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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1.17 [11:57]
“죽은 이들은 아이들처럼 순진하니까”
(POET VIEW) 林 森 '묘지 꿈'
 
림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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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pixabay.com




묘지 꿈 

 

  

 林  森

 

  

 

세상에-

 

그립다 그립다 쥐어짜 울궈먹더니

겨우 하나 남은 회상

이젠 공동묘지였냐?

 

향수의 핏줄 속

부드럽게 울리고 선 단어

고향, 공동묘지, 그립다고?

 

누군가에게 공동묘지는

아이들 축제,

죽은 이들은 아이들처럼 순진하니까

 

또 누군가에게는 공동묘지는

흉측스런 쓰레기장,

뼈와 살과 남은 기억까지 버려질 거니까

 

그렇거늘,

갇힌 내게 보여지는 공동묘지는

그리운 이의 그리운 품,

 

어차피 홀로 잠드는 쉰내 나는 현실에

곰팡이 피는 뇌 누룩삼아

찢어진 신문지조각 인생 발효시킨

그리스 비극의 힘,

 

끝없는 침묵의 공동묘지에

할미꽃같이 핀

요한세바스챤바흐 시절인 양

음악으로 살아나더니, 긴 꿈은

 

잠 문턱에서 몽롱해진 생각

하나 남은 향수로 고향길 낸다

 

 

 

詩作 note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예전 필자가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어느 날 아침 부스스한 얼굴로 읊조리시던 말씀이었다. 비록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였는데도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깜냥껏 추측은 할 수 있었던지라, 그것이 예컨대 그날의 재수에 옴이 붙었다는 것에 엇비슷한, 식전 운수를 탄하는 넉두리이셨을 거라 여겨 위로를 얹어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반백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시절의 영상이 마치 어젯일인 양 선연한 걸 보면 꽤나 큼지막한 두뇌세포를 점령당했던 듯 싶다.

 

허면, 이즈막에 필자의 처한 모양새가 더도 덜도 않고 딱 그러하다. 애초에 필자는 잠자리에서 꾸는 꿈을 대부분 기억 못하는 부류다. 밤 동안에는 제법 치열하게 꿈 속을 넘나드는 것 같은데, 이상케도 아침녘이면 마치 빗자루로 쓸어버리는 듯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어떨 때는 머리만 무겁고 복잡하여 찌푸둥하기까지 하다. 기왕지사 꾸어진 꿈이라면 차라리 비몽사몽 간에 망각의 강을 건너가지 말고,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내용이라도 좋으니 아쌀하게 생각이라도 나면 속 시원할텐데,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영 마뜩찮다.

 

더하여, 꿈 속의 일들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어진다거나, 빤짝! 하고 기적처럼 불가능이 가능으로 성사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그 줄거리 중에서 발췌하면 조금 쯤은 마땅한 글의 소재나 주제의 꺼리라도 되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박복한 필자의 기억력으로는 뒤죽박죽의 편린들만 바람으로 그득하니, 오히려 아침 햇살에 머리 흔들어 몽땅 떨쳐내는 편이 이득이라 여기며, 그렇게 선 잠에서 깬 육신을 주섬주섬 일으켜 세울 따름이다.

 

분명커늘 이제껏 한 평생을 그리 살아왔던 것이다.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라 엄연히 궤리가 분명히 존재하며, 그 구분선이 퍽이나 진하기도 하여서, 행여 꿈에서 보여졌던 허상이나 공허는 그저 꿈으로 끝나는 물거품이 확실했었다. 그러니 자연 돼지꿈이니, 개꿈이니, 똥꿈이니, 용꿈이니 하는 것들도 죄다 필자와는 먼 나라 이야기들이라 여기며, 해몽이나 꿈풀이라는 것도 요상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나름의 강력한 주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정확히 시작일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얼마 전부터 이상하게 꿈의 일부분이 떠올려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새벽잠에서 화들짝 놀라 깨어났는데, 분명한 것은 방금 전까지 필자가 공동묘지에 서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게가 어딘지, 누구의 묘지 앞전이었는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건 그 묘지 주변 어딘가에 필자가 절실하게 바라는 어떤 것이 있어서 열심히 찾아 헤매고 있었다는 건데, 도무지 그게 뭔지는, 정말 정말 답답하게도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가 이어지고, 실상 전 날 밤에 꾸었던 꿈은 까맣게 잊고 잠이 들었는데 다시 꿈 속에서 필자는 묘지를 배회하고 있었다. 물론 전 날의 그 공동묘지는 아니었다. 아마도 커다란 왕릉이었던 걸로 추측된다. 한참 동안을 걸어서 묘지를 돌았는데 그 길이 너무도 멀어 끝이 보이지를 않을 정도였으니. 누군가가 심부름을 시켰는데 그게 누구였는지는 모른다. 요는 쉬지 않고 다리를 끌며 묘지에서 난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다니다가 깨어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틀을 묘지꿈에 시달리다가 한동안은 다시금 꿈을 기억 못하는 평소의 습관대로 숙면을 취했던 것 같은데, 며칠 후 다시 필자의 꿈에는 묘지가 등장하였다. 그리고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묘지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마치 공식처럼, 다른 꿈은 선명하게 기억이 나질 않지만, 꿈에서 묘지가 보인 날의 꿈만은 반드시 그 기억이 잊혀지지 않고, 하루 내내 일과를 이어가는 동안에도 새록새록, 되새김질인 양 생각이 나곤 한다.

 

두어 달 전에 작고하신 아버지가 그리워 행여 꿈에서라도 한 번은 찾아주시지 않으려나 하면서 간절한 바람을 안고 잠 들지만 야속한 아버지께서는 단 한 번도 찾아와주시질 않으셨다. 생전에 효도 못한 불효가 하늘에 닿아, 선뜻 오시는 길이 내키시질 않으시는가 보다 하기엔 조금 야속하고 안타깝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저 하늘나라에서 영면을 취하고 계시리라 여기기에 마음으로 위안을 삼고는 있지만, 혹시 그래서 그 언저리에라도 머물라고 묘지꿈이 자꾸 보여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러다가 어느 날 정말 짜잔! 하고 아버지께서 현몽하실지도 모르는 거지만, 아무튼 악몽일지 길몽일지 모르는 필자의 묘지꿈 시나리오는 오늘 밤에도 파노라마처럼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또한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행여 계속 되던 묘지꿈 끝에, 마침내 찾아 헤매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그래서 그걸 취하는 순간 예상치 않았던 행운이라도 찾아온다면 그 복은 필히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눌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각설하고, 필자의 묘지꿈이 종국에 도달할 피안에서는, 필자의 알지 못할 꿈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 그런 소망을 품는 마음가짐으로 차라리 밤을 기둘린다. 기다림의 예감은 늘상 설레임과 더불어 내일로 이어지는 끈이라고 믿기에.

 

오늘은 어차피 초대시의 제목부터가 조금은 음습하고 우울한지라 시작노트도 격에 맞게 어둠의 맛으로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보여지는 게 다는 아닌지라, 그냥 그렇게 시종일관 암흑이나 절망과 맞닿아있는 주제로 마지막 끝맺음하자는 말은 아니다. 비단 발상은 으스스한 묘지에서 기인하였지만, 우리네 삶의 종착이 어차피 무덤이고 보면, 뭐 그리 생뚱맞은 소재라고 종주먹 들이댈 일도 아니고, 이 참에 그냥저냥 둥글둥글 살아가야 제 멋인 세상만사 바라보는 시야도 확인하고, 삼라만상의 생사고락이나, 영생과 소멸의 윤회 진리도 재삼 음미해본다는 의미에서, 조용스레 과거의 한 페이지로 회귀해보고자 한다.

 

1970년대 우리 인문주의와 심미적 이성의 한 절정을 보여준 한국문학의 대표작, ‘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19786월 초판이 발행된 이래 19964100쇄를 돌파하기까지 장장 18년간 40만 부가 팔린 이 책은 최인훈광장과 함께 우리 문단 사상 가장 오래도록 팔린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저자인 조세희는, 사람이 태어나서 누구나 한 번 피 마르게 아파서 소리 지르는 때가 있는데, 그 진실한 절규를 모은 게 역사요, 그 자신이 너무 아파서 지른 간절하고 피맺힌 절규가 난쏘공이었다고 말한다.

 

긴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 난장이들의 소리에 젊은이들이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난쏘공이 시대 문제의 핵심, 인간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이다. 난쏘공을 쓴 후 조세희는 또 다시 침묵으로 돌아갔다. ‘말이 10개라면 그 중에 5~6개밖에 쓸 수 없었던’ 5공화국의 억압적 분위기 아래서 그가 더 이상 쓸 수 있는 글은 없었다. 작가 박완서가 그를 두고 너무 맑은 물에 비유했듯이, 조세희의 글들은 현실의 탁류와 분명한 경계선을 긋고 있다.

 

‘20세기를 우리는 끔찍한 고통 속에 보냈다. 백 년 동안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이 헤어졌고,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죽었다. 선은 악에 졌다. 독재와 전제를 포함한 지난 백 년은 악인들의 세기였다. 이렇게 무지하고 잔인하고 욕심 많고 이타적이지 못한 자들이 마음놓고 무리지어 번영을 누렸던 적은 역사에 없었다.’ 이는 당대비평창간사의 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조세희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난쏘공의 난장이가 꿈꿨듯이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네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리는 세계’,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 줄기에까지 머물게 하는 그런 세계가 조세희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이미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러 번의 출간을 이어오면서, 2005년에 이르러서는 200쇄 기념 한정본까지 나왔으며, 201212월에는 커뮤니케이션 북스에서 시나리오 버전으로 출판 되는 등, 지금도 참으로 많은 판본들이 끊임 없이 선을 보이며 우리 곁에 머물면서 숨 쉬고 있다. 돌이켜보면 필자도 대학시절 말미에 이 책을 처음 접했었다. 당시에는 단문으로 이루어진 간결한 문장, 이해할 수 없는 사회의 이야기들 때문이었는지 앞의 몇 이야기를 읽다가 곧 흥미를 잃고 책읽기를 중단했다.

 

이후 억지로 계기를 마련하여 다시 읽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여지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읽기를 그만뒀었다. 그 후로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볼 때마다 이번엔 읽어야지, 이번엔 꼭 읽어야지.’ 하면서도 쉽게 손을 두지 못했다. 그리고 그 책 말고도 다른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인지라, 특별한 단초도 없이 묵은 책을 다시 읽기는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근래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필자의 시선이 책꽂이의 변방에 숨기듯 앉아있던 해묵은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언뜻 반가운 마음도 들었기에 정말로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만큼 나이가 들어 필자도 조금은 너그러워졌기 때문인지,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은, 난장이 가족들과 그와 반대되는 사람들, 즉 가진 자와 고용인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갈등과 대립을 시종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의 차별과 억압에 몸서리치며 싸우는 이들과는 달리, 소위 말하는, 가진 자들의 삶은 무의미하기 그지 없다는 걸 지적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작가는 이 책으로 사회의 약자들이 받고 있는 압박과 희생들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분명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별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금전적인 것이 권력이기 때문에 가난하고 갖지 못한 자일 수록 더 억압을 받고, 상대적으로 힘이 없고 약하기 때문에 더 많이 희생당하길 강요받고 있다. 더구나 처해있는 상황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소통도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한다.

 

일을 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아슬아슬해서 자신들이 받아야 할 최소한의 대우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이를 보면서 주인공이 내뱉는 말은, 소통이 되지 않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간극을 극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 소설은 어떤 면으로는 너무 극단적으로 치닫는 듯한 느낌이 있어, 주의도 필요하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가난, 노동자, 갖지 못한 자, 희생, 선과 부, 고용인, 가진 자, 부도덕등으로 표현된다. 이는 사회가 꼭 둘로 대표되는 이들의 결전장같은 느낌을 준다.

 

,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대표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언뜻 사회적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모순되게도 한 편으로는 현실감이 결여된 느낌이다. 어찌되었거나 작가의 도덕적 양심이 담긴 사색의 결과물을 읽으면서,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의 우리가 혹 잃은 것은 없는지 잘 생각해 보게 된다. 그의 도덕적 양심이 보통 사람들의 도덕적 양심에게 조금이나마 비수가 되어, 혹여 소설 속의 주인공들같이 극단적인 모습은 되지 않길 바란다.

 

아무튼, 시대가 변하고,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공감대와 동질성을 여전히 공유시키는 저력을 보여주는 이 책으로 가을을 갈무리하고, 반성과 다짐을 동반하면서 새 계절로 입문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진한 여운과 의미를 심어주는 독서의 시간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제 가을은 가지만, 가는 가을은 언젠가는 다시 찾아줄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면 생각나는 책으로 필자는 이 책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묘지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가을 앓이를 하는 것처럼, 소설의 내용이 자꾸 자꾸 되살아나 필자의 감성의 눈에 보여지고 있음이다.

 

그리고는 이내 필자에게 두런대는 목소리가 들려나는 것도, 아마 이 책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리라. 마음을 일깨우는 명상으로 승화시키라는 제언과 함께 가을이 무르익는다.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스스로 자신의 매서운 스승 노릇을 해야 한다. 우리가 일단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 있는 물처럼 썩기 마련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다 나눌 것은 있다. 근원적인 마음을 나눌 때 물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자신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 라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서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우주의 기운은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고 한다.

 

보통 하면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남성들이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노인이나 병약자에게 서슴없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젊은이들에게서 쉽사리 보지 못하던 멋을 느끼곤 한다. 마치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보석을 감상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마 그 광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년의 멋스러움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년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미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하기만 했지, 찾아오는 노년에 대하여 멋스럽게 맞이할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이는 사람들이 노년을 지나면서 점차 멋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노년이 되면서 부와 여유도 함께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이는 또한 많은 사람들의 꿈이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노년의 멋이란 것이 꼭 고급 승용차를 타거나 고급 의상을 걸치고서 비싼 음식점을 출입하는 데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년의 멋이란 외모에서 풍기는 것보다 정신적인 면까지 함께 조화를 이룰 때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길거리에서 맹인이 길을 잘 못 찾아 헤매고 있을 때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 줄 아는 사람, 도심에서 벗어난 한적한 들길을 걸으며 작은 꽃송이 하나에도 즐거워 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에, 노년의 멋스러움은 젊은이들의 기대 이상으로 귀중한 사회의 받침틀이 될 것이다. 그런 노년의 멋을 가지려면 물론 건강이 첫째일 것이다.

 

몸이 피곤하거나 아픈 데가 많으면 만사가 귀찮아져서 생동감 있는 생각도,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유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른 정신과 의식을 가지려면 그에 못지않게 건강을 지켜야 되고 마음과 정신, 그리고 육체가 건강해야 비로소 외모에 신경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될 테니까 말이다. 외모에 멋을 부리게 되면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져서 노화방지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또한 적당한 스트레스가 오히려 긴장감을 갖게 해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것처럼 적절한 대인관계의 긴장감은 남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켜 노화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노년의 남성들이여, 여성들이여! 더 이상 주저 말고 멋을 부려보자. 한껏 멋드러진 생각과 행동으로 남은 여생을 멋스럽게 장식해보자. 이 어찌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우리네 삶의 얼굴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이 속에서 주어진 숙명에 순응하면서 지금 보다는 좀 더 나은 내일의 삶을 만드는 것이 정작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필자가 계속 꾸고 있는 묘지꿈의 실증이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정체가 무엇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진리와 정도는 우리가 오늘 만들어가는 현실에 그대로 투영되기 마련이며, 우리가 지니고 있는 속내와 작심이 세상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들어가는 원천이 되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을이 떠나면서 우리에게 전하는 멧세지에 귀를 기울여보자. “세상을 살면서 사랑보다 귀한 것은 없느니, 어떠한 난관이나 역경이 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면서 세상 끝날까지 사랑하면서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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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06 [15:07]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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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19/11/06 [19:33] 수정 삭제  
  소재가 색다르네요. 그래도 이렇게 멋진 시로 탄생하네요.
배둘레햄 19/11/06 [20:02] 수정 삭제  
  우리에게 주어진 진리와 정도는 우리가 오늘 만들어가는 현실에 그대로 투영되기 마련이며, 우리가 지니고 있는 속내와 작심이 세상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들어가는 원천이 되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을이 떠나면서 우리에게 전하는 멧세지에 귀를 기울여보자.
홀로코스트 19/11/07 [21:40] 수정 삭제  
  세상을 살면서 사랑보다 귀한 것은 없느니, 어떠한 난관이나 역경이 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면서 세상 끝날까지 사랑하면서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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