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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3.02 [14:29]
“떡집에서 쌀 익는 냄새도 아침뿐이다”
<이춘명칼럼>이춘명 ‘냄새 없는 재래시장’
 
이춘명 칼럼니스트

떡집에서 쌀 익는 냄새가 줄어들었다.

 

▲ 이춘명 칼럼니스트

떡집에서 쌀 익는 냄새가 줄어들었다. 지난해 설날에 다시 만나자 하고 손 흔들던 사촌 형제들이 한 바퀴 돌고 돌아 온 새해 첫 날 각자의 집에서 손가락으로 만나고 있다. 영상으로 얼굴을 보거나 계좌 번호로 세뱃돈을 보내고문자로 가장 예의바른 인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 온 층층시하에서 전 날부터 부엌대기로 일하면서 불평불만을 하던 여자들이 우아한 세배를 하는 모습을 전송하고 있다. 5인 이상 식사가 제한된 사회 덕으로 느긋한 연휴에 즉석 식품을 뜯거나 배달 음식으로 눈치 보지 않는 이상하리만큼의 편한 명절 연휴이다. 냄새 없는 시장과 같이 냄새 없는 집이다.

 

하루 몇 번씩 상차림과 설거지를 번갈아 하고 뒷정리를 하면서 하루 종일 냄새 풍기는 명절은 정확하게 핵가족 문화로 넘어가고 있다. 식당에서 한자리에 앉기 위해 등본을 제출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가 되었다.

 

쉽게 오라고 부를 수 없는 부모와 큰집으로 몰려가던 시간 다툼도 없어졌다. 누가 일찍 와서 이틀째 일을 했니 안 했니의 다툼도 없다. 누구는 바리바리 싸 주었니 누가 갈비짝을 사왔니 누가 주머니에 봉투를 찔러 주었니 하는 시비도 없다.

 

새벽부터 냄새 나던 곳이었다.

 

조용한 명절이다. 온누리 상품권으로 내 동네 상권 살리기를 권장하는 설날 연휴 나흘이다. 재래시장에 호객 행위나 대목장을 위한 매점매석이나 분주한 거래도 없다. 선물 박스를 들고 다니는 걸음도 뜨문뜨문한 동네에 장바구니를 들고 나서는 주부도 별로 볼 수가 없다.

 

떡집에서 쌀 익는 냄새도 아침뿐이다. 새벽부터 냄새 나던 곳이었다. 잠을 못 자던 곳이었다.

전 부치는 집의 기름 냄새가 없는 시장 입구는 도매상 트럭이 물건을 나르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교통 체증도 없다. 평소보다 더 넓어진 시장 길이다.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다.

 

동네 마트에 계란이 없다. 두 배 가격의 표시판만 달려있다. 계란이 있던 자리는 분화구가 되었다. 명절 재료 코너는 서늘하게 비어 있다. 사는 물건의 종류가 달라졌다. 여럿이 먹는 것과차례 음식에는 주민들이 한산하다.

 

생필품에 여럿이 있다. 계산대에 줄지어 서 있던 기다림도 없다. 배달이 밀려 재촉 전화도 없어 대기 중인 직원은 소량 묶음으로 여러 군데 돌고 있다. 명절에 푸짐하게 넉넉히 먹는 음식의 종류와 관습은 교과서로 들어가고 있다.

 

● 복조리를 한참 설명해야 하는 명절

 

점심에 친구 집으로 친척집으로 외갓집으로 처갓집으로 이동하는 걸음은 되돌리기 화면에서 보고 있다. 방마다 자식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 싸움을 하던 일조차 그리운 명절이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최신 역사가 되었다.

 

명절증후군으로 갈등과 가정 문제가 되었던 몇 해 전의 사건 사고가 우습게 넘겨지는 페이지가 되었다. 설빔을 해주고 색동옷을 입고 공손한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교양 과목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변했다.

 

복주머니, 복조리를 한참 설명해야 하는 명절이다. 지방마다 다른 풍습은 체험에서 경험하는 과목이 되었다. 엄마 주머니에 들어간 아이들의하루 동안 절값을 두고두고 달라고 하던 이야기는 소설 속의 장면이 되었다.

 

마음 속 갈등으로 견딘 명절날의 만남은 이제 각자의 방에서 간단하게 몇 초 만에 주고받고 있다. 민속 전통 놀이와 토정비결을 보던 어른들의 시간은 최신 기계로 혼자 놀이하는 아이들의 가장 늦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되었다.

 

봄날 같은 설날에 떡집의 온도는 고드름으로 보였다. pixbay.com   

 

냄새가 옆집으로 건너가지 않는 날

 

영상 10도이다. 설날 아침 기온이다. 고드름이 달린 시골집에서 손을 호호 불고 찬물로 잔뜩 쌓인 그릇과 먹고 남은 음식으로 며칠 밥상을 때우던 일들이희미해진다. 오늘은 큰아들이 오고 내일은 작은 아들이 오는 설날 명절 코스이다. 오전에 누가왔다 갔고 오후에 누가 온다는 일정표가 대화를 꽉 채우고 있다.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고요 노래 한 줄은 세상을 채우는 유행 프로그램에게 뺏긴 아이들의 명절로 그저 바라보는 컬러 화면이 대신해주고 있다. 각자 원하는 즐거움으로 각자의 방에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는 명절 내내 쉬는 날이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다.

 

고향 친구를 만나는 일보다 형제 친척을 만나는 일보다 부모 만나는 일보다 인원수를 먼저 세는당연히 지켜야 하는 슬프고도 불편한 명절이다. 집집마다 냄새가 없는 조용한 설날이다.

 

떡만둣국의 냄새가 옆집으로 건너가지 않는 날이다. 나물 볶는 냄새, 지지고 무치고 굽는 냄새가 없는 현관은 모두 굳게 닫혀있다. 제사를 지내는 집들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시간 맞춰전통 차례 상을 지키는 모습은 일부러 찾아봐야 하는 역사가 되었다.

 

지금 당장 현실에서 의무가 되는 것은 모이지 말라다. 꼭 지켜야 하는 책임이다. 소비문화까지 바꾸는 제도에 순응해야 한다. 먹는 재료와 주문하는 양과 만드는 과정도 현실에 적응하면서 달라지고 있다.

 

명절이지만 다섯 손가락도 안 되는 식구가 먹는 밥상은 평소와 큰 차이가 없다. 핵가족의 간편식으로 변한 결과는 지난 1년 서로 지키지 않은 약속들이 남겨놓은 모습이다. 회복에 대해 누구도 선뜻 정답을 말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명절은 그 문제의 적나라한 정답이 된다.

 

떡집에서는 쌀이 작년보다.

 

설 명절 나흘 전부터 동네 떡집을 유심히 봤다. 두 군데 있는 떡집에서는 쌀이 작년보다 훨씬 적게 들어가고 있었다. 단골 상회에서 미리 쌓아 놓은 쌀 포대가 밖에서 건너 들여다보니 차이가 많았다.

 

하루 일당으로 여러 사람이 일하던 자리는 한 켠으로 접혀져 있었다. 1년 전의작아 보였던 내부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외부 고용인보다 가족 단위로 운영하는 곳이 늘어났다.하던 장사로 늙은 부부가 단골을 기다리는 가게만 살아남고 있다.

 

가래떡 탑이 되었던 전판에 냉동 만두가 푸짐하게 나와 며칠째 들락날락 하고 있었다. 소포장으로 나누어진 떡국 봉지도 사가는 손길이 적어 움직이고 바뀌지 않은 체 동네 주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떡집을 찾는 사람들의 등이 사람들 사이사이에 겨울 바람을 끼고 있다. 먼저 사겠다고 하던 목소리는 없었다. 쌀을 빻았던 방앗간도 문이 닫혀 있다. 금방 뽑아 나온 가래떡이 찬물에 담길 때 조금 떼어 먹던 웃음소리도 귓가에 남아있지 않았다.

 

불린 쌀을 들고 가던 친구도 가래떡을 굽던 석쇠도 과거가 되었다. 며칠 전부터 떡집에 몰리던 발소리는 뿔뿔이 흩어지고 무소식이 되었다.

 

섣달 그믐날 파장 시간에도 떡집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상품이 허옇게 굳어가고 있었다. 가게 가장 앞자리에 있는 떡국 봉지는 지나가는 자동차가 보내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나 둘 상점이 문을 닫은 시장에서 떡집의 형광등은 늦은 시간에도 버티고 있었다.

 

외로운 기다림으로 명절을 보내고

 

오늘 다 팔지 않으면 남은 것의 행방이 궁금한 설날 아침 정오에서 거의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춘 설날 저녁까지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외로운 기다림으로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 외로움을 놔두고 주택가로 돌아오는 길에 일반 가게에서의 진열대는 젊은 사람을 겨냥하는 상품이 진열되고 있었다. 봄날 같은 설날에 떡집의 온도는 고드름으로 보였다. 많은 것은 어디로 갈까.

 

설날 하루는 조용히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작년 설날에 오늘 이 침묵을 짐작하지 못했다. 일 년의 두 번 명절에 거리와 만남과 먹는 일조차 제한된 현실에 굳이 양력설과 음력설의 의미는 그저 학문적인 풀이로만 설명되고 있다.

 

탈 대가족 시대이다. 디지털 핵가족 시대이다. 따로 먹는 초현실주의가 익숙해졌다. 애경사에 꼭 필요한 숫자로 명단이 적혀지고 있다. 축하 할 일, 슬퍼할 일, 기뻐할 일, 아쉬운 일은 그 자리에서 겪어내야만 하는 사람들만이 견디는 보편성으로 바뀌었다. 불러도 안 되고 가도 안 되는 평범한 생활이 몸에 베이고 있다.

 

기차표를 예매하느라 밤샘을 하고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예비 차 시간에 뛰어가던 명절은 이제 시나브로가 되었다. 양손에 주렁주렁 선물을 들고 고향땅을 메우던 왁자지껄한 그림은 점점 신세대 아이들에게 설명하기에 긴 내용이 되었다.

 

설날을 반납하는 대신 일상을 돌려받기 위해명절은 각자의 방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도시의 명절은 더 침착하게 대의에 따르고 있다. 서울의 명절은 더 차분하게 질서에 합류되고 있다. 모든 문이 닫힌 설날이다.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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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14 [00:23]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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