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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9.20 [04:19]
<한상림 칼럼> 8월의 크리스마스
“이슬이 내리면 조용히 이승을 떠난다”
 
한상림 칼럼니스트

 

▲ 한상림 칼럼니스트    

 

 

 

매미의 애잔한 이별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1998년도 개봉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한석규)이 다림(심은하)에게 초원사진관 문틈에 끼워놓고 떠난 이승에서의 마지막 메시지다. 불치병을 앓는 노총각 정원은 시한부 삶을 살면서 주변 사람들과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던 어느 날 정원이 운영하는 초원사진관을 찾아온 다림과 첫 만남으로 사랑이 시작된다.

 

주차단속원인 다림은 사진을 인화하러 왔다가 정원과 사랑을 하게 되지만 결국 정원의 죽음으로 인해 짧은 추억으로만 그친다. 떠날 때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정원의 마지막 메시지가 이 영화에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의 화두를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새벽 5시경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이면 건너편 재건축 아파트 공사 현장 옆 작은 동산에서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가 어찌나 소란스러운지 저절로 눈을 뜨고 한참 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곤 한다.

 

여름의 시작을 알려주던 매미 울음과 달리 말복이 지나고 나니 점점 서늘해지는 바람의 기운을 매미들도 직접 피부로 느끼나 보다. 초여름을 알리며 들려오던 유지매미, 쓰름매미, 참매미와는 달리 말매미들이 8월 여름의 막바지에 목청 찢어질 듯 그 작은 몸으로 합창을 할 때면 도심 건물의 콘크리트 벽에 메아리쳐 더 크게 들린다.

 

7년간 땅속에서 참았던 울림통을 활짝 열고 제 짝을 찾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밤이슬 내려앉을 때까지 억세게 울어대는 수매미의 터질 듯한 외침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이승을 떠나려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 초조함과 불안함도 초월한 채 말을 눈을 감고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수없이 외치고 있을 침묵 속의 처절한 절규다.

 

곤충의 세계는 만남보다 이별을 더 성대하게 잔치를 벌이고 떠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응애, 응애하는 울음으로 존재감을 알리면서 탄생을 알리지만, 이승을 떠나는 순간에는 침묵을 지키며 가장 엄숙해진다는 점이 사람과 곤충의 세계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마치 지구가 하루 한 바퀴 자전하면서 1년 동안 태양의 둘레를 공전하는 자연의 이치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또한 삶과 죽음은 아날로그시계 부속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돌아간다.

 

하루를 초 단위에서 1분으로, 60분이 1시간으로, 24시간이 하루로, 하루가 한 달로, 열두 달이 1년으로, 1년이 수없이 반복되는 그 마지막 데드라인은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어머니 자궁 안에서 가장 먼저 심장 박동이 뛰기 시작하는 순간을 이라 하고, 마지막 데드라인인 심장박동이 멈추는 순간을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삶과 죽음은 우리 몸에서 공존하는 움직임과 멈춤의 차이이다.

 

동식물, 곤충, 벌레들과 삼라만상 모든 생물도 이런 이치에 따라 살고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종족본능의 욕구를 가졌다.

 

마치 후손을 이어가기 위해 땅속에 알을 낳고 7년 후에나 다시 환생을 꿈꾸는 수매미의 절규처럼, 암매미는 울지 못하는 날갯짓으로 수매미의 구애를 받아 알을 낳고 함께 이슬이 내리면 조용히 이승을 떠난다.  


 

매일 기도하던 시어머니!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이 먼저 눈길을 끌게 된 것은 한여름에는 눈이 오지 않는데 무슨 크리스마스라고 하였을까?’ 하는 궁금증과 작가와 감독의 엉뚱한 발상 때문이다. 아니다, 만약 8월에 눈이 내려온다면 4계절에 따라 농사를 짓는 우리나라는 정말 큰 일이 날 것이다. 한창 탱글탱글 영글어가는 알곡과 과일들이 된서리를 맞고 들판은 꽁꽁 얼어붙어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그래서 8월의 크리스마스는 눈이 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닌 뜨거운 태양 아래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의 장인 정열이 넘치는 태양 빛이 가장 뜨거운 8월로 해석해 본다.

 

, 여름이 떠나기 전에 한바탕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더위에 지치고 힘겨운 사람들에게 잠시 축제의 시간을 선물해 주는 합창곡으로, 다가오고 있는 가을을 대풍작을 맞이하기 위한 축제의 장으로 생각해 보자. 그러면 동틀 무렵부터 해 질 무렵까지 울어대는 매미 울음도 한결 정겨운 소리로 들릴 것이다.

 

올여름은 참으로 지루하고 힘들었다. 아직도 빨간 왕관을 쓴 바이러스가 변종하면서 사람을 괴롭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괴리감만 커가고 있다. 가족들과 한 식탁에 앉아 머리 맞대고 먹던 한 끼 밥도 이제는 각자 흐트러져서 뷔페 접시에 담아서 따로따로 먹는다. 구십 평생을 자식을 위해 매일 기도하던 시어머니가 쓰러져서 의식이 없는 채 두 달째 누워 계신 병실에도 가지 못하고 애만 탄다.

 

어머니의 사랑은 여전히 하늘만큼이나 크고 높다. 느닷없이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하게 되면 자식들 가슴에 못 박을까 봐, 산소호흡기로 겨우 연명하면서 서서히 이별을 준비시키는지 지루한 여름을 간신히 지나고 계신다.

 

쓰러지기 전날까지도 18층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 날마다 육 남매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종일 혼자 지키는 집 베란다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나 사람 수를 헤아리며 100명 혹은 100대마다 화장지 한 조각을 뜯어서 늘어놓고, 오늘은 몇 천 대의 차가 지나갔고, 몇 백 명의 사람이 냇가를 걸어 다녔다고 혼잣말을 하곤 하였다.

 

자식들 다 떠나고 난 빈집에서 과거를 회상하면서 쓸쓸하게 보냈던 시간,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듯 늘 이 자식 걱정, 저 자식 걱정에 끊임없이 기도하던 곳이 겨우 홀로 앉아 계실만 한 좁은 베란다였다.

 

18층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도심의 거리에서 움직이는 것들을 헤아리며 혼자서 조용히 이별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우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말 한마디 안 남기고 깊은 잠의 늪에서 침묵으로만 어머니 사랑을 읽히고 계신다.

 

후회란 언제나 늦을 뿐,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을 가져 본다면, 기적처럼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뜨고 우리 곁으로 다시 오시면 좋겠다는 거다. 평소에 어머님은 나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신다고 하셨다.

 

하느님, 하느님은 기술자잖아요, 하느님 기술로는 무엇인들 못 고치십니까? 우리 며느리 다리 좀 고쳐 주세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4년 전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못 걷는다던 무혈성 괴사로 앓고 있는 고관절이 그대로 진행하지 않아 신비스럽다는 의사의 말처럼 신비스럽게 잘 버티고 있다.

 

그런데 조금은 두렵다. 어머니의 기도가 하늘나라에서도 이어질는지 모르지만, 돌아가시고 나면 더 나빠져서 당장 수술을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이다. 필자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하늘과 같은 존재이고, 커다란 우산이고, 넓고 높은 사랑이고 큰 믿음이다.

 

그런데 두 달 동안 깊은 잠에 빠진 어머니가 언제 우리 곁을 떠나실지 모른다는 초조함과 불안감 때문인지, 가끔은 저렇게 악을 쓰는 매미 소리가 장송곡처럼 들려와서 얼른 이 여름이 지나갔으면 하였었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이 곁을 떠날 때마다 남은 시간은 절대로 아등바등 살지 말고 하루하루 열심히 사랑하며 살자고 다짐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후에 느끼는 깨달음을 통해서 겸손해지고 자신을 낮추게 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을, 우리는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닌 것에 집착하고 사소한 일로 감정을 내세워 갈등을 만들고 그 갈등으로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괴롭힌 것은 아닌지?

 

여름의 막바지에 나무 그늘에 앉아 허공을 울리는 매미 소리처럼, 언제 닥쳐오게 될 이별의 시간을 생각하면서 지금껏 살아온 자기만의 이야기를 조용히 되새겨 보는 것도 좋겠다.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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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8/16 [20:40]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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