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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3.02 [14:29]
<역사의 흔적> 유영봉 ‘천년고도 경주를 찾아서’(1)
“남산! 정녕 커다란 선물이자 축복”
 
한문학자 전주대 유영봉교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경주 남산은 노천 불교 박물관이라 할 만큼 산 전체에 절터와 석불, 석탑이 널려 있어 신라 역사와 유적의 산이라고 부른다. 또한, 김시습이 한국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를 쓴 곳이 이 산에 있던 용장사다.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유영봉 교수와 함께 남산 곳곳을 둘러보며 옛 신라인들의 불교 신앙과 불교 문화를 살펴보기 위해 본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 주)

 

 

 

여행의 백미!‘남산의 서쪽 기슭

 

▲ 한문학자 전주대 유영봉교수

경주 여행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역시 남산이다. 불국토(佛國土)의 구현을 꿈꾸던 신라인들은 이곳에 수많은 절을 짓고, 부처님을 새기고, 탑을 세웠다. 그 자취는 천년을 훌쩍 뛰어넘은 오늘날에도 찬란하게 빛을 뿜는다.

 

삼릉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금오봉으로 향했다. 삼릉과 경애왕릉 주변의 경건하고도 신비스러운 솔숲은 여전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말없이 천년의 역사를 푸른빛으로 증명했다. 장구한 세월을 온몸으로 느끼게 했다.

 

그리고 마주한 마애관음보살상. 150남짓한 크기의 이 불상은 아직도 입술에 붉은빛을 띠었으니,‘미스 남산이라고 이를만하다. 아울러 석굴암의 부처님 닮은 석조여래좌상과 곳곳에서 등장하는 선각마애불. 남산은 정녕 경주사람들이 받은 커다란 선물이자, 축복이다.

 

불국토가 어찌 불국사(佛國寺)에만 구현되었던가? 코로나-19의 여파로 남산에도 인적이 드물다. 텅텅 비었다고 말할 만했다. 그러나 들려왔다. 아니 삼릉계곡이 쩌렁쩌렁했다.

 

수많은 신라인들이 석불과 불탑과 절간을 세우느라 돌과 나무를 쪼고 두드리는 소리로, 밥과 술을 내느라 바삐 오가는 여인들의 웃음과 수다로 골짝 안이 떠들썩했다. 하늘에서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내려왔다.

 

▲ 마애관음보살상! 150남짓한 크기의 이 불상은 아직도 입술에 붉은빛을 띠었으니,‘미스 남산이라고 이를만하다.  

 

 

 

절개 곧은 천재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금오봉을 지나 하산길로 고른 용장계곡의 초입에서부터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선생이 동행을 했다. 그리하여 선생보다 두어 걸음 뒤처져 걸었고, 때로 선생의 뒷자리에 앉았다.

 

선생은 다섯 살 때 벌써 천재 소년으로 이름이 났으니, 당시 좌의정을 지내던 허조(許稠)가 일부러 집으로 찾아가 만나보고서, 그 영특함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세종대왕께서 허조의 말을 전해 듣고,“내가 불러 보고자 하나, 남들이 해괴하게 여길까 두렵다. 너무 드러내지 말고, 잘 가르치도록 하라. 나이가 들고 학업이 성취되면 내가 크게 쓰겠노라.”하면서, 비단 50필을 상으로 내려주도록 하였다.

 

명을 받은 허조는 선생을 궁으로 불렀다. 그리고 비단 50필을 전해주면서 혼자만의 힘으로 가져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선생은 주저없이 여러 벼슬아치들 앞에서 비단의 끄트머리를 죄다 이은 다음, 마지막 끝단을 허리춤에 매어 끌고 나왔다.

 

이를 계기로 도성 안의 사람들은 그가 어리다고 해서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름 대신 다섯 살짜리, 오세(五歲)’라고 따로 불렀다. 그러나 선생은 마침내 세조(世祖)의 왕위 찬탈 소식을 전해 듣고, 읽던 책들을 모조리 불살랐다.

 

선생은 청운의 꿈을 꺾은 뒤, 스스로 방외(方外)의 길을 선택하였다. 설악산 오세암에서 출가(出家)한 선생은 세상을 두루 떠돌다가, 이곳 용장사(茸長寺)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금오신화(金鰲新話)로 승화시켰다. 선생의 법호(法號)는 동봉(東峯) 또는 설잠(雪岑)이었다.

 

하산길에서 선생이 건너뛰면 뒤따라 건너뛰고, 고개를 숙이면 뒤따라 숙였다. 잠시나마 기꺼이 선생의 아바타가 되었다.

 

언젠가 선생은 한양에 나타나, 권력만을 좇던 동문수학 서거정(徐居正)의 행차를 가로막고 일갈을 했다. 도성의 권세가에서 자제들을 가르쳐달라고 선생에게 앞다투어 보내면, 선생은 도리어 이들에게 농사하고 나무하는 일만 줄곧 시켰다.

 

선생은 이따금 책상 앞에다 농사꾼과 나무꾼의 형상을 손수 깎아 세워놓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크게 통곡한 다음, 이를 불길 속에 던져 넣었다. 어떤 날에는 나무 잎사귀에 시를 써놓고, 통곡 속에서 흐르는 물살에 띄우기도 했다.

 

어느 날 단종복위운동이 탄로 나자, 성삼문(成三問)을 비롯한 여섯 신하들의 목이 새남터의 형장에서 잘렸다. 어느 누구도 이 여섯 구의 시신을 거두면 역모의 가담자로 몰리는 시절이었다.

 

이때 한 승려가 나타나 이들의 시신을 거두어 한강 건너 노량진 길가의 남쪽 언덕에 몰래 묻었다고 하는데, 이 승려가 바로 김시습이었다고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은 전한다. 이 언덕은 오늘날 사육신묘역으로 남았다.

 

선생은 승려 차림으로 이리저리 조국의 산하를 떠돌다가. 노년에 충청도 부여의 무량사(無量寺)에서 한 많은 세상을 버리셨다. 선생은 용장마을까지 전송을 나오셨다. 길게 하직 인사를 올리는데, 가슴 한쪽이 자꾸 아렸다.

 

 

필자 유영봉(劉永奉) 중동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한국한문학 전공)를 취득하고, 현재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고려 문학의 탐색, 하늘이 내신 땅(), 당나라 시인을 만나다, 너도 내가 그립더냐. 천년 암자에 오르다등이 있다.

 

역서로는 국역 무의자 시집, 완역 청구풍아(), 집현전 학자 여섯 사람이 안평대군께 바친 시등이 있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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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14 [02:29]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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