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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10.19 [23:55]
<특별연재> 박행주 “13차례 해외공연! 후일담4”(27회)
 
박행주 / 국제전통예술교류협회 회장

해외공연을 거듭할수록 일취월장

 

필자가 지도한 풍물단원들은 해외공연을 거듭하여 참가면서 점점 발전하고 성숙해져 갔다. 이러한 변화는 필자만 느꼈던 것이 아니었다. 단원들 자신도 느끼고 단원들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여서 때때로 필자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초등학교에서는 수련 활동을 가더라도 6학년 정도가 되었을 때 23일로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해외공연은 짧으면 6, 길게는 20일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부모님으로서는 여러 가지 부분들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도움을 주기 위해 스텝진으로 참여하는 부모님들이 어느 정도 도움을 주지만 단원들이 각자 해결해야 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우선 짐 정리, 빨래, 악기 관리, 공연 소품 관리, 위생 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공연이 있는 날에는 각자 필요한 소품을 준비하고 기본적인 의상을 착용하고 나서 필자나 스텝진의 도움을 받게 된다.

 

공연전 단원의 분장을 도와주고 있는 스텝진(공연이 있는 날에는 각자 필요한 소품을 준비하고 기본적인 의상을 착용하고 나서 필자나 스텝진의 도움을 받게 된다.)    

 

 

단원의 공연복을 다려주고 있는 필자(해외공연 기간에 공연 의상은 필자나 스텝이 다려주기도 한다.    

 

해외공연 기간에 공연 의상은 필자나 스텝진이 다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더라도 공연 의상이나 악기채를 숙소에 놓고 공연장으로 오는 단원들이 가끔 발생한다. 장구채 없이 장구를 칠 수 없고 공연 의상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데 무대에 올려 보낼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날은 공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일이 한두 번 있게 되면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부터는 해외공연에 참여하는 단원들의 경우 부모님과 사전에 얘기해서 옷을 정리하거나, 방 청소하는 것, 손빨래하는 방법들을 집에서 미리 익히도록 했다. 평소에는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기 때문에 단원들 스스로 할 기회가 많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미리 연습해서 갈 때에 더욱 원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공연할 때도 처음 해외를 가는 경우는 얼굴을 들지 못한 채 숙이고 연주하곤 한다. 하지만 몇 차례 참가한 단원들은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스스로 연주를 즐기고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공연 전에는 의상과 분장을 준비할 수 있도록 팀별 대기실이 제공되는데 미국 공연 중 특이한 장면을 본 일이 있었다. 공연 후에 악기와 의상을 챙기는 상황에서 한 단원이 출입문 안쪽에 붙어 있던 공연순서 안내지를 떼어 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 2013미국공연 당시 공연장 분장실에 도착해서 필자의 설명을 듣고 있는 단원들(공연 전에는 의상과 분장을 준비할 수 있도록 팀별 대기실이 제공되는데 미국공연 중 특이한 장면을 본 일이 있었다.)   

 

 

▲ 2013미국공연에서 분장실 안에 붙어 있던 공연 순서 안내지(공연 때마다 그런 공연순서 안내지가 벽이나 문에 붙어 있었는데 해외공연 현장에 있는 그 안내지가 자기한테는 큰 기념이 될 것 같아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 단원은 이전에 몇 번의 해외공연을 참여했던 단원이었다. 그 모습을 본 필자는 그 단원에게 그렇게 하는 그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공연 때마다 그런 공연순서 안내지가 벽이나 문에 붙어 있었는데 해외공연 현장에 있는 그 안내지가 자기한테는 큰 기념이 될 것 같아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다.

 

공연팀이 나가고 나면 버려질 종잇조각에 불과했지만, 그 단원으로서는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소중한 기념품이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해외공연을 거듭하는 동안 많이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단원들과 함께 점점 시야가 넓어져

 

해외공연을 통해 성장하는 것은 단원들만이 아니었다. 해외공연 참여 횟수가 거듭될수록 이전과 비교해 필자도 많이 변화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점점 시야가 넓어지고 여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국내 공연과는 달리 우리나라를 대표한 팀으로 해외 무대에 선다는 것은 여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초기에는 단원들이 연주를 시작하면 곧바로 객석 뒤로 이동해서 연주가 틀리지 않나 노심초사하며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 부터는 무대 뒤쪽에서 단원들의 연주를 보는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게 되었다. 전문팀이 아닌 어린이 팀이기에 다소의 실수가 있더라도 관객들은 오히려 그것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래서 연주에서의 실수보다 어떤 부분에서 관객들의 몰입도가 더 커지는지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 2009중국 상해 엑스포공연 당시 야외에서 비를 맞으며 한국팀 공연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하지만 언젠가 부터는 무대 뒤쪽에서 단원들의 연주를 보는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게 되었다.)  

 

 

▲ 풍물 개인놀이 중 열두발 상모를 돌리고 있는 단원들(우리나라의 전통예술이 가지고 있는 신명과 흥겨움을 알리고 싶었던 필자로서는 그러한 부분들을 계속 관찰하고 참고하면서 귀국 후 연주내용을 재구성하곤 했다.)   

 

똑같은 연주를 해도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나오는 지점이 달랐다. 유럽국가와 동양 국가가 달랐고 어른인지 아니면 어린이인지에 따라서도 조금씩 반응이 달랐다. 우리나라의 전통예술이 가지고 있는 신명과 흥겨움을 알리고 싶었던 필자로서는 그러한 부분들을 계속 관찰하고 참고하면서 귀국 후 연주내용을 재구성하곤 했다.

 

필자도 무대에서 공연해 왔고 연주 도중 관객들의 박수 소리를 들을 때 많은 희열을 느끼게 된다. 필자가 연습을 거듭하면서 연마한 연주에 대한 인정을 받는 것이면서도 연주를 통해 관객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르친 단원들이 필자가 서보지도 못한 멋진 해외 무대에서 연주하면서 관객들로부터 환호를 받을 모습을 볼 때는 또 다른 환희를 느끼곤 한다.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력을 극대화해서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어린 학생들, 그것도 다수를 지도해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창의력, 지도력, 인내력 등 다양한 부분들이 함께 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외공연 중에 단원들의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고 나서 가끔 무대 뒤로 음악가나 무대감독이 일부러 필자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는 악수를 청하면서 너무 멋진 연주였다고 몇 번이나 찬사를 보낼 때 필자의 노력이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는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던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대고 독주 공연을 하고 있는 필자(필자도 무대에서 공연해 왔고 연주 도중 관객들의 박수 소리를 들을 때 많은 희열을 느끼게 된다.) 

 

愛國愛族 이스라엘 인솔 관계자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인데도 세계 10대 강국이면서 해외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굵직굵직한 대기업들도 많으며 한류를 창조해 나가고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막상 해외공연을 나가 보면 우리나라를 처음 듣거나 들었어도 세계 지도상에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필자는 해외공연을 통해서라도 우리나라를 조금씩 알리는 것에 대해 무척 큰 의미를 갖게 되었고 이는 점차로 사명감으로까지 발전됨을 느끼곤 한다. 2013년 미국 공연에서 만났던 한 이스라엘 관계자도 그런 경우였다.

 

60대 후반의 여성이었던 그 관계자는 이스라엘 내에 있는 실력 있는 예술단체를 물색해서 미국공연을 소개하고 봉사로 직접 인솔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벌써 여러 차례 참가하면서 이스라엘 단원들과 예술단장에게 다양한 조언도 하고 있었다.

 

공연하기 위해 한국팀과 이스라엘팀이 함께 버스로 이동할 때 필자의 바로 옆자리에 그 관계자가 앉게 되면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였지만 뭔지 모를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스라엘은 이슬람 국가들로 이루어진 중동지역 한가운데에 위치하면서 주변국들이나 팔레스타인과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키고 있어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의 한 명이 그 관계자였다.

 

 2013미국공연 당시 이스라엘팀과 함께한 촬영(국제음악 축제는 많은 나라의 단체가 모이는 만큼 자신들의 문화예술을 알리기에 매우 좋은 기회이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평화적으로 유대관계를 갖는 데 있어서 스포츠문화예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국제음악 축제는 많은 나라의 단체가 모이는 만큼 자신들의 문화예술을 알리기에 매우 좋은 기회이다.

 

그 이스라엘 관계자는 그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길고 먼 힘든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참가하며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그 모습을 보며 필자도 그러한 길을 가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외형보단 내실추구 일본 북

 

해외공연을 하다 보면 일본 공연팀을 가끔 만나곤 한다. 2009년 미국공연 때에도 일본팀을 만났는데 북을 연주하는 팀이었기 때문에 필자는 그 연주를 유심히 지켜볼 수 있었다. 해외공연에서는 타악기를 연주하는 팀은 주로 우리나라 팀이었는데 일본 타악팀을 보자 단원들도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역사와 정서, 문화예술환경 등이 서로 다른 나라이기 때문에 연주를 보면서 서로 우열을 가리는 것은 적절치 못한 면이 있다. 하지만 간단히 비교하자면 우리의 전통음악은 내고, 달고, 맺고, 푼다라는 표현과 같이 강약과 속도 등의 변화를 주며 긴장과 이완의 요소를 연주에서 표현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북은 남성스럽고 전투적인 느낌을 주면서 긴장을 유지하거나 고조시키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2009미국공연 당시 공연이 끝나고 일본팀과 함께한 촬영(해외공연에서는 타악기를 연주하는 팀은 주로 우리나라 팀이었는데 일본 타악팀을 보자 단원들도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 각 나라의 예술감독 축하 파티에서 함께 촬영한 일본팀 감독(그다음에 일본팀 예술감독이 자신의 제자에게 간단한 타법을 연주하게 한 다음에 필자에게 자신들의 북을 쳐보라고 권유했다.)   

 

공연중 하루는 공연이 끝나고 일본 팀과 우리나라 팀이 서로 자신들의 북과 연주를 간단히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다음에 일본팀 예술감독이 자신의 제자에게 간단한 타법을 연주하게 한 다음에 필자에게 자신들의 북을 쳐보라고 권유했다.

 

필자는 예전부터 일본 북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북에 필요한 좋은 소가죽을 얻기 위해 송아지 때부터 특별한 관리를 할 정도라고 한다. 또한 북 가죽이 두꺼워서 우리나라 북채보다 훨씬 크고 두꺼운 북채로 치기도 한다.

 

북 가죽의 탄력과 반발력이 커서 잘못하면 연주자가 탈골되거나 갈비뼈가 금이 가기 때문에 큰북을 치는 연주자는 상반신에 갑옷과 같은 보호대를 착용할 정도였다. 그 당시 보았던 일본 북은 필자가 연주하는 대고에 비해 절반 정도 크기여서 특별히 큰 북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팀이 건네주는 큰 북채를 두고 우리나라 북채로 쳤다. 그런데 북 가죽이 두꺼워서인지 제대로 힘을 내서 칠 수가 없어서 잠시 당황한 일이 있었다. 결국 북은 작아도 가죽이 두꺼웠기 때문에 더 크고 무거운 일본 북채로 쳐야 했다.

 

우리나라는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 질 좋은 북 가죽을 얻기보다는 좀 더 화려하고 다채로운 기법으로 표현하기 위한 연주력쪽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반면 일본 북은 4박 계통의 비교적 단순한 리듬이기 때문에 되도록 소리가 크고 멀리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소리가 좋은 북을 만드는 것에 더 치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 북을 연주하고 있는 필자(북 가죽이 두꺼워서인지 제대로 힘을 내서 칠 수가 없어서 잠시 당황한 일이 있었다.) 

 

뜻밖의 비보의연하게

 

필자는 2009년 터키공연 중에 필자의 선친께서 작고하셨는데 당시 단원들을 두고 귀국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장례식에 참가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해외공연의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그러한 일이 단원에게도 발생하는 일이 있었다.

 

2013년 미국공연에 참여했던 한 단원은 중학교 1학년이어서 초등학교 단원 이외에도 추가로 참가할 수 있는 특별단원 중 한 명이었다. 미국공연 일정을 한참 진행하던 중에 어머님으로부터 급히 연락이 왔다. 해외 출장 중인 단원의 아버지가 현지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안타깝게도 병원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소식을 듣고 스텝진으로 참여한 네 분의 부모님들을 모아 긴급회의를 했다.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회의였는데 일단 즉시 귀국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우선 8월 극성수기라 항공권을 변경해서 귀국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귀국을 하게 되면 부모님 한 분이 동행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각자 맡기로 되어 있었던 촬영이나 분장 등 스텝진의 역할에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중간에 귀국하는 방법은 제외했고 아버지의 사망 사실을 단원에게 알릴지를 논의했다. 모두의 의견은 당장 그 사실을 그 단원에게 알리더라도 귀국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은 기간 동안 힘들고 혼란스러울 수 있어서 알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였다.

 

그 논의 결과를 가지고 단원 어머님께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그런 두 가지 결정에 대해 본인도 똑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남은 미국공연 동안 그 단원은 다른 단원들처럼 열심히 연주하고 하루하루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귀국 후 단원은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겠지만, 친구들을 통해 들은 바로는 중학교 생활에 큰 문제 없이 잘 생활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났을 때 초등학교 풍물단이 풍물 발표회를 하는 날 졸업한 선배들이 축하 연주를 해주는 순서가 있었다. 그날 필자를 보고 밝고 늠름한 모습으로 인사를 했고 연주도 힘차고 멋있게 하는 모습을 보며 아픔을 잘 딛고 일어선 그 단원이 대견스러웠다.

 

풍물발표회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는 중학교 풍물패(그로부터 2년여가 지났을 때 초등학교 풍물단이 풍물 발표회를 하는 날 졸업한 선배들이 축하 연주를 해주는 순서가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아픈 시간을 겪으며 성장한다. 필자도 해외공연 중이라 부친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해 너무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그 당시에는 앞으로 해외공연을 이제는 단념해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필자의 선친께서는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알리는 아들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셨기 때문에 그런 활동에 더욱 매진하는 것이 오히려 유지를 받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친께서 주변에 막내아들을 소개하실 때도 교육계의 김덕수 같은 놈’(사물놀이 창시자이자 기획자-편집자주)이라고 하셨다는데 필자가 서 있는 위치에서 그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서 선친의 뜻을 받드는 길을 가고자 다짐해 본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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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9/02 [04:44]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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