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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10.19 [23:55]
‘기독교 대탄압 종지부’ 콘스탄티누스 1세!
<스페셜> 서양문명의 초석 ‘기독교 공인’
 
소정현기자

로마제국기독교인 생사권쥐고 우상숭배 강요

313년 밀라노칙령 기독교탄압 종지부 國敎계기

 

모친 헬레나로마제국 기독교확산 절대적 영향

정치권력 강화 목적에 기독교 활용시각 팽배도

 

▲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일컫는 콘스탄티누스 1세는 313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으로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하여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끝내고 사실상 정식 종교로 공인했다 

 

밀라노 칙령! ‘기독교 정식 공인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일컫는 콘스탄티누스 1(Constantinus, 재위 306337)는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313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으로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하여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끝내고 사실상 정식 종교로 공인했다. 그는 또한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Councils of Nicaea)를 소집하여 기독교 정통신학 교리의 정립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진 것으로 회자된다.

 

AD 64년부터 313년까지 249년간 계속된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1세 직전인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황제 때에 절정을 이루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제국 전역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되었다. 처절한 저항과 혹독한 박해가 수반되었다.

 

황제들은 한결같이 로마의 옛 신들을 예배하는 우상숭배를 강요했다. 또한 애국심을 표현하는 종교적 국민의례인 황제 숭배도 의무화했다. 황제의 상 앞에 향불을 피우게 했으며, 이를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자들을 반역자로 취급했다.

 

정부 관리들은 황제숭배에 참여한 자들에게 증명서를 발부했다. 이는 황제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와 거역하는 자를 구분할 목적이었다. 많은 기독인들이 무릎을 꿇었다. 기독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공민권(公民權)을 박탈했다. 집회를 금하고, 예수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기독교인들과 감독들을 죽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기독교가 로마 제국 내에서 불법 집단으로 탄압받는 종교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믿어도 되는 종교가 된 것이다. 이는 콘스탄티누스 1세의 결단이었다. 기독교를 공인함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흡수로 313년 밀라노 칙령 때, 기독교에 대한 자유가 선포되었다. 380년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Theodosius)가 자신이 병이 치유되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해 버린다. 테오도시우스의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어 버리는 선포는 392년 모든 로마지역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선택하는 것으로 대탄압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 기독인들에 대한 박해는 로마제국 전역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되었다. 처절한 저항과 혹독한 박해가 수반되었다.    

 

권력 강화 기독교와 이방신혼합

 

콘스탄티누스는 황제가 되기 전까지, 기독교를 몹시 박해하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를 모시면서도 기독교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내비친 적이 없었다 한다. 그렇다면 왜 콘스탄티누스가 황제가 되어서 로마 제국 내에 기독교를 인정하게 되었을까? 많은 역사가들은 콘스탄티누스가 정치적 출세를 위해 기독교로 개종(AD 312년경)한 것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어린 시절 콘스탄티누스는 어머니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마 알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서신에서 자신의 성공이 확실히 하느님의 도움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의 치세 동안 교회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을 하여 많은 교회를 세웠으며, 그리스도인을 관료로 중용하고 선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시절의 기독교 박해 때 몰수한 재산을 모두 되돌려 주었다.

 

기독교 성직자에게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게 하는 법령을 반포하였다.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성직자의 사유재산 소유를 승인하였다. 검투사 시합을 금지시키는 법령을 제정하였으나, 실제로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검투 경기는 4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십자가형을 금지하고 교수형으로 대신한 것과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세운 것 등등 그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학자들 사이에서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언제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가 세례를 받은 것은 임종을 앞둔 병상에서였다.

 

콘스탄티누스는 오직 자신의 정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기독교를 이용하였을 뿐이라는 점과 권력을 위해 무고히 아들과 아내를 무참히 살해한 잔혹성으로 그의 행실이 그리스도의 정신과 거리가 멀다는 점 등에서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분명 존재한다.

 

콘스탄티누스는 하나의 제국(One Empire), 하나의 법(One Law), 하나의 시민(One Citizen), 하나의 종교(One Religion)”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는데, 그가 기독교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동기에서 종교를 이용한 것이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콘스탄티누스는 새로 갈아입은 기독교의 의복 속에 이방 종교의 미신적인 액세서리들을 달고 다녔다.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는 혼합물이었다. AD 320년 그는 주화에 옛 신들의 상징들과 이름들을 새겨 넣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믿었던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를 섬겼다.

 

기독교를 공인한 후에도 그가 발행한 화폐에는 미트라 신()의 초상을 조각하고 무적의 태양, 나의 보호자라고 써놓았다. 콘스탄티누스의 영향으로 미트라 신앙의 의식이나 제도, 관습, 교리 등이 초기 기독교에 대부분 수용되었다.

 

▲ 콘스탄티누스가 본 십자가는 이른바 열쇠-(Chi-Rho)라고 하는 십자가 심벌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심벌을 병사들의 방패에 그려 넣고 전투를 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 이 상징은 그리스 알파벳 중 카이()’(Ρ)’를 합친 것이며, 그리스 알파벳으로  그리스도란 단어를 쓸 때 앞의 두 글자이다.  

 

전쟁중 키-(Chi-Rho)십자가 심볼

 

전임자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등극하여 로마제국은 사두 정치’(Tetrarchia)를 실시하게 된다. 사두 정치는 국가 권력이나 왕좌를 네 명이 나누어 통치하는 정치 체제를 말한다. 넓은 로마제국을 황제 한 사람이 다스리기에는 어려우므로, 서로마와 동로마에 각각 황제와 부황제를 두어, 4명의 전제군주가 공동으로 위기에 처한 로마제국을 다스리는 정치체제였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권좌에 등극하기 까지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해온다.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Helena)는 영국 사람으로 선술집 딸이었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부친은 로마의 장군으로 영국(당시의 브리타니아)에 파견되어서 선술집 딸과 사랑에 빠져 아들을 하나 두고, 그 후 로마로 돌아가서는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황제의 사위가 되었다.

 

남편인 콘스탄티우스는 막시미아누스의 중신이 되고 부하들의 신망도 컸으므로, 곧 로마 제국 서부지역의 총독으로서 갈리아 지방, 즉 프랑스와 남부 독일, 스페인, 브리타니아 등 넓은 지방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즉 먼저 그의 부인인 헬레나를 버리고 막시미아누스의 의붓딸인 테오도라와 결혼할 것과, 다음은 그 아들 콘스탄티누스 1세를 볼모로 동로마 지역인 소아시아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콘스탄티우스의 야심은 마침내 부인과 아들을 희생시키기로 결심했다. 헬레나는 억울하고 안타까웠지만, 그 자리에서 물러나 추방당하게 된다. 결국 그 아들 콘스탄티누스는 인질로 소아시아를 향해 떠나게 되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어린 콘스탄티누스는 동로마의 니코메디아’(Nicomedia)로 보내져 동로마제국 황제의 궁정에서 자랐으며, 황제 휘하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AD 305년 로마제국을 공동으로 통치하던 서로마와 동로마의 두 황제가 퇴위하자, 서로마의 부황제였던 부친인 콘스탄티우스는 공동 황제에 오르게 된다. 얼마 후 콘스탄티우스의 정적들은 병에 걸린 콘스탄티우스를 무시하고 새황제를 옹립하려 하자, 중병에 걸린 콘스탄티우스는 동로마에 있던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보내달라고 요구했고, 이것을 안 동로마의 황제는 콘스탄티누스를 독살하려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독살 위험 가운데서 겨우 목숨을 건져 아버지에게로 왔고, 부자는 함께 브리튼 섬(지금의 영국)으로 건너가 AD306년 아버지 콘스탄티우스가 죽을 때까지 변방 브리튼 섬 북부에서 숨죽여 지낸다.

 

그러나 아버지 콘스탄티우스가 죽자 아들 콘스탄티누스 1세는 로마제국의 혼란 가운데서 군부의 지지를 받아 서로마 황제로 추대된다.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AD 312년 군대를 이끌고 로마 북부의 티베르강(Tiber River)을 사이에 두고 밀비안(Milvian) 교량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로마로 진군하며 정적들과 반란군을 무찌르는데,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군대가 로마 인근에 이르러 일명 밀비안 다리의 전투로 알려진 유명한 전투를 치르게 된다.

 

▲ 헬레나는 효성스러운 아들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AD 313년 밀라노칙령을 발표하게 하는데, 이 칙령은 기독교에 대한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인정이었다.  

 

전투가 있기 전 콘스탄티누스는 정오가 막 지났을 무렵 하늘에서 이상한 물체를 보았다고 한다. 그것은 빛나는 십자가로, 거기에는 엔 투토이 니카(Εν ΤούτΝίκα)’라는 그리스어 문구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 문구는 “In Hoc Signo Vinces(이 증표 안에서 승리하리라)”는 라틴어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콘스탄티누스는 다시 꿈에서 구세주가 낮에 본 것과 동일한 형상이 그려진 깃발을 손에 들고 나타나서 이 깃발을 만들어 전쟁에 나가면 승리할 것이다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기독교 지도자들을 불러서 하나님과 자신이 본 십자가 모양에 대해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얻은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로의 개종을 선언했으며, 꿈에서 본 십자가를 제국의 깃발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콘스탄티누스가 본 십자가는 이른바 키-(Chi-Rho)라고 하는 십자가 심볼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심볼을 병사들의 방패에 그려 넣고 전투를 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상징은 그리스 알파벳 중 카이()’(Ρ)’를 합친 것이며, 그리스 알파벳으로 그리스도란 단어를 쓸 때 앞의 두 글자이다. 이 심벌은 후에 가톨릭교회의 상징으로 그대로 사용되었다.

 

정적 막센티우스’(Maxentius)는 전사하였고, 전투는 콘스탄티누스의 대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 결과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정식 등극하면서 로마제국 내에서 기독교가 공인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밀비안 전투의 승리로 서로마의 주인이 된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를 주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324년에 로마제국 전체를 다스리는 단독 황제가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기독교를 통하여 정치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콘스탄티누스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7년간의 대공사(324년에서 330년 사이)로 새롭게 도시를 건설하여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비잔티움을 새로운 로마(Nova Roma)’로 공표하고 330년 공식적으로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하였다. 337, 그가 죽자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의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로 개명했다.

 

현재는 터키의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İstanbul)로 세계 최초의 기독교 도시로서 이후 천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존재하게 된다.

 

▲ 당시 헬레나는 왕대비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고 또한 조폐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어머니 헬레나의 초상화가 들어간 동전도 발행하여 사용케 했다.  

 

콘스탄티누스황제의 모친 헬레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모친 헬레나에게 로마 제국에서는 가장 존귀한 칭호인 아우구스타’(Augusta)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왕대비 아우구스타라는 칭호를 보내고 아울러 조폐권(造幣權), 곧 로마제국의 화폐를 제조하는 권리를 주고 어머니 고향인 드레파눔’(Drepanum)을 개조, 미화하여 이를 헬레노폴리스즉 헬레나의 도시()라 개칭하여 영원히 그녀의 이름을 기념케 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 헬레나의 초상화가 들어간 동전도 발행하여 사용케 했다.

 

당시 헬레나는 왕대비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고 또한 조폐권까지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부유함과 권세는 막강한 것이었다. 하지만 헬레나는 자신의 엄청난 재물을 빈민에게 희사하였으며, 예배당 건축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모든 원조를 제공했다.

 

▲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비잔티움을 330년 공식적으로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하였다. 현재는 터키의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İistanbul)은 세계 최초의 기독교 도시로서, 천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존재하게 된다. capture sailogy.com  

 

헬레나는 자기의 존귀한 신분을 잊고서, 미천한 사람들과 함께 흔쾌히 모든 예배의식에 참여하였으며,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헬레나의 타고난 아름다운 성품과 이 같은 모범적인 신앙행위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로마제국 내에 기독교가 확산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더구나 효성스러운 아들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앞서 언급된 밀라노칙령을 발표하게 하는데, 이 칙령은 기독교에 대한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인정이었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지난 300년 동안 지속되어온 수난과 박해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헬레나의 신앙은 누구보다도 뜨거웠다. 초대 교회의 유명한 역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는 헬레나에 대해 주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와 같이 그녀의 신앙은 견고하고 열의는 뛰어났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헬레나 왕대비께서는 아마 이미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구주의 제자가 된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한편, 이런 일화도 전해온다. 말년에 중병에 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버지가 인생무상을 느끼고 마침 로마에 넓게 파급된 그리스도 신앙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하게 되었고, 아들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은연중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는 것이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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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7/15 [18:42]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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