자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은 제사문화에서 유래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논의해보자. 상나라 때는 인간제물과 순장제도가 성행했고 결국 이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인간 제물이란 제사에 생사람을 바치는 것인데 보통 노예를 바치는 것이 관례이지만 개별적으로 귀족신분의 인간을 바치는 경우가 있었고 한 귀족이 만 명의 노예의 값과 맞먹었다는 설이 있다.

 

오래된 풍습은 제도적으로는 없어졌으나 관습적으로 쉽게 사라지지 않아 주나라 때도 가끔 있었고 진시황 때도 일부 생매장이 있었으며 병마용으로 대량의 숫자를 대체했던 것이다    


사람 대신 양을 바치는 경우가 있어 희생양이라는 낱말이 생겨났던 것이다.성경에도 사람 대신 양을 하나님에게 바쳤다는 대목이 있다. 이것은 동서양의 문화흐름이 비슷했다는 증거이리라.

 

순장제도는 왕이 붕어하면 따르던 무리 일부 또는 궁녀를 왕의 무덤에 생매장하는 제도였다. 사람뿐만 아니라 왕이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과 궁녀들의 사치품까지 함께 묻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진시황의 무덤에 묻힌 금은보화를 캐내면 13억 인구가 10여 년을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얼마나 거창한 규모였던가. 입이 절로 벌어지는 일이다.

 

진시황의 무덤 일부인 병마용도 인간 대신 사람의 모형을 만들어 묻은 것이다. 왜 사람을 못 묻고 인간모형을 묻었을까? 상나라 때 인간제물과 순장제도가 극에 달해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아 민심이 흉흉해 왕이 설자리를 잃어 결국 망했던 것이고 주나라는 이를 거울로 삼아 이 두 가지 악습을 폐지하였다.

 

하지만 오래된 풍습은 제도적으로는 없어졌으나 관습적으로 쉽게 사라지지 않아 주나라 때도 가끔 있었고 진시황 때도 일부 생매장이 있었으며 병마용으로 대량의 숫자를 대체했던 것이다.

 

병마용은 일종 인형인데 인형의 유래가 곧바로 인간제물 대신, 순장될 인간 대신 모형을 만드는 것에서 생겨났던 것이다.

 

한편 고대사회에서 제사는 그 무엇보다 으뜸의 행사였기 때문에 거창하게 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음식도 최대의 규모로 갖추다 보니 비유적으로 생겨난 말이 주지육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실제로 상나라 말대 왕 주왕의 시대에 120일 동안 먹고 마시고 했다고 해서 장야의 음(長夜之飮)’이라는 표현이 있다. 120일 동안이나 먹고 마시고 하려면 주지육림이 아니고서야 감당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수(陳壽)삼국지고구려편에 고구려인은 5월 파종이 끝나고 10월 수확 직후 천신에게 제사를 올리는데 국가적으로 크게 모여 연속 며칠 동안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國中大會, 連日飮酒歌舞).”는 기사가 실려 있다.

 

고대사회에서 어느 민족, 어느 집단을 막론하고 제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모두 비슷했을 것이다. 다만 그 규모의 크기에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중국인의 제사규모가 컸기 때문에 지금도 중국인은 손님접대에 있어서 음식을 거나하게 차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제사 때 가무는 뭘 의미하는가? 제사 때 가무는 주술행위였다. 잘 먹고 잘 마시면 제사의 성과이기도 하고 주술행위도 더욱 잘할 수 있다. 나체무도회는 오늘날 정조의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것이야말로 자연에 충실하는 행위였고 풍요다산을 기원하고 촉진하는 최상의 행위였던 것이다.

 

이중텐 교수는 고대사회 제사는 예()이고 제사 때 음주가무는 악()이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유림에서 그토록 중시하던 예악은 제사문화에서 유래 되었다는 지적이다.

 

 

김정룡 프로필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장춘대학교 일본어학부 전공

-연변제1교 일본어 교사 역임

-著書)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

<멋 맛 판> 2015

-著書)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

<천국의 그늘> 2015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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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3 [01:29]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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