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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8.24 [20:01]
가장 시급하고 매우 중요한 일 ‘사랑’
<주부 칼럼>양은진 ‘사선을 넘어…제2의 삶’
 
양은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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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큰아들 오른쪽 둘째 아들  

 

● 내가 진짜 남들보다 힘들긴 한 걸까?

 

▲ 양은진 칼럼니스트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위 시는 윤동주 님의 별 헤는 밤 의 시작이다. 그가 진짜 아무 걱정도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가을 날 어두운 곳에서 보이는 그 수많은 별의 개수만큼 근심이 있었을 게다.

 

반어법적인 수사로 보여지는 나라 잃은 그의 근심이 마음 속 깊은 곳을 꼭꼭 찌르는 감동을 준다.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적당히 일제치하에서 한 몸을 보존할 수 있는 태생이었지만 방황과 번민으로 서시를 통해 존재론적 고뇌를 그대로 드러낸 점 그것이 그의 삶과 시 자체를 높이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일터.

 

숨쉴 여유 없이 달리느라 숨이 턱까지 찼다며 여유와 힐링을 외치며 사는 우리는 엄연히 주권을 가진 보호 테두리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살고 있다. 취업과 결혼이 힘든 극도의 경쟁사회라 헬조선 으로 부른다는데, 윤동주 시인이 보기에 어떤 생각이 드실까.

 

내가 진짜 남들보다 힘들긴 한 걸까? 설사 그렇다한들 내가 남의 입장으로 살아보지 않았는데 감히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것인가? 신이 보시기에 공평할까?

 

누구나 인생동안 같은 무게의 십자가를 진다는 현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겉으로 봤을 때 더 많이 가진 사람 아무 근심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뚜껑을 열었을 때 더 무거운 십자가에 끙끙거리고 있을 것이다.

 

● 청천벽력과 같은 시한부 통지서

 

우리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필자는 어려서부터 모범생으로 누구나 거친다는 사춘기도 더디게 와주어 중고등 시절을 부모님의 뜻대로 선생님의 뜻대로 오직 학생으로서의 본분만 알고 어른들의 바램대로 자랐다.

 

대학시절에야 겪은 사춘기는 마음 아픈 짝사랑도 있었지만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호기심 폭발로 왕성한 동아리 활동에, 한두달씩 다녀오는 장기 해외 배낭여행들로 잘 버무려져 내실을 다지며 큰 탈 없이 지나갔고 동시에 대학 공부를 통해 평생 할 수 있는 치의학을 공부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대학캠퍼스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7년의 연애 끝에 사랑만 가진 확신에 찬 결혼을 했다. 학부와 전공 공부로 결혼이 늦어지긴 했지만 결혼하자마자 연년생으로 두 아이를 얻었고 출산동안 남편과 함께 부부치과 개원이라는 큰 산을 넘어 그 와중에 좌충우돌 어려운 점들은 있었지만 남들 보기엔 탄탄대로 문제없이 정석대로 가고 있는 삶이었다.

 

학창시절 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갈증은 결혼 후에도 이어져 바쁜 직장 맘의 생활 속에서도 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쪼개 평소 관심 있는 것들에 조금씩 발을 디디면서 시간의 표면위로 숨비소리(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물 밖으로 올라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편집자주)를 내뱉으며 그렇게 삶을 버텨갔다.

 

그렇게 종종거리며 살던 어느 날 아파서는 안되는 자기관리가 필수인 의사의 직업때문이었는지 매일같이 수시로 손을 철저히 씻어서였는지 사소한 감기에도 시달려본 적이 없던 내가 청천벽력과 같은 시한부 병명을 진단받았다.

 

그리하여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밥을 넘기지 못하는 한달 동안의 요양까지 몇 개월동안 내 삶은 달라졌다. 잠을 줄이고, 물 한잔 마실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고 참고 살았던 지난 날과 달리 암환자에게는 잠이 오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는 패턴으로 부교감신경을 위한 늘어진 삶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거나 멍한 상태로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기 힘들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적당량의 긴장과 이완의 시간이 균형을 이루는 만큼 주어진다면 그간 곧 끊어질 듯 팽팽하게 잡아서 버텨왔던 그 시간들만큼 아프고 나서는 온통 여유 있는 시간들로 채워야 했다.

 

기적적으로 수술이 잘 되어 사지 멀쩡하게 혼자 힘으로 걸어다닐 수 도 있고, 말도하고 앞도 보이는 부작용 없이 일상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암 진단 이후로, 떨어진 면역은 한해 한해 나이가 더해감과 동시에 회복될 기미 없이 자가면역 피부질환, 유방암, 갑상선까지 수시로 추가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의 삶을

 

이렇게 나이 먹으면서 질병이 생기는 것은 건강한 신체로 자신만만했던 젊은 날의 오만을  되돌이켜 보고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삶을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큰 병을 앓아봤기 때문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라졌기에 그리 놀랍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을 뿐 아니라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눈물을 찍어내며 함께 할 뿐이다.

 

능동적, 긍정적인 사람 호기심과 유머 있는 사람이 되고픈 치과의사 엄마 였던 블로그의 자기소개 글은 다음처럼 바뀌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처럼 급한 일은 대부분 진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죽음을 앞에 두자 내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취소해야 할 치과 예약환자도 아니고 글을 쓰고 일주일에 한두번씩 나가던 예절관 봉사도 아니었다.

 

내 손 아닌 남의 손의 맡겨 키운 연년생 아들들의 과거였다.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그 시기에 난 행복도 육아도 놓쳤던 것이 그토록 아쉬울 수가 없었고 이미 초등학생이 된 아들들에게 미안했다.

 

● 진짜 중요한 일인지 반추해본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이미 사춘기가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그리고 뜻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이 일이 진짜 중요한 일인지 반추해본다.

 

내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똑같이 중요한지 물어보면 답이 나오곤 한다.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 후 해당 병원에서 뇌종양 환자들의 투병수기를 모아 책으로 펴냈다 나 이외의 악성 뇌종양 환자들이 다수 참여했는데, 그때의 책을 둘렀던 띠지에는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기적입니다.”라고 씌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기할 만큼 글쓴이 모두 감사하고 있었다. 이만큼 나은 것에 대해 수술과 경과가 좋아서 가족과 더 오랜 시간 같이 할 수 있음에 그리고 남은 삶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수술이 잘 되긴 했지만 진단받은지 1년정도 된 지라 아직 어린 아이들과 조금 더 함께 할 수 있음이 감사했지만 반면 원망과 혼란이 뒤섞여있었던 때라서 감사함보다 다른 감정이 더 앞서기도 했었는데, 별탈 없이 정기검진을 통해 정상소견을 받으며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시간이 쌓여가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시야가 선명해지고 판단이 명확해졌다. 그리고 이제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내게 주신 전환의 길이 두 아들이 사춘기의 정점을 지나는 중학교 시절을 보내며 다른 엄마들은 아들의 사춘기가 힘들다 말하지만 이유 없는 분노와 소리 없는 아우성에도 혹여 엉망인 성적표를 가져오는 날에도 나는 자문해본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일인지 서로 감정을 상해가며 다루어야하는 문제인지를 그리고 마음을 다잡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들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 프로필


2012년 예술세계 등단
현) 안양 샘병원 치과의사
대한여자치과의사협 이사
10기 EBS 스토리기자
yeji3929@daum.net
https://blog.naver.com/yeji3929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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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04 [23:32]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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