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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5.21 [11:02]
한국 전통음악의 대향연 ‘국악’(2회)
<기고> 박행주 ‘부단한 훈련과 변신’
 
박행주

다른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전문성을 가지고 의미있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 25년째 국악교육을 열정적으로 해오면서 많은 활동을 수행해왔고 앞으로도 더 웅대한 비전하에 그 자질과 소임이 무척 기대되는 현직교사를 소개한다.

 

지난 129일 출범한 국제전통예술교류협회의 초대 회장이기도 하며,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박행주교사(50)의 기고를 통해 한류 열풍 저변 확산의 주츳돌이자 추후 무궁무진 잠재력이 능히 내재된 국악을 전통음악의 대향연이라는 제하 하에 4회 연재로 소개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장구나 북을 치는 아이들 허벅지 쪽에 멍

무지 소치악기끈 제대로 묶지 못해 발생

 

이론적 토대부족실감 결국 음악대학원에

장구와 북 결합된 모둠북 연주형태 선보여

 

      

우연한 기회에 익힌 국악

 

▲ 박행주 국제전통예술교류협회 초대회장   

박교사가 태어난 곳은 전통예술이 비교적 활발히 행해지는 지역이어서 오다가다 국악을 접할만도 했지만 특별히 그럴 기회들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여느 평범한 청소년과 다를 바 없이 지내며 국악에 대한 자극을 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교육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자 초등학교 교사이셨던 부친께서 장구를 배우라고 권유하셨다.

 

음악교과서에서 국악단원들이 있으니 미리 배워둬야 한다고 하셔서 민요장구장단을 한 달 정도 배웠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후 우연히 국악동아리방 앞을 지나다가 대금소리가 나서 그것을 배우러 들어갔다. 그런데 선배들이 그의 체격을 보더니 힘이 좋을 것 같다고 피리를 시켰다고 한다.

 

본인의 마음은 이미 대금에 가있었고 피리는 썩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1년 정도 하고 나서는 더 이상 동아리활동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기회가 되면 대금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는데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아 결국 졸업때까지 더 이상 국악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초등학교는 남자교사의 인원이 적었다고 한다. 그래서 첫 발령을 받았던 학교에서도 남자였던 박교사를 무척 환대해주었다. 환영받는 만큼 학교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많이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의 하나가 6학년 담임을 할 때 운동회에서 차전놀이를 진행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박교사는 차전놀이가 애국가의 화면에서 잠깐 나오는 것을 본 것 말고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영상자료를 구하고 주변 학교에서 하는 운동회에 직접 가서 녹화를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녹화한 것을 반복적으로 보니 대형변화나 구호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차전놀이에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풍물단이 연주하는 악사였다

 

▲ 첫 발령지에서 6학년 담임을 하면서 차전놀이 악사를 했던 반 아이들. 원래 장구는 움직이지 않게 끈 두 개로 묶어야 하는데 목걸이처럼 하나로만 묶고 있다.

 

결국 박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반 아이들을 데리고 악사대를 만들게 되었는데, 각자에게 풍물악기를 쥐어주고 장단을 알려주었다. 기본적인 장단을 가지고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연주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장구나 북을 치는 아이들은 끈을 메고 걸으면서 연주하다가 허벅지쪽에 멍이 들어 자주 호소를 했다고 한다. 박교사는 그 당시에는 예술은 다 그런거야라고 얼버무렸지만 나중에야 악기끈을 제대로 묶지 못해 발생한 무지의 소치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차전놀이는 모든 운동회 작품중에서 관객들로부터 개교 이래 가장 반응이 좋은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박교사는 지금도 국악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죄책감을 먼저 이야기 한다. 이 때문에 기회가 되면 국악을 제대로 배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 풍물악기

 

박교사는 교사로서 지식적인 부분을 가르치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지만 기능적인 부분을 가르치는 것은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단소나 장구와 같은 국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직접 배우지 않으면 왜곡된 방향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선 장구부터 배워보기로 했다고 한다. 마침 두 달간 매주 한 번씩 하는 교사연수가 있어서 신청을 했었고 20여명 정도 되는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장구를 배웠다.

 

처음에는 기본장단을 익히는거라 배우기에 어려운 것은 아니었는데 가르치는 강사처럼 맛갈나게 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투박한 자세로라도 꾸준히 치다보니 조금씩 팔에 힘이 빠지면서 장구의 맛을 느끼게 되었다.

 

8회의 연습기간을 마치고 나니 그것으로는 너무 아쉽고 배우다 만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주변의 연수생들과 뜻을 모아 장기적으로 배우게 해달라고 강사를 졸랐다. 현직 교사였던 강사는 선뜻 그 뜻을 받아들여 매주 모여서 연습을 하게 되었다.

 

1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 강사는 이제 본인이 더 가르칠 것이 별로 없다며 자신을 가르쳐주셨던 전문가를 모셔와서 지도받게 하였다. 그러면서 풍물놀이를 배우는 교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게 되었다. 그 후 전문가(싸부)는 연습실을 별도로 만들어 요일별로 선생님들을 받아들여 가르치게 되었다.

 

그것이 벌써 25년 전의 일이었고 싸부는 다른 악기연주는 물론이고 승무북에서 유래된 대고연주가 일품이었다. 박교사는 그 연주를 한 번 보고 매료되어 개인지도를 받게 되었다.

 

▲ 박교사가 연주하는 대고 연주 모습. 대고는 한 명으로도 연주가 가능하며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팀원들과는 장구놀이,사물놀이,설장구,북춤,소고춤,상모,모둠북 등 다양한 연주들을 익혀나갔다.

 

첫 스승의 권유로 학교에서 풍물부를 동아리부로 만들어서 무보수로 날마다 지도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력이 좋아진 풍물부는 경연대회에 나가서 1등으로 교육감상을 받는 등 상위급 상을 자주 수상하였다.

 

배우는 아이들은 처음 접하는 풍물놀이의 재미에 빠져들었고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박교사는 개별연습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본인의 실력이 빠른 속도로 향상되었다. 이는 실제로 학생들을 상대로 국악교육을 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이었다고 한다.

 

학교를 옮기면서 거듭되는 변신

 

박교사는 학교를 옮겨서도 풍물부를 모집하여 연습을 시작하였다. 도로쪽으로 음악실이 있던 첫학교와는 달리 두 번째 학교는 음악실이 민가가 가깝다 보니 소리 때문에 민원이 수 차례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꿋꿋이 버텼고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서는 더 이상의 민원이 없었다.

 

마침 그 학교에는 풍물을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있어서 박교사가 전근을 온다는 얘기를 듣고 미리 풍물을 배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매주 오후에 한 두번 모여서 장구와 사물놀이를 지도하게 되었고 몇 달 후에는 지역의 교육행사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박교사는 대고 연습을 계속 하려고 교실에다가 대고의 높이로 나무틀을 제작해서 북을 걸고 매일 연습을 했다. 하지만 북의 크기가 너무 작고 이 나지 않아 고민 끝에 거금을 들여 대고를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 대고를 산 이후로는 학교를 전근갈 때마다 트럭을 불러서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박교사는 첫 번째 학교에서는 사물놀이를 위주로 아이들을 지도하였다. 그런데 이라는 악기를 특히 좋아했기 때문에 두 번째 학교에서는 북을 메고 연주하는 북춤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고 학예회나 운동회는 물론 지역의 많은 공연과 경연대회에도 참가하여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대학원진학 국악과 서양음악 균형

 

그렇게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지도하다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따져보니 풍물을 연주하는 기능은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적인 토대가 부족하면서 생기는 심리적 결핍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대학원진학을 결심하였다. 세 번째 학교를 옮기게 되었을 때 교육대학원에서 음악교육학과에 진학하여 국악과 서양음악을 균형있게 배워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박교사가 국악 특기 초빙교사로 세 번째 학교로 옮길 때에는 좀 더 많은 아이들에게 풍물을 지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2-3학년반 상모놀이반, 4-5학년 사물놀이반으로 나누어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6학년 아이들 몇 명이 찾아와 자기들도 가르쳐달라고 사정을 해서 모둠북반을 추가로 만들어 운영하였다. 그리고 교사, 학부모들이 모둠북을 배우고 싶어 해서 별도의 2개 반을 추가로 운영하여 총 5개의 팀을 만들어 연습활동에 들어갔다.

 

학생들 두 팀은 아침 0교시에 연습하였고 6학년팀, 교사팀, 학부모팀들은 오후에 연습하였다. 풍물팀이 많다 보니 자체적인 발표회도 몇 차례 개최하였고 많은 공연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시기에 박교사는 처음으로 모둠북 연주형태를 만들었다. 다른 모둠북 형태와는 달리 북만으로 연주를 하지 않고 장구와 북이 어우러지는 연주형태를 직접 만들어 지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 번째 학교에는 박사과정을 병행해야 하는 시기였지만 역시 초빙교사로 옮기면서 풍물단을 만들어 연습을 시켰다. 교사팀도 만들고 학생을 대상으로는 한 팀을 만들어 아침 0교시에 집중적으로 매일 연습을 시켰다.

 

이때에도 모둠북과 사물놀이를 지도하였는데 추후에는 상모를 돌리는 농악형태의 작품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모둠북과 상모놀이를 결합하여 연주하면서 상모를 돌리는 박교사만의 독창적인 모둠북연주를 만들게 되었다.

 

▲ 박교사가 직접 만든 연주형태로 장단과 함께 돌리는 상모가 화려하여 국내외에서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프로필

* 국제전통예술교류협회 초대회장

* 서울교육대 졸업 중앙대학 대학원 박사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 외래교수

* IOV(UNESCO NGO)이사

* 2016 올해의 스승상 수상

* 이메일 apron20@hanmail.net

* 핸드폰 010 2268 9368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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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08 [02:53]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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