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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7.14 [05:38]
<고대 세계사> 옛 레바논의 영광 ‘두로와 시돈’(하편)
 
소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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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 무역! 자주색 염료와 유리제품 자자한 명성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와 애굽 연결하는 요충로

 

고대시대 주변 강대국 잇단 침략로마시대까지

신약시대 예수의 수로보니게 여인생생히 기록

 

▲ 자주색 염료와 유리제품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베니게(두로와 시돈)는 당시 조선술과 금, , 주석, 구리 등의 중계무역으로 지중해의 해상로를 장악했다 

 

화려했던 두로와 시돈의 영광

 

자주색 염료와 유리제품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베니게(두로와 시돈)는 당시 조선술과 금, , 주석, 구리 등의 중계무역으로 지중해의 해상로를 장악했다. 이들 민족은 당시 땅 끝이라 불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까지 무역로 확장했다.

 

그들은 바다에서 채취한 뿔고동으로부터 당시 왕족이나 부자들이 즐겨 입는 자색옷의 염료를 추출해 내어 막대한 소득을 올렸고, 시돈 해변에 널려있는 규석 성분이 많은 모래를 녹여 고가의 유리제품을 만들어 수출함으로써 눈부신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무수하게 발견된 뼈고둥 껍질의 거대한 패총(貝塚)은 자색 염료 공업이 고대 시돈의 중요 산업이었음을 여실히 입증한다. 자색 염료는 뼈고동을 통해 채취되었는데, 1만개의 뼈고둥을 벗겨야 겨우 1g 정도의 염료를 얻을 수 있었다 한다. 당시 자색 염료는 금값 이상으로 이집트에 수출되었다.

 

또 하나의 명물로는 규석 성분이 다량 함유된 모래의 주산지로서 세계 최초로 유리 만드는 기술을 확보한 민족이다.

      

드라마틱힌 두로의 흥망성쇠

 

▲ 두로인들은 해상무역의 융성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적들의 침략에 대비하여 국방을 강화하는 한편,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다     


시돈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항구가 바로 두로
(Tyre)이다. 두로는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 소아시아, 애굽을 소통시키는 교통의 요충지요, 무역의 중심 거점이었다. 시돈에서 남쪽으로 40여 킬로 남쪽으로 내려간 곳에 자리 잡은 두로의 현재 지명은 수르(Sur)이다.

 

레바논의 시돈에서 남쪽으로 약40되는 곳에 소재한 항구도시 두로이스라엘 국경에서 불과 20의 짧은 거리에 위치해 있으나 이스라엘에서 레바논으로의 국경이 없어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거치거나 요르단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

 

옛날에는 두로가 외딴 섬으로 되어 있어서 전략상 난공불락의 요새지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토사로 메꾸어져 육지와 하나가 되어 있다.

 

두로인들은 해상무역의 융성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적들의 침략에 대비하여 국방을 강화하는 한편,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다 네가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가 극하였도다.”(에스겔 27:25)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두로가 BC 2,800년 경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두로는 동 지중해 연안에서 패권을 누렸던 것만 아니라 그 세력은 멀리 북아프리카, 대서양, 아이슬란드에까지 미쳐서, 두로 왕의 여동 디도는 기원전 814년에 현재의 튀니지에 식민지 카르타고를 건설했다.

 

그 카르타고는 다시 몰타섬, 사르디니아섬,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 전역을 식민지를 만들고, 북아프리카 일대까지 지배력을 뻗쳤으나, 마침내 로마와의 3차례 포에니(Punic Wars) 전쟁으로 인하여 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두로를 카르타고의 어머니라고 불리었다.

 

▲ 시돈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항구가 바로 두로(Tyre)이다. 

에스겔서 26장에는 두로의 멸망에 대하여 예언되어 있다.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여 바다가 그 파도를 굽이치게 함 같이 여러 민족들이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그들이 두로의 성벽을 무너뜨리며 그 망대를 헐 것이요”(에스겔 26:3-4)

 

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들에는 곳도 없음이요 이 소식이 깃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라,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으리로다.”(이사야 23:1, 5)

 

이사야는 지금 무역 거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베니게의 선원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선지자가 그들에게 슬피 부르짖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 슬픔이 두로뿐 아니라 그들의 무역 상대국인 다시스와 애굽의 깃딤에까지 미쳤다고 한다. 다시스와 깃딤은 베니게 사람들이 항해하던 뱃길 양쪽 끝을 말한다.

 

두로에서 떠난 무역선은 항구를 떠나 키프로스를 거쳐서 다시스(스페인)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두로가 황폐하게 되어버려, 두로에는 더 이상 머물 곳도 없고 닻을 내릴 항구도 없어졌다는 슬픈 소식이 수천키로미터 떨어진 스페인까지 들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또한 두로가 황폐해지고 버려졌다는 소식에 곡물을 수출하던 애굽 사람들도 가슴 아파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시돈아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가운데서 내 영광이 나타나리라 하셨다 하라. 내가 그에게 염병을 보내며 그의 거리에 피가 흐르게 하리니 사방에서 오는 칼에 상한 자가 그 가운데 엎드러질 것인즉”(에스겔 28:22-23)

 

두로는 에스겔과 예레미야의 경고적 예언에도 불구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고 바벨론에 대항했다가 13년간 성을 포위한 느부갓네살 원정군에 의해 예루살렘과 함께 완전히 초토화되고 말았다.

 

▲ 역사적으로 보면, 두로와 시돈은 앗시리아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이어 바벨론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고, 다음으로 페르시아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고, 연이어 그리스와 로마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영국 대백과사전은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13년 동안(BC 585-573) 포위되었던 두로는 마침내 침몰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바벨론 제국이 유다를 초토화 시킬 때에 두로는 동시에 비참한 종말을 맞고 무역의 왕자 자리를 시돈에게 내주었다.

 

플로이드 해밀톤(Floyd Hamilton)은 주전 4세기에 일어난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가신으로 있었던 시돈은 BC 351년에 페르시아 왕을 반역하자, 페르시아는 시돈을 전격 침공한다. 시돈 사람들은 페르시아 왕의 보복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 줄 알았기에 40,000명의 시민이 자신의 집들에 불을 질러 자살을 하였다. 정말로 그의 거리에는 피가 흐르게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셨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태복음 11:21)

 

갈릴리 고라신(Korazin)이나 벳새다(Bethsaida)역사적으로 이 도시들이 성경 예언대로 멸망되었음을 정확히 증명할 수가 있다. 조지 데이비스(George Davis)는 그의 책 바이블의 예언과 성취에서 가버나움이 AD 400년경에 지진으로 멸망 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고라신과 벳새다도 그때 멸망되었다.

 

BC 332년 알렉산더의 공격이 이어졌다. 역사가 필립 마이어스(Philip Myers)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알렉산더 대제의 공격은 두로가 멸망되기까지 계속되었다. 한때 크게 번창하였던 그 땅은 이제 바위의 표면처럼 썰렁해졌고, 지금과 같이 어부들이 그물을 펼쳐서 말리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바닷속으로 제방을 쌓은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 군대에 의해 함락되어 3만 명은 포로로 끌려가고 2천여 명의 지도자들은 두 손을 묶인 채 목베임을 당하였다.

      

두로보다 앞선 시돈의 흥망성쇠

 

▲ 페니키아의 전성기 초반 즉 기원전 12세기 말에서 11세기까지의 시기는 두로보다 시돈이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앗시리아 왕 티글라트 필레세르(Tiglath-Pileser) 1세의 비문을 보아도 시돈의 우위는 명확했다.   


오늘날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방 약
48지점에 위치한 지중해안 항구도시 시돈(Sidon)’은 고대 페니키아(Phoenicia, 성경은 베니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BC 3,000년대에 역사에 등장하면서 그 후 1,000년 동안 번영했다.

 

시돈은 두로와 같이 동 지중해 연안에서 제일 큰 항구이다. 현재는 그곳을 사이다(Saida)라고 부르는데, 레바논 지역의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이다. 시돈은 낚시란 의미로 페니키아 시대의 바이블로스, 두로와 함께 3대도시의 하나로 중요한 해상진출의 요충지였다. 다리우스에서 BC 6세말엽 까지는 페르시아 5총독의 수도였다.

 

두로(Tyre) 북쪽 약 40지점에 있는 이곳 시돈 항구는 성경에서 매번 두로와 같이 소개되기 때문에 베니게(페니키아)의 쌍둥이 항구라고 일컫는다. 초기에는 소위 두로의 어미 시돈이라 할 만큼 두로에 비해 훨씬 앞섰다.

 

시돈이 역사의 무대에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득히 먼 옛날 노아 홍수가 있고 난 직후였다. 시돈은 노아의 증손자이다. 창세기 기자는 시돈을 노아의 손자인 가나안의 장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10:15) 그리고 가나안은 부친되는 의 넷째 아들이었다.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앞서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창세기 10:6, 9:18)

 

지금의 레바논 해안가를 따라 지중해를 넘나든 해상무역국가 국가를 이르었다. 아마도 시돈의 어버지인 가나안은 주전 4천년 경에 세운 바벨탑이 무너진 후 가족들을 이끌고 이곳 해안가로 와서 성읍을 만들고 장자의 이름을 붙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 시돈은 두로와 같이 동 지중해 연안에서 제일 큰 항구이다. 현재는 그곳을 사이다(Saida)라고 부르는데, 레바논 지역의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이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모세는 장차 이 땅의 기업을 이어갈 스불론 지파가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신명기 33:19)라고 예언하였다. 이 예언대로 시돈인들은 바다와 모래로부터 엄청난 부를 얻어 번영의 시대를 열어나갔다.

 

현재 이곳은 알자누브(남레바논) 주의 행정 중심지이자 어업과 교역의 요충지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부터 연결된 길이 1,720의 트랜스아라비아 송유관의 지중해 쪽 종착역으로서 대형 저유 탱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시돈은 같은 해변에 위치해 있었지만, 좀 더 오래된 성읍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두로가 시돈의 식민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딸이 자라서 어머니보다 훨씬 더 부유하고 더 많은 것을 이룬 것처럼 나중에는 두로가 더 번영하게 된 것이다.

 

페니키아의 전성기 초반 즉 기원전 12세기 말에서 11세기까지의 시기는 두로보다 시돈이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앗시리아 왕 티글라트 필레세르(Tiglath-Pileser) 1세의 비문을 보아도 시돈의 우위는 명확했다.

 

물론 두 도시 다 통상 의존도가 높지만 섬에 시가지를 두고 내륙 운송로는 하나 밖에 없는 두로가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비옥한 해안평야와 여러 개의 내륙 운송로를 가진 시돈이 위기를 더 잘 견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협력으로 돌파구를 연 두로는 기원전 11세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시돈을 제치고 주도권을 장악한다. 에게해-그리스 일대에서 발굴되는 토기 등도 두로 쪽이 훨씬 많아진다. 이후 건설된 페니키아 해외 식민지의 대부분이 두로의 작품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원전 9세기에 이르러 두로의 해상 통상제국은 점점 확대되어 갔고, 마침내 90년에 걸친 히람 왕조를 대신하여 왕위에 오른 에드 바알 1(기원전 887-856 재위)는 시돈의 왕까지 겸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두로를 중심으로 한 페니키아 연맹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한편, 리비아 등에 식민도시를 만드는 등 해외진출에 더욱 박차를 가해 전 지중해를 사실상 페니키아의 바다로 만들기에 이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두로와 시돈은 앗시리아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이어 바벨론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고, 다음으로 페르시아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고, 연이어 그리스와 로마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 두로인들은 해상무역의 융성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적들의 침략에 대비하여 국방을 강화하는 한편,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다    

 

신약시대!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역지

 

신약 시대!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저주와 멸시의 땅인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두로와 시돈은 이스라엘과 상관없는 베니게에 속한 이방이었다.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마가복음 3:8)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시돈과 두로를 찾았다. 이때 가나안 여자는 인종적·문화적·종교적 차별과 멸시를 당했을 뿐 아니라 가정적인 불행과 비극과 슬픔을 당하며 절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흉악히 귀신이 들린 자신의 딸을 치유해 달라고 간청하는 불쌍한 가나안 여자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가나안을 베니게라고도 하는데 그 여자는 수리아 지방의 베니게 족속인 즉, 수로보니게(Syro-phoenciar) 족속에 속한 이방 여자였다.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베니게와 구별하기 위하여 이렇게 부른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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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25 [23:50]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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