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광고
광고
정치·사회경제·IT여성·교육농수·환경월드·과학문화·관광북한·종교의료·식품연예·스포츠피플·칼럼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전체기사보기 全北   全國   WAM特約   영문   GALLERY   양극화   인터뷰   의회   미디어   캠퍼스 재테크   신상품   동영상   수필  
편집  2019.03.22 [16:01]
진시왕 사후…호가호위 군신 나라거덜내
<송기옥칼럼> 절대 권력의 악순환
 
송기옥 칼럼니스트

 

▲ 송기옥 칼럼니스트    

중원천하를 통일한 만리장성의 상징, 진시황(秦始皇 BC 259-210)은 조()나라 수도 허베이성 한단(邯鄲) 태생으로 그의 이름은 정()이다.

 

선대 장양왕(BC281~247)의 아들로 13세에 왕위를 계승하여 39세 때 비로소 시황제(始皇帝)라 자칭하고 37년 동안 통치했다.

 

거상(巨商) 여불위(呂不韋?-BC235)의 애첩(안국부인)의 미모에 반한 장양왕은 그녀를 왕후로 취하였는데 여불위의 씨가 이미 잉태되어 진시황을 출산, 자기 핏줄이지만 아들이라 부르지 못한 운명의 비극이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여불위는 진시황의 중부(仲父)로 불러져 상방(相邦)이란 높은 벼슬을 받아 진시황을 도와 동방 6(.....)을 멸망시키고 마침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의 위세를 떨친다.

 

이처럼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으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제주도 서귀포와 왜()에 까지 파송했다는데 49세란 젊은 나이에 지하 궁전 도용갱에 한줌의 부토가 되고 말았다.

 

당시 맹상군이나 신릉군 등 전국시대의 사군자라 불리는 각국의 유력자들이 식객을 모아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던 가운데, 여불위 또한 자신의 집에 3천 명의 식객을 모아 인재를 뽑고, 가솔(家率)만도 1만 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그 식객 가운데는 훗날 진의 승상이 된 이사(李斯)의 재능을 눈여겨본 진시황 정()이 그를 발탁해 재상으로 삼았다.

 

기원전 239년 여불위는 자신의 식객으로 있던 석학들을 모아 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저작물을 펴냈다.

 

이 책은 당시 제자백가의 책과는 다른 사상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한 오늘날의 백과사전에 해당된다.

 

여불위는 완성된 여씨춘추를 진의 수도인 함양성 성벽에 진열해 놓고, ‘이 책에 적힌 글 가운데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천금을 주겠다.’고 하였다는데 훗날 일자천금(一字千金)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된다.

 

여불위는 부와 권력을 손안에 거머쥐었으나 장양왕의 왕후가 된 애첩과의 밀애로 인해 진시황의 노여움을 받아 촉() 땅으로 유배를 시켜 결국에는 자결케 하는 비극을 낳는다.

 

 

 

진시황 역시 천하통일 후 15년이 지난 그가 죽은 지 고작 3년 후 진나라는 멸망을 한다.

 

진시황은 영토를 친척과 공신들에게 나눠주던 분봉제(分封制) 즉 천자가 땅을 나누어서 제후를 봉하던 일을 폐지하고, 전국을 군(), ()으로 가르는 중앙집권제인 군현제(郡縣制)를 실시했다.

 

중앙집권을 위해 삼공구경(三公九卿) 제도로 국가를 다스렸으며 민간이 무기를 소장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전국의 도량형을 통일했는가 하면 화폐 또한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했다.

 

달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은 중국관광의 최대 수입원으로 세계 불가사의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호화의 극치인 아방궁 건립과 분서갱유 , 실물크기의 병마용갱과 지하궁전을 만드는 등 국고탕진과 부역으로 백성을 시달리게 한 비판의 군주일 뿐만 아니라 평소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그는 수만금을 탕진하여 백성으로부터 원성을 들었다.

 

매일 대량의 문서를 직접 처리한 성실성도 보였으나 간신 조고(趙高)를 잘못 기용한 까닭에 진나라는 결국 망국의 길로 가고 말았다.

 

진나라의 환관이었던 조고(趙高)는 시황제가 병사하자, 승상과 짜고 조서를 거짓으로 꾸민다.

 

이어 시황제의 맏아들이었던 부소(扶蘇)와 장군 몽염(蒙恬)을 자결하게 만들었다.

 

이 뿐만 아니라 진시황의 유서를 위조하여 우둔한 막내 아들이었던 호해(胡奚)를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지게 하여 허수아비 2세 황제로 삼아 마음대로 조종했다.

 

이틈을 노려 조고는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조고의 직책은 부새령(符璽令)과 중거부령(中車府令)으로 황제의 옥새를 관리하고 궁중의 어차와 가마를 총지휘하는 그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간악하기 이를 데 없던 조고는 진시황의 죽음을 알리지 안했으며, 협력자 이사마저 모함하여 죽인다.

 

조고의 만행이 극에 달하자 천하의 군웅(群雄)들이 날뛰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각처에서 반기를 들었는데, 세상사 모든 일에 인과응보(因果應報)가 뒤따르는 법, 성난 백성과 모반이 쉴 새 없어 진나라의 형세가 위태롭게 되자 BC 209년에 조고는 2세 황제였던 호해마저 모살(謀殺)한다.

 

이어 부소의 아들이었던 자영을 옹립하여 진왕이라 부르게 했다. 자영은 황제에 오르자마자 천하의 간신배 조고를 척살(刺殺)하고 삼족마저 멸하여 백성들에게 본보기로 삼았다.

 

그런 자영도 겨우 재위 46일 만에 유방(劉邦)에게 항복하고, 그 뒤에 항우(項羽)에게 잡혀 죽으니 권불10년 재불3대란 말처럼 진나라는 BC20650년 만에 멸망을 한다.

 

천하를 호령했던 절대 권력은 영원할 수 없는 흥망성쇠가 반복 될 뿐이다. 허황된 과대망상과 과욕을 탐한 이기심과 아집(我執)은 개인은 물론 나라까지 멸망의 나락으로 몰고 가는 비극의 한 단면을 역사의 교훈으로 볼 수가 있다.


광고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밴드 밴드 구글+ 구글+
기사입력: 2019/01/03 [16:39]  최종편집: ⓒ womansense.org
 
해피우먼 전북 영어 - translate.google.com/translate?hl=en&sl=ko&tl=en&u=http%3A%2F%2Fwomansense.org&sandbox=1
해피우먼 전북 일어 - jptrans.naver.net/webtrans.php/korean/womansense.org/
해피우먼 전북 중어(번체) - translate.google.com/translate?hl=ko&sl=ko&tl=zh-TW&u=http%3A%2F%2Fiwomansense.com%2F&sandbox=1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뉴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倫理규정’-저작권 청소년 보호정책-약관정론직필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기사검색
로고 월드비전21 全北取材本部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411-5, 등록번호 전라북도 아00044, 발행인 소정현, 편집인 소정현, 해피우먼 청소년보호책임자 소정현 등록일자 2010.04.08, TEL 010-2871-2469, 063-276-2469, FAX (0505)116-8642
Copyrightⓒwomansense.org, 2010 All right reserved. Contact oilgas@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