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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2.05.28 [00:48]
<박행주칼럼> 태고적 예술! ‘동굴벽화’
 
박행주 / 국제전통예술교류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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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원시인! 그들에게도 예술혼

 

▲ 박행주 / 국제전통예술교류협회 회장   

인간에게는 동물과 다른 많은 특징이 있고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이 예술을 향유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예술은 인류 문명의 발달과 함께 발전해 왔지만 그 시작은 놀랍게도 수만 년 전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렵·채집활동을 했던 원시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그 자체였다. 그들에게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극히 원초적인 의식주에 의존해서 생활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시에 예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실제로 대부분 영역에서 당시의 생활상을 우리가 짐작하는 것은 상상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신을 숭배하거나 흥겨움을 나누고 싶을 때 함께 했을 음악이나 춤의 영역도 그중의 하나이다. 당시에 존재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정확히 알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현대인이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을 남겨놓기도 했다. 원시인들이 한곳에 정착해서 농경 생활을 하기 이전까지는 수렵·채집을 위해 계속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맹수나 추위, 비를 피할 수 있는 동굴과 같이 적당한 곳을 만나면 한동안 그곳을 생활 근거지로 삼았고 그곳에 그들의 흔적을 남겼다.

 

지금까지 원시인들이 살았던 많은 동굴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어 왔다. 그러한 동굴에는 당시의 생활상, 서식했던 동물들, 사냥 모습 등이 잘 드러나게 표현된 벽화들이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미 프랑스 라스코 벽화와 같은 곳은 35,000~40,000년 전의 벽화가 전해지고 있다. 구석기시대의 원시인들은 정확히 어떤 이유로 이러한 벽화를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오래된 기록들을 현대인들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필자는 여러 동굴 중에 프랑스의 루피냑(Ruffignac) 동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3,000여년 전에 원시인들이 생활했던 그곳은 당시의 매머드, 코뿔소, 말 등의 형상이 표현되었고 아주 양호한 보존상태로 발견되었다.

 

몇 년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미국 월든대학 연구진들이 이 동굴에 대해 연구했던 결과가 흥미롭다. 그 벽화는 손가락을 세워 긁는 손가락 플루팅기법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필자가 이 동굴에 관심을 둔 이유는 어른들이 벽화를 그렸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조사결과 그들이 어린이들이었다고 발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3~7세의 어린아이들이 벽화를 그렸고 가장 주도적으로 그린 아이는 5살 여자아이였다고 한다. 13,000년 전에 그린 동굴벽화를 누가 그렸는지 특정할 수 있는 학문적 기법도 놀랍지만 이를 통해 특정된 대상이 5살짜리였다는 것은 더더욱 놀랄 일이다.

 

 


인간만의 원초적 예술 본능

 

루피냑 동굴의 벽화를 보며 이렇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어른들이 동굴 입구를 지키거나 사냥을 나가 있는 동안 어린아이들은 안전한 동굴 속에 남아서 지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그 무료한 시간 동안 진흙을 가지고 놀다가 벽에 그림처럼 무엇인가를 그렸을 것이고 그 흔적들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루피냑동굴의 벽화는 어린아이들이 예술적 표현을 한 것이 최소한 13,000년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예술적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자연적으로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기질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예술 표현 본능은 오랫동안 유전자로 전해 내려오면서 수많은 분야의 예술을 낳았고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왔다. 오래전 원시시대에는 진흙과 같은 재료정도를 쓸 수 있었지만, 물질문명의 발달로 이제는 재료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그래서 현대에 와서는 인류가 넘치는 예술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미술가들은 어쩌면 무엇을 표현할까?’가 아니라 어떤 재료로 표현할까?’를 결정하는데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양 예술의 이식! ‘고유의 정체성상실

 

예술은 인간이 사는 지역과 민족에 따라 발전속도가 달랐다.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 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예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점진적인 변화가 이루어져 왔다.

 

그 후 유럽의 몇몇 나라들은 발달한 과학 문명을 등에 업고 외부세계로 눈을 돌려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른 대륙에 수많은 식민지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들의 문화도 서서히 이식될 수밖에 없었다. 강제적인 이식도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동화된 경우도 많았다.

 

어느 나라 사람이 해외의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가장 쉽게 누구하고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면 그것은 영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곳은 세계에서 몇 나라 되지 않고,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영어를 배운 소수의 사람과만 자유스러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스페인 사람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대륙의 어느 나라를 가든 그들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다. 대화뿐 아니라 투우를 비롯한 그들의 문화가 뿌리내린 것들을 폭넓게 즐길 수 있다. 이에 반해 남미 사람들은 자신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잃은 채 살아가고 있고 이러한 모습은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 확장으로 인한 것이다.

 

세계의 과학, 문화, 예술 등의 전반적인 흐름은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몇몇 나라와 후발국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영향을 받게 되었던 많은 나라들은 자신들이 수천 년을 이어왔던 전통적인 문화와 예술들이 사라지거나 약해지고 있다.

 

그동안 입어왔던 수많은 세계 전통 의상들만 보더라도 미국의 블루진이라고 하는 청바지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서서히 사라져 왔다. 이런 복장은 누가 강제로 입으라고 한 것이 아니고 서양문물에 동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입게 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한때 북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서양 개척자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했고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개척자들이 즐겨 입었던 것이 지금의 청바지이다. 하지만 150여 년이 지난 지금 인디언들은 정착촌에서 자신들의 전통복장이 아닌 이 청바지를 아무 거리낌 없이 입은 채 생활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예술의 세계! ‘우열 가릴 수 없어

 

전쟁을 하거나 운동경기를 할 때는 우월한 무기나 장비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 상대를 이길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그것이 문화나 예술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이는 자칫 문화의 다양성이 담보되지 않고 획일화의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만 년 동안 이어져 온 다양한 인간의 예술본능을 어떻게 한줄기 흐름 안에 가둘 수 있을 것인가. 문화나 예술은 어느 나라의 것이 우월하고 다른 나라가 열등한 것으로 판가름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그런 우열을 가리면서 예술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도 역사적으로 그런 흐름이 있었다. 통일신라 시대에 당나라의 음악이 유입되고, 고려 시대에 송나라의 음악이 유입될 때 그 음악들을 동경하는 흐름인 모화사상’(慕華思想)이 그것이다.

 

조선 시대로 넘어와서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인해 중국의 유교 형식이 들어왔고 궁중에서도 유교식 제례 음악이 쓰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조선 후기에 가면서 일반 대중을 중심으로 판소리나 풍류 음악 등 민속 음악이 널리 퍼지면서 그 흐름에 어느 정도 변화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음악이 학교 교육에 창가의 형태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침투되었다. 식민교육의 일환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음악교육이 시행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일본식 동요에 익숙해졌고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 있기도 하다.

 

당시의 그런 현상은 단순히 동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일본군에 저항하면서 싸우던 독립군들의 군가도 일본노래의 가락에 노랫말만 바꾼 노가바가 많았다. 음악이 단순히 노래 부르는 것을 벗어나 사람들의 의식 깊이까지 자리 잡게 되는 무서운 결과였다.

 

일제강점기 때 근대식 서양군악대나 교회 등을 통해 서서히 전해지게 된 서양음악 또한 해방 이후로도 우리의 삶에 깊이 영향을 주어 왔다. 유럽의 클래식 음악은 물론 점차로 팝송, 재즈, 힙합 등 미국음악이 물밀 듯이 몰려들어 왔기 때문이다.

 

 

 

서양 예술! 우리 삶속에 깊이 침투

 

1년에 몇 차례는 클래식 연주회를 가거나, 노래방에 가서 유행하는 팝송 몇 곡 정도는 불러야 품격있어 보였던 시기도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굳이 사대주의라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서양의 예술이 우리의 것보다 더 우월하다는 심리가 어느 정도는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외부세계에 대한 동경이라는 측면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서양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따라 하는 대신 인도음악이나 케냐, 몽골, 아제르바이잔 음악 등에 심취해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다.

 

음악은 지역으로 분류했을 때 크게 보면 자국의 전통음악과 외부의 음악, 즉 세계음악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200개국에 가까운 나라는 나름대로 독특한 음악들이 전해지고 있고 각각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있다.

 

한 옥타브 안에 22개의 음이 존재하면서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인도음악, 원초적이면서 독특한 리듬으로 아프리카 타악을 연주하는 케냐 음악, 한사람이 동시에 두 가지의 소리를 내는 몽골음악,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힘이 느껴지는 아제르바이잔의 무감’(Mugham)음악 등은 많은 사람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한 멋진 음악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유럽의 몇 나라와 미국 음악에만 관심을 두고 즐기는 경우가 많다. 수십 명의 서양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의 생애와 작품들을 줄줄이 말할 수 있는 사람들도 정작 우리나라 역사에 남아 있는 음악가에 대해서는 겨우 한 두 명 정도의 이름밖에 이야기하지 못하곤 한다.

 

음악을 음식처럼 즐기기

 

필자는 우리의 전통음악이나 특정한 나라의 음악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서양음악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예술은 우열을 가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어쩌면 음식과도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편식하지 않고 여러 음식을 골고루 먹으려고 한다. 그렇듯이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고, 때로는 치유를 얻기 위해서 다양한 음악들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필자는 우리의 전통음악을 오랫동안 익혀왔지만 얼마 전부터는 의도적으로 그동안 익숙하지 않았던 음악들을 검색해서 들어 왔다. 우리 목소리의 음역과 가장 비슷해서 듣기 편한 첼로, 감미로운 선율과 화음을 들려주는 클래식 기타, 편안한 느낌을 주는 성악곡, 화려한 선율의 피아노곡 등 서양음악도 그 대상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도, 몽골, 아제르바이잔 등 서양음악의 범주에 속하지 않은 여러 나라의 음악들도 관심을 가지고 듣고 있다. 하루하루의 기분이 다른 만큼 그날그날 듣고 싶은 음악이 바뀌기 때문에 다양한 음악들을 준비해놓고 감상하곤 한다.

 

필자는 전통음악을 하다가 다른 음악들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경우다. 하지만 서양음악이나 대중음악에 심취했던 경우라면 반대로 우리 전통음악에 관심을 갖아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우리는 다른 나라 음식을 좋아하더라도 결국 구수한 된장찌개와 새콤한 김치를 먹게 된다. 그래서 해외에 한동안 있는 경우, 김치나 고추장을 가져가서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필자가 풍물단을 데리고 10번 넘게 해외공연을 갔을 때 단원들은 며칠만 지나면 삶은 달걀에 고추장을 발라먹거나 파스타에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곤 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는 음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정신과 감성의 영역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자신이 자라면서 먹었던 전통음식이 자기 몸에 가장 어울리듯 우리의 영혼과 감성에 잘 어울리는 것 역시 우리의 전통예술이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전통의 소중함을 잘 표현했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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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2/21 [02:43]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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