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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3.02 [14:29]
<역사의 흔적>유영봉 천년고도 경주를 찾아서(2)
“여근곡과 앞마을 남근석! 주사암 ‘마당바위”
 
한문학자 유영봉(劉永奉)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경주 남산은 노천 불교 박물관이라 할 만큼 산 전체에 절터와 석불, 석탑이 널려 있어 신라 역사와 유적의 산이라고 부른다. 또한, 김시습이 한국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를 쓴 곳이 이 산에 있던 용장사다.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유영봉 교수와 함께 남산 곳곳을 둘러보며 옛 신라인들의 불교 신앙과 불교 문화를 살펴보기 위해 본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 주)

 

여근곡여자의 음부를 쏙 빼닮아

 

▲  한문학자 유영봉(劉永奉)

대전 쪽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가, 경주 직전의 건천 나들목을 1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언제나 눈길을 끌던 곳이 여근곡(女根谷)이다. 여자의 음부를 쏙 빼닮아 일찍이 선덕여왕(善德女王) 지기삼사(知機三事)이야기의 배경이 된 곳이다.

 

기온이 쑥 내려갔다. 유학사갈림길에 차를 세우고, 일단 옥문지(玉門池)부터 찾아갔다. 그런데 이 샘은 1984년의 기억과 달랐다. 자리가 맞기는 맞는데, 흥건하게 물이 괴던 그 옛날 그 모습이 아니다.

 

쌉들일명 씹들을 마주한 앞 동네 청년들이 몰래 찾아와 들쑤시던 샘이 분명 맞는데, 물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파이프 하나가 가까스로 쫄쫄쫄 물을 대는 형편이었다.

 

당시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촌로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옮기면, 이 샘이 횡액을 당한 해에는 반드시 마을 처녀들이 바람나고, 흉년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때마다 앞마을로 보복을 하러 갔다. 그건 앞마을에 우뚝 솟은 남근석을 자빠뜨리는 일이었다. 그래야 흉년이나마 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옥문지를 뒤로 하고 오봉산 자락을 탔다. 1시간 넘게 가파른 비탈을 오르자 땀이 났다. 잔설까지 쌓인 길은 제법 미끄러웠다. 도중에 산성이 길다랗게 누워있었으니, 다름 아닌 부산성(富山城)이다. 득오(得悟)라는 화랑이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를 불렀다는 곳이다.

 

능선의 전망대에 오르자, 시야가 툭 터졌다. 저기가 풍흉을 다투다가 끝내는 투석전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그 민속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을까?

 

▲ 암자의 서쪽에 상상조차 아니 되는 널찍한 바위 하나가 허공을 깎아질렀다. 이곳이 바로 마당바위다   

 

천년고찰 주사암(朱沙庵)‘마당바위

 

마침내 당도한 오봉산 정상은 커다란 바위 하나를 앞세웠는데, 이를 부처님바위라고 부른다. 그 아래쪽이 천년고찰 주사암(朱沙庵)이다. 주사암은 도리 없이 바위틈을 골라 건물을 세웠다.

 

그런데 암자의 서쪽에 상상조차 아니 되는 널찍한 바위 하나가 허공을 깎아질렀다. 마치 만화에나 나올 법한, 천 길 만 길의 깎아지른 낭떠러지 위에 수평의 자리를 넓게 연 이곳이 바로 마당바위다.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이인데, 형상이 말할 수 없이 신비롭다. 암자 쪽에서 바라볼 때 더 실감이 나는, 기이하고도 기이한 형상이다. 어떻게 이 산의 꼭대기에, 어쩌면 이리 거대한 바위가 수직의 낭떠러지를 이루고, 어찌 이렇게 반반하게 생겼단 말인가? 아무리 바라보아도 조물주의 재주를 가늠할 길이 영 없었다.

 

그리고 낭떠러지 앞쪽에 달라붙은 바위 하나는 멀리서 볼 때 영락없이 달마 혹은 노승의 모습이다. 그것도 단정하게 앉아서 염불을 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 마당바위가 주사암을 이곳으로 불러왔단 말인가?

 

암자에 들르자, 친절한 주지 스님이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구경하고, 달력 하나를 챙겨가라 하신다. , 진신사리! 발걸음이 당연히 법당 안으로 들었으니, 영롱한 사리 대여섯 과가 빛을 뿜었다. 하얀색ㆍ붉은색ㆍ초록색ㆍ노란색 등이었다. 고개가 절로 숙여졌으니, 감사하고 고맙고 행복해서 가슴이 절로 푸근해졌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릉에 들렀다. 매부와 처남의 능을 차례로 찾아간 것이다. 그런데 언니의 꿈을 산 문희(文姬)는 왕릉 뒤쪽에 왕비로 묻혔다지만, 동생에게 꿈을 판 보희(寶姬)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필자 유영봉(劉永奉) 중동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한국한문학 전공)를 취득하고, 현재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고려 문학의 탐색, 하늘이 내신 땅(), 당나라 시인을 만나다, 너도 내가 그립더냐. 천년 암자에 오르다등이 있다.

 

역서로는 국역 무의자 시집, 완역 청구풍아(), 집현전 학자 여섯 사람이 안평대군께 바친 시등이 있다.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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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17 [00:37]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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