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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2.05.28 [00:48]
<초대수필> 이주리 ‘가을의 오류’
 
이주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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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빨리 부르신 것 아닐까?

 

▲ 이주리 시인 수필가 

혹독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어도 더웠다.

 

이 쪽 남쪽지방인 전주는 10월 중순까지 반팔을 입었고, 그러다 가을 옷을 채 꺼내기도 전에 추워져 겨울옷을 꺼내야 했다. 가을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하나님께서도 가을이 좋으셨는지 지상에 둔 가을을 하늘로 빨리 부르신 것 아닐까?

 

그 짧은 가을동안 애처로운 꽃들은 애기에서 소녀를 거쳐 중년을 가로질러 늙어버리는 전 생애를 속성으로 진행시켜야 했다. 그 뿐인가? 짧은 봄에 미처 한 생을 살지 못했던 장미들도 봄과 유사한 가을에 기어이 피워보고야 말리라는 의지로 10월말에 당당히 피었다.

 

내게 원고 청탁을 했던 기자님께서 만추의 가을 서정을 주문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름다운 가을의 서정보다 보다 깊은 현실적인 은유, 우리 인생의 가을 서사를 쓰고 싶었다. 기자님이 보이콧 하셔도 어쩔 수 없다.

 

이 글을 읽으며 독자들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시야, 수필이야? 이 글을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시고 혹시 위로를 얻는다면 가을 예찬보다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삶은 원심력도 구심력도 없이 시간의 판화처럼 추억을 남기며 흘러간다. 나의 일상도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살아봐요

 

쏟아지는 민원 전화, 실업급여나 취업 상담하는 수많은 민원인들, 하루 여섯 시간의 강의나 프로그램 진행, 산더미 같은 공문과 신고서들... 야근 후 집에 오면 주부로서의 일이 있었고, 원고청탁 마감을 준수하며 밤잠을 담보 잡히고 써야 하는 원고들이 있었다.

 

물리적으로 글을 쓰는데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글 쓸 때만은 오롯이 내 이름과 내 정체성을 찾을 수 있어서 기뻤다.

 

▲ 긴 세월 동안 두 아이를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키워냈던 지난날의 삶은 지극히 감정적으로현실적으로 쫄깃한 롤러코스터였다.  PIXBAY.COM

 

이곳에 들어올 때 네 살이었던 작은 애는 이제 군대를 갔다 와서 대학교 졸업반이 되었고, 아홉 살이었던 큰 애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능한 직장인이 되어 있다. 긴 세월 동안 두 아이를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키워냈던 지난날의 삶은 지극히 감정적으로, 현실적으로 쫄깃한 롤러코스터였다.

 

지난한 삶을 살아 내야 했던 이 땅의 모든 분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밥그릇 / 이 주 리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어본 적 있나요

창구에 앉아 하루에 백번의 슬픔을 받아요

슬픔은 너무 축축해

주기적으로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해요

해풍에 그물 당기는 쪽으로만 손가락이 자란 아저씨

그 손가락 하나를 잃었을 때 밥그릇도 잃어

눈빛은 허공을 헤매고

목에는 절망이 가래 되어 끓어요

까짓꺼 뱉어내세요. 아저씨

아리아리 동동 스리스리 동동

대학생 하나, 중학생 하나, 초등학생이 둘,

그리고 기저귀가 필요한 노모가 있다구요

입 벌린 운동화 여섯 개가 장난이냐구요

회사가 받아먹은 지원금 때문에

해고를 해고라 불러주지도 않아

실업급여도 안되는 게 어느 나라 법이냐고요

분노가 방향을 잃어 저에게 박히죠

당신이 이런 젠장할 상황을 알기나 해?

씨팔, 나보고 어찌 살라고

아리아리 동동 스리스리 동동

나도 울고 싶어요. 아저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살아봐요

빈 밥그릇에 햇살이라도 담읍시다

 

어찌해야 햇살을 담을 수 있는지?

 

▲ 수천의 실직자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수만의 소리 없는 분노와 편견그리고 깊은 슬픔들이 내 옆에 머물다 갔다. PIXBAY.COM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머물렀던 곳, 그 동안의 고용노동부 내 일터.

수천의 실직자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 수만의 소리 없는 분노와 편견, 그리고 깊은 슬픔들이 내 옆에 머물다 갔다. 하루하루 견디었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생존의 위협에 속수무책인 가장과, 현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청년들, 추운 날 젖먹이 어린아이들을 굶길지도 모른다는 여성 가장들의 공포에 비하면 건조한 공문 더미의 틀 속에서의 나의 현실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난 가을 이 시를 썼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경제침체가 된 현실, 일자리 문제는 한 개인이 아닌 한 가족의 문제다.

 

나는 날마다 창구에 앉아 우리들의 절망에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송신하고 싶은 열망으로 우리의 밥그릇에 어찌해야 햇살을 담을 수 있는지 사회를 향한 타전을 하고 있었다. 슬픔과 절망을 견디는 주문 아리아리 동동, 스리스리 동동을 외우면서.

 

▲ 이제 나는 이 직장에서 올 6월에 정년퇴직을 했다정신없이 사느라 꽃 한 번 피워보지 못한 채 진 장미처럼.   PIXBAY.COM

 

이제 나는 이 직장에서 올 6월에 정년퇴직을 했다. 정신없이 사느라 꽃 한 번 피워보지 못한 채 진 장미처럼.

 

젊었을 때 생각했던 노인인 60대가 내게도 슬며시 왔다. 그러나 나는 아직 건강이 있고, 열정이 있고, 능력이 있다. 나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60대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가을은 쇄락을 자연스럽게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계절이다. 우리도 가을이다. 그것도 딱 10월말의 나이이다. 이제 가을을 마무리해야 하고 혹독한 겨울만 남은 우리.

그러나 10월에 핀 장미처럼 우리, 좀 늦었지만 이 가을에 다시 꽃피워도 될까?

그것이 비록 가을의 오류라고 해도.

 

프로필

시인수필가

2006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

2007년 현대문학수필작가회 E-수필 신인상 당선

2008년 현대시문학 시부문 신인상 당선

전 고용노동부 전주고용센터 근무

시집 도공과 막사발수필집 고통과의 하이파이브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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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0/30 [01:33]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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