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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09 [22:55]
김정룡 역사문화이야기(34) ‘선비와 권력의 유착역사’(하편)
 
김정룡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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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룡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 유교가 2천년 제국역사의 통치이념으로 선택된 이유?

 

중국문화는 선진(先秦)시대에 이미 기본 틀을 다 갖췄고 이미 완성단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세계역사에서 가장 앞선 사례이다.

 

선진시대 각 학파의 이념을 간단하게 살펴본다면 도가는 청정무위를 주장하는데 전후(戰後) 백성을 숨 돌리게 만드는 데는 일정한 효력이 있으나 통치이념으로 지속하여 써 먹기는 너무 물렁해 보인다. 법가는 진나라가 도입하여 천하통일에 성공하였으나 지나치게 형벌을 중시하여 사회를 너무 삭막하게 만들고 민심이 지나치게 각박해져 왕조가 단명을 맞을 위험이 굉장히 크다.

 

묵가의 겸애사상은 좋은 것이나 전반 사유재산이 등장한 이후 인간사회는 개개인의 의식수준이 이상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제국의 통치이념으로 삼기엔 부적격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국의 힘을 강력하게 만드는 통치이념은 유가가 가장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가는 사회 각 영역에서 모두 질서를 추구한다.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군군신신(君君臣臣),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부부자자(父父子子), 연령에 따라 아래 위가 있어야 하는 장유유서(長幼有序), 또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처강(夫爲妻綱)은 국가적으로 집안에서 모두 강력한 질서가 서기를 바라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 각 영역에서의 질서는 결국 따지고 보면 황제가 최고의 존재로 군림하는 것을 각인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유가는 또 예와 효를 매우 중시하는데 이는 농경문화에서 경험을 우선으로 받드는 풍토에서 생겨난 것이며 이것을 무기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유가는 또한 도덕과 윤리라는 무기로서 인간사회를 속박하고 질서를 지키고 공공의식을 키우며 인간의 됨됨이를 만들어간다. 도덕과 윤리를 강조함으로서 제국은 돈과 힘을 들이지 않고도 관료집단을 바르게 서게 할 수 있고 백성들도 따라서 사회 룰에 따르도록 만들 수 있어 수지가 가장 맡는 장시임에 틀림없다.

 

유가는 종법사상으로 국가와 집안의 질서를 유지케 하였던 것이다. 황족의 직계는 대종이고 기타 가족은 소종이다. 가문에서는 맏아들이 대종이고 차남부터 전부 소종이다. 대종과 소종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대종이 가산을 이어받고 제사를 주관한다. 제국시대엔 제사가 매우 중요한 행사이므로 제사를 통해 대종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상기 여러 가지 유가의 이념과 사상은 제국의 힘을 키우고 유지하고 백성들을 전부 황제의 신민(臣民)으로 만드는데 가장 좋은 무기였다. 그래서 한무제는 동중서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고 그 후에도 여전히 통치무기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던 것이다.

 

. 과거급제제도가 유생들이 천하를 장악하게 만들었다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가 먼저 귀족세습제를 폐지하고 관료임명제를 실시하였고 이를 통해 군현제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 제도는 진시황 이후 청나라 말기까지 이어졌고 지금도 중국은 간부임명제를 실시하고 있다.

 

제국시대 관장(官場)은 관(), (), () 등 세 가지로 나눴다. 관은 정무관이라면 요는 관의 보좌관이며 이는 사무관(서기관)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관료와 관리라는 말은 있어도 요리(僚吏)라는 말은 없다. 보좌역할 하는 사람과 단순히 서기 일만 하는 사람만으로는 관장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드시 관을 중심으로 요와 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제국시대 관원을 도대체 어떻게 임명하였을까? 황제가 그 수많은 관원의 내막은 고사하고 얼굴조차 일면식 없는 자들을 어떻게 알고 관원으로 등용하고 임명하였는가 말이다.

 

한나라 시기엔 찰거제를 실시하였다. 찰거를 향거리선(鄕擧理選)이라고도 하였다. ‘()’()’의 유교적 덕목에 기초해 현명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대신이나 지방 장관의 추천을 받아 선발하는 제도이다.

 

선발 과정에서 향리(鄕里)에서의 평판과 세론(世論), 곧 향론(鄕論)이 중시되었기에 향거리선(鄕擧理選)이라고 한다. 대신(大臣)이나 열후(列侯), () 자사 등이 추천하는 수재(秀才)’와 군(()의 장관이 추천하는 효렴(孝廉)’ 등으로 나뉘는데, 효렴 출신자의 비중이 높았다.

 

수재(秀才)’는 후한에서는 무재(茂才)’라고 불렀다. 향거리선은 한()이 향촌 공동체의 사회 질서를 기반으로 하여 중앙집권체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위진남북조시기엔 천거제(薦擧制)로서 찰거제를 대체하였다. 천거제는 찰거제 때와 같이 관원으로 등용되는 자가 갖춰야 할 덕목은 비슷하였다. 천거제는 매개 주군 관원들이 몇 품 이상의 관원을 몇 명씩 추천하는 할당제를 실시하였다.

 

추천된 관원이 부정을 저지르면 추천한 관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 뒷문거래를 막기 위함이었으나 연대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죄를 덮는 사례가 많아 역시 부정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찰거제이든 천거제이든 이상적인 인물 적합한 자격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는데 폐단이 많았다. 그래서 수나라 때 생겨난 것이 과거급제제도이다.

 

과거급제제도는 말 그대로 공부한 자가 시험을 통해 합격되어 관원으로 등용되는 제도이다. 문제는 시험과목을 무엇을 기준으로 하며 무슨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가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도 포함되어야 하고 법가의 사상도 있어야 하고 더 멀리 주역도 끼워야 하며 역법지식에도 밝아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사상이다. 유가사상은 사서오경을 위주로 한다.

 

그러니까 과거시험의 주요 내용 7할 정도가 유교경전이 차지하고 나머지 모두 합쳐 3할 정도밖에 안 되었던 것이다.

 

소매가 길면 춤추기 좋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당연히 유생들이 과거시험 참여도가 가장 높을 수밖에 없다. 혹시 도가나 법가에 심취한 선비라 할지라도 출세하려면 반드시 유가에 기울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급제제도를 통해 유생들이 대거 관장에 진출하게 되었고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역사는 조정에서 유생출신 관원보다 황제의 신변에서 맴도는 환관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일례로 당현종이 양귀비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을 때 환관인 고대력사(高大力士)가 황제를 대신해 윤허하고 재가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명나라 시기엔 10만에 달하는 환관도 모자라 조선에서 빌려다 썼다는 기록도 있다.

 

환관들이 아무리 판쳐도 제국의 통치이념은 여전히 유가적인 것이며 유생출신들이 관장을 휩쓴 것은 사실이었다.

 

. 천하위공과 관원대리

 

제국 이전, 예하면 주나라 말기까지 제후국들의 재산은 주나라 왕의 소유가 아니라 각 제후들 및 그 밑에 있는 대부들의 사유재산이었다. 당시 관원이라 말할 수 있는 계층은 대부와 사 두 계층인데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부가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귀족세습제가 가능했던 것이다.

 

재부가 사유재산이면 타락은 있을지언정 부패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사유재산인데 그 재산을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고 부패를 저지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혹시 대부와 사가 주색에 빠져 제가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을 경우 재부를 탕진하여 날려버릴 수 있는데 이는 부화타락이지 부패가 아니다.

 

부패는 제국시대부터 생겨났던 것이다. 제국시대에 진입함에 따라 하늘 아래 전체 모든 재부는 공()가의 소유이다. 이것을 역사에서는 드넓은 하늘 아래 황제의 땅이 아닌 것이 없다(普天之下, 莫非皇土)”고 표현하였다.

 

제국시대 혹시 사유 토지가 있어 매매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관원의 사유 토지를 황제가 몰수할 수 있고 지주 호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사유 토지는 황제를 위해 일하는 아문에서 언제든 맘만 먹으면 몰수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천하의 모든 것은 공가의 소유이다.

 

이것을 역사에서는 천하위공(天下爲公)’라 말한다. 이로부터 정부에서 사무에 관계되는 직종을 공직, 공직에 종사하는 사람을 공무원, 정부에서 만든 문서는 공문, 국가재정에 의해 닦은 길은 공로라고 하였던 것이다.

 

천하의 모든 것이 공가의 것, 천하위공이기 때문에 국가의 구성원인 백성 개개인도 공민인 것이다. 그러나 제국시대 백성은 공민의 권리가 털끝만치도 없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공민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백성은 전부 황제의 신민(臣民)일 따름이었다.

 

어찌되었든 제국의 재부(땅과 백성)가 모양새로 천하위공이기 때문에 그 엄청난 재부를 황제 1인이 절대 다스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황제를 대신하여 다스려 줄 사람이 필요하였고 그 사람들을 관원이라 부르고 황제가 임명하며 임명받은 관원은 황제를 대신하여 맡은 땅과 백성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황제를 대신하는 대리관원이 될 자격이 있을까? 우선 천하의 모든 것이 공가의 것이기 때문에 대리관원이 될 사람은 덕을 갖춰야 한다. 제국시대 겉으로는 유가, 내부적으로는 법가로 천하를 다스리는 외유암법(外儒暗法)이었으나 가장 강조한 것은 덕치(德治)였다.

 

중국인이 조금만 이상한 짓을 하거나 조금만 상식에 어긋난 짓을 해도 결덕(缺德)’라는 말을 곧잘 쓰는 것이 바로 2천여 년 동안 덕치사회를 걸쳤기 때문이다.

 

윤리치국이란 말도 있는데 이덕치국(以德治國)과 쌍둥이형제이다. 게다가 예치와 효렴을 빼놓을 수 없었다. 제국시대 이덕치국과 윤리치국 및 예치와 효렴의 실천자로서 가장 적합한 부류가 바로 유생출신들이다.

 

2132년의 중국제국역사에서 번진(藩鎭)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역모를 꾸민 사례는 수없이 많지만 유생출신 관료들이 반기를 든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 조선왕조가 518년 지속된 비결

 

중국 수나라 시대 때부터 시작된 과거제가 한반도에는 788(신라 원성왕 4)독서삼품과라는 형식으로 전래되었다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고려 시대 초기이다. 958(광종 9)에 광종은 중국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를 시행했다.

 

이는 신분제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던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는 과거제 대신 신분을 기준으로 관직에 진출하는 음서제가 더 융성했다. 또한 문과(문관)와 잡과(기술관)만 시행되고, 군인을 뽑는 무과는 시행되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 와서야 과거제가 일반적인 관직 진출 수단이 되었고, 무과도 시행되었다.

 

학자들은 고려시대 국가통치이념을 불교였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고려 초기부터 실시된 과거제에 의해 유가학설이 선비 층에선 넓고 깊게 스며들었다. 고려 말기 양대 산맥을 이룬 정몽주와 정도전은 모두 유생출신이며 가장 걸출한 학자들이었다.

 

그런데 정몽주는 역성혁명을 목숨 걸고 반대하였는데 반해 정도전은 목숨 걸고 이성계를 도와 역성혁명을 주도한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따지고 보면 정몽주는 왕은 하늘이 내린 것이고 왕족은 대종이며 누구도 대체할 수 없으며 대체하여서도 절대 안 되는 일이다.

 

만약 누가 역성혁명을 일으키면 천벌을 받는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거꾸로 정도전은 고려가 썩을 대로 썩어 맹자의 이상 국가를 실현하려면 반드시 역성혁명을 일으키는 길밖에 없다는 신념을 갖고 조선조를 창건하는데 일등공신으로 역할 하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몽주는 유가의 가장 보수적인 인물이고 정도전은 맹자의 이상 국가를 실현하려는 유가의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역사는 결국 정도전의 손을 들어주어 고려를 뒤엎고 조선조를 창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성계는 무장이고 정도전을 비롯하여 권력층에 포진된 인물들은 거의가 유생출신들이었다. 따라서 왕권을 제약하려고 왕족의 정치참여를 금지시켰다. 단종 때 왕이 어린 탓에 김종서가 천하를 호령하였다.

 

수양대군이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기고 금기를 깨고 정치에 뛰어들었고 결국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에 올랐다. 그 후 전체 조선조를 통 털어 수많은 역모와 반란이 있었지만 왕의 성이 바뀌는 역성혁명은 단 하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원인이 바로 유생들이 천하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생들은 왕도에 붙어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고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한다. 이 목적만 달성되면 더 큰 욕망이 없다. 따라서 왕이 어리석은 짓을 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언행을 하게 되면 사서오경을 들먹이면서 왕에게 한 방 먹이는 것으로 왕권을 제한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 조선조를 통 털어 권력의 중심에는 항상 유생들이 서 있었던 것이다.

 

조선조 초기인 1446년 세종대왕이 백성을 문맹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자 유생집단이 심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만약 백성이 눈뜨면 자신들의 권위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학문을 독점함으로써 유생집단이 영원히 권력의 중심에 서기 위한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제의 경우 본산지인 중국에서는 무릇 하자가 없는 양민이면 전부 시험응시자격을 부여받은데 비해 조선은 양반 자식만, 그것도 양반의 적자만 시험응시자격을 부여받았다. 이는 권력을 소수양반층이 독점하여 조정을 쥐락펴락하고 왕권을 제한하여 자신들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현 관료집단에 불만을 품고 조선시대 선비들은 대쪽 같이 자신들의 할 말을 다 했고 정의를 주장하고 수호한 인물 또 청렴하고 도덕적이고 아무튼 한 입으로 자랑하기엔 모자라는 것 같다.

 

요즘 관료사회와 조선조의 관료사회는 차이가 엄청 크다. 우선 조선조의 관료사회에 진출하려면 도덕적이고 사리가 밝아야 한다. 요즘 세월엔 도덕을 우선시 하지 않는다. 무슨 학교를 나왔고 이력이 어떻고 무슨 공적이 있고 사회인맥이 어떻고, 이를 기준으로 선발한다.

 

또 예전엔 재부가 많지 않아도 부끄러울 것이 없고 청렴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겼지만 요즘은 경제시대라 금전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만치 재부가 중요한 사회로 변질하였기에 청렴을 크게 보지 않는다. 따라서 도덕이니 윤리이니 하는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세상사가 동전의 양면처럼 절대적인 것이 없는 것처럼 조선조의 선비도 공부하여 과거제를 통해 관료사회에 진출하기까지 굉장히 도덕적이고 정의적이고 대바르지만 일단 관장에 발을 담그면 파벌정치에 휘둘리어 사리사욕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또 자신이 모시는 직접 상관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모른 체하다가 나중에는 한통속이 되어 함께 부정을 저지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고 매사에 너무 정직하고 정의적이면 정계 및 관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정치와 권력이란 본래 치사스런 것이다. 내가 살려면 상대를 죽여야 하는 것이 정치의 생리이므로 정치의 중심에 선 선비라 하여 마냥 정직하고 정의적일 수 없다.

 

개별적으로 해서(海瑞)와 같은 관원이 조선조에도 있었지만 이는 극히 드문 일이고 또 다수 관원들이 본받을 우상도 아니었다. 선비출신의 다수 관원들은 역사가 평가하는 것처럼 대쪽 같은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들도 관장에서 권력을 부여잡고 생존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전반 글의 내용을 한마디로 마무리 지어 말하자면 선비는 털이고 권력은 가죽이다. 털은 가죽에 붙어야 생존한다. 털은 가죽을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선비는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자신들의 생존무대가 사라질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물론 글 가르치는 훈장 선비도 있고 모든 선비의 역할이 반드시 권력과 유착된 것은 아니지만 큰 들에서 말하자면 한무제 이후 중국역사와 조선반도 조선시대를 살펴보면 선비사회가 권력과의 유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이와 같은 맥락을 짚어내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김정룡 프로필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장춘대학교 일본어학부 전공

 -연변제1교 일본어 교사 역임

 -著書)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

 <멋 맛 판> 2015

 -著書)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

 <천국의 그늘> 2015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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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02 [22:19]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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