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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9.21 [17:02]
‘삼포능자 모국인 설국…오롯이 겨울 하루'
(POET VIEW) 林 森 '겨울이 소리지른다
 
림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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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bay.com      




 

겨울이 소리지른다

 

 

 

 

  

 林  森

 

  

겨울이 지르는 저 소리 들어보라

 

지난밤 한 쪽 끝 잡고

울울창창 쌓인 무서리,

그 하이얀 어름의 가으로

글썽여 깃내린 겨울 숨소리

 

두려워 떨며 갈 길 바삐 가다가

혹여 날갯죽지 보듬는 손길에도

따사로운 입김 스며 붙어질세라

사린 몸뚱아리 물씬 적시면서

 

저 바람이 이제 나 쉬라 하네

 

영영토록 흠결없는 기억의 요람에서

살폿 눈 감아 상흔 치유하며

발 동동 기둘린 겨울밭,

강팍하고도 스스로 야속하더니

 

소망이란 제목 붙여

오롯이 익어가는 겨울하루

참 무던히도 깊구나,

살떨리는 목소리 그윽한 메아리치듯

 

홀로이 깨어나 듣는 소리가

때론 우뢰되고, 폭포되고, 회오리되어

놀라웁게 마음 흠뻑 적시거든

맨 발인 채 껑충 나서보라

 

샤갈이 살던 눈의 마을이나

삼포능자 모국인 설국에서도

길 잃고 헤매이다 실종된 나의 겨울

결국 내 안에 살고 있었거늘

 

소리지르는 겨울뜨락으로,

바닥 보여지는 겨울하늘로,

발밤발밤 헤아려 거닐지니

겨울 깊기도 전 하마 다시 그리운

 

나 이제 어이할꼬?

 

 

 詩作 note

!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 해가 밝았다. 정초의 하루가 열리어졌다. 과시 대망의 태양이 온 누리를 밝게 비추면서 떠올랐다. 이제 어쩔 건데? 뭘 어찌 할 건데? 마치 새 해만 되면, 묵은 해의 모든 근심 사라지고, 쌓였던 울분은 다 풀리고, 켜켜이 쌓인 세속의 때 죄다 벗겨지고, 오로지 소망과 꿈의 날들만 이어질 줄 알았지? 그래서 그렇게, 그토록 처절하게 새 해가 밝아오길 기둘렸던 거잖아? 그러니까, 그래서 정작 이제 네 앞에 열렸다고요, 새 해가....

 

머쓱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경자년 새 날을 맞이했다. 다른 날들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그래서 역시 따분하고 잡다한 잡념들 사이로, 딴에는 제법 상큼한 맛으로 떠오른 건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쯤은 느낌 다른 햇살을 맞으며, 아주 조금은 설레는 기분으로, 조심스레 눈을 뜨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여 김 샐세라, 조심 조심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세상에서, 새 해의 새 햇살이 빼꼼이 고개 들이밀며 필자를 반긴다. 그래! 허기사 별 다를 게 무에 있는감? 이렇게 여느 날처럼 그냥 뒷통수 근질이며 햇살은 여전히 종종 걸음으로 채근하는 거지, .

 

겨울의 한 가운데서 소리지르는 계절의 호통소리에 화답하면서, 변함없는 일상의 수레바퀴 돌리기 시작하라는 시계추의 신호에 맞춰, 부지런히 채비 갖추고 길을 나선다. 오늘도 지축을 흔드는 인류의 몸부림이 예서 제서 거친 콧김 뿜어내며 시작되는 아침이다. 경자야! 올 한 해 잘 좀 부탁한다. 제발 꼬인 일 좀 잘 풀어주고, 대박은 못 되더라도 쪽박은 차지 않도록 길잡이도 좀 잘 해주고, 남들보다 훨씬 더 나은 성공은 바라지도 않으니 그저 실패와 좌절의 나락 만큼은 피해갈 수 있는 혜안을 만들어주렴. 그래서 한 해가 다 가고, 되돌아보는 시점에 후회와 회한만 남아 한숨 짓지 않도록 잘 좀 봐주라, 어여쁜 경자야!

 

도행역시(倒行逆施)’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도행역시는 몇 해 전, 그러니까 2014년도 교수신문이 뽑았던 사자성어다. 목하 새 해가 전개되는 이즈막이지만 새삼 이 뜻을 새겨보고 싶어졌다. 불경기에 회사의 사장은 힘들어도 견디지만, 직원은 힘들면 사표를 낸다. 연인은 불쾌하면 헤어지지만, 부부는 불쾌해도 참고 산다. 원인은 한 가지 일에 대한 책임감과 압력이다.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수영장 바꾼다고 해결 안 되고, 일하기 싫은 사람은 직장을 바꾼다고 해결이 안 되며, 건강을 모르는 사람은 비싼 약을 먹는다고 병이 낫는 게 아니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바꾼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내 자신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내 자신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내 자신이며,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내 자신이다. 내가 변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 내가 빛이 나면 내 인생은 화려하고, 내가 사랑하면 내 인생은 행복이 넘치며, 내가 유쾌하면 내 인생엔 웃음꽃이 필 것이다. 매일 똑같이 원망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면, 내 인생은 지옥이 될 것이다.

 

내 마음이 있는 곳에 내 인생이 있고, 내 행복이 있다. “화내도 하루”, “웃어도 하루”,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똑같은 하루”, 기왕이면 불평 대신에 감사를..!! 부정 대신에 긍정을..!! 그렇게 스스로에게 제언을 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확실한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하루를 천년처럼, 천년을 하루같이, 늘 일관된 마음으로, 시종일관 변함없는, 그런 무욕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 쓰는 올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사실 우리가 언제 떠날지 서로의 헤어짐은 몰라도, 인생길 가다보면 서로 만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애절한 사연 서로 나누다 인연 다하여 갈랫길로 돌아서면, 어차피 헤어질 사람들인데, 왜 그리 못난 자존심을 세워가며, 인색한 용서와 모자란 이해심으로 화합하지 못하고, 비판하며 미워했는지 모르겠다. 아낌없이 사랑하며 살아도 짧고 짧은 시간들인데, 베풀어주고 또 줘도 결국은 두 손 안에 남을 것들인데, 한 줌도 안 되는 욕심으로 무거운 짐만 지고 가는 고달픈 나그네 신세인 걸 왜 모르고 살았는지, 돌아보면 참으로 한심스럽다.

 

무거운 권력의 옷도, 화려한 명예의 옷도, 자랑스런 고운 자태도, 그 날이 오면 다 벗고 가는 것은 인지상정, 따뜻이 서로를 위로하며 보듬어주고 살아야 하는 건데, 왜 그리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더 사랑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면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한 삶들이다. 천년을 산다고 그러할까? 만년을 살면 그러리오? 사랑한 만큼 사랑받고, 도와준 만큼 도움받을 것인데,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만 몸부림 쳤던 부끄러운 나날들, 서로 아끼고 사랑해도 허망한 세월인 것을 왜 몰랐던지, 역시 느낄수록 부끄럽고 민망할 따름이다.

 

어차피 인생의 한 나절에 이 언덕만 넘으면 모두 헤어질 것을, 미워하고 싸워봐야 상처 난 흔적만 누덕누덕 달고 갈텐데, 이제라면 더불어 살아 있고, 오로지 곁에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사랑해야겠다. 언젠가 우리는 다 떠날 나그네들인 것을, 뒤 돌아보는 여유로움과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우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들로 고뇌와 번민이 제법 깊어지는 정초의 하룻날이다.

 

우리 마음이 순결하다면 얼마만큼 깨끗할 수 있을까? 우리 생각이 의롭다면 얼마나 높이 의로울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 추수가 끝난 빈 들에서 남아 있는 이삭들. 그 이삭을 줍듯이 순결과 의로움과 사랑의 이삭이라도 주워 그것으로 빈 가슴을 채우고 살아가기를 바랄뿐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우리가 참을 수 있다면 어떤 일까지 참아낼 수 있을까? 우리에게 멀리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먼 앞 날의 일까지 알 수 있을까? 편지를 길게 쓴 다음 깜빡 잊은 것이 있어 덧붙이는 추신처럼, 기다림과 인내와 지혜의 작은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마음에 평안이 있다면 얼마나 잔잔해질 수 있을까? 우리에게 감사가 있다면 얼마나 깊이 감사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기쁨이 있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기뻐할 수 있을까? 하루의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 잠시 펼쳐지는 서쪽 하늘의 노을처럼, 평안과 감사와 기쁨을 잠깐씩이라도 내 가슴에 펼치면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에게 희생할 일이 있다면 무엇까지 내어놓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용서가 있다면 어떤 사람까지 용서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겸손이 있다면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을까?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같이 연약한 우리들이기에 희생과 용서와 겸손의 작은 촛불이라도 켜, 내 주위를 단 한 뼘이라도 밝히면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가족이 아버지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계획을 짰다. 엄마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고, 큰 아들은 집안 청소, 딸은 집을 멋지게 장식하고, 작은 아들은 카드를 그리기로 했다. 드디어 생일날 아침, 아버지가 직장에 나가자 엄마와 아이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버지는 점심 때 돌아왔다. 부엌에 가서 아내에게 물 좀 달라고 했다. 음식준비에 여념이 없는 엄마가 말했다. “나 지금 바쁘니까 직접 따라 드실래요?”

 

거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큰아들에게 부탁했다. “아버지 실내화 좀 갖다주렴?” 그러나 큰아들이 대답했다. “저 지금 바쁜데 아버지가 갖다 신으세요.” 아버지는 할 수 없이 그렇게 했다. 아버지가 집안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있는 딸에게 말했다. “담당의사에게 전화 좀 해서 아버지가 평소에 먹던 약을 처방해 달라고 해주렴.” 딸이 대답했다. “저 지금 바쁘니까 아버지가 직접 하세요.” 아버지는 힘없이 그러지.” 하고 말하고는 이층 침실로 올라갔다.

 

그 때 작은 아들이 자기 방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뭐하니?” 하고 아버지가 물었다. 작은 아들은 아무 것도 안 해요. 근데 아버지, 저 혼자 있고 싶으니까 문 좀 닫고 나가 주실래요?” 한다. 아버지는 침대에 가서 누웠다. 드디어 저녁때가 되어 파티를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침실에 들어가 아버지를 깨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랑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사랑하자. 내일 사랑하겠다고 하면 늦어질 수 있다. 오늘 사랑하자. 지금, 당장...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그리고 나중이 아닌 오늘, 가족을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여기자. 부모를 공경하고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며, 자녀들에게 모범으로 솔선수범하자. 그것이 새 해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작은 마음이다. 그것이 큰 행동이다. 가장 위대한 시작이다.

 

가슴을 잔잔히 울리는 꽁트 하나 소개한다.

 

-우리 부부는 조그마한 만두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 중에, 어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셨습니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합니다.

 

두 노인은 별 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고,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대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요?” “부부가 뭐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날까?”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요?”

 

부부 같진 않아.”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쳐 본의 아니게 헤어졌다. 그런데 몇 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서로에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서로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한단 말이지?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눈빛으로 미루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 번 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 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은 어쩔 수 없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어깨를 들먹거렸습니다.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놓은 채 자리에서 그냥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 까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 감싸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 두 노인의 모습이 웬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보다는 두 노인의 걱정이 앞섰습니다. 우산도 없을텐데...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지를 않는 겁니다.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노인에 대한 생각이 해묵은 사진첩의 낡은 사진처럼 빛 바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그게 사람인가 봅니다. 자기와 관계없는 일은 금방 잊혀지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3시에 할아버지가 다시 나타난 겁니다. 좀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웃어보였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시는 겁니다.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랬습니다.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너무 안타까워서...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 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 아들 집에 사셨답니다. “두 분이 싸우셨나요?” 할아버지께 조심조심 물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며느리들 끼리 싸웠답니다. 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부모를 모실 수가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 쪽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 분씩 모시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난 거랍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셨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우리는 또 다시 천국에선 같이 살 수 있겠지...”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습니다. 할아버지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습니다. ‘노년빈곤(老年貧困)’이란 말이 있습니다. 노년의 빈곤은 노추(老醜)를 불러 불행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부모는 자식이 내미는 그 손에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주면서, 애벌레가 성충으로 크도록 애정으로 돌봅니다. 그리고 껍질만 남은 곤충처럼 되어버립니다. 그러면서도 부모는 자식의 손에 더 많은 것을,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합니다. 세월이 흘러 부모는 늙고 힘도 없어지고, 이제 부모는 가진 게 없습니다. 이미 너무 늙어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몇 푼의 용돈을 얻기 위해 자식에게 손을 내밉니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 마음 같지가 않습니다. 부모의 내미는 손이 보기가 싫은 것이지요. 자신에게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내미는 손에 부모는 섬으로 전부 주었건만, 자식은 부모에게 홉으로 주는 것마저 부담스럽게 느낍니다. 우리는 이러지 맙시다. 모두들 정성을 다해서 부모 사랑 하십시다.-

 

정초부터 왜 이렇게 울적한 내용으로 시작노트를 적어나가는 거냐고 혹자는 힐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냥 내용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작은 떨림에서도 큰 공명을 울릴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연을 맺게 되고, 또 그 인연들이 필연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악연이 되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한다.

 

우선은 노크의 법칙이다. 상대의 마음의 문을 열려면 먼저 노크를 하자. 그리고 나에 대해 알려주자. 내가 먼저 솔직한 모습, 인간적인 모습,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면 상대방도 편안하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두 번째는 거울의 법칙이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내가 웃어야만 거울 속의 내가 웃듯이 인간관계도 내가 먼저 웃어야 한다. 내가 먼저 관심을 갖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법칙이다.

 

다음은 상호성의 법칙이다.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 싶으면 먼저 호감을 가져야 한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좋은 감정을 갖고 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네 번째는 로맨스의 법칙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인간관계에서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으면 이런 이중 잣대를 버리고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짚신의 법칙이다. 짚신에도 짝이 있듯이 사람마다 맞는 짝이 있기 마련이다. 싫은 사람과 억지로 친해지려고 애쓰지 말자. 인간관계가 많다 보면 악연이 생기기 쉽다. 모든 사람을 친구로 만들려 하지 말고 나와 통하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연을 구하고 악연을 피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잘 하는 방책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고 편안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만드는 핵심비결이다.

 

이를 위해 상대방의 입장, 상황, 감정을 잘 헤아릴 수 있는 공감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인간관계는 공감의 법칙이다. 좋은 관계를 만들려면 먼저 웃어주자. 그리고 나에 대해 알려주자. 그리고는 호감을 갖고 대하자. 억지로 사귀지 말고 통하는 사람을 찾아보자. 함께 있을 때 즐겁고 편안한 사람이 되자. 마음의 문을 열고 싶으면 노크를 하자. 좋은 관계를 통해 성공과 행복을 이뤄갈 수 있도록, 더 많이 공감하고 배려하는 힘찬 한 해를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도록 해보자. 지금부터 새 해가 시작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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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03 [01:05]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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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20/01/03 [08:28] 수정 삭제  
  인간관계는 “공감의 법칙”이다. 좋은 관계를 만들려면 먼저 웃어주자. 그리고 나에 대해 알려주자. 그리고는 호감을 갖고 대하자. 억지로 사귀지 말고 통하는 사람을 찾아보자. 함께 있을 때 즐겁고 편안한 사람이 되자. 마음의 문을 열고 싶으면 노크를 하자.
청산 20/01/03 [08:50] 수정 삭제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배둘레햄 20/01/05 [21:03] 수정 삭제  
  인간관계가 많다 보면 악연이 생기기 쉽다. 모든 사람을 친구로 만들려 하지 말고 나와 통하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연을 구하고 악연을 피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잘 하는 방책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고 편안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만드는 핵심비결이다.
노트북 20/01/06 [10:51] 수정 삭제  
  부모는 자식이 내미는 그 손에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주면서, 애벌레가 성충으로 크도록 애정으로 돌봅니다. 그리고 껍질만 남은 곤충처럼 되어버립니다. 그러면서도 부모는 자식의 손에 더 많은 것을,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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