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호물품까지 공격 ‘종전압력 거세’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상호 비인륜적 전쟁이 종식될 기미가 요원하다. 특히 190만 명이 피란길에 내몰린 가운데,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이스라엘의 보복이 비례성을 압도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사실상 인종 학살에 가깝다는 비판이 국제사회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살상은 올해 3월 다섯 달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포위한 가자지구에 구호품 반입을 제한하면서 31명이 숨졌고 이 중 최소 27명은 아기와 어린이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 사망자 수는 3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보건부는 지난 3월 15일 기준 3만 1341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고 7만 3134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연료는 부족하고, 위생 상태까지 악화되며 전염병이 번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가자지구 주민들은 220명이 하나의 화장실을 나눠 쓰고 있다. 질병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가 나날이 심화하는 가운데, 벨기에·독일 등 유럽 정상들이 이스라엘에 인도적 지원에 대한 빗장을 풀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유럽연합(EU) 상반기 의장국인 벨기에의 알렉산더르 더크로 총리는 3월 16일 이날 요르단 암만을 방문해 기자들과 만나 가자지구 인도적 지원을 위한 더 많은 접근 통로를 열어야 한다며 “굶주림을 무기로 삼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는 건 이스라엘 정부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더크로 총리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에 가장 비판적 입장을 취해온 EU 회원국 정상 중 하나다.
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작년 10월 18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과 관련,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 허용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논의했으나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하지 못했다.
유엔은 가자지구 인구 230만 명 전체가 식량 불안을 겪고 있으며, 이 중 4분의 1은 아사 위기일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해 왔다. 이에 국제사회는 구호품 공중 투하, 해상 수송 등 고육지책을 짜내고 있으나 육로에 비해 효율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위기는 네타냐후 총리가 3월 15일 이스라엘군(IDF)의 ‘라파 군사작전’을 승인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후의 피란처’로 알려진 라파에는 140만 명의 피란민이 몰려 있다. 공격이 현실화하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불가피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줄곧 라파 공격을 만류해 왔다.
● 휴전안 ‘이스라엘이 받아들이지 못해’
역대 중동 전쟁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피해가 커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전 세계에서는 전쟁을 멈추라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휴전이 성립되려면, 상호 인질 포로 석방이 선결 조건이고, 워낙 추후 요구조건이 쉽지 않아서 매우 난항을 거듭할 것이 기정사실화 된다.
지난 3월 15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구금된 팔레스타인 포로 700~1000명을 석방하는 대가로 이스라엘 여성과 어린이 및 몸이 좋지 않은 인질을 풀어주겠다는 휴전안을 내놓았다. 보도에 따르면 하마스는 미국·이집트·카타르·이스라엘이 도출한 협상안에 대한 답변으로 △이스라엘의 공격 중단 △구호·원조 제공 △가자지구 피란민 자택 복귀 △이스라엘군 철수 등의 내용이 담긴 휴전안을 제안했다.
이에 앞서 하마스는 모든 군사 작전을 40일 동안 중단하고 팔레스타인 포로와 이스라엘 인질을 10대 1의 비율로 교환하는 내용의 협상안 초안을 받은 바 있다. 당시 하마스는 영구 휴전을 주장했으며 이스라엘은 휴전 제안을 전격 거부했다.
이런 와중에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해 말 12월 18일 각료회의를 열고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일방적 조치를 거부한다’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승인해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자는 이른바 ‘두 국가 해법’의 성사를 위해 외교력을 집중해 왔는데, 공식적으로 이에 반기를 든 것이다.
● ‘인도주의적 압력 단호하게’
지금의 희생과 폭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결집보다는 국제사회의 단합된 목소리가 한층 필요하다. 미국이 말로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고 천명할 것이 아니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에서의 휴전 결의안에 찬성하는 등 실질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법으로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이뤄진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다시 추진하자고 제안한다. 아울러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전쟁을 촉발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대신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가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처럼 참혹한 살상을 저지르는 배경에는 팔레스타인을 지우려는 극우 세력들이 정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3일 열린 이스라엘 내각 회의에서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방위군(IDF) 참모총장과 군 발포 규칙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가 “우리 적들이 어떻게 하는지 알지 않느냐. 그들은 여성과 아이들을 위장 테러리스트로 보낼 것이다. 머리에 총알이 박혀야 한다”는 극언을 쏟아냈다. 벤그비르 장관과 같은 이스라엘 극우파가 중동 평화 전체에 위협을 끼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해 내려온 가자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해 라파 국경 지대를 통해 보급로를 확대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라파에 대한 공격 의지를 밝히자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는 당혹하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호전적 처사에 분노한 유대계 출신 미국 민주당의 상원 1인자인 척 슈머 원내대표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평화의 장애물’로 지목하며 선거를 통한 교체를 주장했다. 슈머 원내대표는 3월 14일 상원 연설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이스라엘의 최선의 이익보다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우선시하면서 길을 잃었다고 본다”고 말하면서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희생을 기꺼이 용인했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 지지가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이스라엘은 외톨이가 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슈머 원내대표의 발언은 선거로 네타냐후 총리를 교체해야 한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네타냐후의 연합정부는 10월 7일 이후로는 이스라엘의 요구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 이 중요한 시점에 새로운 선거만이 이스라엘의 미래를 놓고 건전하고 개방적인 정책 결정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 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네타냐후 정부는 이스라엘 역대 정부들이 각고의 공을 들이며 쌓아온 외교 노력을 무너뜨리고 있다. 세우기는 어렵지만 허물기는 순식간이다. 이는 불변 동맹처럼 보이는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에도 분명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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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