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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3.02 [14:29]
손경순 ‘아무것도 모르는 노예’(4회)
“인간 이솝! 우화를 싣고 사막을 걷다”
 
손경순 작가
▲ 손경순작가     

노예들의 여행이 모두 끝나고 수학자 피타고라스의 고향으로 유명한 사모스에 들어왔을 때, 노예들은 서로 좋은 곳으로 좋은 값으로 팔려나가기를 기원하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노예상인은 여행이 끝난 후에 언어학자와 가수와 이솝만은 함부로 업신여기지 못했다.

 

기원전 6세기 중엽의 사모스섬의 항구도시 사모스 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이오니아 문명의 중심지였다, 사모스는 지형적으로 이오니아와 그리스 본토를 잇는 교역로를 차지하고 있어 동서양의 문물이 만나는 무역도시로서 중개무역이 매우 활발하였다.

 

노예상인은 사모스 항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규모가 매우 큰 노예시장에 자리잡았다.

 

사모스에 이아드몬이라는 철학자가 살고 있었다.

이아드몬은 연설을 잘하는 철학가로 이름이 난 만큼 논리학과 수사학을 배우려는 제자가 몰려들어 벌이가 제법 짭짤했고, 사모스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친정이 부자인 이아드몬 부인은 성격이 까다로웠다. 사사건건 타박이 많았는데, 특히 남편에게 더욱 심했다. 마치 자기가 여신인 것처럼 남편이 늘 자기만 바라보면서 충성하기를 바랐다. 대화 중에 남편이 공감을 소홀히 하거나 건성으로 웃으면 가타부타 말없이 친정으로 돌아가 버려서, 아내가 왜 화를 내는지 알지 못하는 남편에게 애를 먹이곤 하였다.

 

이아드몬은 아내의 생일이 다가오자 고민이 되었다. 부인은 웬만한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이십 년 동안 비싼 생일선물을 사주고도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아드몬은 집사와 함께 동양에서 온 색다른 물건을 찾기 위해 항구의 큰 시장으로 나갔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이아드몬은 사람들이 모여서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아드몬은 진열대 위에 나란히 서 있는 세 명의 노예를 보았다. 깨끗하게 차려입고 점잖아 보이는 중년의 남자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작은 리라를 안고 있는 젊은이 사이에, 고깔모자를 눌러쓰고 옷 대신 낡은 푸댓자루를 뒤집어쓴 작고 못생긴 노예가 석상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사람들은 거룩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석상처럼 서 있는 가운데 노예에게만 눈길을 주며 웃고 떠들었다. 노예상인이 다가가서 툭툭 건드려보기도 하고 눈을 찌르는 듯한 시늉에, 움찔 놀라 자세를 바꾸며 푸댓자루 노예가 움직일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 뭐든지 다 알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노예상인은 양쪽의 두 상품이 돋보이도록, 가운데 노예에게는 일부러 허접한 푸댓자루를 입혔다. 양쪽의 아름다운 두 노예를 비싼 값에 팔기 위한 작전이었는데, 푸댓자루 노예 덕분에 손님을 끄는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물론 그 작전은 푸댓자루를 뒤집어쓴 이솝이 낸 것이었다.

 

이아드몬이 의젓해 보이는 중년의 노예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잘할 수 있소?”

 

난 언어학자요. 이 도시에서 사용되는 언어 중에 내가 모르는 언어는 하나도 없소. 고대 언어에서 중국어까지. 다른 것도 역사든 뭐든 다 물어보시오. 난 모르는 게 없소.”

 

언어학자는 말은 정중했지만 자랑스러운 듯 당당하게 말했다. 정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자신에 찬 표정이었다.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며 힘찬 박수를 보냈다.

 

이아드몬은 이번에는 아름다운 젊은이에게 물었다.

네가 잘하는 것은 무엇이냐?”

 

질문을 받은 젊은이는 리라를 퉁기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저는 무슨 노래든 다 잘할 수 있습니다. 지금 부른 노래는 죽은 아도니스를 애타게 부르는 아프로디테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때였다. 갑자기 석상처럼 가운데 서 있던 푸댓자루 노예가 낄낄낄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크지는 않았지만 뱃속깊은 울림이 특이해서, 모두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웃음소리는 금방 멎었고, 노예는 다시 석상으로 돌아갔다. 이아드몬은 푸댓자루 노예를 보았다.

너는 무얼 할 줄 아느냐?”

 

노예는 아무 말 없이, 제법 긴 시간을 눈을 들어 먼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너는 무엇을 할 줄 아느냐고 묻지 않느냐?”

“......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 ?”

 

뭐든지 다 알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이아드몬은 이솝을 보았다. 푸댓자루를 뒤집어쓴 노예의 몰골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궤변론자들도 이 상황에서 저렇게 자기를 잘 표현할 수 없으리라 싶어 놀라울 뿐이었다.

 

“5개 국어를 하는 언어학자는 3천 오볼을 주십시오. 충분히 그 값을 할 만한 노예입죠. 절대로 비싼 값이 아닙니다. 가수는 쌉니다. 겨우 백오십 오볼입니다. 나리께서 울적하실 때나 잔치 자리에서 그 값을 충분히 인정하시게 될 겁니다. 보기에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언어학자나 가수 중 어느 하나를 사면, 가운데 노예를 덤으로 공짜로 얹어드리겠습니다.”

좋소. 그러면 난 저 푸댓자루를 살 테니, 가수를 덤으로 주시오.”

사람들이 이아드몬의 말을 듣고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가수는 덤이 아닙니다. 가수를 데려가려면, 이 노예 값으로 백오십 오볼을 주십시오.”

이아드몬은 흥정 끝에 푸댓자루 노예를 60오볼에 샀다. 언어학자는 3천 오볼에 팔렸다.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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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1/26 [22:51]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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