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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16 [17:01]
“비슷한 갈대 어지러이…제각각 속삭여”
(POET VIEW) 林 森 '그 여름의 갈대'
 
림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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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갈대'

 

 

 

 

 

▲  pixbay.com       








 林  森

 

 

 

 

 

 

 

가슴 깊이 자리한 갈대숲은

그 여름에도 끝없이 펼쳐져가고

농익어 황금빛 물결치는 갈대숲엔

한 줄기 바람 불어대다

 

쓰스스스스슷스-

마당을 쓰는 싸리비 소리 들려나

여름에도 가을 익는 듯 흔적 새기면

낭창낭창 휘어진 갈대 춤사위에

찰랑이며 지저귀던

이름 모를 새 울음 떨궈 지나치는데

 

 

 

바로 거기 깊은 가슴에

하나의 갈대가 서있었다

주위엔 비슷한 갈대가 어지러이

수십 수백 수천 수만....

 

헤아릴 수도 없고 다할 수도 없는

무한의 갈대숲 한가운데서

문득 외로움의 말 솟아나 바스락

제각각 무언가 속삭이기 시작하느니

 

한 걸음 더 다가서 무릎을 꿇고

귀 기울여 목소리에 가슴을 열다

나를 봐,

나를 봐,

 

갈대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저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다, 그런데

나를 보라고?

갈대를 보라고?

이 갈대도, 저 갈대도, ?

 

아니지, 오직 하나의 갈대만

화르륵 불타오르고

그렇게 생각 무던히 흐르는 사이

가슴에서 흠씬 자라난 갈대숲

 

그 여름은 그래서 그만큼 쉬 깊어지다

 

 

 

詩作 note

여기 어렵고도 헷갈리는 림삼시인의 시가 또 한 편 소개되었다. 제목만 보자면 분명히 여름을 노래하는 시인데 내용은 정작 여름인지 가을인지 아삼삼하다. 진즉에 이럴 줄 알았다. 매양 이런 식이니까. 아무리 시가, 쓰는 사람 위주로 한 상상의 날개 펼침이라 하더라도 읽는 사람의 입장을 조금은 헤아려주는 것이 기본 도리이거늘, 림삼이라고 하는 위인은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 평생 써제낀 시가 얼추 천하고도 육백여 편에 달하기는 한데, 그 중에 읽을만한 시는 정말이지 대충잡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지경이다.

 

사실이 이럴진대, 과시 그를 가리켜 제대로 된 시인이라고 이름 붙여줄만한 용기가 선뜻 날 리가 없음이다. 언젠가 그와, 작심하고 마주앉아 밤 새도록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늘상 귀에 못이 박히도록 지적하는 거지만 당신의 시는 너무도 난해하고 깊어서 도대체가 이해도 안 되고, 따라서 공감은 결코 되지를 않는다. 그러니 제발 조금만 더 쉽게, 그냥 보이는대로, 느끼는대로 써 봐. 심상을 비비 꼬지 말고, 무작정 심연을 파헤치지 말고.” 그랬더니 글쎄, 그가 뻔뻔스럽게도 이리 말을 하더라. “보기 힘들면 보지 마. 읽기 어려우면 읽질 마. 아무도 안 봐도 돼.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읽으면 그걸로 됐어. 나는 그래도 만족이야.”

 

그렇게 한참을 고개 숙이고 주저앉아 있더니만, 눈에 쥐가 나도록 째려보던 거울 앞을 떠나면서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이기는 했다. “천천히, 차근차근 세 번만 읽어 봐. 그럼 뭔가 보일 거야. 그럼 그 속에 숨긴 어떤 게 보여질 거야. 그게 내 시의 알맹이야. 그걸 건져 봐. 그걸 캐내. 그럼 아마도 내 시가 어떤 맛인지 알게 될 거야. 다른 시인 누구도 말하지 않는 감추인 세상의 이야기 말이지.” 그렇게 쓸쓸한 목소리로, 힘 빠진 모습으로 림삼은, 뒤를 보이고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돌아앉아 홀로 남겨졌던 필자는 지금 생각한다. ‘림삼의 시는 어려운 게 아니야. 그냥 외로울 뿐이야.’

 

여름이라고 해서 여름만 생각하라는 법이 있는가? 여름의 이야기 속에 가을을 묻히는 게 왜 잘못된 건가? 여름이가면 어차피 오게 될 계절 가을, 그 가을은 우리 마음에 이미 들어와 있는데, 여름 한 철 내내 더위와 피로에 젖은 속내를 살그머니 보듬으며, 다시 올 가을을 준비하라고 살그머니 속삭이고 있는데, 혹시 당신도 들리는가? 가을이 귓전에서 부르고 있는 소리를. 혹시 당신도 느끼는가? 가을이 슬쩍 다가서서 내미는 손의 감촉을. 바로 그거다. 그걸 느끼며 살아야 하는 거다.

 

언제이든 곁에 있는 것은 갈 터이고, 기다리는 것은 오는 거다. 그리 돌고 도는 것이 우리네 삶의 이름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 시작노트의 이름에, 가을의 이름을 간직한 여름의 이름을 올린다. 갈대라는 전령사를 앞세워서... 언젠가, 여름에 피어나 나름 우거진 갈대숲을 바라보며, 미처 적응하지 못한 채 걷돌고 있는 필자의 어리석은 삶이 투영되어, 미친 듯이 불쌍해진 마음으로 소리내어 통곡하다가, 그 울음을 기이하다는 듯 바라보는 뭇사람들의 시선에 계면쩍은 발걸음을 떼던 새벽 등산길이 못내 아쉬워, 하산하자마자 적은 시가 바로 이 시다.

 

허기사 아직도 심장이 이렇게 쫄깃하게 뛰고 있다는 건 이미 아주 늦어버린 건 아니라는 반증인 바, 여름이라도 엄연히 갈대를 꽃피울 수 있는 가을 가운 존재커늘, 황혼녘 청춘 다시 불살라 착하고 어질게, 남은 여생 살아보리라는 작심과 다짐 얹어 하루의 일상 시작해본다. 오늘도 필자는 배우고 또 배우며 세상에 여름 갈대 한 자락 피워올리기 위한 실천 삼매경에 돌입한다. 아울러 이러한 필자의 노력에 동참을 권유하며, 만나지는 모든 이웃들에게 상큼한 향기를 한아름 씩 선사한다.

 

필자의 인사에 화답하는 그들에게는 깨끗한 축복 한아름 덤으로 얹는 걸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말이 깨끗하면 삶도 깨끗해진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저마다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마음을 가다듬는 때 누가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에 관심을 두겠는가? 험담은 가장 파괴적인 습관이다. 험담에 관련한 어떤 욕구가 생겨나거든 얼른 입을 다물자. 인간과 동물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의사 소통 능력이다. 오직 인간만이 복잡한 사고와 섬세한 감정, 철학적인 개념을 주고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귀한 선물을, 이제까지 사랑을 전하고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불의를 바로 잡는 데 써 왔던가? 아니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더욱 멀어지도록 했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좋은 말이 없거든 차라리 침묵을 지키자. 그리고나서 그 시점에서 즉시 화제를 돌리자. 험담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나쁜 마음을 먹고 말하는 쪽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듣는 쪽이다. 대화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는 스포츠, 날씨, 경제 등 안전하고 흥미로운 화제로 얼른 바꾸도록 하자.

 

험담이 시작될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면, 상대방은 험담을 해도 아무 소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의할 것이다. 그리고 섣불리 동조하거나 함부로 믿지 말자. 법정에서 증인이 해서는 안 될 말을 검사가 교묘하게 유도했을 때, 배심원들은 지금 들은 말을 무시하라는 판사의 요청에도 쉽게 그 말을 지우지 못한다. 그 말은 이미 배심원들의 뇌리에 또렷하게 새겨졌기 때문이다. 들은 사실을 믿지 않기란 어렵다. 하지만 험담을 들었다면 믿지 말자. 그것은 험담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다 아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한 신부님이 젊은 과부 집에 자주 드나들자,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며 신부를 비난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과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신부가 암에 걸린 젊은 과부를 기도로 위로하고 돌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가장 혹독하게 비난했던 두 여인이 어느 날 신부를 찾아와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신부는 그들에게 닭털을 한 봉지씩 나눠주며 들판에 가서 그것을 바람에 날리고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닭털을 날리고 돌아온 여인들에게 신부는 다시 그 닭털을 주워 오라고 하였다.

 

여인들은 바람에 날려가 버린 닭털을 무슨 수로 줍겠느냐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자 신부는 여인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나에게 용서를 구하니 용서해주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담지 못합니다.” 험담을 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살인은 한 사람만 상하게 하지만 험담은 한꺼번에 세 사람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첫째는 험담을 하는 자신이요, 둘째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들이며, 셋째는 그 험담의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람이다.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부족함만 드러내고 마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또한 용서하는 방법을 개발하자. 링컨 대통령은 자기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장관들 때문에 좌절과 분노를 느끼면, 그 사람들 앞으로 온갖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 편지를 쓰곤 했다. 그리고는 편지를 부치기 직전에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자신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 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분노와 증오를 극복하자. 그러면서 충동을 이겨내자. 험담하고 싶은 욕망을 이겨 낼 때마다 자기를 칭찬하고, 부정적인 말을 꺼내기 전에 자신을 다잡아보자. 물론 험담하지 않는다고 박수를 쳐줄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당신은 스스로 올바른 일을 한 것이다. 세상을 바꾸자, 한 번에 한 마디씩...

 

몹시 목마른 비둘기가 옥상에 앉아 있었다. 비둘기는 탈진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런데 저기 건너편 건물에서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그것은 시냇물처럼 맑아 보였다. “물이닷!” 비둘기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날아가 시냇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비둘기는 날개가 꺾인 처참한 모습으로 길거리에 떨어졌다. 비둘기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렸다. “아아... 분명히 물이었는데.” 하지만 비둘기가 부딪힌 것은 시원한 시냇물이 그려진 광고탑이었다.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라면 눈 앞에 보이는 게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 꼭 필요한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승산없는 승부를 밀어붙이게 되면 한꺼번에 많은 걸 잃어버릴 수 있다. 정말 서둘러야 한다면 천천히 서두르자. 천천히 꼼꼼하게 뚜벅뚜벅 서두르자. 너무 급하면 미련이 많아진다. 너무 다급하면 귀가 얇아진다. 너무 긴급하면 판단이 흐려진다.

 

위급 상황일수록 잠시라도 생각에 빠지는 여유를 가져보자. 어릴 적 퍼즐을 맞추듯이 말이다. 이것도 끼어 보고, 저것도 맞추다 보면 천천히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그리고 반복하면 할수록 쉽게 조각의 자리를 찾아내듯이, 아마도 비슷한 상황의 어려움이 다시 찾아 왔을 때 대수롭지 않게 극복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때로는 발빠름이 돋보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빠른 것과 사려 깊음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이다. 느긋한 여유로움을 아름다움이라 했던가?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스스로 자신의 매서운 스승 노릇을 해야 한다. 우리가 일단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있는 물처럼 썩기 마련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다 나눌 것은 있다. 근원적인 마음을 나눌 때 물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자신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라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서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우주의 기운은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고 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잃었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말자.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 얻었다고 너무 날뛰지 말자.

 

이 생을 잃으면 내생을 얻는 것이고, 병을 얻어 건강한 육신을 잃으면 그동안 경시했던 내 몸을 더욱 중시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른 손을 잃으면 왼 손이 그 일을 대신하고, 청력을 잃으면 시력이 강해진다. 죄 될 일을 놓으면 복을 얻고, 복 될 일을 잃으면 죄가 얻어지는 법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온다. 잡념을 놓으면 일심이 생기고, 일심을 잃으면 망념이 가득해진다. 너무 먹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적게 먹으면 몸이 가벼워진다.

 

잃은 하나와 얻은 하나의 차이는 어떤 걸까? 잃은 것이 내게 득이 되는 것이라면 크면 클수록 좋을 것이고, 얻는 것이 내게 해로운 것이면 작으면 작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의 얄팍한 계산 속이다. 그런데 잃은 것이 크든 작든, 얻는 것이 크든 작든, 그 기준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 따지고 보면 그것은 수십 년 살아오면서 습득된 자기 욕심의 기준일 것이다. 망자가 입는 수의에 호주머니가 없듯 태어나면서 갖고 온 내 손도 빈 손이었고, 이 세상을 하직하면서 갖고 갈 손도 빈 손이다. 빈 손에 잡히는 정도라야 제 손 크기 밖에 더 되겠는가?

 

그저 소박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자. 사랑만 하면서 살기에도 짧은 삶인데 그 삶 속에 왜 잡다하고 허접한 다른 것들을 채워놓으려고 드는가? 어리석고 우매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기만의 욕심에 집착하면서 만들어놓은 미움, 시기, 질투, 오해, 배신, 모략, 투쟁... 이런 것들을 다 버리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그렇게 비운 마음 속에 사랑, 화평, 행복, 양보, 이해, 배려, 동행... 이런 축복된 것들로 가득 채워보자. 그런 마음으로 하루날들을 살아가도록 하자.

 

사랑은 웃어주는 것이다. 사랑은 거창하게 무엇을 주는 것이라기 보다, 사랑은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이기에, 그의 마음에 햇살이 들도록 그에게 웃어주는 일이다. 사랑은 웃어주지 않고는 나의 마음이 가지 않는다. 사랑은 배려다. 사랑은 나의 이익을 구하기 보다, 상대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는 일이다. 사랑은 성낸 표정을 짓지 않는 일이다. 사랑은 나의 감정을 드러내어 감정을 상하게 하기 보다는, 그가 불편해 하지 않도록 그에게 나의 배려를 베푸는 일이다. 사랑은 그 웃음 속에서 당신의 마음으로 기뻐하는 일이다.

 

, 사랑 사랑 사랑... 사랑하고 말았네. , 그 사람을 내가 사랑하고 말았네. 네온불 속삭이는 무드에 취해 새벽이 오는 줄도 모르고 내 품에 쓰러져 울음을 삼키며, 사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드냐 하던 그 사람, 안스런 남자의 눈물, 그 남자의 눈물 한 방울에 꼼짝 없이 정 들고 말았네. , 정이 정이 정이... 정이 들고 말았네. , 그 사람과 내가 정이 들고 말았네. 음악에 흠뻑 젖어, 무드에 취해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네. 내 품에 쓰러져 울음을 삼키며, 사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드냐 하던 그 사람, 가여운 남자의 눈물, 그 남자의 눈물 한 방울에 꼼짝 없이 정 주고 말았네. 꼼짝 없이 정 들고 말았네.” 좀 신파적인 노랫말이긴 하지만 정을 나누는 아름답고 영원한 기쁨, 슬그머니 입 속으로 흥얼거려보는 중이다.

 

졸졸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시냇물은 썩지 않듯이,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언제나 활기에 넘치고, 열정으로 얼굴에 빛이 난다. 고여 있지 말길, 멈춰 있지 말길 바란다. 삶은 권태로운 것이 아니다.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잘 살펴보면 삶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하고 몰두할 때 행복은 자연히 따라온다. 결코 다 아는 자가 되지 말고 언제까지나 배우는 자가 되자. 고민은 어떤 일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생기기보다는, 일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데에서 더 많이 생긴다고 한다.

 

새로움으로 다시 시작해 보자. 그리고 어떠한 경우라도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항상 열어두도록 하자. 마음의 밀물과 썰물이 느껴지지 않는가? 밀물의 때가 있으면 썰물의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삶이란 어쩌면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행운과 고난의 연속 드라마인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은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조금은 더 기쁘고 싶어서, 조금은 더 행운 쪽에 무게를 두고 싶어서 애를 쓰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아름다운 당신에게도 좋은 일들이 결과로 있어지기를 소망한다.

 

까닭 모르게 사람이 그리운 날은 물밀듯이 쓸쓸함이 밀려온다. 사람이 그리워 가슴 한 쪽이 서글프게 저려올 때마다 가까운 이들과 대충 어울려 감자탕에, 해물탕에, 중국요리에 음식 잔치를 벌려 보지만, 쓸쓸하고 외로운 고독은 멈추지 않는 것 같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부딪치며 서로 사랑하고 이해해주며 그들을 만나는 것 또한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일상이지만, 사람을 쉽사리 믿어버리고 유난스레 정이 많은 필자에게 늘 들려오는 충고의 말, , 말들...

 

넘 쉽게 정 주지 마세요.” “얇고 넓게 인간 관계를 형성하세요.” 그게 맘대로 될 것 같으면 애저녁에 그런 충고가 필요 없을 것이다. 동료들이 썰물처럼 나가고 난 뒤 시끌벅적한 잔치 끝의 고요는 늘 필자에게 더 무서운 침묵만을 안겨 주지만, 그래도 숨 쉬고 살아있는 동안은 이 적막한 동굴같은 숲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따라 부쩍 사람이 그립고, 살가운 정이 간절한 것을 보면, 이건 분명히 여름의 갈대를 본 탓일 거다. 갈대의 외로움을 함께 느꼈기 때문일 거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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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19 [06:21]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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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둘레햄 19/06/19 [17:21] 수정 삭제  
  요즘 따라 부쩍 사람이 그립고, 살가운 정이 간절한 것을 보면, 이건 분명히 여름의 갈대를 본 탓일 거다. 갈대의 외로움을 함께 느꼈기 때문일 거다. 그렇지 않은가?
청산 19/06/20 [08:27] 수정 삭제  
  멋진 여름의 시를 감상하고 갑니다
홀로그램 19/06/20 [22:10] 수정 삭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부딪치며 서로 사랑하고 이해해주며 그들을 만나는 것 또한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일상이지만, 사람을 쉽사리 믿어버리고 유난스레 정이 많은 필자에게 늘 들려오는 충고의 말, 말,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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